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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나는 믹스커피 Apr 21. 2022

TV 프로그램은 누구의 것인가?

유퀴즈에 대한 소란.

TV 프로그램은 누구의 것일까?

예능프로그램  편을 기준으로 했을 ,

프로그램은 누구의 것일까?

유퀴즈 라는 프로그램을 기준을 했을 ,

유퀴즈는 누구의 것일까?


출연자를 섭외하고, 장소를 섭외하고, 자료조사를 하고

사전인터뷰를 하고, 대본을 만들고, 퀴즈를 만들고,

생선모자 같은 웃기는 소품을 의뢰하고,

촬영이 이루어지기까지 

모든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실현하는 작가의 것일까?


촬영을 준비하고, 진행하고, 현장 스탭들을 통솔하고,

편집실에서 그림 한컷 한컷을 어떻게 붙일지 고민하고,

자막을 쓰고, CG 음악을 의뢰하고 

송출직전까지 영상에 손을 대는 조연출의 것일까?


 모든 것을 총괄하고, 최종 결정을 하고,

제작비를 운용하는 메인 피디의 것일까?


아니면,  제작진이 차려놓은 밥상을  떠먹는 

유재석, 조세호의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애초에 제작을 결정하고 

송출하는 방송사의 것일까?


예능 프로그램  편엔 

10 이상의 작가, 10 이상의 피디,

60~70명의 스태프들

그리고 출연자의 생각과 결정이 들어가지만,

결국 TV 프로그램은 시청자의 것이다.

( 생각은 그렇다.)


'이렇게 하면 시청자가 좋아하겠지,

이런  하면 시청자가 싫어할 거야'

'요즘 시청자는 이런 것에 관심이 많으니까,

이런 주제로 해야겠어..'

프로그램의 참여하는 모든 스태프들은 

청자들의 기호를 기준으로 본인의 영역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을 한다.


물론, 피디의 기호를 생각하거나,

상급자의 기호를 먼저 생각할때도 있지만,

그들의 기호가 시청자의 기호와 일치한다고 

생각하니까 따르는 것이다.


(간혹 프로그램을 사유화하는 사람도 있다.

본인의 취향대로만 하려고 하거나,

프로그램의 시청 코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섭외를 권력처럼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프로그램과 그런 피디는 

결국 시청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기 마련이다.)


예능 프로그램은 시사교양이나 드라마와 달리 

제작과정에서 시청자가 불편하게 느낄 지점을 

최대한 거세한다.


예능은 드라마처럼 가상의 세계 속에서 

벌어지는 일도 아니고,

(드라마에서 김희선이 라면을 맛있게 먹으면,

김희선이 라면을 맛있게 먹는  아니라

김희선이 맞은 캐릭터가 라면을 맛있게 먹는 거지만,

예능에서 김희선이 라면을 맛있게 먹으면

인간 김희선이 라면을 맛있게 먹는 것이다.)


시사 보도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적극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세상에서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보는  

전제로 한다.


예능은 시청자들이 가장 현실적으로 와닿아하며,

몰입하는 TV 장르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대한 악역을 배제하고,  

불편한 지점을 거세한다.


게임 후 벌칙을 줄 때도,  강력할수록 재밌겠지만,

시청자가 보기에 가학적이라면, 강도를 조절한다.

드라마에서 출연자가 괴롭힘을 당하고,

시사프로그램에서 온갖 강력범죄를 다루지만,

예능의 세계에서는 보기 불편한 고통을 담지 않는다.


시청자가 보기 불편한 사람을 잘 출연시키지 않는다.

시청자에게 즐거움과 웃음을 전달하는 메신저가 

특별한 매력이나 능력이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허물이 없는 게 더 중요하다.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 센 거, 독한 거를 하자고 하더라도

그게 시청자가 보기에 

편한  웃음을 줄수 있는 장치가 아니면 거른다.

현장에서 출연자나 스태프들이 보기에 

아무리 재밌는 몸개그나, 놀림이라도 

시청자가 보기에 불편하면  거른다.


예능프로그램을 만드는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만 펼칠  같지만,

동시에 여러 단계에 걸쳐, 불편함을 거르는 과정이 많다.

처음 아이디어 회의, 대본회의, 편집 시사 회의를 

참여했을 ,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거른다고?!

놀랐었다.

(그래서 거르지 않아 논란이 되는 프로그램을 보면,

피디 작가의 역량을 의심할 때가 많다. )

그렇게 거르고 걸러 남은 유쾌함을 

시청자에게 전달하려고 다들 고생고생 개고생이다.


지난밤,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예능 프로그램  퀴즈에 

대통령 당선자가 출연했고, 이에 대해 소란스럽다.


외압이다 아니다

대통령 당선자 출연이 누구의 의지인가

이 출연이 타당한가

호감이다 비호감이다

예능 프로그램을 정치에 이용했다.

정치가 방송사에 갑질을 했다.

방송사가 권력에 시녀질을 했다.


요즘 처럼 개인의 취향에 따라 보는 프로그램이 

다양한 시대에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고, 의미와 재미를 주는 

대형 예능 프로그램이 오명을 써야 했다.

 (내가  프로그램 작가면 너무 짜증날  같다. )


해당 프로그램의 시작이

미용실에서 파마하는 할머니, 놀이터에서 노는 어린이,

외근 나온 직장인들, 동네를 어슬렁 거리는 백수와 만나  

평범하고 유쾌한 일상의 대화를 통해 

빌드업된  생각하면 

그 고유성이 훼손되었다고 시청자는 생각할 수 있다.


물론 대통령이든, 재벌 회장이든도 출연 못할 이유도,

인터뷰 못할 이유도 없다.

다만, 그것이 시청자가 보기에 불편함이 없고,

유쾌하게 받아들일  있다면 말이다.


예능 프로그램에 정치가가 나오는  

제작진의 입장에서 매우 어렵고 불편한 일이다.

(하지만, 대통령 후보나, 대통령이 나오는 프로그램은 

 자체로 대형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니 

감당해야  몫이기도 하다.)


정치가는 늘 안티가 많은 출연자이다.

정치가의 안티는 연예인의 안티와 다르다.

연예인의 안티는 명분이 없으면 뭉갤  있지만,

정치가의 안티는 명분이 있다.


특정 정치인이 나오면, 프로그램 제작진과 

출연자의 정치색을 의심받기 쉽다.

다른 장르는  모르겠지만,

예능 프로그램들 대부분 제작진은 본인의 정치색보다 

내 프로그램이 더 소중하다.


내가 지지하는 정치가가  프로그램에 나와서 

시청자들이 불편해한다면,

그 사람이 내 프로그램에 나오는 걸 바라지 않는다.

반대로,

내 정치색에 반대편에 있는 정치가라도,

 사람이 나오는  시청자가 바란다면,

삼고초려해서라도 섭외할 것이다.


 밥벌이, 내가 만드는 프로그램이 

 정치색보다  중요하다.

다들 그러하지 않을까...


매일매일 시청자의 반응을 살피는 

프로그램의 제작진이 

대통령 당선자가 출연했을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몰랐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선자는 출연했다.


당선자의 적극적인 지지자가 유퀴즈의 피디작가여도

당선자의 출연을 선뜻 결정할 수는 없다.


위에도 말했듯 20명이 넘는 피디작가,

출연자가 매주매일 회의를 하고 

프로그램에 본인의 생각을 얹는다.


출연자를 섭외하고, 까이고,

수백페이지의 자료조사를 하고,

편집실이서 한컷 한컷 붙였다 뗐다,  

그렇게 매일매일 한땀한땀 프로그램을 만드느라.

본인의 에너지를 소진하는 사람들이,

그런 노력으로 프로그램의 호평을 만들어  사람들이,

시청자들의 피드백을 매일매일 살피고,

기사  , 커뮤니티 댓글 한줄 한줄 

 살펴 보는 사람들이. 그런 선택을 할리는 없다.


이 의사결정은 누가 한 걸까,

 의사결정을  사람이 프로그램을 사유화한 것이다.

그 사람은 방송사와 프로그램을

시청자의 것이 아니고,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  것이다.


그리고 그 시청자의 반응은 오롯이

회의실과 편집실, 카메라 앞과 카메리 뒤에 있어야 하는

작가와 피디와 스태프와 출연자가 짊어져야 한다.

너무나 부당하다.



** 난 정치인이 대중친화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인이든, 대기업 회장님이든 그사세에만 있는게 

유권자와 소비자에게 좋을   뭐가 있나.

그렇다고 엄근진, 비호감, 개저씨인데 

무턱대고 예능프로애 출연한다고 해서

대중친화성을 얻는 건아니다.

타이밍도 보고, 명분도 만들고, 준비도 좀 해서 나오자.


** tvN 지지난 정권  SNL 여의도 텔레토비로 

  웃음을 고, 동시에 정권의 박해를 받았다.   

 박해를 받아도 크게 보면,

시청자에게  웃음을  줘서 얻은   많지 않을까...


**  편성 피디가 방송사가 정권에 순응하든 말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뉴스가 정권 친화적으로 바뀐 다음 사내 분위기 역시 정치적으로 변하고, 자유롭게 소신과 창의성을 펼쳐야  피디와 기자들이 줄을 서야 본인의 자리를 보전할  있게 되면서 프로그램들이 망가졌다고 했다.

  정권에 순응한다는 ,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것이 이래서 무서운 것이다.

 수십  동안 쌓아 올린 방송사의 이미지, 제작 노하우, 창의적인 인력들이    만에 망가지는 것이다.

와중에 OTT, 유튜브, 포털에서는 새로운 콘텐츠 플랫폼은 밀고 들어오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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