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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한 Jun 11. 2019

설국열차

봉준호와 계급 갈등

자본가들의 변명


윌포드는 설국열차가 하나의 "폐쇄된 생태계"임을 강조한다. 승객들은 탑승 당시 정해진 계급에 따라 기차 안에서의 위치를 부여받았다. 가까스로 꼬리 칸에 탑승한 승객들은 포로수용소 혹은 노예선처럼 보이는 그곳에서 엄격한 규율을 강요받는다. 배급받은 단백질 블록을 씹어먹는 그들은 마치 꼬리칸에 타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열차에서 내리면 죽는다. 꼬리칸에라도 태워준 사실에 감사해야 하는 것일까?


메이슨 총리는 균형과 질서를 강조한다. 그녀에 따르면 꼬리 칸 승객들은 무임승차하여 열차에 대해서 그 어떤 권리도 주장할 수 없는, 단지 절대 권력자 윌포드의 자비로 인해 생명을 부지하게 된 쓰레기들이다. 그러니까 그들이 억압된 생활을 하는 이유는 '그렇게 탔기 때문'이다. 이 말은 어딘가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자신의 삶을 개선할 어떠한 기회도 부여받지 못하는 사회는 공정하다고 말할 수 없다.


무엇이 옳은 것일까? 꼬리칸에라도 태워준 사실에 감사하며 단백질 블록을 먹는 보수적인 삶인가, 혹은 불합리한 체제에 저항하며 주체성을 추구하는 진보적인 삶인가.




보수와 진보


보수와 진보라는 말이 있다. 한 번쯤 궁금했을 것이다. 무엇을 '보수'한다는 것이고, 또 무엇을 '진보'시킨다는 것인지. 어감만 두고 보면 취향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이 말은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정부와 시장의 관계에 대한 문제에서 출발한다.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대체로 보수의 근본 가치는 '자유'이고 진보의 근본 가치는 '평등'이라고 말한다. 양자택일의 의사결정에 있어서 양 측은 각각의 근본 가치를 지지한다. 그러나 보수가 평등을 반대하거나 진보가 자유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양립할 수 없는 문제에서만 그렇다. 그것은 정부와 시장의 관계에 관한 문제다.


최초의 자본주의는 '보이지 않는 손'을 믿었다. 수요와 공급의 접점에서 상품의 가격이 책정되고 시장으로 인하여 우리가 풍요로워질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 생산기술의 획기적 발전으로 공급은 수요를 넘어서기 마련이었고 경제 공황이 찾아왔다. 또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는 빈부격차를 가중시켰다.


이러한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 자본주의 2.0이다. 자본주의 2.0은 대공황 이후 큰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정당화되는 수정자본주의 시기이다. 시장에 정부가 개입을 하는 것이 옳다고 본 것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으로 공황은 차츰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부의 편중도 점차 해소되는 듯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1970년대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 이후 정부의 부패와 무능, 낭비가 화두로 떠올랐다.


그로 인해 등장한 것이 이른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3.0이다. 자본주의 3.0은 정부의 규제 완화와 민영화, 성과주의 등을 중심으로 한다. 쉽게 말해 초기 자본주의와 유사해진 것이다. 자본주의 3.0에서 정부의 개입은 불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곧 부의 편중을 가중시켰다. 이제 뭔가 감이 오지 않는가? '자유'와 '평등'은 각각 '정부의 개입으로부터의 자유'와 '경제적 재화의 평등'을 이야기한다. 정부의 개입으로부터의 자유가 강조되면 부의 편중이 가속화된다. 또 경제적 재화의 평등이 강조되면 시장의 자율성이 침해된다. 이는 양립할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계기로 자본주의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자본주의 4.0이다. 자본주의 4.0은 시장경제 체제를 유지하되, 유능하고 적극적인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전제로 '균형' 잡힌 체제를 의미한다. 시장이냐 정부냐 하는 전통적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 공생의 시장 생태계 구축을 위해 시장과 정부가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협력해야 하는 관계라는 것이다. 시장의 장점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자유를 추구하되, 그로 인해 발생하는 단점에 대해서는 정부의 개입을 인정하여 따뜻한 자본주의, 모두가 행복해지는 자본주의를 만들자는 것이 그 목표다.




열차 바깥에는 북극곰이 살고 있었다


분명 윌포드는 열차 바깥에는 어떤 생물도 살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남궁민수는 이렇게 말한다.


열차 밖을 바라보는 남궁민수와 요나
이게 하도 오래 닫혀 있어서 다들 벽인 줄 아는 모양인데, 이게 사실은 문이야.


그리고 열차 밖에는 북극곰이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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