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실험과 바른 의사 결정을 위한 툴
UX 디자이너의 경우에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야 할 때를 자주 만납니다. (UX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모든 분야에서 프로토타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단계에서든 생각을 정리하고 시각화한 프로타입이 있으면 좋습니다. 하지만 프로토타입의 용도와 개념이 명확하지 않은 디자이너에게는 프로토타입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만 같은 뉘앙스가 있어서 인지, 어느 단계에서든 무조건 만들어봐야 좋을 거다 하는 생각이 있는 경우도 많고, 멋진 최신 툴들로 화려하게, 복잡도가 높게 만드는 것이 보기에 좋을 것이라 생각해서인지, 중압감을 가지고 뜸 들이고 천천히 공들여서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프로토타입이 생각을 다른 형식으로 정리하고, 모임의 가설을 검증하고, 대안 중에 최적안을 결정하는 일련의 과정에 필요한 생각의 형상화 도구, 검증의 툴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중압감을 가질 필요도, 멋지게 만들 필요까지도 없다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간편하게 쉽게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잘 넘어갈 수 있을지 궁리를 하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된다고 생각합니다.
유명한 디자인 히스토리 사례에서 멋진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역사적인 프로토타입은 팬과 지우개, 박스 몇 개를 테이프로 칭칭 감아서 만든 건타입 스트레이인 경우도 있고, 작은 종이나, 냅킨에 끄적인 알아보기 어려운 스케치인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그 보잘것없는 프로토타입을 오히려 사진을 잘 찍고, 사료화 해서, 작은 아이디어라도 조금 더 정성 들여 들여다보고, 활용하면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문가들도 참여하는 프로토타입이 장난 같이 만들어 놓은 모양새이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그 안에 들어있는 메시지에 공감하는 그룹의 힘이 더 중요하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비용과 시간을 절약해서, 만드는 새로움의 가치가 중요합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멋진 프로토타입을 보여 주어야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아이디어가 명확하게 짧은 시간에 만들어진 프로토타입이 더 실리적입니다.
어쩌면 다음 단계를 미리 가늠해 볼 수 있는 어떠한 형태도 모두 프로토타입이라 정의할 수도 있겠습니다. 프로토타입을 만들 때 느끼는 심리적인 장벽과 상황 별 프로토타입이 줄 수 있는 이점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전문적으로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과정을 분석하고 단계를 나누자면, 아이디어 논의단계, 프로젝트 초기, 아이디어 선정, 구체화 단계, 미세한 형상화 단계, 개발 후 Test, FGI, Beta Test, 출시 후 개선 단계, 차기 버전 정리, SW와 HW 차별점에 따른 다양한 속성과 단계에 따른 프로토타입도 있고 무수히 세분화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압감을 겪게 되는 경우는 초기 프로토타입이 아닌가 합니다.
프로젝트 초기 단계의 프로토타입 - 손그림
프로젝트의 초기 시점에 기획자, 마케터, 개발자, 디자이너, 영업 등 다양한 파트의 사람들이 모여서 사용자 경험에 대한 제안과 제한점들이 속속들이 나오는데, 많은 참여자 들 중에 누구도 다양한 방향성을 시각화하지 않고, 회의만 몇 시간, 몇 날, 몇 주 간 진도가 안 나가고 답답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건설적인 토론과, 심도 있고, 깊은 접근을 하는 것이면 좋긴 한데, 무언가 앞으로 나가는 모양새는 없고 제자리를 맴도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이러한 현상의 문제는 앞단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뒷단에서 아이디어를 숙성시키고, 고도화시킬 시간이 없어집니다. 회의가 끝나면, 그 많은 사람들이 다시 모이는 게 언제 일지 모릅니다. 때문에 그 어떤 단계보다, 초기 단계에서 같이 모여있을 때, 모양새가 좋지 않고, 어설프더라도, 간단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보고, 공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단계에서 누군가 아이디어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럼 초기 단계에서 짧은 시간에 만들 수 있는 프로토타입은 무엇이 있을까요? 그냥 손으로 그려 보는 것입니다. 시중에 있는 다양한 프로토타입 도구나, 여러 가지 방법을 잘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꼭 그런 것 까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회의에 참여하다가 어느 정도 공통의 관점과 제약 사항이 정리되고 있지만, 결론을 못 내고 있을 때부터는 손으로 간단한 그림 (Thumbnail, 엄지 손가락 만하게 그린다고 해서, Thumbnail Sketch이라고도 합니다.)을 그리기 시작하고, 끄적거리는 수준이지만, 손으로 그린 내용을 먼저 제시하고 그걸 바탕으로 다음 단계 아이디어를 발전시킵니다. 또는 주변에 있는 물건들을 조합하고, 붙이고 다듬어서 다음 단계를 생각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만들어 봅니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짧은 시간 안에 핵심을 파악하고, 이것을 말과 글이 아닌 다른 형식의 모양으로 만들어서 사람들의 다른 차원의 뇌를 자극하고, 생각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각화의 힘이 필요합니다. 이때 저는 개인적으로 컴퓨터를 이용해서 그리거나, 모형을 만들지 않는 편인데,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어서입니다. 짧은 시간에 정확한 선으로 그려진 그림은 어떻게 만들어도, 정교하게 다듬은 디자인 결과물보다는 좋지 않을 수밖에 없고, 손으로 그린 그림 보다, 그 원시성과 풋풋함이 떨어집니다. 또, 내용보다는 컴퓨터로 만들었기에 생기는 역설적인 표현의 거침으로 인해서 본질적인 내용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아이디어 결정 시기의 프로토타입 - 시안 A/B/C
초기 방향성은 구체화되었는데, 다음 단계로 점프해서 넘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보통은 이럴 때 누구도 확신을 가지고 이 방향이다 라고 선뜻 결정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개인별/입장별 호불호가 다르기도 하고, 분명한 구분점과 결정의 기준선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더러는 다음 단계가 가늠이 안되어서 그러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 만드는 시안을 프로토타입이라고 하기는 모하지만, Interactive 하게 구동하는 모습이 있거나, 아니면 정확한 시나리오가 보이면 이것 또한 큰 범위의 프로토타입이라고 봐야 합니다.
보통 시안 A/B/C의 단계의 프로토타입은 많은 이들의 의견이 반영되어, 그나마 전문적인 분야로 들어가기 전의 마지막 단계의 프로토타입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실현 가능성(개발, 양산 등의 조건에 부합하는)을 검토한 이후의 시안이 있을 수도 있고, 그 전 단계의 시안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요구사항과 구체적인 방향이 설정되었는데 중요한 결정을 못하고 있을 때, 다음 단계를 위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시안 A/B/C의 내용을 만들어서 장단점을 논의하고, 그중에 가장 좋은 아이디어를 선정하는 것이 앞으로 진행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혹시나 바로 완전히 결정되지 않았다고 해도, 한두 개의 대안으로 압축하면, 다음 단계에서는 보다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단체의 이해도가 생기게 됩니다.
심화 단계의 프로토타입 - Case By Case
시안이 정리되고, 세부적인 내용이 완성된 이후에 진행되는 프로토타입은 상황별로 너무나 많습니다. 대부분 미세한 내용을 결정하기 전에 세부적으로 만들어보는 프로토타입입니다. 버튼의 색과 모션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위치에 따라서 사용자가 느끼는 것은 어떻게 다를지, 미세한 결정에 따라서 매출과 활용도가 어떻게 달라질지, 상세한 내용에 따라서 개발성/양산성이 얼마나 달라질지 단계별로 확인하기 위해서, 또 사용자 반응 조사를 하기 위해서 FGI의 용도와 사용자 평가 등의 다양한 단계에서 활용하기 위한 프로토타입도 있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완료 전까지 만들어지는 모든 것은 시제품이기도 하고 프로토타입이기도 합니다.
한 프로젝트에 하나의 프로토타입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프로토타입은 각 단계별로 바른 의사결정을 위해서 짧게 짧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고 가볍게 진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프로토타입을 바라볼 때 구성원이 가지면 좋을 문화는 프로토타입이 너무 엉성하다고 그 퀄리티를 질타하는 것보다는 프로토타입을 만든 이유와 이유/설득/용도에 부합하면, 이에 따라서 명확한 결정을 내리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경우 프로토타입을 보고 결정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 초기 단계의 프로토타입을 많은 관련자에게 보여주면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는 경우가 있는데요, 프로토타입을 보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도 조직 문화의 경쟁력이고 그 단체의 눈높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단계의 프로토타입과 내용으로 바른 의사 결정을 만들어 내는 것도 조직적인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롭게 프로토타입을 펼쳐 볼 수 있는 문화입니다. 여러분이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 직급 고하, 역할, 권한을 막론하고, 손 스케치와 그림 몇 장으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토론할 수 있다면 참 좋은 곳에서 일한다고 말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