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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뜰밖 Aug 02. 2020


'네가 되어' 대화하기

공룡알 빌려가기 


7살 된 남자 아들과 대화를 길게 이어가기란 쉽지 않다. 보통 자신이 궁금한 걸 애타게 묻다가도, 답변을 얻으면 곧장 화제를 돌리거나 자리를 뜬다. 

지성이에게는 유독 친구 같은 어른이 한 명 있다. 나와 나이가 같은 이모부이지만, 지성이가 이모부를 만날 때 대하는 태도와 눈빛은 친구 그 이상이다.


“엄마, 이모부는 신비아파트를 한번 보면, 두 번 보고 싶고, 두 번 보면 세 번 보고 싶은 마음이 든대.”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이모부를 만난 날이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묻는다. 

“이모부, 오늘은 뭐 같이 볼래? 같이 보고 싶은 거 있어?”

“나는 신비아파트 금돼지 좋아해.”

이모부의 대답. 이보다 기막힌 대답이 있을까. 어깨에 손을 올리고 함께 티비에 빠져든다. 그러다 슬픈 장면이 나오면, 이모부는 우는 표정을 하듯 눈물을 닦는 시늉을 한다. 지성이는 이 장면을 티비보다 더 감동적으로 바라봤다. 


이모부와 아들의 기막힌 찰떡 대화를 보면서, 내심 부러웠을까. 출근하는 날 아침, 지성이에게 “엄마가 회사에서 갖고 놀 장난감 좀 챙겨달라”고 했다. 

“엄마, 회사에 장난감을 가져가도 돼? 진짜야? 변신하는 장난감 빌려줄까? 몇 개 빌려주면 돼?” 

입에서 네 문장이 총알처럼 쏟아졌다. 흥분이 된 목소리. 변신하는 공룡알 5개를 가방 안주머니에 넣어줬다. 옆에 있던 서진이가 자기도 빌려주겠다며 방에서 피카추 2개를 가방에 같이 넣어줬다. 

“고마워, 잘 갖고 놀다가 올게.”

“응 엄마, 몇 명이랑 같이 놀았는지 알려줘야 돼.”


물론, 사무실에 도착한 나는 가방을 열어보지도 않았다. 가방 속 장난감이 떠올라 웃기는 했다. 집에 돌아갔는데, 지성이가 하루 근황을 궁금해했다. 

“엄마 내 장난감 인기 많았어? 선배들이랑 후배들이랑 같이 변신하고 놀았어?”

“아유, 지성아 말도 마.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왔어. 13명이 와서 엄마 장난감을 변신해보겠다고 난리가 났지.”

“5개 밖에 없었잖아. 어떻게 했어? 차례대로 줄 서서 했지.”

“그럼 엄마는 엄마 자리에 못 앉아있었어? 옆에 서 있었어?”


지성이의 끊임없는 질문에 이런 대화가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매일 아침, 지성이는 더 많은 장난감을 가방에 넣어 주었고, 퇴근하고 돌아가면 오늘은 몇 명이 와서 놀았냐, 누가 왔었느냐를 시시콜콜 물었다. 

“지성아 글쎄, 오늘은 신부님이랑 수녀님도 오셨네.”

성당 유치원에 다니는 김지성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엄마, 그럼 예수님도 오셨어?” 


폭풍같이 쏟아지는 질문 세례를 받으며, 아이의 눈높이에서 대화하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감이 왔다. 그건 네가 좋아하는 것을 나도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집에서 함께 지내며 “하지 마라, 뛰지 마라, 동생을 괴롭히지 말아라, 정리해라”라는 말만 유독 크게 자주 했구나, 싶었다. 아이와의 대화 속에서 자꾸 내가 보인다. 작고 부족한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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