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수만 개의 경험 조각

경험의 시작과 끝

by 류동석

우리의 경험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눈을 감는 순간까지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흐르는 강물과 같습니다. 깨어 있는 순간은 물론, 깊은 잠에 빠져 꿈을 꾸는 시간조차도 경험의 연속이죠. 하지만 이 경험은 지극히 폐쇄적이고 개인적입니다. 내가 오늘 아침 마신 커피의 온기, 출근길 창밖으로 스친 햇살의 각도, 그 순간 느꼈던 미묘한 설렘이나 권태를 타인이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경험이란 '나'라는 필터를 거쳐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주관적인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흐릿하고 거대한 경험의 줄기를 '툭, 툭' 끊어서 들여다보는 순간, 흥미로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마치 영화의 필름을 프레임 단위로 나누듯 우리 삶을 분절해 보는 것이죠.


입학, 취업, 결혼처럼 인생의 궤도를 바꾸는 굵직한 사건으로 나누면 그것은 한 사람의 서사를 보여주는 '인생의 연대기'가 됩니다. 반면 오늘 아침의 스트레칭, 출근길의 소음, 점심시간의 차담처럼 더 세밀하게 나누면 그것은 생생한 '일상의 기록'이 됩니다. 무색무취하게 흐르던 시간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형체 없던 경험에는 비로소 '시작'과 '끝'이라는 경계가 생깁니다. 이 경계가 생겨야만 우리는 비로소 그 경험을 기억하고, 분석하며,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가 그 경험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바로 이 분절된 마디의 '끝'에 달려 있다는 점입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이를 '피크 엔드 법칙(Peak-End Rule)'이라 설명합니다. 인간은 어떤 경험의 전체 과정을 산술적으로 합산해서 기억하지 않습니다. 대신 가장 강렬했던 순간(Peak)과 마지막 순간(End)의 감정을 바탕으로 그 경험 전체의 인상을 결정짓죠. 우리가 일상을 촘촘하게 나누어 정의하고, 기억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경험의 마디를 제대로 나누어야만, 그 마디의 끝을 아름답게 매듭지어 좋은 기억으로 남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 반복되는 경험의 마디들을 우리는 어떻게 더 잘 이해하고 관리할 수 있을까요? UX(사용자 경험) 전문가는 이를 '고객 여정(Customer Journey)'이라는 지도로 그려냅니다.


고객 여정은 단순히 과정을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 때는 미래의 경험을 설계하는 설계도가 되고, 기존의 문제를 고칠 때는 어느 지점에서 사용자의 마음이 돌아섰는지 찾아내는 탐지기가 됩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용자의 행동, 생각, 감정을 시각화하면, 보이지 않던 '경험의 구멍'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우리는 이 지도를 통해 어느 지점에 '피크(Peak)'를 만들고, 어떻게 '엔드(End)'를 장식할지 전략적으로 고민합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사실 핵심은 간단합니다. 누군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글로 쓰고 그림으로 그려서, 우리 모두가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공감의 도구'인 셈입니다. 혼자만 간직하면 파편화된 '기억'으로 흩어지지만, 이를 시각화하여 펼쳐 놓으면 비로소 함께 개선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공동의 자산'이 됩니다.


결국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이 수만 개의 경험 조각들을 정성스럽게 살피고 그 마디마디의 끝을 다듬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아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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