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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단둘이 제주도 자전거여행 완주기

또 가고 싶은 여행

연말을 좀 더 특별하고 의미있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사춘기 아우라가 한창인 아들과 단둘이 제주도 자전거 일주를 하기로 한다.   사춘기에 대한 특별한 지식이 있는 것도, 여느 훌륭한 아빠들 처럼 아이들 감성에 섬세한 지혜를 발휘할 능력도 없지만, 아들과 함께 둘만의 세계에서 오롯이 시간을 보내보기로.



아들 자전거가 없는데다 돌과 소금기 가득할 바닷바람이 많은 제주도 환경에서 어떻게 자전거를 다뤄야 할지 경험이 없어 자전거는 현지에서 대여하기로 한다.   자전거 이동에 필요한 번거로움도 줄일 겸.   2박3일 밖에 안되는 빠듯한 일정으로 새벽비행기로 출발, 제주공항에 꾀 이른 아침 도착했다.   다행히, 자전거 대여점에서 이른 아침 우리 부자와 같은 여행객들이 더러 있는지, 픽업서비스를 해 주신다.   


가족들과 함께 제주는 자주 여행하는 곳이다.   그러나, 겨울제주를 잘 알지 못했던지, 여름의 제주를 너무도 동경했던 나머지 한 겨울도 따뜻할 거라 믿었던 모양이다.   제주공항을 나서자 마자, 세찬 바람과 옷 속까지 저며드는 찬기운에 깜짝 놀란다.   비바람까지 몰아치니, 모자란 아빠의 여행 준비로 아들녀석이 겪을 고생이 출발전 부터 걱정이다.


어쨌든, 기분만은 좋게 출발한다.   다른건 몰라도, 아들의 우직한 성격과 웬만해선 엄살을 모르는 듬직함이 있어 아들과 손을 맞잡고 화이팅을 외쳐본다.   자전거 대여점에서 제주도 환상자전거길의 시이자 첫 자전거인증센터인 "용두암인증센터"는 10여분 정도의 라이딩으로 가까운 거리다.   제주도를 가족과 함께 자주 오게 되지만, 북쪽에 위치한 이곳 용두암은 오랜만에 찾게 된다.   설레인다.   아들과 단둘이 자전거를 타고 생전 처음 보는 길목을 따라 한 페달 한 페달 저어가는 이 길이 참으로 행복하다.   인증센터는 해변가 자전거도로에서 좌측으로 벋어나 있어, 자칫 놓치고 지나갈 뻔 한다.   허둥지둥 아들을 불러, 길을 되돌아가는 것도 소소한 재미다.   



제주도 자전거길 총 거리는 230여 킬로미터이다.   평소 내가 달릴 수 있는 속도와 거리를 계산한 다음, 아들이 초보 라이더인점을 감안하여 하루치 라이딩거리를 계산해 숙소를 미리 잡아둔다.   회사일로 2박3일간의 짧은 휴가 밖엔 낼 수 없었던 사정도 있었지만, 초행길 라이딩에 대한 경험 부족과 아들의 라이딩이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을 현명하게 계획에 넣질 못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제주도에서의 자녀들과 여유로운 자전거 여행은 최소 3박4일에서 4박5일 정도가 좋을 듯 하다.   맘에 드는 곳에서 시간도 보낼 겸.



대여 자전거는 낡고 무거웠지만, 브레이크와 변속기어만 잘 작동한다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그것보다 한창 커가는 나이의 아들과 함께 하는 이 도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적절한 휴식과 영양보충.           


바람도 세고 차가운데다 어릴 때 잠시 탄 것 외에 처음 타는 자전거여서인지, 패딩팬츠를 입혔는데도 아들은 안장에 쓸린 엉덩이를 무척 아파한다.   그런데도, 연신 괜찮단다.   인증센터에 들리면서, 자연스레 쉴 수 있지만, 따뜻하게 몸을 덥힐 수 있는 쉼터가 필요했다.  첫 쉼터로 "반양 Baan Yang"이라는 자전거 도로변 레스토랑을 찾았다.   추운 겨울이어서, 따뜻하고 매콤한 태국음식이 좋을 것 같았는데, 큰 도움이 되어 주었다.



"먹은게 남는 것"이라는 강한 믿음으로, 둘이서 4인분은 먹었나 보다.  우리 아들, 자전거여행으로 힘은 들 지언정, 배고품은 절대 안되니... ^^

 

아들이 걱정되어 뒤돌아 보니, 아예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올라오고 있다.   포기를 모르는 듬직한 모습에 또 한번 가슴이 찡해 온다.   


차귀도에 인접한 자전거길은 차도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고, 도로 한쪽 편을 이용해서 달려야 한다.   새로 포장된 듯 말끔한 검은 빛의 도로와 하얀색 라인과 자전거도로를 표시하는 푸른색 라인의 선명한 빛이 힘찬 자전거 페달질을 유혹한다.   그러나, 차귀도에서는 내려오던 방향을 거의 역으로 되도는 커브길을 만나게 되는데, 그 동안 나름 뒤어서 불어주며 우리 부자를 밀어주던 바람이 지금은 가슴을 밀쳐내듯 한 맞바람이 되어, 오르막길을 오르는 업힐 구간이 된다.   아들이 걱정되어 뒤돌아 보니, 아예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올라오고 있다.   포기를 모르는 듬직한 모습에 또 한번 가슴이 찡해 온다.   



해는 저물어  가고, 눈싸락인지 우박인지 새찬 바람이 얼굴을 할퀸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 숙소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하지만, 지친 아들의 언 몸을 녹여야겠기에, 길가 카페에 들러 따뜻한 유자차 한잔씩을 나눠 마신다.  아들은 말은 없지만, 무척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화분과 예쁘게 단장한 의자들로 가득한 카페의 온기가 우리 부자를 덥혀주지만, 느릿느릿한 아들의 페달링과 동쪽하늘로 부터 밀려드는 어둠이 걱정이다.   초행길의 어두운 라이딩은 위험하다.   하지만, 아들의 자전거 주행 실력과 체력을 과신한 나머지, 첫째날 부터 어두은 밤길을 달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전조등과 후미등을 따로 준비하지 못해 더욱더 난감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다행히도, 가방에 매달려 있던 야간 안전등이 하나 있어서, 아들의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할 수 있었다.   



다시 떠 올려봐도, 힘겨운 순간들을 꿋꿋하게 이겨내준 아들이 고맙고 애틋하기까지 하다.   한 겨울 자전거길이였던지라, 인적도 없었다.   무섭고 힘들었겠지만, 아빠의 등만 바라보고 한 페달 한 페달 디뎠을 것 같다.


이번 여행을 시작하길 잘했다.

엄청나게 고생한 근육도 풀겸, 아빠와 아들간의 따뜻한 목욕을 위해, 산방산 탄산온천을 찾았다.   부자간 너무도 특별했던 하루를 기억하며 온탕과 냉탕을 오가니 세상에 부러울게 없었다.   목욕 후, 첫째 날의 저녁식사는 제주 흑돼지.   이 또한 이 세상에서 맛본 가장 훌륭한 돼지고기 구이 맛이다.   아들의 먹성을 식탁 맡은 편에서 바라보며 노곤한 피로감과 행복감에 젖는다.   첫째날 숙소로 돌아와 뭉친 아들의 근육을 풀고 스트레칭으로 아들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 한다.   이번 여행을 시작하길 잘했다.         

          


어제의 어마무시한 바람과 파도는 '언제 그랬냐'는 듯, 둘째날 아침은 화창하고 푸르렀다.   오늘은 중문단지를 거쳐 서귀포를 지나는 코스인데, 난코스를 예견하듯 산방산 고개길을 열심히 넘기 시작한다.   얼마나 청명한 날씨였던지, 고갯길 정상에 다다르니, 저 멀리 한라산 백록담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 온다.   머지않아, 익숙한 중문단지에 도착한다.   하지만, 자전거로 찾은 그 곳은 처음 와 본 것 마냥 새롭다.   길거리 매점에서 겨울 갈증을 달래려, 아들이 좋아하는 우유, 나는 아메리카노 커피한잔을 불어 마신다.   매점 아주머니께서 "부자지간 같은데, 맞냐"고 하시며, "너무 보기 좋다"고 하신다.   '감사합니다.  너무 행복한 여행이네요'



중문을 지나 서귀포로 가는 길에, "법환바당"을 지난다.   이곳은 처음와 본 곳인데, 검은 바위 돌이 뿌려진 듯한 해변이 멋진 풍경을 이룬다.   제주도는 업힐이라고 할 만큼 어려운 고개길은 없다.   다만, 남쪽 서귀포를 전후하여 언덕이 많고 오늘은 날씨까지 좋은 터여서, 땀을 꾀 흘린다.   아들은 무거운 자전거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언덕길에 힘이 드는 모양이다.   그래서 아빠가 준비한 "두루치기".   직접 요리한 건 아니지만, 적당한 위치의 맛집을 미리 알아놓은 건 다행이다.   전복과 각종 해물, 흑돼지까지 들어가, 에너지를 회복하기에 안성마춤이다.   아들, 정말 잘 먹는다.  


서울을 떠나기 전 계획하길 하이브리드 자전거와 제주도 관광을 감안하여 시간당 15킬로미터 주행을 감안하였지만,   실제로 우리 부자가 이동한 것은 시간당 10여 킬로미터 정도다.   매일 숙소에 도착하는데 차질이 생길 수 밖에.   오늘도 도착 훨씬 전에 해가 저문다.   다행히, "표선해비치해변인증센터"까지는 도착하여 인증스탬프를 남기지만, 숙소까지 어떻게 이동해야할지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앞뒤를 밝힐 등도 하나 없이, 12킬로미터를 한시간 이상 아들을 데리고 가기엔 무리다.   인증센터에 한무리의 라이더들이 그들도 힘이 들었던지, 대기 시켜 두었던 차량을 이용해 자리를 뜬다.   택시를 부른다 하더라도, 트렁크에 LPG가스탱크로 채워진 택시로 자전거와 함께 이동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맘씨 좋은 택시기사님을 만나, 운반비용 조로 택시비에 조금 더 얹어 드리겠노라 말씀드리고 안전하게 둘째날 숙소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둘째날 숙소가 위치한 "온평"에 도착했다.  바닷가의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지친상태여서 읍내로 나가는 것은 포기하고, 숙소 사장님께서 친절하게 알려주신, 숙소에서 가까운 해변가 피자집에서 허기를 채우기로 한다.   피자집 사장님은 오래전 서울에서 제주도로 귀농하셨다고 하는데, 채소도 신선하고, 피자 맛이 일품이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알게 된건데, 아들이 동물을 무척 좋아한다.   제주도에 흔한 개, 고양이들 모두가 친구다.



여행의 마지막날을 시작한다.   오늘은 정해진 비행기 시간 때문에 도착 시간 관리가 꾀 중요하다.   '우리아들 화이팅!'



세째날도 첫째날 처럼 바람이 세차다.   페달링이 어려울 정도로 정면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   아들자랑 같지만, 16살의 아들녀석 끈기와 인내가 대단하다.   바람때문에, 아들 걱정때문에, 몇번씩 '중단해야하나' 갈등할 때 마다, "아빠, 난 괜찮아.  끝까지 가자." 라는 아들에게서 큰 것을 새삼 배운다.   마지막날의 비행일정 때문에, 아침식사는 출발 후 25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유명한 전복요리집에서 브런치를 갖기로 했지만, 아침 11시에 도착한  그 곳에는 이미 길다란 대기 줄이 1시간30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단다.   시간을 아껴야 하니, 아들에게 조금만 참으라 토닥거리고는 곧바로 두번째로 점 찍어 둔 피자집으로 자전거를 달린다.   그 유명한 전복집은 다음 기회에... ^^



"함덕서우봉해변 인증센터".   10개의 제주도 자전거 인증센터 중 10번째이자 마지막 인증센터에 도착한다.   내 스스로가 너무도 기쁘고, 무엇보다 함께 한 아들이 이 특별한 경험에 놀라워하는 것 같다.   잠시 기쁨을 함께 나눈뒤, 곧바로 자전거 대여점까지 남은 20여 킬로미터를 마무리하기 위해 출발한다.



"제주도 환상 자전거"은 코스마다 저마다의 개성이 있는데, 화북 방파제 쪽은 제주도 포구마을의 전통적 모습을 보는 듯하다.   마을 골목길을 굽이 굽이 도는 자전거길도 정말 새롭고 깊이감이 넘치는 지역색을 느낄 수 있다.   



오후 4시30분, 목표했던 시각에 정확히 도착한다.   아들과 감격의 포옹, 정말 기분 좋은, 행복한 포옹이다.   


차가워질 대로 차가워진 아들의 발을 손으로 부비던 기억이 아련하다.   훌쩍 커버린 녀석의 발은 너무 커서 작아진 내 손이 애처롭기까지 했다.


아들은 그때의 기억을 종종 얘기한다.   한번은 그때의 기억을 얘기하며, 아빠와 다시한번 가보고 싶다는 얘기를 친구들에게 건네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따뜻해졌다.   일년이 흐르고 이 글을 다시한번 정리하는 지금도, 얇은 운동화 때문에 차가워질 대로 차가워진 아들의 발을 손으로 부비던 기억이 아련하다.   훌쩍 커버린 녀석의 발은 너무 커서 작아진 내 손이 애처롭기까지 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단둘이 낯선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행복의 의미를 다시한번 느껴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용두암하이킹 #BaanYang  #산방산탄산온천 #JnJHouse #피자아일랜드 #피자굽는돌하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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