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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호 Nov 29. 2018

최고통치자(국가수호자)의 역할과 양성과정

-플라톤『국가론』을 중심으로-

1. 들어가는 말


    2016년 12월 9일 대한민국 헌정의 두 번째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고, 2017년 3월 10일 헌정사상 최초로 탄핵 소추 의결서가 인용되었다. 박근혜 탄핵의 원인이 되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특별히 국가의 대표성을 가진 사람이 공적인 힘을 사적인 이익을 위해 사용했으며, 비선실세를 통해서 정치적인 의사결정을 했다는 것이 민주주의를 우롱하는 태도가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은 국가의 정치와 이를 대표하는 인물에 대해서 더더욱 관심과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는 일련의 가슴 아픈 탄핵정국을 반성하고 다시 한 번 올바른 국가를 세워가기 위해 올바른 국가관에 대한 정립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리는 플라톤이 기록한 『국가론』을 참고할 수 있다. 우리는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주장하는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을 오늘의 자리에서 거울삼아 반성해보고 이상적인 국가의 지도자는 어떤 덕목을 갖추어야 하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래서 한 명의 국가지도자를 선출하고 세우는 과정에서 다시는 아픈 역사를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주장하는 최고통치자의 역할과 그 최고통치자의 양성과정에 대해 알아보고자한다. 우선적으로 이상적인 최고통치자의 역할을 살펴보고 그 역할을 감당하는 최고통치자는 어떻게 형성되는지 살펴볼 것이다. 다음으로 최고통치자가 되기 위해서 기초적으로 필요한 학문적 소양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고통치자는 어떻게 양성되며 각 연령대마다 무엇을 핵심적으로 교육하고 훈련해야하는지 알아보고자한다.


2. 최고통치자의 이상적인 역할


    최고통치자의 이상적인 역할은 모든 국민을 결속시켜서 ‘공공의 선’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개개인이 행복하게 살도록 만드는 것이다. 즉 모든 사람의 ‘사적행복’과 국가의 ‘공공의 선’을 상호연관 속에서 성장시키는 것이다. 최고통치자는 이 이상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올바른 혜안을 가져야한다. 올바른 혜안을 가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진리를 목격하는 것이다. 감각적 세계와 욕망에서 한발자국 물러나 현상과 사물의 본질과 실재를 파악하는 것이다. 최고통치자는 국가의 종합적인 요소를 진리의 시각으로 다스린다.

    최고통치자는 이상적인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진리를 목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소크라테스는 유명한 ‘동굴의 비유’를 한다. ‘동굴의 비유’는 이런 내용이다. 죄수들이 어렸을 때부터 동굴에서 사지가 묶인 채 벽면만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머리 뒤에 놓인 횃불로 벽면에 비친 그림자를 통해서만 세상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소리가 나면 눈앞의 그림자에서부터 발생하는 소리라고 생각하고 그림자를 세상의 실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죄수들 중 한 사람의 족쇄를 풀어주면 어떻게 될까? 자유해진 죄수는 실제로 횃불을 보고, 태양을 보고, 그림자의 실물을 보는 순간 혼란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무엇이 진짜 세상인지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죄수에게는 실물에 대해서 가치판단이 완료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어둠에 익숙한 시력이 빛에 익숙해지기까지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듯이 실재에 대해서 판단하는 과정에는 시간과 적응이 필요하다.

    동굴의 비유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최고통치자는 실재를 본 사람이다. 우리는 이 실재의 세상을 ‘이데아’라고 한다. 최고통치자는 동굴의 그림자에 익숙한 감각적 삶에서 사물과 현상의 본질과 실재를 바라보는 관조의 삶으로 전향한 사람이다. 그들은 계몽의 과정을 거치고, 이제는 계몽을 이끄는 주체이다. 국민이 공공의 선을 위해 살아가도록 이끌고, 그 속에서 개개인의 행복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래서 최고통치자는 동굴의 밖을 경험하지만 다시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왜냐하면 동굴 속에 있는 국민을 불쌍히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대중이 몸을 돌리고 실재를 볼 수 있도록 계몽의 과정을 돕는다. 하지만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대중은 여전히 그림자에 익숙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누가 밖을 나갔다 온 사람의 말을 믿겠는가? 사람은 자신의 감각적 세계에 갇혀서 살아가기 때문에 자신이 경험한 범주를 넘어선 것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최고통치자는 현실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비난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최고통치자는 비난에 일희일비 하지 않는다. 대중이 실물을 보기 위해서는 묶인 몸이 풀려야하고, 몸의 기능이 회복되어야 하며, 빛을 바라보았을 때에도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최고통치자는 관조와 기다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혜안으로 헤매고 있는 사람들을 이용하여 사적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는 실재를 아는 지식으로 자신의 왕국을 위해 이용하지 않는다. 오직 최고통치자는 가엾게 여기는 마음으로 인내하며 ‘공공의 선’을 이루어간다.


3. 최고통치자를 위한 학문적 소양


    누구든지 동굴 밖으로 나가기까지, 그리고 그곳에서 진리를 인식하기까지는 변화의 결단과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과정을 우리는 교육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한 명의 최고통치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진리를 알아가는 교육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필요한 기초적인 학문적 소양을 소크라테스는 4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철학을 습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첫째로 ‘수학’이다. 수학은 모든 학문과 기술의 공통된 언어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수학을 ‘우주의 언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즉 수학은 세상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 인간의 사유를 돕는 학문이다. 수학은 모든 사물의 분류를 위해 꼭 필요하다. 소크라테스는 ‘손가락’을 가지고 설명을 한다. 다섯 가지 손가락을 볼 때 이 모든 것은 ‘손가락’이다. 하지만 다섯 손가락은 모두가 다르다. 검지를 기준으로 볼 때 엄지는 더 짧고 중지는 더 길다. 검지는 엄지보다 더 길고, 중지보다 짧은 손가락이 된다. 이 모든 분류와 구분의 기준은 수학에 의해 가능하다. 크기와 무게, 부피와 강도는 모두 수치에 의해서 비교되고 분류된다. 나아가 범주들이 형성된다. 수학은 분류와 범주화를 통해 하나지만 여럿인 사물의 모순에서 실재를 파악하도록 돕는다. 소크라테스는 수학을 철학자의 정신으로 숭상해야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추상적인 수를 논하게 되면 사물의 변화에 일희일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로 ‘기하학’이다. 기하학은 수학을 기초로 하여 보이지 않는 도형의 면을 생각하는 학문이다. 즉 기하학은 추상적인 사고방식을 통해서 볼 수 없는 면을 상상해야하는 학문이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기하학은 영혼을 진리로 이끌어 내는 철학에 관한 정신을 창조한다. 그리하여 실추된 철학적 기능을 회복하도록 한다.” 기하학은 보이지 않는 선의 이데아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사물과 현상의 보이지 않는 이면을 입체적이고 다각적으로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

    셋째로 ‘천문학’이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천문학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눈을 뜨게 해준다.” 천문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천상의 움직임과 원리를 파악한다. 그 속에는 수학과 기하학이 포함된다. 왜냐하면 추상적인 사고방식을 통해서 하나의 원리를 파악해야 되기 때문이다. 기하학은 정적인 사물을 파악하는 것이라면, 천문학은 보이지 않는 실재의 움직임과 그 원리를 지성의 영역으로 포착하는 것이다. 이는 감각을 넘어서 영혼을 살피는 철학적 사유에 큰 도움을 준다.

    넷째 ‘변증론’이다. 변증론은 이중적 구조가 있다. 첫째로 변증론은 ‘종합적 사고’이다. 앞서 설명한 모든 학문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주는 학문이다. 철학을 위해 필요한 학문의 기초이자 완성이 된다. 마치 칸트의 말대로 순수직관과 순수오성을 종합하는 능력이 순수이성에 있듯이, 수학과 기하학과 천문학을 통해 추리적 사유를 가능케 하는 능력은 ‘변증론’에 있다. 둘째로 변증론은 ‘순수한 사유’이다. 이는 ‘종합적 사고’를 넘어서 순수하게 지성의 힘만으로 선의 이데아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변증론은 지성에 의지해 연주되는 곡이다. 감각의 도움 없이 오직 순수한 사유에 의지해 ‘절대선’으로 향해 나아가는 학문이다.” 변증론은 개념을 정의하거나 반박할 때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변증론은 추상적인 사유와 이성의 논리를 통해 개념의 의미와 한계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를 통해 개념을 정의한다.


4. 최고통치자의 발달과정


    최고통치자라는 역할은 재능만 있다고 가능하지도 않고, 노력을 통해서만 가능하지도 않다. 재능이 있는 인원이 선별되어야 하고, 시기마다 교육자에 의해서 필요한 교육이 이루어져야한다. 최고통치자는 어릴 때부터 훈련이 필요하다. 앞서 살펴본 4가지 학문적 소양을 교육받아야하고, 타고난 기질을 파악해서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강하게 교육해야한다.

    소크라테스는 본격적인 최고통치자의 훈련은 대략 스무 살쯤 시작해야한다고 한다. 이 나이는 학문의 적인 피로와 졸음을 일으키는 체육훈련을 마친 나이이다. 그리고 두서없이 배운 학문들이 체계화되어 종합적인 사고를 하는데도 큰 무리가 없는 시기이기도 하다. 종합적인 사고가 가능하기에 그 사고를 중심으로 변증술에 재능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도 있다. 그래서 스무 살쯤 되는 시기에 변증술에 재능이 있으며, 국가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한 자를 선별해서 최고통치자로 훈련시켜야 한다. 그리고 선별된 인원들은 향후 변증술을 5년 정도 훈련하는 것이 적당하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선별한 인원들이 서른 살이 되면 그들이 감각에 휩쓸리지 않고 공공의 선을 위해서 변증술을 이용하는지 시험해야한다. 그들에게 명예를 주었을 때, 그 명예를 사적인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지 정의를 위해 사용하는지 시험해야한다. 최고통치자가 되기 위해서는 변증술을 정의를 위해 사용하는 굳센 성정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 시기는 동굴 밖에서 실재를 파악한 후 다시 동굴로 들어가는 시기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다양한 경험과 실무를 쌓고 유혹의 시험을 극복해야한다. 소크라테스는 이 기간을 15년 정도로 생각한다.  

    시험을 끝낸 자들은 50세가 되면 다방면에서 통달한 사람이 되어 마지막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들은 영혼의 눈을 떠서 ‘선 자체’를 본 후, 이를 본보기로 국가와 국민 그리고 자기 자신을 통치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임무가 끝나면 마지막으로 남은여생을 다시 후세를 양성해야한다. 개인의 선과 공공의 선을 통일시켜야하는 최고통치자는 재능있는 자를 선별하고 양성해야한다. 왜냐하면 한 개인의 재능을 발견해 행복으로 이끌어주고, 그 사람으로 인해 공공의 선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최고통치자의 발달과정을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최고통치자는 배운 학문을 체계적으로 종합할 수 있어야한다. 체계적으로 종합된 인식은 변증술을 통해 표현하며 이를 통해 진리와 가까워진다. 20대에는 변증술에 재능이 있는 자가 변증술을 개발시켜야하는 시기이다. 30대에는 변증술을 사적인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지, 공공의 선을 위해 사용하는지 시험해야하는 시기이다. 그리고 50대에는 사변과 삶이 일치되어 ‘선 자체’를 추구하는 최고통치자가 되어야한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이상적인 최고통치자는 오직 철학자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철학자만이 진리를 알고, 감각적 유혹에 의해서 덧없는 명예나 명성에 물들지 않기 때문이다. 철학자는 정의를 신봉하고 올바른 일을 명령하여 올바른 국가가 되도록 한다.


5. 나가는 말

     

    지금까지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주장하는 최고통치자의 역할과 그 최고통치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양성과정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첫째로 최고통치자의 이상적인 역할을 살펴보았다. 최고통치자의 역할은 ‘공공의 선’을 통해서 각자가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역할이 쉽게 가능하겠는가? 최고통치자는 동굴 밖을 다녀와야 한다. 실재를 보고 대중을 계몽시켜주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혼란스러움도 외로움도 겪어내야 한다. 하지만 ‘선의 이데아’를 아는 자는 대중을 가엾게 여기기에 이 모든 과정을 감내한다.

    둘째로 최고통치자에게 필요한 학문적 소양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최고통치자에게는 네 가지 학문이 필요하다. 수학과 기하학과 천문학과 변증론이다. 수학은 분류와 범주화를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학문이다. 기하학은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추상적인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 천문학은 기하학에서 발전하여 보이지 않는 것의 운동과 이치를 깨닫게 한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영혼의 진리를 깨닫는데 도움을 준다. 변증론은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사유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학문이다. 모든 것을 종합하여 개념을 정의하며 실재를 파

    마지막으로 최고통치자의 발달과정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최고통치자는 재능 있는 인원을 선별하여 다음 후세를 양성해야 한다. 시기마다 필요한 교육을 가르치며 훈련의 과정을 겪도록 지원해야한다. 그래야 또 다른 최고통치자가 만들어질 수 있다. 20대에는 변증술에 재능있는 자들에게 변증술을 교육해야한다. 그리고 성실히 주어진 의무를 수행하도록 해야한다. 30대에는 배운 변증술을 ‘선’을 위해 사용하도록 시험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시험을 무사히 끝난 자를 50대에 최고통치자로 세워야한다. 최고통치자는 정의를 위해 일하며 이상적인 국가를 통치한다. 그리고 또 다시 후세를 발굴하고 양성한다.

    고대 사회의 최고통치자 모습을 통해 현대의 국가지도자를 반성한다는 것은 시대의 간극만큼 많은 제한사항들이 있다. 같은 민주주의 공화정이라도 군주와 대통령이 가진 대표성은 많은 차이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도자는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공공의 선’을 통해서 개개인이 행복해지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국가지도자가 해야 할 핵심적인 역할이다. 탄핵정국을 지내온 한국사회에서 개인의 성장과 사회의 성장을 함께 이루어나갈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지도자의 양성은 고대사회처럼 한사람의 철인에 의해서 선별적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교육은 이제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교육은 새로운 과제를 얻는다. 교육은 건강한 지도자와 동시에 건강한 시민을 만드는 것이다. 건강한 지도자와 시민이 형성 될 때 공공의 선을 추구하며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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