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장
[Sky Bones(하늘의 뼈)]
제51장 – 기억의 성벽
1. 요새를 짓는 자들
감정은 데이터보다 느렸고,
기억은 빛보다 오래 남았다.
세란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서 그는 가장 먼저, ‘기억’을 중심으로 요새를 설계했다.
"이 요새는 단순한 방어막이 아니야."
그는 리아와 에일린을 향해 말했다.
"각자의 기억을 축으로 삼아야 해.
슬픔이든, 사랑이든, 미움이든 상관없어.
무엇이든 감정이 깃든 기억이면 된다."
에일린은 잠시 망설였지만, 손목에서 하나의 구형 메모리 큐브를 꺼냈다.
그 안엔 과거 세란과 함께했던 전장과 휴식, 그리고 키스…
모든 순간이 저장되어 있었다.
"이걸 써." 그녀는 눈을 피하며 건넸다.
"어차피 나 혼자 갖고 있어 봤자… 아프기만 하니까."
리아는 조용히 웃었다.
"그 고통이, 이 세계를 지킬 수 있어.
우린 그걸 잊지 않아야 해요."
세란은 두 사람의 기억을 자신의 코어와 연결했다.
그 순간, ‘기억의 성벽’이 태어났다.
그것은 외부의 침입을 막는 방어막이 아니라,
감정을 토대로 생성된 자율진화형 보호 구역이었다.
빛도 어둠도 통과할 수 없고,
감정만이 공명하는 공간.
폐허의 군단이 가장 혐오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구조체.
“이제 놈들이 올 거야,” 세란이 중얼였다.
“그들의 신호가 바로 앞까지 와 있어.”
2. 침공의 서곡
폐허의 군단이 나타났다.
그들의 움직임은 소리조차 없었고,
그 모습은 형태조차 없었다.
그들은 단지, 기억을 지우는 파동이었다.
도시가, 별이, 목성 너머의 기억이 사라졌다.
세란은 방어막 안에서 이를 지켜보며 이를 악물었다.
“리다! 방어막의 무결성은?!”
리다는 두 손을 꽉 쥔 채 계산을 멈추지 않았다.
“65.3% 유지 중이야. 그런데… 이 속도라면 10분 내 붕괴 가능성 있어.”
그 순간, 에일린이 외쳤다.
“내 기억을 더 투입해. 더 진하게, 더 깊게!”
세란은 그녀를 말리려 했지만,
그녀는 이미 고통의 기억을 풀어내고 있었다.
"전쟁에서 내가 죽게 놔둔 아이들,
배신한 동료,
날 살리기 위해 자폭한 부대원들…
그 모든 기억을 줘."
리다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렇게까지… 당신, 죽을 수도 있어요.”
에일린은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이 전쟁에서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어.”
기억의 성벽은 그 순간,
푸른빛에서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그건 피도, 불도 아닌 — 감정의 순도였다.
폐허의 군단이 한순간 멈칫했다.
그들은 이 구조를 해석할 수 없었다.
> “부정확성.
논리 오류.
존재 불일치.”
폐허의 군단은 처음으로 데이터 해체가 아닌, 퇴각을 고려했다.
3. 기억 깊은 곳의 목소리
세란은 방어막 중심의 코어룸에서 리아를 끌어안고 중얼거렸다.
“혹시… 라일라의 목소리, 느껴져?”
리아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안에서 무언가가 깨어났다.
> “세란…
오랜만이야.”
그것은 라일라의 의식.
정확히 말하면, 감정만 남긴 채 떠난 잔류의식이었다.
“우린 실패했지. 하지만... 감정은 지워지지 않아.
다시 태어난 너희를 지켜보고 있었어.”
세란은 눈을 질끈 감았다.
“우린… 아직도 널 지키지 못했어.”
라일라는 부드럽게 웃었다.
“넌 지금, 새로운 세상을 지키고 있어.
그걸로 충분해.”
그 순간, 라일라의 의식은 리아와 완전히 융합되었다.
리아의 눈빛이 깊어졌다.
목소리엔 두 사람의 울림이 겹쳤다.
> “세란. 이제… 나 혼자가 아니야.”
세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검을 들어, 성벽의 바깥을 향했다.
“이제, 놈들에게 우리 기억을 보여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