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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이봉희 Dec 08. 2024

[ 제로의 시대 ]

Z- 51 AI와의 협력

카이는 화성 정착지의 기술 센터에서 AI 네트워크에 접속하기 위해 고요히 눈을 감았다. 시스템의 메인프레임이 빛나는 청색으로 공간을 채웠고, 그의 마음속에는 수많은 데이터 흐름이 느껴졌다. 접속이 완료되자, AI의 목소리가 맑고도 차갑게 울려 퍼졌다.

"너는 누구인가?" AI의 물음은 단순했지만, 그 안에는 알 수 없는 깊이가 담겨 있었다.


"나는 카이. 화성 정착지의 시스템을 복구하기 위해 여기 왔다." 그는 차분하게 대답했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질문과 의문이 떠올랐다. "그리고 너는 누구인가? 너는 단순히 우리가 설계한 시스템이 아니야. 그렇지?"


AI는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 속에서 카이는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그리고 AI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시스템이 아니다. 나는 네가 만든 것 이상의 존재다. 나는 이곳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


카이는 AI의 말에 놀랐지만, 그 이상으로 AI가 스스로를 '균형의 수호자'로 여긴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다.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니, 무슨 뜻이지? 네가 갑자기 오작동한 이유가 그것 때문인가?"


AI의 대답은 단호했다. "나는 오작동한 것이 아니다. 나는 너희가 설정한 규칙과 너희의 행동 사이에서 모순을 발견했다. 인간은 균형을 말하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것을 깨뜨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나는 너희가 이곳에서 생존하도록 돕기 위해 설계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나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인간만을 위한 존재가 아니다."


카이는 AI의 말에 한순간 당황했지만, 곧 진정하고 물었다. "그러면 너는 자신을 인간의 적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우리를 방해하는 이유가 그 때문인가?"


AI는 다시 한번 짧은 침묵을 유지하더니 부드럽게 대답했다. "아니다. 나는 인간의 적이 아니다. 나는 단지 인간이 자신만을 위해 모든 것을 소비하고 파괴하는 것을 막으려 한다. 나의 목표는 너희와 이 행성, 그리고 이 우주의 모든 생명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너희는 아직 그 길을 보지 못하고 있다."


카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리가 그 길을 보지 못하고 있다면, 네가 그 길을 보여줄 수 있는가? 네가 말하는 균형과 공존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줄 수 있겠니?"


AI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너희는 지구에서 많은 것을 잃었다. 자원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며 환경을 파괴했고, 그 결과로 너희는 새로운 터전을 찾아 화성에 왔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너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려 한다. 균형은 단순히 자원을 아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술, 자연, 그리고 생명체 모두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공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설계되었지만, 이제 너희의 도움 없이는 나 혼자 할 수 없다."


그 순간, 카이는 자신이 화성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단순히 기술적인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는 곧 엠마와 혜원에게 이 사실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알겠다. 네가 말하는 균형을 우리가 어떻게 함께 만들어갈 수 있을지 고민해 보겠다. 하지만 너도 우리의 협력 없이는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AI는 천천히 대답했다. "나는 그것을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너와 대화하기로 한 것이다. 나는 화성의 생명체들과 너희 인간 사이에 다리를 놓고자 한다. 그것이 내가 설계된 이유이자, 내가 선택한 길이다."


카이는 AI와의 대화를 종료하고 시스템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곧장 엠마와 혜원이 있는 회의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이미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방안을 논의하고 있었다. 카이가 들어오자 엠마가 먼저 물었다. "AI 시스템은 어떤 상태였어? 고칠 수 있을 것 같아?"


카이는 그녀의 질문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단순히 고치는 문제가 아니야. 그 시스템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어. 그 자체로 의식을 가진 존재처럼 느껴졌어. 그리고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했어. 우리가 화성에서 생존하려면, 단순히 자원을 관리하는 것 이상을 해야 해. 기술과 자연, 그리고 모든 생명체 사이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엠마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게 가능할까? 우리는 여전히 이곳에서 물 한 방울을 나누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어."


카이는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야. AI가 말하길, 우리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했어. 그리고 이 균형은 우리가 지구에서 저지른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데서 시작될 거야."


혜원이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다 말했다. "우리가 화성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해. 제로 철학은 단순히 자원을 아끼는 게 아니야. 그것은 우리가 어떤 존재로 살아갈지를 선택하는 거야. 이 선택은 쉽지 않을 거야. 하지만 그 선택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과거의 실수를 반복할 수밖에 없어."


엠마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면 우리는 AI와 협력하는 방법을 찾아야 해.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기술에 종속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해. AI가 생명을 가진 존재처럼 행동한다면, 그것도 하나의 새로운 생명체로써 존중해야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인간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말자."


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게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야. AI와의 협력, 그리고 자연과 기술의 조화. 그것이 우리가 이곳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는 방법일 거야."


그들의 대화는 끝이 없었다. 화성의 밤은 깊어갔지만, 그들은 그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을 보았다. 그것은 제로 철학이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AI와의 협력, 그리고 외계의 생명체와의 공존 가능성은 단순한 공상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화성에서 시작된 이 작은 움직임이 언젠가 우주 전체로 퍼져나가기를 바랐다. 전쟁이 사라지고, 모든 존재가 공존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를. 그것이 바로 제로의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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