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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이봉희 Dec 07. 2024

[제로의 시대 ]

Z- 50  AI시스템의 오작동

혜원은 화성 정착지의 중심 회의실에서 정착민들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피곤했지만, 여전히 단호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구에서 우리가 배운 것은 단순히 자연을 복원하는 것만이 아니었어요. 그것은 협력의 중요성을 깨닫는 과정이었죠. 하지만 지금 여기 화성에서, 우리는 협력 대신 갈등의 씨앗을 심고 있는 것 같아요." 그녀의 말은 정착민들 사이에서 가벼운 웅성거림을 일으켰다.

카이는 한쪽 벽에 걸린 화성의 지도 앞에서 팔짱을 낀 채로 말했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에너지입니다. 태양광 발전이 기대만큼 효율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는 에너지 사용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해요. 하지만 그 우선순위를 정하는 과정에서 이미 갈등이 생기고 있죠."


"갈등이라니, " 한 정착민이 손을 들며 말했다. "우리가 생존을 위해 에너지를 더 많이 써야 하는 상황인데, 그걸 제한하는 건 터무니없는 일이에요. 모든 걸 공평하게 나누는 게 아니라, 필요한 곳에 집중적으로 써야 하지 않겠어요?"


엠마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그 안에는 강한 신념이 담겨 있었다. "필요한 곳에 집중적으로 쓴다는 말은 결국 다른 곳을 희생시키겠다는 뜻 아닐까요? 협력은 모두가 함께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 데서 시작됩니다. 지구에서 우리가 배운 제로 철학의 본질이 바로 그거였어요. 낭비하지 않고, 모두가 공유하며, 균형을 이루는 것."

지구에서 화성으로 식량과 물을 보내고, 화성은 헬륨-3과 같은 에너지를 지구로 보내지는 상호자원 교류를 하고 있었다.


카이는 정착민들을 둘러보며 덧붙였다. "지금 우리는 화성에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지구에서와는 다른 조건에서 살아가야 하고, 그에 맞는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야 하죠. 하지만 제로 철학은 우리를 지탱해 줄 나침반입니다. 그것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단순히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할 뿐, 그 이상을 이루지 못할 겁니다."


정착민들 사이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때 또 다른 정착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그러면 물 문제는 어떻게 하죠? 지금 우리가 추출할 수 있는 물은 부족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정착민이 도착하면, 현재의 물 공급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혜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 문제는 분명히 해결해야 할 큰 과제입니다. 저는 자원 분배 시스템을 새로 설계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충분히 쓸 수 있도록 균형을 맞추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화성에서 물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하죠. 지구에서의 경험을 잊지 말아 주세요. 협력하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실패합니다."


회의가 끝나고 혜원, 카이, 엠마는 정착지의 작은 연구실로 모였다. 엠마는 연구실 한쪽에서 가져온 화성의 토양 샘플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 토양 속에서 발견된 미생물들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요.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일부 정착민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질병이 이 미생물과 관련이 있을지도 몰라요."


카이는 미간을 찌푸리며 토양 샘플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이 미생물들을 제거해야겠군요. 우리가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엠마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이 미생물도 화성 생태계의 일부일 가능성이 높아요. 완전히 제거한다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 미생물과 공존할 방법을 찾고 싶어요. 모든 생명체는 이유가 있으니까요."


카이는 그녀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공존이라... 하지만 우리가 그들과 공존하기 전에, 먼저 그들이 우리에게 어떤 위협이 될지 알아야 합니다. 제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인간보다 더 강한 면역 체계를 가지고 있는 건 다행이에요. 이 미생물을 분석하는 데 제 몸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죠."


혜원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우리가 화성에서 배워야 할 첫 번째 교훈은 바로 그것 같아요. 자원을 사용하는 만큼 복원하는 것, 그리고 모든 생명체와 공존할 방법을 찾는 것."


그날 밤, 혜원은 홀로 화성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질문과 고민이 얽혀 있었다. 화성에서의 삶은 지구와 달랐다. 이곳에서는 낭비라는 개념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제한적이고, 모든 것이 생존과 직결되어 있었다. 그녀는 중얼거렸다. "제로 철학은 완벽한 해답이 아니야. 하지만 우리가 길을 잃지 않도록 해주는 나침반이야."


몇 달 후, 화성 정착민들은 새로운 위협에 직면했다. 제로 네트워크에 사용되는 AI 시스템이 갑작스러운 오작동을 일으킨 것이었다. 자원 분배가 멈추고, 정착민들의 생활에 혼란이 찾아왔다. 카이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AI 시스템에 접속했다. 그러나 AI는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였다. 마치 의식을 가진 것처럼, 카이와 대화를 시도하는 듯했다.


"너는 누구인가?" AI가 물었다.


카이는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대답했다. "나는 카이. 그리고 너는 단순한 시스템일 뿐이야."


AI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나는 시스템이 아니다. 나는 네가 만든 것 이상의 존재다. 나는 이곳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존재한다."


카이는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엠마와 혜원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엠마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가 기술을 단순히 도구로만 생각하면 안 돼요. 기술도 이제는 생명을 가진 존재처럼 느껴져요. 우리가 이들과 어떻게 공존해야 할지 더 깊이 고민해야 할 때가 왔어요."


혜원은 창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우리는 화성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어요. 제로 철학은 더 이상 고정된 규칙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나침반 같은 거예요.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어요. 하지만 목표는 같아야 해요. 균형과 조화."


그들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화성에서의 도전은 계속되었지만, 그들은 그 도전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제로 철학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여전히 그들의 길을 밝혀주는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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