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의 봄, 밥상 위에 핀 카네이션
육아휴직 네 번째 밤. 목련이 꽃잎을 피워내기 시작한 순창의 봄, 넷째를 출산한 것도 아닌데 감사한 시간을 누리고 있다. 아이들 곁에 머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워킹맘에게는 큰 축복이다.
하지만 엄마의 고단함은 감사한 마음과는 별개로 여전히 묵직하다. 빨래를 개다가 결국 맥주 한 캔을 꺼냈다. 다섯 살 막내의 양말은 유독 알록달록하다. 원색과 무지개색의 화려함을 좋아하는 아이의 취향 덕에, 무채색 양말들은 옷장 구석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초저녁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을 무렵, 아래층 아이들을 만났다. 그중 한 아이가 오늘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준비해둔 음식이 여의치 않았던 모양인데, 한창 배고플 아이의 사정이 못내 마음 쓰였다. 아이들의 엄마가 얼마나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는지 잘 안다. 두 아이를 위해 밤낮없이 일하며, 자신을 돌볼 겨를도 없이 숨 가쁜 일상을 보내는 뒷모습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상세한 사정은 알지 못해도, 내가 아는 분명한 사실은 이 아이가 우리 막내를 만날 때마다 두 팔을 활짝 벌려 꼭 안아준다는 것이다. 우리 막내도 누나의 품에 폭 안긴다. 둘만의 인사법이겠지만, 품을 내어주는 다정한 누나와 그 품에 안기는 작은 생명들이 귀여운 모습에는 누구라도 미소 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순창의 봄은 이제 막 막을 올렸는데, 이웃의 온기가 필요한 순간임을 느껴 두 아이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다행히 전날 친정에서 가져온 잡채와 나물, 장조림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반찬이 많아 상차림이 푸짐했다. 옆집에서 가져다준 두루치기까지 더해지니 식탁이 더욱 넉넉해졌다.
다음 날 저녁, 점심에 순두부집에서 얻어온 비지로 찌개를 끓이고 있는데 현관문 너머로 아래층 아이의 인기척이 들렸다. 작은 아이의 손에는 카네이션 네 송이가 들려 있었고, 아이의 엄마는 쌀 10kg 포대를 들고 서 있었다. 겨우 밥상에 숟가락 두 개 더 얹었을 뿐인데, 돌아온 마음의 무게가 너무 커서 되레 민망해졌다.
시골살이의 좋은 점은 이웃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자연스럽게 안부를 물을 수 있다는 점이다. 성냥갑 같은 아파트에서 '밀실 육아'를 하는 곳에서는 옆집 아이의 사정을 알기 어렵다. 서로 알고 지내기도 쉽지 않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눈인사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꽤 가까운 사이라고 여겨지곤 한다.
그러고 보면 이곳은 하늘과 땅, 집과 집 사이의 간격이 좁아 서로 가깝게 어울린다. 하늘과 땅도 거리가 멀지 않아 서로 마주 보며 이웃하고 있고, 그 사이를 거니는 사람들에게 평화로움을 선물한다. 나는 도시를 좋아하고 그 생활을 즐겨온 사람인데, 이런 변화를 마주하는 내 모습이 생경하면서도 신기하다. 자연이 준 선물일까.
지난주 서울에 다녀온 둘째가 다시 시골로 돌아와 말했다.
"서울은 건물이 나무 심겨 있는 간격으로 세워져 있어! 나무 하나에 건물 하나야."
나는 맞장구를 쳤다. "건물 사이사이엔 사고 싶은 것, 사야 할 것들이 즐비한 상점들이 늘어서 있고 말이야."
빌딩 숲에서는 사람이 건물에 압도되어 존재의 소중함마저 작아지는 걸까. 겨우 2층 높이의 집 창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속에는 보행보조기를 끌고 천천히 걷는 할머니들의 모습과 강아지들이 뛰어노는 장면이 선명히 들어온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풍경이 눈에 담기는 곳, 이것이야말로 시골살이의 특권이다. 그리고 그 특권은 타인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사랑과 관심을 나눌 기회를 선물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