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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이봉희 Nov 23. 2024

[ 제로의 시대 ]

Z-46 제로 윤리 선언 발표 후, 내면적 갈등과 성장


도시 중앙 광장. 태양광 패널로 빛나는 거대한 스크린에는 “제로 윤리 선언 채택”이라는 문구가 번쩍였다. 시민들의 환호가 광장을 가득 채웠지만, 혜원은 한쪽에 서서 조용히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우리를 성공했다고 말하겠지.” 혜원이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옆에서 엠마가 다가왔다. “맞는 말이야. 각국이 제로 철학을 채택했으니. 하지만 왜 네 표정은 이렇게 어두워?”


혜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의 태양빛을 바라보았다. “엠마, 우리가 너무 큰 꿈을 꾼 건 아닐까?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환경을 회복한다고 해도 그 욕망이 언제든 다시 망가뜨릴 수 있어. 사람들은 정말 변할 수 있을까?”


엠마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기에 너처럼 철학을 연구하고 사람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사람이 필요해. 하지만 기억해, 모든 변화는 천천히 이루어지는 법이야. 우리가 첫 단추를 제대로 꿰었으니, 이제부터는 이 방향을 유지하기 위한 인내가 필요하지 않을까?”


“인내라…” 혜원은 엠마의 말을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빛은 여전히 복잡했다.


한적한 농촌 마을. 스마트 농업 기기들이 자동으로 작물을 관리하는 밭을 지나 카이는 홀로 들판을 걸어가고 있었다. 엠마가 그 뒤를 따라가며 목소리를 건넸다.


“카이, 요즘 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 무슨 일 있어?”


카이는 멈춰 서서 엠마를 바라봤다. “엠마, 나는 사람들이 나를 정말로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정작 나는 인간도, 자연도 아니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처럼 느껴져.”


엠마는 그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대답했다. “너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실은 어디에나 속해 있어. 너의 존재는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기술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어. 그리고 그걸 본 사람들은 너를 통해 희망을 얻고 있지.”


“하지만…” 카이는 잠시 말을 멈췄다. “기술이 항상 옳은 방향으로 사용되지는 않아. 오히려 제로 지대의 기술이 잘못된 손에 들어가 새로운 위협을 만들고 있어.”


엠마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기술은 항상 양날의 검이지. 하지만 너는 기술의 올바른 사용을 보여주는 예시야. 네가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믿어.”


카이는 엠마의 말을 듣고도 여전히 고민이 깊은 표정이었지만, 그녀의 말에서 조금의 위안을 얻은 듯 보였다.


제로 공동체의 회의실. 각국의 리더들과 지역 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 혜원이 철학적 비전을 발표하고 있었다.


“제로 윤리 선언은 끝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선언을 모든 세대에 걸쳐 지속 가능한 시스템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이 계속 남습니다. 우리의 철학은 정말로 모든 생명에게 공평할까요?”


그녀의 질문에 모두 조용해졌다. 카이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혜원, 공평이라는 건 이상적일 수 있지만, 모든 시스템에는 불균형이 생기기 마련이야. 우리는 그 불균형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 뿐이지.”


엠마가 그를 이어받았다. “맞아. 제로 철학은 완벽하지 않아.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각 지역의 전통과 문화에 맞게 조정할 수 있어.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야.”


혜원은 두 사람의 의견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제로 철학은 완벽이 아니라 방향성을 제시하는 거군요. 각자 자신의 역할 안에서 이 철학을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겠죠.”


카이는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철학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는 거야.”


엠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는 거지. 혜원, 카이, 우리 모두 같은 길을 가고 있어. 각자 다른 방법으로 말이야.”


그들 사이에 조용한 결의가 흘렀다. 새로운 도전은 여전히 많았지만,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통해 방향을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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