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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 Dec 03. 2021

기획자/개발자로서 교사

학교 문제의 주체적 해결자로서 교사/교육청 

#1

시험감독을 위해 오랜만에 한 중학교 교실에 들어갔다. 수험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최대한 움직임을 자제하며 시험 감독을 하는 중에 자연스럽게 교실 환경이 눈에 들어왔다. 전면에서는 녹색 칠판이 크게 자리잡고 있고 한쪽에는 40인치 정도되는 TV가 천장에 매달려 있다. 그리고 천장에는 냉난방기가 돌아가며 중간중간 선풍기가 설치되어 있다. 시험을 보는 학생이 16명 밖에 안되는데 교실은 꽉 차고 여유 공간이 없다. 이 공간에서 어떤 다양한 활동이 가능할까? 내가 학교를 다닌 20여년전과 비교해보면 조금 더 선명해진 TV, 효율좋은 냉난방기가 그 변화의 전부이다. 밖에서는 미래교육, 미래학교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중이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교실은 환경 측면에서 과거에 머무르고 있다. 


#2

여러 교육청의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컨설팅에 참여하였다. 각 학교의 사전 기획 보고서에는 한 페이지 정도 분량의 디지털 전략이 담겨 있는데, 노트북이냐 패드냐, VR을 어디에 놓느냐 정도의 내용이 담겨 있다. 여기에 어떤 의견을 드려야 하는데 솔직히 마땅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머릿 속 미래교실의 모습은 개별화 교육을 지원하는 지능형 교실인데 이를 뒷받침 하는 '교실을 위한 기술'이 없어 실질적 대안을 제시할 수 없었다.  그냥 에듀테크 활용을 촉진하는 지원 전략 정도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미래형 교실 구축 사업은 시작되었지만, 당장 2~3년 뒤에 만들어질 에듀테크 기반의 교실 모델을 아무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3

얼마전 AI 발표회에 참여했다. 선생님들이 60시간 정도 연수를 들으시고 AI 프로토타입을 제작하였다. 교사들은 기존 학교 문제에서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던 노동집약적 업무들을 자동화시키거나, 교수학습에서 학생들의 이해를 돕는 AI 콘텐츠를 제작하여 제안하였다. 학교에 도입된다면 정말 도움이 될 것 같은 프로그램들이 많았다. 이런 실질적 아이디어는 그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교사들만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뒤의 교실 에듀테크 환경은 어떻게 달라질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답이 선뜻 떠오르지 않아, 질문을 바꾸어 '10년 전과 지금의 교실 에듀테크 환경은 무엇이 달라졌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HW 측면에서 조금 더 늘어난 노트북과 패드, 빨리진 통신환경, SW 측면에서 원격수업을 위한 화상회의 프로그램 정도... 선생님들이 많이 활용하는 대부분의 서비스는 10년 전과 유사하다. 지난 10년 간 큰 변화가 없었다.  


그렇다면 학교를 벗어난 사교육 분야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모든 변화를 알 수 없지만 아이가 하는 ITS 기반 학습 솔루션만 봐도 감탄이 나온다. AI 기반의 학습관리(?), 인플루언서들이 제작하는 매우 재미있는 콘텐츠, 게임적 요소와 보상 체계 등 아주 매력적이다. 특히, 어학이나 수학분야에서 개별 학습자(개인 고객)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서비스는 정말 놀라울 정도이다. 지난 10년간 아주 큰 변화가 있었다. 


10년 뒤의 공교육 속 에듀테크는 지금(2021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10년뒤에도 비슷하게 AI에듀에크의 필요성만 논하고 있을 것 같다. 그 이유는 두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교실 에듀테크는 수익 창출이 어려워 기술을 가진 기업에서 도전하지 않는다. 에듀테크와 관련된 많은 연구와 정책에서 민간과의 '협업'을 강조한다. 협업은 서로 얻는 것이 있어야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 학교에서 필요한 에듀테크는 사실 돈이 안되는 것이 많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교육에 대한 사명감만 가지고 접근하기 쉽지 않다. 둘째, 대부분의 에듀테크는 교실의 문제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물론 안 그런것도 있다). 다수의 에듀테크는 개별 학습자의 자기주도학습을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 진다. 타겟이 다르기 때문에 교실에 적용하려면 교사의 매우 복잡한 교수설계가 요구된다. 기존 에듀테크에 교수학습을 끼워 맞추는 형태의 수업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많은 에듀테크가 개발되어도 교실에 적절한 에듀테크를 찾기 힘든 이유이다.  


지금까지 학교는 누군가 만들어 준 에듀테크를 활용하였다. 학습효과를 높이고 업무를 효율화하기 위한 에듀테크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지만 이용할 수 있는교실의 에듀테크는 여전히 답보 상태이다. 교실에 적용할 수 있는 에듀테크에 대해 외부의 관심이 부족하다면, 내부 구성원이 보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는 전문성 개발과 학교 문제의 체계적 해결자로서 '연구자로서 교사' 역할이 많이 제안되었으나, 더욱 적극적인 문제해결자로서 '기획자 또는 개발자로서의 교사' 역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교사가 학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에듀테크 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교사가 현장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팀을 구성한다. 팀은 교사, 교육청 직원, 개발자 등이 될 수 있다. 팀은 애자일 방식과 같이 빠르고 유연한 방식을 채택하여 현장의 요구를 분석하고 설계, 개발, 시험, 검토의 순환적인 과정을 통해 프로토타입을 개발할 수 있다. 학교 현장의 요구를 그때 그때 반영하여 하나의 산출물을 만들어가는 적응적 개발 과정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이때 최종 개선된 프로토타입은 일정한 현장 평가를 통해 제품으로 개발할지 판단하게 되며, 교육에서 효과가 있다고 판단되면 전문가(기업과 협력) 주도하에 실제 개발이 이루어지게 된다. 개발된 제품도 현장의 요구를 반영하여 지속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교사가 기획과 설계에 주도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교실 친화적 산출물을 만들 수 있다. 물론 이렇게 개발된 AI·에듀테크는 현장 안착에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이때 실패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에듀테크 특성 상 수 많은 실패 중에 하나만 성공해도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교사가 AI·에듀테크의 기획자/개발자로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와 보상 체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 개발과 관련하여 유연한 예산 체제를 갖춤으로써 적시에 개발 활동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시도교육청 별로 중복 연구개발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조율하는 장치도 마련되어야 한다. 좋은 에듀테크가 개발된다면 창업의 단계에도 공식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제도가 있어도 좋겠다.  


전통적인 교사, 공무원의 역할을 고려했을 때 '기획자 또는 개발자로서의 교사'가 불편할 수 있다. 특히 '가르치는 일에 전념해야 할 교사'라고 한정할 경우 교사는 기존의 경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고 혁신을 만들어가는 주체의 입장에서는 여러 포지션에서 다각도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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