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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두 Jun 21. 2024

각자의 부족함

부족해도 괜찮아. 이해해 줄 사람들이 있어.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아마도 모두가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지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꽤 최근에 가장 친했던 두 프랑스 친구들과 멀어졌다.

친구들의 말실수도 있지만 지금 반년이 지난 후에 드는 생각은 

내가 그들에게 친구라는 이유로 완벽히 나와 같기만을 바랬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한 친구의 예로 들면, 나는 그 친구에게 새로운 친구들을 소개해주고 싶어서 

자리를 마련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각자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하다가 그 친구가 무려

5년 전에 헤어진 나의 남자친구를 들먹이며 "걔도 나쁘지 않았잖아~"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아이는 왜 어떻게 헤어졌는지도 잘 모르는 채 나의 지인들 앞에서 그런 말을 했고, 나는 당황스러웠다.

왜 나를 공격하지? 나한테 악감정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차츰 연락을 피하기 시작했었다.


다른 한 친구는, 그 친구가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친구였는데 특히 떡볶이를 무척 좋아하던 친구였다.

그래서 자주는 아니더라도 일 년에 한두 번이라도 그 아이 집에 내가 재료까지 사들고 가서 

떡볶이를 해주고 시간을 같이 보내곤 했다. 물론 내 자의였다. 

3월의 어느 날 저녁, 떡볶이 재료가 다 떨어졌다는 말에 괜찮으니 집에 오라는 말 조차 하지 않던 친구는 

오히려 "ㅋㅋㅋ 안 됐다 너 괜히 나왔네"라고 했다. 그 말에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이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좋아서 가려고 했던 건데 이 친구는 단지 떡볶이가 먹고싶었던 걸까? 

나는 이 친구한테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후로 차츰 연락을 피하기 시작했었다.


그때는 그때의 나에게 타당한 이유들이 있었다. 상처받는 게 싫었고 상처받았다는 게 싫었다.

진짜친구 가짜친구를 가려내며 어쩌면 이제는 친구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관심을 나에게 돌려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반년이 흐른 지금의 나는 좀 더 성숙해진 걸까? 그 아이들이 밉지가 않다.

오히려 보고 싶다. 우리가 함께한 7년의 세월들이 아깝다. 

세월이 아까워서 손절했던 친구를 다시 주워 쓰는 느낌도 솔직히 없지 않아 있다.

그렇지만 마음속 고인 나의 감정들을 흘려보낼 때가 왔다. 

그 아이들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가 왔다. 그 누구가됐든 말이다. 

나는 모두가 그렇듯, 타인을 바꿀 수 없다.  


우리 모두 각자 부족하고 그 모두에는 잊고있었던 나도 포함된다. 친구들도 나의 부족한 점을 알것이다. 

나도 그때 바로 문제를 제기했어야 한다. 속으로 꽁한 사람은 정말 별로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였다. 흘려보내는 연습이 절실히 필요하다.


인간은 서로 어울려야 한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켰다.

이번 일들로 배운 점은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해서도 안되며 타인의 행동에 너무 중요성을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배웠다. 

그럴 수도 있지,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았잖아. 그 애만의 이유가 있겠지. 

여기까지만 생각하고 흘려보내야 한다. 적을 만들어선 안된다.


내가 내 인생에 만족하며 나만의 프로젝트가 있고, 매일매일 읽고 있는 책과 취미생활이 있다면 타인, 친구가 어떻게 나오던 그렇구나 하며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실망이라는 것도 할 것이다. 물론 앞으로도 작은 상처들이 날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나만의 강력한 치료약을 만들어낸다면 그 누구도 나를 피폐하게 만들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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