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여기' 사는 아이들

by 계절 부자

‘원래 여기’ 사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곳에서 생활한 지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농촌유학을 오게 되면 이미 와 있는 농촌유학생 학부모들에게서 다양한 정보를 얻게 된다. 나 역시 이곳에 삶의 터전을 옮기면서, 다니던 회사 선배가 잘 알고 지내던 농촌유학생 어머니를 소개받았다. 일면식도 없는 그분은 전화 통화 한 번으로 이곳에서의 생활에 대한 깨알 같은 정보를 친절하고도 속속들이 알려주셨다.


그분 역시 서울 영등포구에서 지내다 두 아들을 데리고 온 분이었다. 우리는 같은 영등포구에 살았음에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이였지만, 그분은 아이의 진로와 학업에 관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체험 활동을 친절히 알려주셨다. 지금도 늘 감사한 마음이다.


이곳에 살면서 아이들에게 엄청난 사교육비를 들이지 않고도 국악오케스트라, 야구단, 축구단, 배구단, 승마 등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즐기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서울에서는 꿈꾸기 어려웠던 체험 활동의 기회를 줄 수 있어 아이들에게 참 좋은 환경이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다만 단점이 있다면, 우리가 사는 마을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있는 읍내와 거리가 있어 승용차로 30분씩 이동해야 한다는 점이다. 구불구불한 산길과 시골길을 달려야만 청소년교육관이나 관련 시설에 도착할 수 있다.


지난 금요일 저녁 7시, 한창 바쁜 시간에 저녁 식사를 준비하며 야채를 씻고 육수를 내고 나물을 무치고 있던 중 휴대전화가 울렸다. 초등학교 6학년인 첫째 아이 친구의 어머니였다. 매주 토요일 오전에 열리는 야구단 수업에 아들을 데리고 가 줄 수 있느냐는 부탁이었다.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어쩔 수 없지만, 어차피 가는 길이라 가능하면 부탁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야구 수업은 10시에 시작해 12시 40분에 끝난다. 우리는 첫째의 친구가 사는 마을에 들러 아이를 태웠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일이 한 번으로 끝나지는 않을 듯했다.


큰아이 친구의 아버지는 아프시다고 했고, 어머니는 새벽같이 일하러 나가신다고 했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누나들도 있지만, 이 아이는 혼자서 밥도 하고 스스로 끼니를 챙긴다고 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오래 살았음에도 읍내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접하기는 쉽지 않은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다니는 작은 학교에는 16명의 학생이 있는데, 그중 절반이 농촌유학생이다. 즉, 원래 이곳에 살던 아이들은 8명이다. 이들은 할머니나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어머니가 없는 아이들도 있고, 어머니가 있는 경우에는 캄보디아나 일본 국적을 가진 분들도 있다.


세 아이를 키우는 캄보디아 출신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우리 집에 놀러 와 함께 차를 마셨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30대 여성이었는데, 13년 넘게 한국에 살아서인지 한국어가 능숙했고 나를 ‘언니’라 부르며 친근하게 대해주었다. 시어머니가 담근 겉절이도 가져다주었는데, 캄보디아 출신 며느리를 위해 맵지 않게 양념한 배려가 느껴졌다.


최근 들어 ‘원래 여기 있던 아이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도시에서 온 아이들은 이곳의 자연과 프로그램을 마음껏 누린다. 운동장과 마당을 뛰어다니고, 다양한 활동을 경험한다. 그러나 원래 이곳에 살던 아이들에게는 농기구가 지나간 논밭과 놀 거리 없는 허허벌판, 그리고 같은 반에서 공부하지만 언젠가는 떠나버릴 농촌유학생 친구들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또한 인구소멸지역으로 유입되는 정부의 예산이 이 지역 아이들을 위해 쓰이기도 하겠지만, 애초에 할머니와 살거나 외국인 어머니와 살아가는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넘기 어려운 현실의 벽처럼 느껴졌다.


정보력이 뛰어나고 상황 판단이 빠른 도시의 학부모들은 이곳에 오면 그야말로 기회를 잘 찾아 누린다. 타지에서 왔지만 먹이를 능숙하게 찾는 새와, 오래 이곳에 살았어도 먹이를 쉽게 찾지 못하는 새처럼.


캄보디아 어머니를 둔 초등학교 3학년, 둘째와 같은 반 아이에게 물었다.

“좋아하는 캄보디아 음식이 뭐야? 캄보디아에 살 때가 좋았어, 아니면 여기가 좋아?”

돌아온 대답은 “저는 한국에서 태어났는데요.”였다.


순간 너무 미안했다. 예의 바르고 또박또박한 이 아이는 밥을 먹을 때마다 항상 입을 가리며 이야기했는데, 그 모습이 자주 보여 “항상 입을 가리지 않아도 돼. 편하게 이야기해.”라고 했더니,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밥을 입에 넣고 말할 때는 반드시 입을 가리라고 하셨다고 했다.


“그래, 그랬구나.” 그렇게 말을 맺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중고등학생들에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물으면 ‘농사일’이라고 답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면서 스마트팜에 대해 설명해 준다. 어쩌면 우리나라 농업의 미래는 이 아이들에게 달려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사회학자 미나시타 기류는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수 없는 아이들의 평등을 지켜주는 것이 공적 지원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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