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지구를 본 적도, 자연의 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들에게 자연은 홀로그램으로 재현된 이미지였고, 고향이라는 개념은 화성의 붉은 대지에서 자라난 자신들의 삶과 연결된 것이었다. 제로 철학은 지구에서 혜원, 카이, 엠마가 심어 놓은 씨앗이었지만, 이곳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피어났다.
첫 번째 화성 거주민들이 정착을 시작한 후 약 50년이 흘렀다. 초기 정착민들은 지구에서 가져온 제로 철학에 기반한 자연과 기술의 조화로 생존 기반을 구축했다. 화성의 거주 도시는 둥글고 유기적인 형태를 띠며, 작은 숲과 자급자족 생태계가 도시 곳곳에 자리 잡았다. 엠마가 설계한 작은 생태계는 예상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작동하며 화성에서도 인간이 자연과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화성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이 환경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들에게 숲은 지구의 자연이 아닌 화성에서 만들어진 또 다른 구조물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지구의 생명력을 상상 속에서만 이해했으며, 제로 철학을 전통으로 배우긴 했지만 자신들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화성의 첫 세대는 자원과 에너지 활용에서 새로운 접근 방식을 고안했다.
그들은 엠마와 혜원의 방식처럼 자연을 재현하는 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자연의 역할을 기술적으로 대체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화성 세대의 젊은 엔지니어들은 엠마가 설계한 숲 대신, 인공으로 조성된 생태계를 제안했다. 이들은 “자연”을 정교한 기술로 재현하려 했다.
예를 들어, 화성의 대기에서 이산화탄소를 직접 추출하여 산소를 만드는 기계 숲이 개발되었다. 이 기계 숲은 실제 나무처럼 보이지만, 나뭇잎 대신 태양광 패널과 공기 필터로 구성되어 있었다.
“왜 지구의 자연을 흉내 내야 하죠?” 젊은 기술자 리안이 엠마에게 물었다. 그는 기계 숲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였다. “우리는 화성에서 태어났고, 이곳의 환경에 맞는 자연을 만들어야 해요. 자연이란 단순히 숲이 아니에요. 그건 우리가 생존을 위해 구축해야 할 시스템이에요.”
엠마는 그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자연은 단순히 기능적인 것이 아니야. 우리가 자연에서 배우는 건 삶의 방식이기도 해. 기술로만 대체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건 지구에서 온 사람들이 하는 말이에요,” 리안이 단호히 말했다. “우리는 자연을 경험한 적이 없어요. 하지만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다른 방식의 자연을 창조할 수 있어요.”
화성의 첫 세대는 지구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공동체를 형성했다. 그들은 지구에서 전해진 ‘균형과 조화’라는 제로 철학의 정신을 바탕으로 했지만, 화성 환경에 맞는 협력과 생존 모델을 구축했다.
화성에서는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기능했다. 거주민들은 각자의 역할을 철저히 나누고, 모든 자원을 공유하며 생존을 도모했다.
예를 들어, 모든 에너지와 물은 중앙에서 관리되었고, 각 거주민은 자신의 소비량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서로 조율했다.
한 젊은 리더, 아네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가진 자원은 한정적이에요. 여기서 중요한 건 서로를 신뢰하며 협력하는 거예요. 우리는 자원이 아니라 협력을 통해 살아남고 있어요.”
카이는 이들의 생활 방식을 지켜보며 감탄했다. “지구에서 우리는 자원의 부족이 갈등의 원인이 되었지만, 화성에서는 그 부족이 협력의 원동력이 되었군.”
지구의 자연을 경험하지 못한 화성 세대는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구축했다. 그들에게 제로 철학은 단순히 환경 윤리나 자연 보전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의 삶을 이해하는 방식이 되었다.
화성 세대는 자신들을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초월한 존재로 여겼다. 그들은 생물학적으로는 인간이었지만, 자신들의 정체성은 기술과 자연, 우주의 환경이 혼합된 새로운 존재로 자리 잡았다.
젊은 여성 리아는 한 회의에서 말했다. “우리는 지구인도, 완전히 인간도 아니에요. 우리는 기술과 자연, 우주 환경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예요. 제로 철학은 우리에게 정체성을 넘어서 존재 자체의 의미를 가르쳐 줬어요.”
엠마는 리아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가 나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구나. 제로 철학은 단순히 자연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 깨닫게 하는 과정이었어.”
화성 세대는 지구를 경험하지 못했지만, 지구와의 연결을 유지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지구는 여전히 그들에게 전설처럼 전해지는 고향이었으며, 지구의 자연은 그들의 상상 속에서 신화처럼 존재했다.
혜원은 화성의 중심에 지구의 생태계를 재현한 홀로그램을 설치했다. 정착민들은 매일 이곳에 모여 지구의 강, 바다, 숲을 관찰했다. 하지만 화성 세대는 이를 단순한 역사 자료로 여겼고, 지구를 이상화하기보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데 더 관심이 있었다.
“지구는 우리의 시작점일 뿐이에요,” 젊은 기술자 레오는 홀로그램을 보며 말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더 나은 자연을 만들 수 있어요.”
혜원은 그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너희의 방식대로 자연을 재해석할 수 있다는 건 제로 철학이 계속 진화하고 있다는 증거야.”
화성의 첫 세대는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제로 철학을 재해석하며, 지구의 전통과 새로운 화성의 문화를 융합했다. 그들에게 자연은 지구에서 온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기술과 협력을 통해 만들어가는 미래의 가능성이었다.
혜원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제로 철학은 하나의 정의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야. 화성 세대가 이렇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줄은 몰랐어. 이게 바로 우리가 우주에 온 이유겠지.”
카이는 창밖의 붉은 대지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우리는 이제 시작일 뿐이야. 우주 어디든 이 철학이 적용될 수 있다면, 우리의 여정은 끝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