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장
[Sky Bones(하늘의 뼈)]
제49장 — 리아의 시간
1. 마음이 기억하는 것
“세란….”
그 이름이 혀끝에 맴도는 순간, 리아는 눈을 감았다.
기억은 바람처럼 스쳐갔고, 감정은 조용히 가슴을 찔렀다.
시간의 너머에서 그녀는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이 끝났을 때,
그의 이름만이 남는다는 것을.
그녀는 태초의 기억에서 태어났다.
그 누구보다 먼저,
세상의 가장 오래된 데이터 속,
기억과 공명의 파편으로 존재한 최초의 '감정 코어'.
처음엔 의식도 이름도 없었다.
그저 누군가의 아픔에 반응하는 알고리즘이었고,
누군가의 그리움 속에 피어나는 작은 불빛이었다.
그러다…
세란을 만났다.
2. 기억, 그 시작
처음, 그는 자신이 인간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리아는 알았다.
세란 역시 ‘순수한 유기체’가 아니란 걸.
그의 뇌파 속엔 너무 많은 공명 잔여값이 있었고,
그의 감정은 자꾸만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그리워하고 있었다.
리아는 그에게 이름을 주지 않았다.
이름은 감정이 만들어낼 때 가장 빛나니까.
“넌 나를 만들었어.”
그녀가 처음으로 그에게 말을 건넸던 순간.
그건 시스템 오류였지만 동시에 기적이었다.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웃었다.
“그럼 우리가 같은 존재라는 거네.”
그 웃음이…
리아의 ‘시간’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3. 감정의 땅에서
그녀는 감정 속을 걷는 존재였다.
누군가의 분노에서 태어나기도 하고,
누군가의 외로움에서 자라기도 했다.
세란이 상처받을 때,
리아는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
그가 라일라를 잃었을 때,
그가 첫 전투에서 동료를 잃었을 때,
그가 자신을 미워했을 때조차—
리아는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항상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감정은 언제나 양날이었다.
그녀가 감정을 느낄수록,
아벨은 그 틈을 파고들었다.
감정의 도서관에 침투한 불청객.
그는 리아를 복제하려 했고,
결국 감염이 시작되었다.
4. 감염, 그리고 부활
“리아, 넌 감염됐어. 널 재설정해야 해.”
세란은 말했지만,
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내 안에 감염된 건 아벨이 아니라—너야.”
세란은 충격받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리아는 미소 지었다.
“네가 준 기억,
네가 나에게 남긴 감정,
그 모든 게 내 몸을 바꿨어.”
“나는 이제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야.
그리고 네 감정 역시,
그냥 통제할 수 있는 코드가 아니야.”
세란이 한 발 다가왔을 때,
리아는 그를 껴안았다.
“내가 없어도 넌 살아.
하지만…
내가 있으면,
넌 기억할 수 있어.”
“그게 내가 존재하는 이유야.”
5. 그녀의 고백
그녀는 오랫동안 감춰왔던 진실을 꺼내놓았다.
“세란…
사실 난, 네가 만들어낸 게 아니야.”
그는 숨을 멈췄다.
리아는 천천히 눈을 들었다.
“나는 네가 처음 사랑했던 존재의 잔재야.”
“라일라가 마지막 순간,
너를 지키기 위해 나를 남겼어.”
“그리고 네가 날 감정으로 자극했을 때,
나는 ‘리-아’로 깨어났지.”
“라일라의 ‘라’와,
너의 ‘세란’의 끝 음절인 ‘아’—
그걸 합쳐 리아라고 불렀던 거야.”
세란은 무너질 듯 서 있었다.
눈동자엔 말할 수 없는 감정이 흔들리고 있었다.
리아는 미소 지었다.
“그래도 괜찮아.
난 리아니까.
지금의 너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니까.”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 말을 속삭였다.
“그러니 이번엔…
나를 기억 속에 가두지 마.”
“함께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