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삶에 관하여

마음속에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문장을 한가지씩 준비해놓고 끝까지 버팁시다

by Falling in Life

사실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난 맘에 들지 않았다. 버티는 삶이라. 버틴다는 말 자체에서 싫지만 해야 하니까 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외에도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어 나는 일을 시작하면 버티는 게 아니라 즐기는, 내가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고 난 결국 모두가 버티는 와중에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고 있는 중이다. 그랬기에 더더욱 버티지 못한 내가 모자란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할 때에 이 책을 들었다. 버티는 게 맞는 것인지 아닌지 못 버티는 내가 이상한 것인지 아니면 이 사회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결국 작가는 버티는 삶이 옳다고 말하지도 않았고 그냥 그 사람의 생각을 적어놓았다. 그리고 작가가 말하는 버티는 삶은 가슴속에 묻어둔 한 문장을 믿고 신념을 갖고 살기 바란다는 당부로 들린다.

그리고 사회에 대해 받아들이는 생각하는 방식이 많이 비슷해 위로가 되었달까. 나만 이러한 관습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며 이에 부당하다고 느끼면서도 순응하고 살게 되는 것 또한 이상한 일이 아니며, 그러나 이 사람은 부당함을 이러한 식으로 표출을 하고 사는 것에 부러움을 느낀다. 나는 이러한 책을 읽으며 공감을 하며 작게나마 표현을 하지만 부당함을 내게 안겨준 사람은 그러한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가겠지. 시간이 아직 덜 지나서 아직 그가 모르는 것이라고, 언젠가 그도 나이가 들면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본인이 우리에게 얼마나 가혹하게 행동했었던 것인지.

세상과 동떨어진 사람이라고 혹은 나만 이 사회의 부적응자인가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P.23 내가 별로라는 걸 인지하는 사람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개인의 선량함이나 역량에 의존하는 방식보다 제대로 굴러갈 수 있는 체계가,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더 빨리 가 닿을 수 있다. 그건 비관이 아니다. 비전이다.


P.30 존경과 권위는 스스로 선배라고 선언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행동과 품위, 아껴보고 배울 점들로부터 자연스레 얻어지는 것이다.


P.69 엄마는 나를 자꾸 울게 만든다. 그렇다면 엄마 무릎에서 울고 싶다. 하지만 나는 엄마 앞에서 울지 못한다.


P.103 영화의 오프닝이 촬영된 나이로비 최악의 난민촌 키베라를 찾아갔을 때, 수십 명의 아이들이 몰려와 제작진을 반갑게 맞았다. 그들은 저마다 "하우아유?"라는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영어를 입에 담으며 감독과 배우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제작진은 으레 아이들이 돈이나 과자를 달라는 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의 손에 뭐든지 쥐여줬다. 하지만 제작진은 표정이 어두워진 아이들을 바라보며 당황했다. 그리고 곧 얼굴을 붉히며 창피해할 수밖에 없었다. 키베라의 아이들은 선물을 바라는 게 아니었다. 아이들은 단지 손을 잡아주길 바랐을 뿐이다 이들에게는 희망이 필요했다. 희망이 필요한 때다.


p.135 한국 군대에서 간부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알아서 조용히 잘 굴러가는 것이다. 사병들은 부대를 알아서 조용히 잘 굴러가게 하기 위해 자체적인 폭력을 재생산한다. 집합시키고 집합당하고 때리고 맞고 억울해하고 억울하게 만든다. 그러다가 눈에 띄게 되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온다. 알아서 조용히 잘 굴러가는 것을 원했던 사람들은 결코 그들을 책임지지 않는다. 오히려 남들보다 눈에 띄게 분노하고 책망한다.


p.150 최근 화제를 일으킨 88만 원 세대의 공동저자 우석훈 교수는 지금의 20대를 "현재의 20대 중 95퍼센트는 월 88만 원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어렵게 살게 되고 5퍼센트 만이 안정된 직장을 구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놀랍도록 새롭고 절실한 문제의식으로 충만한 이 저서는 주로 진보 지식인들이 인문학적 언어를 동원해 지적하곤 했던 사안들을 철저한 경제논리와 개념들에 따라 풀어내고 있다. 우석훈 교수는 현상황을 세대 간 무한경쟁으로 인해 벌어진 일로 차악 한다.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이 몰고 온 승자독식체제의 게임법칙이 20대에게 특히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거다. 기득권을 차지한 40대, 50댜가 쉽게 자리를 내어줄 리 없는 상황에서, 20대는 비정규직의 굴레로 몰릴 수밖에 없다. 승자독식의 법칙은 세대 간 경쟁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전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는 현상이므로 이들은 앞으로도 갈 곳이 없다. ... 저자들은 "20대들이 스스로 더 이상 승자독식 게임을 하지 않겠다고 윗세대에 대항해 자기 권리를 찾는 게 유일한 희망"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20대는 스스로는 사실상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결국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다.


p. 177 당신이 계급이라는 단어에 알레르기 증상을 일으키거나 아예 죽은 단어라고 생각한다는 건 안다. 그러나 그건 공기라는 단어와 마찬가지로 유행과는 관계없이 그냥 현실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의 현상은 계급이라는 단어를 혐오하거나, 혹은 한 번도 그것에 대해 고민해본 일이 없는 그룹조차 바로 그 계급의 문제로 먹고살 길이 난망해질 수밖에 없다는 걸 반증한다. 20대 비정규직은 30대 40대 비정규직과의 연대를 통해 요구할 만한 것들을 조금 더 급진적인 뉘앙스로 요구해야 한다.


p. 186 연예인은 대중의 사랑으로 벌어먹고 살기 때문에 그래도 된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그런 자들은 회사에서 오너의 사랑으로 벌어먹고 사는 것인가. ... 이번 사태에서 가장 악랄한 건 언론이다. 1/N로 이루어진 집단폭력에 기생하며 그것을 부추기고 모든 사안을 가십화 하여 사유가 아닌 충동적 심판질만을 가능케 하는 언론의 저열함 말이다. ... 그들이 타인에게 강요했던 꼭 그만큼의 세상-개인들의 사사로운 정의가 아비규환으로 뒤엉키고 충돌하여 사적 복수와 고성과 참극이 난무하는 지옥-안에 갇혀 고통받다가 궤멸하길 소망한다. ... 백개의 돌팔매 안에 돌멩이 하나로 숨어 있을 때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1/N이라는 익명의 폭력으로부터 빠져나와 자신이 타인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깨달으라는 이야기다. 그것을 알고도 책임질 수 있으면 돌을 던지라는 말이다. 그럴 수 있는가?


p.206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고, 우리 편이 아니면 저편이며, A를 비판하면 B를 옹호하는 것이라는 단출한 논리가 시대의 모든 것을 재단하고 있다. 이 무식한 칼질이 양시과 정의, 그리고 상식의 이름으로 자행된다. ... 양심과 상식과 정의의 이름으로 단죄가 이어졌다. 언제나 그렇듯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거다. 그러나 종편에 출연하는 특정인을 부역자로 쉽게 낙인찍은 행위에 대해서는 좀 더 고심해볼 필요가 있다. 대체 거기 어떤 근거가 있는가. ... 순서가 거꾸로 되었다. 종편 추럼 과정에서의 문제점과 향후 발생 가능한 해악에 대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했다. 그러나 종편에 출연하는 개인의 노동이 왜 나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 종편에 출연한 개인은 자신의 선의를 증명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선택을 강요받아야 했다. 영혼을 팔아넘긴 뻔뻔스러운 부역자로 남거나,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고 반성하거나. 우리 편이 아니면 저편일 수밖에 없는 좁고 편협하며 단출한 세상, 그 경계에 종편 부역자들이 있다


p.211 요는 '우리는 닌텐도 같은 것 개발할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 비판의 요지는 게임산업이 발달하려야 발달할 수 없는 척박한 한국의 현실은 간과한 태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 한국의 아무개를 찾는 말들에는 당연한 오류가 있다. 그 아무개가 한국이라는 환경 아래서도 그 놀라운 시장가치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냐는 문제다. ... 그것이 애초 그렇게 돈이 될 만한 것이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창작자들은 단지 콘텐츠 자체의 완성도에 열과 성을 다했을 뿐이다. 이 당연한 노력의 과정이 한국에선 거꾸로 뒤집힌다.


p.224 어떤 행동에 단 한 가지 명백한 원인만이 존재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다못해 날씨부터 사소한 대화, 어느 생각 없는 기자가 써 내려간 기사 한 줄이 안겨준 짜증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행동을 가능케 하는 원인에는 수없이 많은 요소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기 마련이다. 그 가운데 하나로 유력한 이유를 만들고 매우 명확한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것처럼 포장하면 정작 문제의 본질은 휘발될 수밖에 없다 끔찍한 사건의 범인을 격리하고 처벌하는 건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사회정의다. 그러나 명백한 이유를 만든답시고 자극적인 수사와 무리한 추정에 바탕해 엉뚱한 데에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범인을 그냥 괴물로 만들어버리면 우리는 동일한 범죄가 반복되는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된다. 그렇게 되는 순간 사건은 더 이상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우리 공동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와 다른 철창 속 괴물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p.231 정치적이지 않은 것을 정치적인 것으로 치환하고 설명해야만 자존감과 자의식을 지켜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언젠가부터 그런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진영을 가리지 않고 성향이나 사안을 가리지 않고 말이다. 피의자 백 모 씨의 행동과 사건 정황에서는 여성 혐오와 비뚤어진 자기애를 찾아볼 수 있을 뿐 어떠한 종류의 정치적 대립각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가 범행의 동기를 정치적 이유라고 설명했던 것은, 그런 식으로 자기 행동에 스스로 원인을 제공하고 설명 가능한 차원으로 바 구어 놓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금세 찾아낼 수 있는 사실관계들을 확인하지 않고 단지 그것이 더 자극적이라는 이유로 피의자의 진술에만 의존해 '살인 부른 디시인사이드 정사갤, 보수 진보가 뭐라고 칼부림까지'식의 기사를 유포시킨 언론 또한 책임을 피할 순 없을 것이다.


p. 348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은 근사한 것이다. 아주 가끔이지만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특정 영화로부터 분노를 얻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어떤 것의 규탄을 요구하고, 영화의 제목을 가져온 이름의 법을 만드는 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물론 법 개정은 다행그러운 일이다. 그러나 사회복지사업법이 개정되고 묹가 된 사학법인의 인가가 취소된다고 해서 도가리라는 영화가 묘사하는 부조리의 근본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지금의 분위기는 분노와 연민의 유행에 가깝다. 동등한 입장에서의 공감이 아닌 연민으로서의 유행은 향후 더 강력한 피해자를 예고할 뿐이다. 당장 우리는 장애인과, 약자와 어울려 살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면 더 나은 환경에 격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작가의 이전글한국이 싫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