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성 이봉희 Nov 22. 2024

[ 제로의 시대 ]

Z-33 오컬트 마니아가 된 신인류


포스트휴머니즘이 도래하며 인간은 더 이상 예전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의 뇌와 몸은 강화되고, 감각과 인식의 한계가 확장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윤재는 자신이 어딘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는 신기술을 받아들였지만, 내면 깊숙이 자리한 불안과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윤재는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부터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강했다. 기술이 전적으로 지배하는 세계에서 그는 점차 '오컬트'라는 단어에 매료되었다. 기술이 모든 것을 해명할 수 있는 시대에, 해명되지 않는 영역에 대한 갈망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유령, 초자연적 존재, 그리고 불가사의한 현상들은 기술로 강화된 감각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잃어버린 어떤 본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포스트휴먼이 되면서 윤재는 자신의 뇌를 끊임없이 확장할 수 있는 신경 네트워크와 AI 보조 장치를 이식받았다. 이 장치는 그가 원하는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그의 사고 과정을 보완하며, 한계를 뛰어넘도록 도왔다. 그러나 그는 이 기술로도 설명되지 않는 것들을 찾아 나섰다. 윤재는 초월적 현상을 해명하려는 노력 대신, 그것을 느끼고 경험하려는 길을 택했다.


기계와 융합된 신체는 점점 더 초자연적 경험을 갈망하게 했다. 윤재는 AI가 해석할 수 없는 영역, 즉 초자연과 관련된 전통 의식, 주술, 점성술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포스트휴먼이 되기 이전의 인간들이 오랜 시간 동안 믿어온 고대의 지식이야말로 현대 사회의 과학적 데이터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라고 믿었다.


윤재는 점성술과 주술에 과학적 요소를 결합시키며 실험을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신경 네트워크를 이용해 오래된 주술서의 텍스트를 디지털로 재구성하고, 이 지식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며 '과학과 마법의 융합'을 시도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의 관심사는 점점 기술에서 멀어졌다. 그는 고대의 촛불, 손으로 그린 마법진, 그리고 구전된 주문을 통해 더 강렬한 초월적 경험을 추구했다.


윤재는 홀로 이 세계에 빠져든 것이 아니었다. 기술로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해진 시대에, 인간의 '불확실성에 대한 로망'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는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오컬트 마니아들이 모인 이 그룹은 자신들을 "잊힌 빛의 전도자"라 불렀다.


이 커뮤니티는 과학적 데이터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을 탐구하며, 기술이 닿을 수 없는 감각적이고 영적인 경험을 나눴다. 윤재는 이 그룹의 리더가 되어 고대 의식을 재현하는 워크숍을 열었다. 그는 종종 마법진을 그리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기술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것은 우리의 본질을 왜곡하는 거야. 우리가 느끼는 '이해할 수 없음'은 인간으로서 살아 있다는 증거야.”


윤재는 현대의 기계적 감각이 초자연적 경험을 '잡아내는' 도구가 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대신, 그는 오감과 직관, 그리고 마음속 깊은 믿음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믿었다.


윤재의 활동은 점차 그의 친구이자 철학자였던 혜원의 관심을 끌었다. 혜원은 자연과 기술의 조화를 추구하며, 인간이 본질적으로 더 나은 존재로 진화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녀는 윤재의 활동을 비판하며 말했다.


“윤재, 너는 지금 과거로 도망치고 있는 거야. 우리는 더 나아가야 해. 인간은 초월적인 존재가 될 수 있어. 하지만 네가 하고 있는 건 인간의 약점에 집착하는 거야.”


윤재는 그녀의 비판에 개의치 않았다. 그는 혜원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꼈다.


“혜원, 초월적이라는 게 뭐야? 네가 말하는 초월은 결국 데이터로 해석 가능한 것들이잖아. 나는 그 너머에 있는 것을 찾고 있는 거야. 기술이 손댈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둘의 대화는 갈등을 넘어 철학적 논쟁으로 이어졌다. 윤재는 기술을 통해 발전한 인간이 역설적으로 미지와 신비를 그리워하게 되는 것은 필연이라고 믿었다. 그는 혜원에게 묻곤 했다.


“혜원, 네가 포스트휴먼이라면, 네 내면의 인간은 어디로 갔지? 너도 그걸 찾아야 해.”


윤재는 그의 연구 끝에, '기술과 마법의 조화'를 이루는 의식을 시도했다. 그는 신경 네트워크를 통해 고대의 주문을 AI로 변조한 소리를 재현하며, 전통적인 촛불과 주술적 상징물을 이용해 의식을 진행했다. 이 순간, 윤재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존재와 접촉했다고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환각이나 오류로 치부될 수 없는 깊이 있는 감각이었다.


그는 그 순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기술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지만, 이 경험은 오직 내 인간적인 두려움과 갈망에서 비롯된 거야. 나는 그 감정을 통해 이 존재와 연결되었어.”


이후 윤재는 자신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고, 기술로는 해석할 수 없는 감각적 경험을 포스트휴먼들에게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는 과거와 미래, 과학과 신비의 경계를 허물며, 인간 본질의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는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


---

윤재의 이야기는 '제로의 시대'에서 인간의 기술적 진화와 본질적 욕망의 충돌을 보여주는 중요한 축이다. 그는 과거를 향한 그리움과 미래를 향한 갈망 사이에서, 인간다움의 의미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