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고객은 지갑을 여는 순간에는 우리의 브랜드를 까먹는 것인가?
끊임없는 협박과 회유, 때로는 바지가랑이를 부여잡고 간곡히 부탁한 끝에 친구 놈이 소개팅을 주선하였다.
첫 만남.
찰랑이는 머릿결, 하얀 피부, 이어폰 사이로 조용히 흘러나오는 음악. 재즈인가? 발라드 인가? 무엇인 듯 어떠하리 느낌 있는 분위기인데. 그녀는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벽했다.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게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고 용기를 내어 연락처를 건넷다.
내심 마음에 있어 하는 눈치다.
아마도 뜨거운 캐러멜 마끼아또를 원샷 하는 것을 보고 차도남으로 본 것이 틀림없다.
배웅을 위해 택시를 불러 세우고, 책에서 배운 대로 기사도 정신을 어필하기 하기로 했다. 4차선 도로에서 택시를 막아서서 번호판을 찍었다. 그리고 찡끗!
그녀의 미세하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보니 싫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게 떠나보낸 뒤 소개팅의 대미를 장식하는 필살기! 까똑 보내기.
'OOO 씨 오늘 즐거웠어요. 꿈에서 본듯한 OO 씨 때문에 오늘도 꿈나라를 헤맬 듯해요'
시적인 느낌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차 안에서 설레어할 그녀가 머릿속에 오버랩되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메시지의 옆의'1'은 여전히 '1'
다급히 친구 놈에게 전화해서 어떻게 된 건지 알아보라고 다그쳤다. 아니... 애걸했다.
퇴짜 맞은 게 분명한데 나에게 그녀를 만나보라고 한다.
그녀를 만나서 물어보기로 했다.
몇 번 소개팅을 시켜줬던 터라 누구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내심 알고 싶기도 했다.
남친으로 누구를 생각하세요?
"자상한 동권 씨도 괜찮고요. 그리고 지성적인 원반 씨도 느낌이 있고요. 아참 그리고 만능 스포츠맨 지섬씨도 마음에 있어요." 그녀가 대답했다.
"다른 분은 없으세요?" 재차 물었다.
"글쎄요..." 답답하다.
"혹시 제 친구 놈인 B씨는 어때요?"
"누구요?"
"B씨요!"
"아.. B씨..."
친구에게 이 사실을 알려줄 용기가 나지 않아 까똑을 차단했다.
인지도 (awareness)
[명사] 어떤 사람이나 물건을 알아보는 정도
마케팅을 하다 보면 신경 쓰이는 것 중 하나가 브랜드 인지도이다. 얼마만큼의 고객이 우리의 브랜드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를 가늠해보는 지표이다. 그러나 알고 있는 것도 알고 있는 나름인데...
Recall (생각나게 하다)
Vs.
Recognize (알아보다)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 광고를 하거나 프로모션을 한다.
진행 중 또는 마무리를 하고 고객의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인지도 조사를 한다.
프로모션 효과인지 예전보다는 인지도가 올라갔다.
그런데 매출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이내 무엇이 잘 못 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곧 알아채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B씨는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을 했다. 다만 자신과는 거리가 있는 포장된 행동은 어설펐고 과도한 리액션은 부담스럽다. 아마도 오래간만에 잡은 기회라는 조바심과 더불어 즐겨보던 아침드라마에 등장하던 차도남을 빙의로 인한 시너지일 거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그녀의 이상형은 차도남이 아니라 따도남이다. 친구 놈에게 소개만 받을게 아니라 정보도 좀 얻었어야 했다.
이런 일이 마케터에게도 비일비재하다. 우리가 원하는 고객이 어떠한 성향이 있는지 어떤 것에 반응하는지도 모른 체 단지 인지도만 높이기 위해서 무작정 시장의 트렌드를 따른다거나 경쟁사를 의식한 나머지 몸에 맞지 않는 캠페인을 기획한다. 지금 이 시간도 이런 상황은 심심찮게 일어난다.
만약 알리는 것이 목적이라면 고객에게 자주 얼굴을 비추면 된다. 많은 광고 물량은 곧 많은 고객에게 알려지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 것은 단지 존재 자체를 주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고객이 당신의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브랜드의 가치가 무엇인지, 다른 브랜드와의 차별되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브랜드를 사용했을 때 어떠한 효용이 있는지 따져볼 것이다.
그러므로 고객에게 구매했을 때의 기능적 가치와 정서적인 가치를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가치제안이 효과적으로 전달이 되었고 호감을 가졌다면 구매 시점에서 당신의 상품을 곧 잘 떠올릴 것이다. 물론 첫 번째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첫 술에 배부르랴. 구매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당신의 브랜드를 떠올린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일반적으로는 고객의 마음속에 적어도 TOP3는 되어야 구매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브랜드를 생각나게(Recall)하는 방법을 기다리며 기나긴 글을 읽었을 당신에게 양해의 말씀을 전하다. 사실 그 방법이라는 게 복잡다단하다. 복잡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기약 없이)
알고 있는 것(Recognize)과 떠오른 다는 것(Recall)은
생각이라는 면에서는 같지만 분명히 큰 차이가 있다.
전자가 기억의 파편이라면, 후자는 내가 필요할 때면
어김없이 생각나게 하는 조건반사적인 본능일 것이다.
그러므로 인지도의 함정에서 자유로워지자!
고객이 알고 있음에도 당신의 브랜드가 선택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기이한 현상이 아니다. 당신의 브랜드에 가치를 경험하게 하여 일깨워 주면 된다. 아직도 생각나기는커녕 알지도 못하는 브랜드가 수두룩 하다. 알고 있는 것만으로 절반은 성공했으니 미래가 밝다.
PS. 나는... 아니 B씨는 그때 진정성을 가지고 자신의 가치를 드러냈어야 했다. 내가 다 억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