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왜 시작했을까?서울~충주탄금대
출발하는 날 아침, 집을 나서자 마자 청명한 하늘과 쨍한 시야가 '그래 이거야!' 라며 반갑기 그지 없었지만, 심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라이딩 이후 가장 심한 바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라이딩은 바람의 스포츠라 해도 과하지 않을 만큼, 그 영향을 많이 받는다.
* 표지사진(위): 남한강 강천보
다행히도 먼 길 환송해 주겠다는 친구들 덕분에, 바람의 야속함은 금새 잊혀지긴 했지만...
3개의 큰 국토종주 자전거길의 카테고리 중 첫번째 "남한강자전거길"은 옛 철길의 추억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그 옛날 철도의 터널과 철길을 새 단장해서 훌륭한 자전거길의 스토리로 되살아나 있다.
출발 후 한시간 즈음 되었을까? 첫 휴식을 하고자, 예전부터 지나치기만 했던 그 옛 스토리 가득한 철길 쉼터(위 사진)에 잠시 자리를 잡았다. 조금 전에 지나쳐 왔던 할아버지께서 느릿한 걸음이 힘드셨던지 땀에 얼룩진 중절모를 내려 놓으시며 맞은 편에 자리를 잡으신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쳐다보는 내 시선을 느끼셨는지 이내 눈빛을 마주치시며 잠시 주저하시곤, "가까운 역이 얼마나 남았어요? "
"아, 네. 제가 찾아 봐 드릴게요." 익숙한 지도앱을 열어서 "신원역"을 확인한다. "신원역이에요. 요 앞이네요. 2킬로미터만 걸으시면 될 것 같아요." 멀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쉰다.
"역 근처에 뭐 좀 먹을만 한 데가 있어요?"
할아버지께 어줍잖은 유머 한마디를 드려본다. "조금 더 먼 곳에 있는 '국수역' 근처에는, 이름이 그래서인지 국수집이 많은데요~ ㅎㅎ. 신원역 근처도 한번 알아 봐 드릴게요."
다행히 근처에 식당들이 있었고, 지도의 생김새를 보고선 예전에 라이딩을 할 때 지나쳤던 막국수집도 떠올랐다. 할아버지께서 기차 타시기 전에 배고픔을 달래 드릴 수 있을 것이다.
내 자전거를 물끄러미 보시던 할아버지. "참~ 나도 자전거를 타 보고 싶은데, 아들녀석이 위험하다며 못 타게 하네~"
할아버지는 올해 여든이신 내 아버지보다는 젊으실 것 같긴 하지만, 일흔은 족히 넘은 연세로 보인다. "아, 그러세요? 요즘 어르신들 정말 자전거 많이 타세요. 자전거는 타셨었어요?"
"아녜요~ 그럴 겨를이 없었어요. 4개월 전에 퇴직했는데, 일만 했지뭐~ 허허" 나의 놀란 표정을 눈치 채셨는지, "오래 일 했어요. 전문직이었어가지고..."
할아버지는 고운 얼굴에 정말 온화한 표정을 가지셨지만, 이가 성치 않으신 듯하다. "퇴직했더니,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네요. 그나마 좋아했던 술도, 병원에 갔더니 위가 안좋으니 입에도 대지 말라하고..."
'제발 암은 아니었으면...'
"위가 헐어 버렸다네 허허"
위암은 아닌것 같아서 또 한번 안도한다. 물론, 더 깊이 여쭤보진 못했다.
"일제시대(지긋하신 어르신들은 아직 "일제강점기"를 그렇게 칭하시곤 한다.), 유신도 거치고, 광주사태도 겪고 허허. 그렇게 열심히 살다보니, 놀 줄 몰랐어요. 그렇게 애 쓰고들 살았지, 그때는..." 유신? 광주사태? 이 분의 전 직업이 너무 궁금했지만, 여쭙질 못했다. "젊을 때 재밌게 사세요. 우린 그게 뭔지 몰랐지만. 취미도 개척해야해요."
사실 좀 더 얘길 나누고 싶었지만, 삼십 분이 훌쩍 지나버려, 할아버지께 갈 길이 멀다며 "할아버지들 덕분에 요즘 이렇게 저희가 잘 살고 있어요. 자전거 타 보고 싶으시면 꼭 한번 타 보세요." 말씀 건네고선 길을 재촉했다. 할아버지께선 강남에 사신다는데 (어쩌면 동네 이웃일 수도) 옥수에서 기차를 타고 운길산 역에서 내려, 예까지 걸어오셨다 한다.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힘이 드셨던지, 착해 보이는 젊은이(^^)에게 길을 물어 가까운 기차를 타고 다시 돌아가시는 길이었다.
'취미도, 놀이도 개척해서 제 것으로 만들어라'
첫날 라이딩하는 내내 이 만남이 머리 속을 떠나질 않았다. 할아버지의 얼굴 표정 속에서 본 무언가에 대한 나 혼자만의 해석일 수도 있고, 이 어처구니 없는 저지름에 대한 부담을 떨치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고.
그냥 달렸던 듯 하다. 벌써 세번째인가? 친숙한 이포보의 솟대들도 지나치고, 자신감 넘치는 페달링을 이어간다.
여주보~. 남한강은 평화로운 물줄기가 특징이다. 가히 우리의 젖줄이라 여겨질 만큼 넉넉하고 모든 것을 품은 듯한 모습에서 모두의 '어머니' 같은 모습 조차 보기도 한다. 그러나, 자전거길 조차도 너무 잘 정비되어 있고, 고개길(이포보 직전 "후미개"고개 정도다)도 없는 편이다보니, 지루한 감도 있다. 그래서 달린다. 셀카 놀이도 하면서... ^^
이 다리 이름을 찾아봐야겠다. "섬강교"였던 것 같기도 하고.
충주에 가까워지니 강 폭이 더욱 넓어지며, 충주호로 이어진 물줄기가, '내가 충주다' 한다. 어서 빨리 고기 한 가득으로 영양보충하고 쉬고 싶다. 어서어서~ ^^;
첫째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