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그것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약 반년 간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았네요. 그만큼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는 뜻이겠죠. 반성합니다.
다시 열심히 써볼까 합니다. 그 이유는 사실.. 최근에 머리카락이 정말 많이 빠졌어요.
이런저런 일로 바쁘게 스트레스 잔뜩 받으며 살다 보니, 거울에 비친 제 모습, 언제부턴가 앞머리가 휑하네요.
이건 뭔가 아니다 싶어 저의 마음을 다시 돌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오랜만에 쓰는 글인데 무슨 주제로 써볼까... 하다가 연민이라는 주제가 떠올랐습니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부디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작년 9월부터 인사관리 석사학위를 공부하고 있는데요. 주로 나이대들이 다 어립니다.
프랑스의 모든 비즈니스 스쿨이 그런 거 같아요.. 모든 게 다 조별로 이루어지더라고요.
프랑스 처음 왔을 때 그나마 공립대학 간 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조원들하고 팀플이 많아서 불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지금 여기에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주로 세 명에서 다섯 명까지 같이 한 조를 짤 수 있고, 한 달 넘게 같이 한 주제를 가지고 피피티를 만들고 발표합니다. 저희 조는 저까지 세 명이고 나머지 두 명은 프랑스인입니다.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입니다.
편의상 그 남자를 마튜, 여자를 안나라고 하겠습니다. 본명이 아닙니다.
마튜는... 뭐랄까. 이 친구도 올해 만 27살이라 그런가 나름 성숙한 것 같습니다. 자기 얘기를 별로 안 하고 주로 회사 얘기를 많이 하고, 편하게 이 말 저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이라 쓴 이유는 친구는 아닌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 친구가 편한 이유는 매사에 골머리 아프게 생각하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냥 편하게 살아가고 싶은 친구이고 그룹 내에 트러블이 생기는 것을 싫어하고 적당히 치고 빠질 줄 아는 똑똑한 친구인 것 같아요.
반대로, 오늘 주제로 쓰고 싶은 이 안나라는 친구는 뭐랄까요. 작년 9월부터 올해 상반기 내내 저는 이 애가 이해도 안 되고 정말 싫었어요. 정말 왜 굳이 싫다는 표현을 쓰냐면 매사에 그 작은 것 하나에도 모든 신경을 골두하는 것 같았어요. 이 친구... 머리칼 조심해야겠어요.
저랑 너무나 닮은 듯 안 닮은 듯 한 성격이 신기해요. 저도 사소한 거에 스트레스 많이 받고 직설적이고 계획적으로 처리되지 않으면 불안감에 시달리는 사람이거든요. 이 친구는 저보다 8살? 9살? 더 어린데 저보다 심한 거 같아요. 피피티 만들 때 작은 폰트, 색깔까지 온 신경을 다 쏟아붓는 애예요. 뭔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완벽하지 않으면 잠 못 자는 어린아이 같죠.
욕하려고 쓰는 글은 절대 아니고, 저는 올해 중반기부터 어떻게 해야 그나마 이 아이랑 2026년까지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을까 고민한 거 같아요. 그때부터 저에게 늘 상기시키는 것은 저 아이는 일단 어리고, 물론 나이가 성숙함을 대변할 수 없지만 그래도 뭔가 차이는 있을 거라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냥 안타깝다라고 생각하자 싶습니다. 뭐랄까, 그녀에게서 어릴 적 저를 보는듯한 느낌마저 들 때가 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전 성적에 시달렸었거든요. 이 친구도 그런 어린 시절이 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생각에 꼬리를 물다 보면 어느새 이 친구를 미워하던 제 마음까지 밉게 보입니다. 미워하는 것만이 답이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이후부터 저는 그룹 내에서 새 과제를 받을 때마다 "안나, 스트레스받지 마. 하기 싫은 부분 있으면 우리한테 말해."라고 하고 그 친구는 드디어 이해받았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이 친구는 똑똑한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나가서 발표하는 것을 극도로 무서워하는 것 같아요. 말이 엄청나게 빨라지고 얼굴이 새빨개집니다. 그래서 저번달에 그룹 내에서 트러블이 있을 때에도 자기는 발표하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라고 하길래 그럼 나는 발표가 아무렇지도 않으니 다음부턴 내가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어제 있던 일인데, 유럽 데이터관리법 객관식 시험이 있었습니다. 40분 동안 치러지는 40문항 객관식 후에 주관식 시험도 있었습니다. 객관식은 컴퓨터로, 주관식은 컴퓨터 없이 시험지에 글 쓰는 식으로 이뤄졌어요. 객관식 시험 중에 그 친구가 화면을 까맣게 하고 커닝하는 것을 봤습니다. 아! 쟤 점수 잘 나오겠네. 나는 이렇게 머리 굴리고 있는데.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에게 연민을 갖기로 노력한 지도 어느새 몇 달이 흘러서일까요.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좋은 점수를 내보려 하는 저 친구가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까지 하는 건지. 심지어 이 객관식 시험은 총점수에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객관식 시험을 구글폼에서 해서 바로 점수가 나오는데, 글쎄 저희 반 중 한 명만 평균을 넘었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반에 있던 한 명이 그 한 명이 누군가요, 다 같이 박수치게 말해주세요라고 하네요. 물론 안나가 유일하게 평균 넘긴 사람이었고 저희는 모두 박수쳤어요. 저도 측은지심에 웃으며 박수를 쳤어요.
저의 연민이 극에 달한 시점은 오답체크 중이었어요. 틀린 답이 왜 틀렸는지 선생님께서 설명해 주시는데 안나가 그 문제에 틀린 사람들에게 "당연한 거 아니야?" 이런 식으로 혼잣말 하며 손으로 턱받침을 하며 "으휴..." 이러더라고요. 마치 한심하다는 듯이. 저는 그 모습을 보며 확신했습니다. 저 아이는 완벽주의자구나. 그리고 거기에 도달하려면 어떤 수를 써도 아무렇지 않을 사람이구나. 어쩌다 저렇게 됐을까? 어떤 어린 시절을 보낸 걸까?
이렇게 또 인간공부라는 걸 합니다. 재밌어요. 비즈니스 스쿨은 나중에 사업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데, 이렇게 인간의 본성에 대해 공부하라고 조별과제를 매일 짜주는 걸까 생각이 자주 들더라고요.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한 사회를 이루는 거겠죠. 시험은 무사히 끝났고 저는 생각지도 않던 공부를 하게 된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