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면접에서 만난 인자한 사람들 뒤로 남는 묘한 찝찝함이란

조상신이 도왔는데.. 그렇게 됐습니다.

by vivi

면접은 4:1로 진행되었다.

대표님과, 부대표라는 상무님, 연구소장님 그리고 함께 팀으로 일하는 안부장님.


네 분의 인상은 매우 좋았다.

다정한 미소, 기다려주는 눈빛, 인자한 말투,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제스처까지.

싸늘한 기싸움과 비난과 성희롱이 오가던 전 회사와 너무도 달랐다.
벌써부터 마음이 약해졌다. 이 회사에 꼭 입사하고 싶어졌다.


자기소개, 지원 동기, 경력에 대한 설명, 포부까지.

면접다운 면접이었다. 질문도 정돈되어 있었고, 나는 약간의 떨림과 함께 내 이야기를 풀어냈다.
면접장 안에 있던 시간은 체감상 20분도 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밖에 나오니, 2시간이 지나 있었다.


이어지던 질문들은 주로 '우리 회사에 대해 얼마나 공부를 해왔는가-'를 평가하는 질문이었다.

그렇게 뒤이은 시간은 온전히 대표님의 무대였다.


"공부 많이 하셨네요. 그런데 이 기술은요..."
그렇게 시작된 대표의 설명은 곧 강의가 되었다.
자신이 일생 동안 연구하고 개발한 원천기술,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도 놀라운 기술인지,
세계 최초이며, 앞으로 모든 산업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내 전공 분야는 아니었지만, 그 열정과 자부심만큼은 확실히 느껴졌다.
교수 출신 대표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면접 중에도 강의를 하시고 계신 걸 보니 교수는 교수이구나 싶었다.


질문 하나에 짧게는 5분, 길게는 30분간의 설명이 이어졌다.

내 전문 분야가 아니기에 설명을 따라가기 어렵고 조금은 지나치다 싶기도 했지만,

자신의 평생 연구를 세상에 내놓으려는 그 진심은… 솔직히 감동적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기술이 바로 다음 달 출시된다는 계획까지 들었을 땐,
‘여기 진짜 잘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대표님의 무대가 끝나고, 관례처럼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냐며 다시 나에게 순서가 돌아왔다.

"정말 함께 하고 싶은 회사네요, 오히려 지금 저에게 기회가 온 것이 영광일정도입니다.

이 회사가 더 커지고 나면 제가 과연 넘볼 수나 있을까요, 꼭 오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떨면서 전했다.


대표님과 면접관들은 굉장히 밝게 웃으며 답했다.


“당장 3개월 뒤 제품 출시라 오시면 많이 바쁘실 거예요.”

"지금 계획으로는 6개월 뒤에 상장을 할 예정이고요.”

“정말 핵심 인력으로 중요한 일들 맡게 되실 겁니다.”

대표는 연신 ‘지금 이 타이밍에 합류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기회인지’ 강조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말씀 감사합니다. 이렇게 큰 프로젝트인데, 혹시 어느 정도 진행됐나요?”

그러자 대표는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은 노베이스예요."

"어.. 이 팀이 생긴 지 얼마 안 되었나요? 부장님도 계셔서.."

무례한 질문일 수 있어 말끝을 흐리자 연구소장님이 황급히 답한다.

"부장님은... 원래 본 연구팀 출신은 아니었거든요.”

그리고 이어지는 대표님의 설명.

부장은 대표의 제자였고, 필요할 것 같아 뽑았는데 막상 일을 하다 보니 연구팀 쪽으로는 도움이 안돼서

정작 해당 분야 경력은 거의 없지만 믿을 만한 사람이라 팀을 맡긴 거라고 했다.


실력보단 신뢰.
경험보단 인맥.
능력보단 관계.


살짝 찝찝한 마음이 올라왔지만,
이전 회사에선 팀장도 없이 혼자 모든 걸 처리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도 이번엔 같이 일할 사람이 있으니까’
그 한 줄 위안으로, 다시 내 마음을 눌렀다.

그리고 나는, 이 회사를 선택했다.


면접을 끝내고 묘한 찝찝함과 몰려오는 피곤함이 있었지만

집에 돌아오던 버스에서 '합격입니다.'라는 합격 전화에 너무 기뻐 그만,

조상님이 도운 그 신호를 잃어버렸다.

(정말 오래간만에 돋은 안테나였는데..)


2시간의 면접이라는 역대급 면접을 두고

이제 와서 말하자면.


그때의 면접은 너무 완벽했고,
너무 설득력 있었고,
너무 거짓말이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제안은 완벽했고, 나는 미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