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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뜰밖 Aug 14. 2020

"엄마, 저 할머니랑 밥 같이 먹자"

어느 추운 겨울, 지성이를 데리고 주말 근무를 한 후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지하철을 타려는데, 가녀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배고파요. 밥 좀 주세요….”

성냥팔이 소녀가 아닌 중년의 여성이었다. 누추한 옷차림으로 마땅한 거처가 없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분이었다. 옆에서 함께 걷던 지성이가 말했다.


“엄마, 저 아줌마랑 밥 같이 먹자. 우리도 어차피 저녁 먹으러 가고 있잖아.”

“으응…?”


놀랐다. 구걸하는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를 ‘거리의 소음’쯤으로 여긴 나는 여태껏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밥을 같이 먹자고? 아, 그런데 지성아 춥고 깜깜해서 빨리 밥을 먹어야 해서 다음에 시간이 날 때 함께 먹자. 근데 지성이 마음이 너무 예쁘다. 엄마가 감동받았어.”


그러나 낯선 감동이었다. 거리의 냄새가 풀풀 나는 그분을 모시고, 식당으로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지난주, 아이들이 엄마 회사에 가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 주말에 함께 회사에 왔다. 폭우가 쏟아졌는데, 명동성당 앞에서 우산을 쓰지 않은 채 “1000원만 주세요”라고 말하는 중년 여성을 또 만났다. 이분은 내가 매일 출퇴근을 하며 만나는 분이기에 거리의 신호등처럼 익숙한 풍경이었다.  


우리 가족은 바로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지성이가 미주알고주알 캐묻는다.


“엄마, 아까 그 할머니는 왜 돈을 달라고 하는 거야?”

남편은 할머니의 상황을 설명해줬다. 돈이 없어서 배가 고프시고, 집도 없는 분이라고 했다.


“엄마, 그럼 우리가 할머니한테 돈을 드릴까?”

우리 가족은 함께 밥을 먹고, 그 할머니가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돈을 드리자고 했다. 함께 만원을 드리기로 약속했는데, 지성이가 자꾸 5만 원을 드리자고 하는 거다. 남편은 예기지 못한 상황을 수습했다.


“지성아, 5만 원은 돈이 너무 커서 할머니가 기절을 하셔.”

궁색한 변명에 웃음이 났지만 나 역시 5만 원은 과하다는 남편의 의견에 침묵으로 동의했다.


지성이는 할머니에게 드릴 만원을 티셔츠 주머니에 넣고 밥을 먹었다.

“엄마, 나는 집이 없는 사람이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어.”


밥을 먹고, 밖으로 나가자 할머니가 비를 피해 나무 아래에 앉아 계셨다. 측은지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지성이는 주머니에 꼬깃꼬깃 접어놓은 지폐를 꺼내 할머니에게 건넸다. 동생 서진이도 형을 따라 똑같이 지폐를 건넸다. 할머니는 고개를 숙여, 두 아이에게 “감사합니다”라고 하셨고 우리는 돌아섰다.


그런데 지성이가 다시 고개를 돌려 할머니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돌아보니, 글쎄 나무 아래에 다시 앉은 할머니는 두 손으로 연신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우시는 듯했다. 지성이는 할머니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빠한테 “나 감동받았어”라고 말했다. 의아한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할머니를 봤는데, 할머니는 허공을 향해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조울증일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으신 듯했다.

지성이는 만원이면 밥을 몇 번을 사 먹을 수 있는지 계속 물었다. 김밥은 다섯 줄 먹을 수 있고, 된짱 찌개는 두 번 정도 먹을 수 있다고 일러줬다.


이 아름답고 감격스러운 이야기를 다음날 후배에게 했는데, 후배가 말했다.

“선배, 그 할머니 집 있는 거 같던데. 당산역에서 출퇴근할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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