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이야기 없는 이야기
20. 이야기 없는 이야기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은 채 끝났다.
누군가 이름조차 붙이지 않은 장면들,
말도, 갈피도, 결말도 없이
그저 존재만으로 숨 쉬던 것들.
아무도 듣지 않았던 목소리,
기록되지 않았던 기억,
페이지에 적히지 않은 감정이
오히려 가장 선명했다.
그것은 시작이 없기에 끝도 없고,
전개가 없기에 해석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기억이라 불렀고,
때로는 사랑, 혹은 상처라고도 불렀다.
이야기 없는 이야기는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무수한 조각들로 이루어진
플릭시아의 심장처럼.
그래서 나는 오늘도 빈 페이지를 펼친다.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야기가 오기를 기다리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