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씨는 강남구 대치동의 신축 아파트에 산다. 이놈의 정부는 무주택자들을 위해 신혼희망타운이니 행복주택 같은 단어들을 있는 대로 가져다 썼다. 분양자들은 신혼희망타운을 분양받는다손 쳐도, 입주 시기를 고려하면 신혼은 온 데 간데없고 희망의 끝자락을 만날 뿐이라고 투덜댔다. 그래서 신혼희망타운을 분양받은 이들끼리는 신혼희망타운을 중년절망타운으로 불렀다.
경선씨는 부동산에 눈 밝아진 남편 덕에 대치동에 살림을 풀었다. 언젠가는 살림을 챙겨 이사를 해야 하기에 정착할 때마다 “어느 동에 짐을 풀었다”고 이야기하는 게 입버릇이 됐다.
“자기야, 서울의 아파트 노후도가 평균 20년인 거 알지? 전체 중 절반 아파트가 20년이 넘었다는 거야. 몽말인지 알지? 30년이 넘은 아파트는 20%가 넘어. 서울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출퇴근이 편하고, 애들 공부하기에 좋은 환경 찾아다니는 거 알지? 몽말인지 알지? 서울에 사는 사람 중에 12%만이 신축 아파트의 혜택을 누린대. 몽말인지 알지? 우리가 이렇게 신축 아파트에서 사는 거 진짜 영광인 거야. 감사하며 살아야 돼. 몽말인지 알지?”
“‘몽말인지 알지’ 좀 그만 말해. 난 재미없어. 하나도.”
남편 문수씨는 말끝마다 ‘몽말인지’를 붙이는 유튜브 채널을 즐겨본다. 그 말투가 재미있는지 시시때때로 그 말을 따라 하다가 입에 붙어버렸다. 경선씨 눈에는 마냥 한심스럽다.
“여보, 대치동 신축 아파트에 살면 뭐 하냐? 대치동 학원 상가 근처에도 못 가는데. 나 오늘 몽클레어 중고 잠바 당근에서 예약한 거 알지? 몽말인지 알겠어?”
경선씨는 표정 없이 건조기에서 막 나온 꺼낸 수건을 개다가, 남편을 한번 쏘아봤다.
“딩동댕동!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알립니다. 입주민 여러분, 그리고 LH 임대인 여러분! 오늘 아파트 중앙광장에서 홈커밍데이가 열립니다. 입주민과 임대인 여러분은 오늘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열리는 홈커밍데이에 많은 참석을 부탁드립니다. 어묵바, 아트풍선, 칼갈이 서비스, 인생 네 컷 등 다양한 행사가 준비되어 있으니 마음껏 즐기시길 바랍니다.”
경선씨의 빨래를 개던 손이 멈췄다.
“와! 여보 들었지? 입주민 여러분과 임대인 여러분이래…. 와, 한 아파트에 살아도 이렇게 차별을 하네. 다 같은 입주민이지, 저렇게 안내방송에서 사람을 구별하고 나눠서 부르면 누구 속이 시원한 거야? 도대체 저건 누구의 욕구가 반영된 거야? 왜들 저러는 걸까?”
행복주택 임대인과 입주민의 차이는 또 있었다. 경선씨는 행복주택에 사는 다른 임대인들의 단체 카카오톡 방에서 빨래 건조대의 기능이 다르다는 걸 알고 또 한 번 기함을 했다. 행복주택으로 지정된 집에만 빨래 건조대의 자동 기능이 탑재해 있었다. 돈이 있어야 생활이 편리해진다는 자본주의 시대 대전제를 잘 알고는 있었지만, 생활 속에서 그 차이를 미세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
경선씨는 5살 된 아들 지운이 입에서 ‘행복주택’이라는 단어를 듣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었다. ‘우리 집 현관문 비밀번호도 아닌데, 생각해 보면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었는데.’ 아이 입에서 행복주택이라는 말이 튀어나온 순간, 아이가 행여나 놀이터에서 아파트 안에 있는 어린이집에서 ‘저희는 행복주택에 살아요’라고 할까 싶어 가슴이 조마조마했던 것이다.
경선씨는 아이 입에서 ‘행복주택’이라는 단어가 발화된 날, “너 그 말 어디서 들었어?”라고 물었고, 남편 문수씨는 차분한 말투로 그것도 너스레를 떨면서 아들의 언어를 수정해주었다. “지운아, 행복주택이 아니고 행복한 집~!”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조경이 끝내주는 대치동의 신축 아파트는 누구다 입주하고 싶은 삶의 터전이었지만 막상 이곳에서 삶을 일구고 있는 경선씨는 마냥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반값 아파트도 아닌 것이 복지 아파트도 아닌 것이 정부의 어떤 시혜를 받는 소득 계층이라는 사실이 마뜩지 않았다.
놀이터에 구름 떼처럼 모인 엄마들은 한 명 걸러 한 명씩 대부분 명품 가방을 메고 있었고, 아이들의 모래놀이 장난감 도구며 킥보드, 자전거까지 한 두 푼으로 살 수 있는 물건들이 아니었다. 말끔하고 검소한 옷차림이었지만 그만큼 좋은 브랜드의 좋은 물건들이었다. 경선씨는 이런 풍경 속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야 했다. 누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라고 자극을 준 것도 아닌데 무엇보다 먼저 스스로가 제일 먼저 알아차렸다. 운동화 안에 들어간 자갈을 발바닥 주인만 알아차리듯. 가난이란 그런 것이라고 정의했다. 아무도 뭐라고 말해준 사람이 없지만 스스로가 가장 많이 그것을 느껴야 했다. 신축 아파트 분리수거장에는 거의 새것 상태의 혹은 조금 중고 같은 물건들이 버려져 있었는데, 아이들 동화책은 물론 원목 탁자나 심지어 때가 타지 않은 매트리스도 종종 버려져 있었다.
남편 문수씨는 이곳 대치동 신축 아파트의 행복주택에 당첨됐을 때부터 입이 닳도록 말했다.
“여보, 부끄러울 게 전혀 없어. 몽말인지 알지? 옆 개포동에 새로 지은 개포자이 알지? 거기 행복주택은 아예 낮은 동으로 따로 분리되어 있는 거 알지? 우리는 행복주택이 일반 세대와 차이 없이 섞여서 지정이 되어 있잖아. 그리고 여기는 우리가 원할 때 언제든지 나갈 수 있어. 아파트에서 전세로 살면, 새로운 세입자를 구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얼마나 복잡해. 감사하며 살아야 돼.”
개포자이 이야기를 듣고 경선씨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와, 개포자이 행복주택은 대놓고 여기는 복지시설입니다’라고 말하는 거랑 똑같네.”
문수씨의 카카오톡 단톡방에는 이 대치동 아파트에 사는 행복주택 입주민 방이 따로 있다. 단톡방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은 130명쯤 된다. 네이버에도 이 아파트의 입주민들의 카페가 개설되어 있지만, 집 계약서를 올려야만 방장이 회원 가입을 시켜주는 시스템이었다. 굳이 201동 1004호가 행복주택임을 알리고 싶지 않아 가입을 포기했다. 혜택을 받고 들어온 집이지만, 이곳에서 어울려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많은 차별의 장벽들이 크고 작게 있었다.
행복주택 단톡방에서는 많은 대화가 오갔다. 이를테면, “부모님이 시골에서 농사지어서 올려 보낸 감자와 양파가 너무 많으니 가져가라”, “설거지 건조대를 공구하자”는 이야기까지…. 경선씨는 남편이 그 단톡방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싫었다. 물론 단톡방 사람들이 대면 모임을 하거나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