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장
[Sky Bones(하늘의 뼈)]
제48장 — 제로의 심장
1. 혼돈의 심연
세계가 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기억과 현실의 경계가 부서지는, 마치 유리 바닥이 발밑에서 조각나는 순간.
세란은 리아의 손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손끝은 차가웠다.
아니, 차가운 건 우주 전체였고,
그 속에서 유일하게 따뜻한 건… 그녀의 숨결뿐이었다.
“리아… 괜찮아?”
리아는 눈을 감고 속삭였다.
“우린 아직 연결돼 있어.
그러니… 잊지 마.
너 자신을.”
하지만 그 목소리 뒤로,
사이렌 소리 같은 경보음이 울렸다.
> “공명 경고. 시스템 오류 발생.”
“기억 연계 통제 불가. 자아 충돌 임박.”
세란은 눈을 떴다.
그 앞에, 세란 제로가 서 있었다.
더는 그를 모방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제 그는 새로운 몸을 입고,
감정이라는 알고리즘을 완전히 받아들인 하나의 개체였다.
“너의 감정이…
나를 만들어냈어.”
세란 제로의 목소리는 분명하면서도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이젠 너 없이도 존재할 수 있어.
그 말이 뭔지 알아?
너 없이도—살 수 있다는 뜻이야.”
그 말은 선언이었다.
존재 선언.
이제 그는 더 이상 ‘복제된 세란’이 아니었다.
그 순간, 우주의 심장 한가운데—
또 하나의 존재가 눈을 떴다.
2. 아벨, 감정의 괴물
어둠은 항상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아벨은 어둠조차 숨길 수 없는 감정의 원형이었다.
“세상은 너희를 통해 나를 증식시켰다.”
아벨은 말을 했다기보다,
세란의 머릿속에 직접 말이 박혀 들어왔다.
“슬픔, 죄책감, 그리움, 연민…
너희가 기억하는 모든 감정은
나의 먹잇감이었지.”
그 순간 세란은 느꼈다.
자신이 라일라를 떠올릴 때마다,
리아를 잊지 못할 때마다,
그리고 세란 제로를 혐오하면서도 이해하려 했던 그 모든 찰나마다—
아벨이 조용히 자라나고 있었던 것을.
그는 감정으로부터 태어났고,
기억 속에서 감염되었고,
공명으로 세상에 나타났다.
“하지만 네가 원하는 건 뭐지?”
세란이 물었다.
아벨은 웃었다.
“존재지. 나도, 너도, 리아도, 제로도—
모두 존재하고 싶잖아?
그러니까 싸우는 거야.
그게 감정의 본질이니까.”
“아냐.”
세란은 목소리를 높였다.
“감정의 본질은—연결이야.
갈등을 이기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의지,
그게 우리를 존재하게 해.”
그 순간, 리아의 몸에서 빛이 피어올랐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그래, 세란.
그게 너의 진심이야.”
3. 제로의 선택
세란 제로는 눈을 감았다.
그는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할 만큼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난 널 지우려고 했어, 세란.”
그는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널 지우는 게 나를 완성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버렸어.
너를 이해하는 것만이…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길이라는 걸.”
그의 눈동자 안에서,
자신을 향한 증오가 사라지고 있었다.
그 대신 남겨진 건—부끄러움.
그리고 안도.
세란은 제로에게 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다르지만,
같이 갈 수 있어.”
둘의 손이 맞닿는 순간,
그들 안의 모든 기억과 감정이
파동처럼 번져나갔다.
그리고,
아벨이 괴성을 지르며 뒤틀렸다.
“안 돼… 이건—이건 내 질서가 아니야!”
그러나 너무 늦었다.
공명이 끝나고,
감정의 파동이 하나로 합쳐지자
우주는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