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조트에 대한 철학적 제언: 공간을 넘어 마음의 이상향으로...
1. 우리는 왜 쉬어도 지쳐있는가?
현대 사회는 역설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먼 곳으로 쉽게 떠날 수 있게 되었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도 완전한 회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리조트’라는 이름이 붙은 공간들은 우리에게 진정한 쉼을 약속하지만, 전국 어디를 가나 비슷한 외형의 건물, 표준화된 서비스, 상업적 이벤트의 홍수 속에서 그 약속은 종종 공허한 메아리가 된다. 우리는 곧잘 휴식을 위해 떠난 곳에서 또 다른 형태의 피로를 느끼고 돌아오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 일본의 사례에서도 나타난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은 ‘종합보양지역정비법(일명 리조트법)’ 제정과 함께 국토의 3분의 1을 리조트로 만들 뻔한 거대한 개발 붐을 겪었다. 그러나 철학 없는 양적 팽창은 결국 ‘어디를 가나 똑같은’ 공간의 양산으로 귀결되었고, 리조트는 골프장, 마리나와 함께 자연을 소모하는 ‘유물론적 발상’의 상징이자 개발 부조리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한 시기를 겪었고 겪고 있다 생각한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리조트의 본질은 무엇이며, 미래의 리조트는 어떤 가치를 담아야 하는가? 이 글은 이치조 신야(一条 信也)의 '리조트의 철학'이라는 저서를 바탕으로 이를 이를 편저한 손대현 교수의 의견을 바탕으로 리조트가 단순한 소비 공간을 넘어 현대인의 ‘정신적 기아(精神的 飢餓)’를 채우는 치유의 공간, 즉 ‘마음의 이상향(Heartpia)’으로 거듭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2. 리조트의 본질: 유물론을 넘어 ‘마음의 기아’를 채우는 공간으로
우리는 생존을 위해 밭과 논을 일구는 행위를 환경 파괴라 비난하지 않는다. 그것이 인류의 ‘신체적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한 본질적인 활동임을 사회적으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리조트의 존재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리조트가 현대 사회가 낳은 새로운 형태의 결핍, 즉 ‘마음의 굶주림’을 채워주는 필수적인 공간이라면 어떨까? 스트레스, 소외, 단절감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정신적 충만감과 영혼의 회복을 제공하는 장치로서 리조트의 가치와 존재의 이유를 다시 고민해야 할 때이다.
이러한 접근은 ‘리조트(resort)’라는 단어의 어원에서도 뒷받침된다. ‘re-(다시)’와 ‘sortir(가다)’의 결합인 이 단어는 ‘반복해서 돌아가는 곳’을 의미한다. 프랑스어의 명사 ‘ressort’는 ‘활기, 기력, 탄력’을 뜻하기도 한다. 즉, 리조트의 본질은 일회성 유흥이 아니라, 방문객이 기력을 회복하여 다시 찾고 싶게 만드는 신뢰와 매력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리조트 설계는 건축적 규모나 시설의 화려함이 아닌, ‘어떻게 방문객의 마음을 움직여 다시 돌아오게 할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이는 리조트 사업자가 가장 고민하는 재방문율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맥을 같이한다 할 수 있다.
3. 새로운 이상향: ‘하트피아(Heartpia)’를 향하여
리조트가 마음의 기아를 채우는 이상적인 공간이 되어야 한다면, 우리는 어떤 ‘이상향’을 그려야 할까? 저자는 인류가 꿈꿔온 이상향을 세 가지 차원으로 구분하며, 리조트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3.1. 유토피아(Utopia)와 파라다이스(Paradise)의 한계 토머스 모어가 제시한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는 곳(ou-topos)’을 의미하는 지적이고 정치적인 이상향이다. 플라톤의 이상 국가처럼, 이는 완벽한 시스템과 질서가 잡힌 도시의 이미지를 가지지만, 인간의 감성이나 영혼의 안식처와는 거리가 있다. 반면, ‘파라다이스(Paradise)’는 감각적이고 풍요로운 ‘낙원’의 이미지를 지닌다. 푸른 바다, 울창한 숲과 같이 오감을 만족시키는 이 공간은 인간이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모태 회귀’ 욕구와 맞닿아 있다. 현대 리조트는 대부분 이 파라다이스의 이미지를 차용하지만, 자칫 피상적인 쾌락에 머물러 깊은 정신적 만족을 주지 못하는 한계를 가진다.
3.2. 하트피아: 현세에 구현하는 마음의 이상향 유토피아와 파라다이스를 넘어 저자가 제안하는 대안은 바로 ‘하트피아(Heartpia)’다. 이는 ‘마음(Heart)’과 ‘이상향(Utopia)’의 합성어로, 천상이나 저편이 아닌 ‘바로 이곳(Here)’, 즉 우리가 살아가는 현세에 구현하는 마음의 이상향을 의미한다. 불교가 이승을 고통의 바다(苦海)로 보고 피안(彼岸)의 세계를 동경하는 반면, 기독교가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라고 가르치듯, 하트피아는 주어진 현실을 긍정하고 그 안에서 이상을 실현하려는 적극적인 의지를 담고 있다. 모든 종교의 가르침이 결국 마음의 평화라는 하나의 뿌리로 통하듯, 리조트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놀이와 레저 활동 또한 인간을 근원적인 기쁨과 행복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같은 목적지를 향한다. 따라서 하트피아로서의 리조트는 종교적 성스러움과 경제적 활동이 분리되지 않고, 인간이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 영적인 충만함을 느끼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4. 하트피아의 키워드: 리조트 설계의 구체적 방법론
‘마음의 이상향’은 추상적인 구호에 그치면 안 되고, 구체적인 경험을 설계하는 키워드들의 유기적인 결합을 통해 실현되어야 한다.
4.1. 치유와 회복의 공간 하트피아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방문객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서비스를 넘어선 '환대(Hospitality)'에서 시작된다. 리조트는 호텔과 병원(Hospital)이 같은 어원을 공유하듯, 아픈 마음을 치료하는 장소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공간에서 방문객은 비로소 깊은 '릴랙스(Relax)'와 여유를 느끼며 현대 사회의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된다. 나아가 동양의학에서 말하는 생명 에너지 '기(氣)'를 충전하는 장소로서의 역할도 필요하다. 깊은 수면을 돕는 환경, 제철 식재료로 만든 건강한 음식, 그리고 정성을 다하는 서비스는 모두 방문객의 기를 보충하는 행위다. 이를 통해 리조트는 건강(Health), 즉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한 웰빙 상태를 구현하는 성스러운 공간(Holy-day)이 될 수 있다.
4.2. 감각과 감성을 깨우는 경험 치유는 감각의 회복을 통해 이루어진다. 예로부터 '정원(Garden)'은 에덴동산, 극락정토 등 이상향의 모형이었다. 잘 가꾸어진 정원과 광활한 '자연(Nature)은 리조트가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소프트웨어다. 여기에 '아트(Art)'와 '환상(Fantasy)'이 더해져야 한다. 예술 작품, 독특한 건축, 동화 같은 스토리는 어른들에게 잊고 있던 동심을 일깨우고 현실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마법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디즈니랜드가 판타지를 현대인의 필수 요소로 만들었 듯, 리조트는 비일상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무대가 되어야 한다. 특히 감정이 풍요로워지는 밤 시간을 어떻게 연출하여 러브(Love), 즉 인간적인 교감과 사랑의 감정을 싹트게 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4.3. 놀이와 관계의 재발견 인간은 놀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 리조트에서의 놀이는 경쟁(Agon)이나 운(Alea)에 의존하기보다, 다른 존재가 되어보는 흉내 내기, 즉 '미미크리(Mimicry)'의 본질에 가깝다. 방문객은 놀이를 통해 잠시 일상의 정체성을 벗고 새로운 역할을 연기하며 해방감을 맛본다. 이는 인간이 신을 흉내 내며 신과 가까워지려 했던 고대의 신성한 놀이와도 맞닿아 있다. 또한 리조트는 근원적인 안식처로서의 모성애를 재현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적절한 온도, 고요한 소리, 물의 이미지를 통해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절대적 안전함과 평화를 느끼게 할 때, 방문객은 비로소 무장 해제될 수 있다. 이러한 섬세함은 특히 여성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핵심 요소로, 리조트가 환락 공간으로 전락하지 않고 품격을 유지하는 기반이 된다.
4.4.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제안 궁극적으로 하트피아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안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진정한 '레저(Leisure)'란 단순한 피로 회복을 넘어, 기분 전환과 자기 계발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는 활동이다. 리조트는 가짜 레저에서 벗어나 진정한 배움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또한, 스포츠 역시 승패를 가르는 경쟁이 아닌, 신선처럼 노닐며 불로장생을 꿈꾸던 유희에 가깝게 재해석되어야 한다. 미래의 리치(Rich) 계층은 과시적 소비(Deluxe) 보다 정신적 풍요로움(Relax)을 추구할 것이며, 이들을 위한 프라이빗 리조트는 더욱 세분화될 것이다. 일(Work)과 놀이(Play)가 융합되는 ‘워플레이(Work-play)’ 현상이 보여주듯, 리조트는 이제 비일상적 휴가를 넘어 새로운 라이프(Life) 스타일의 거점이 될 잠재력을 품고 있다.
5. 천년 리조트를 향한 제언
리조트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에게 왜 필요한가? 이제 우리는 그 답을 물질적 가치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 미래의 리조트, 천 년을 이어갈 수 있는 리조트는 하드웨어의 경쟁이 아닌, 철학이라는 소프트웨어의 깊이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평화를 제공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며, 정신적 기아를 해소하는 공간이다.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는 영원불멸의 정신적 공동체, 즉 ‘마음의 이상향’을 현실에 구현하는 것이야말로 리조트의 궁극적인 사명이다.
이를 위해 리조트 개발자와 기획자는 인간과 자연, 나아가 우주와 신의 질서에 교감하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탑을 세워 하늘에 닿으려는 인간의 지향 심리를 담아내고, 나룻배를 띄워 이승에서 피안으로 건너가는 듯한 여정의 설렘을 연출하며, 다실(茶室)과 같은 좁지만 마음이 충만한 공간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 우리가 다음 휴가지에서 찾고 만들어야 할 것은 더 높은 건물이나 더 화려한 쇼가 아니다. 그곳에서 진정한 나 자신을 회복하고, 인간다움을 되찾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과 활기를 얻는 것. 이것이 바로 미래 리조트의 존재 이유이자,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쉼’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웰빙'과 같은 단어가 언제부터 유행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국내에 이 책이 소개된 것이 1997년임을 고려하면, 상기와 같은 리조트에 대한 접근 방법은 현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고 만연된 유사 단어를 생각할 때, 현재에도 저자의 리조트에 대한 생각은 아직도 유효하다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