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라사, 엘리에 네, 미야민, 베배, 하냐냐, 앗나 , 빈누이, 스나아 여덟 명의 아이돌 ‘비수’의 멤버들은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외부의 빛은 차단된 채, 그들 주변은 낮은 그림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방의 공기는 무겁고, 긴장감이 감돌았다.
공의의 천사들이여
이제 눈을 떠라
어둠의 그늘아래 숨 죽이고 있는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싸워라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음악처럼 울려 퍼지는 장엄한 목소리 앞에 소년들의 몸에 촉수처럼 붙어있던 케이블들이 형광색처럼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케이블의 끝은 소년들의 혈관 끝에 연결되어 있었는데 그 관을 통하여 수많은 밈(MEME) 정보가 주사되었다. 밈들은 나노보다 더 작은 초정밀미립자로 엄청난 정보들을 가득 담고 있었는데 이번에 주사되는 밈은 소년들이 도벳수면연구소에서 내려온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전투력을 순식간에 진화시켜 줄 유전자 정보였다.
수억 년의 세월을 필요하고 인간이 몸에서는 도저히 진화되기 불가능한 전투능력들이 몸에 주입되자 다들 약간의 반사작용으로 근육경련들이 일어났다. 약 30초 정도의 격렬한 경련뒤에 깊은 심호흡이 이어지면서 소년들은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소년들의 몸을 고정시켰던 스트랩이 유슉 공기 압축 빠지는 소리를 내면서 풀렸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아기 같은 순진한 표정으로 기지개를 켜면서 모두 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벽면에 진열된 화려한 문양의 검들은 소년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듯 화려한 매탈릭의 플래티넘 빛을 발하였다.
모든 소년들은 무거운 침묵아래서 빛의 유혹에 노련한 솜씨로 각자의 검을 하나씩 빼어 들고는 살기가 넘실대는 눈빛을 반짝이며 각자의 무기를 점검하였다.
철컥
철컥
무기를 하나씩 들고 방탄복까지 착용하자 8명의 소년들은 다시 원통형의 수면실로 일렬로 차례대로 걸어 들어갔다.
원래 주식무림계는 수면계에서 존재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평온했던 수면계에서 대표적인 경제적 활동이자 풍류게임으로 주식 무공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 무공은 원래 온라인 게임인 무림계에서 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한 강력한 아이템이었으나, 수면계가 점점 확장되면서 큰 자본이 오고 가게 되면서 실질적인 수면계의 경제적 부의 상징이 되었고 그러다 보니 그 힘을 다루는 자에게 늘 큰 위험이 따르게 되었다.
주식의 세계에 발을 들은 자들은 각자의 무공을 연마하며 시장의 흐름을 읽고 돈의 움직임을 예측해야 했다.
온 수면계는 온통 주식무림계로 확장되어 갔고 주식 무림 천하는 짧은 시간에 수많은 주식 고수들과 트레이더 영웅들로 활 거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고수 투자자가 시장에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눈빛은 날카롭고, 손끝에서 발산되는 기운은 마치 전설의 검처럼 예리했다.
그래서 이름도 온 주식무림계의 구원자라고 ‘구원검’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구원검의 눈빛은 날카롭고, 손끝에서 발산되는 기운은 마치 전설의 검처럼 예리했다. 매일 아침 주식의 양봉과 음봉의 차트의 흐름을 치밀하게 읽고, 세상소식의 변화의 흐름을 감지하여 시장에서 황소의 큰 기운을 기가 막히게 감지해 내고 많은 사람들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이를 통해 구원검은 막대한 부를 이루었고 그 부의 힘으로 자신의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반면, ‘기술적 분석가’라는 예칭을 가지고 있는 ‘천문’이라는 고수도 나타났는데 그는 차트의 비밀을 파헤치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그는 수많은 과거의 주식 전투 기록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투자자의 움직임을 예측했다. 그의 기술은 마치 무공의 연마처럼 정교하고 정확했다. 그는 순간의 흐름을 포학하여 시장의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리는 비법을 터득했다.
주식 무림계는 결국 이 구원검파와 천문파, 이 두 정파의 각축장이 되었다.
두 거대파의 세계는 결코 평온하지 않았다.
‘단기 투자자’라 불리는 자들이 나타나며 급격한 단기 전투가 벌어졌다. 작은 변동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빠르게 승부를 내는 그들은 마치 바람처럼 빠르고, 때때로 그들이 평민 투자자들에게 남긴 상처는 깊었다.
그들은 잃는 자에게는 무자비했으며 승리한 자에게는 찬란한 보상을 안겼다. 이 모든 싸움에서 ‘구원검’은 느리지만 확고한 길을 걸었다.
그는 시장의 깊이를 이해하고 기업의 본질을 분석하여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자산을 키워나갔다. 그의 신념은 “진정한 가치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단기적인 이익에 휘둘리지 않고 오랜 안목으로 무림주식시장에 도전했다.
그러나 어느 날 전설적인 ‘무림시장 폭락’이라는 암운이 드리워졌다. 그 사건은 모든 주식 무림 투자자들에게 큰 혼란을 가져왔고, 각자의 무공이 시험대에 올랐다.
주식 전투는 치열했고 각자의 전략이 충돌하며 거대한 파장이 일어났다. 그 속에서 어떤 자는 자신의 무공을 잃었고, 어떤 자는 주식 무림계에서 그 모습을 완전히 감추었다.
결국 이 주식 무협의 세계는 단순한 승패가 아닌 각자의 투자 철학과 무공을 통해 주식 무림계속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그들은 주식이라는 무공을 통해 서로의 의지를 시험하고, 자신을 더욱 단련시키는 법을 배우며 끊임없이 성장해 나갔다.
구원검파와 천문 파는 이런 시류에 동의하고 서로 잠정적 평화를 유지하기로 협약했다.
그리고 이 평화로운 주식거래를 관리하고 투자자들의 자산을 보호할 사법기관이 창단되었는데 태양의 아버지 태수의 무림정파 ‘주신파’가 바로 그곳이었다.
수면계 동쪽에 ‘도벳 거래소’라 불리는 신비로운 장소가 있었다. 이곳은 무수한 투자자들과 트레이더들이 모여 서로의 운명을 가르는 각축장으로 ‘도벳 수면 연구소’ 산하 기관으로 알려져 있었다.
주식무사와 트레이더들은 각자의 신비한 무공을 담은 비기를 다루어 세상의 부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 음성적으로 온갖 무공들의 혼재되어 돌아가고 있었다.
그곳에는 주식의 정령 ‘차트’라는 이름을 가진 존재가 거래소 중앙의 제단에 있었는데 차트는 매일 아침 동틀 무렵, 거래소의 중심에서 주식 관련 예언을 외치곤 했다.
-오늘은 상승의 기운이 도는데, 조심하라! 하락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이곳의 고수들은 각자의 비법을 전수하며 매일매일 싸움을 이어갂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봉차장’이라 불리는 무사였다.
그의 손끝에서 다루어지는 주식은 언제나 상승세를 타고, 투자자들은 그를 따르기 위해 목숨을 걸고 거래에 나섰다. 그러던 어느 날 시장의 평화를 깨뜨리는 자가 나타났다.
‘공매도’라 불리는 여자무사였는데 어둠의 힘을 지신 무사로 여러 주식 악귀들과 함께 그 모습을 드러냈다. 공매도는 시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자신만 이익을 누리려는 욕심으로 가득 찬 탐욕의 마공으로 붙들린 자였다.
그는 사람들이 차트 분석을 왜곡하도록 유도했으며 투자자들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 환각상태를 일으키는 마법이 깃든 중독성 강한 마약 ‘스크럼핑’을 사용하도록 꼬드겼다.
天之生此民也 使先知覺後知 使先覺覺後覺也
하늘이 이 사람(선각자)을 세상에 나게 한 것은 ‘먼저 안[先知]’ 이로 하여금 ‘나중에 안[後知] 이’를 일깨우기 위함이며, ‘먼저 깨달은 [先覺]’ 이로 하여금 ‘나중에 깨달은 [後覺] 이’를 일깨우게 하기 위함이다.
태양이 주신파 연락병으로부터 소식을 받고 도착한 수면계 비산동에 있는 허름한 창고 벽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태양은 글을 읽고 피식 쓴웃음을 지었다. 반복적으로 읽으니 묘하게 마약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에 와닿았다.
요즘 주식 무림계에서는 주식악귀들이 투자자의 정상적인 투자무공을 흐리게 만드는 신종 마약이 난립하고 있었다. 태양은 아버지 태수처럼 주식 무림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주가 조작도 감시수사하는 조사관이기도 하였다.
투자자들의 무공투자를 받아 그 힘으로 황소의 상승기운을 일으켜 주식전투에서 이겨 그 상금으로 주어지게 정상적인 주식 무림계의 관행이건만 어디엔가 스며든 주식 악귀들과 그 마공을 받아 무술을 쓰는 모든 주식무사와 트레이더들이 투자자들을 마술이나 환각을 일으키는 마약을 이용해 주식 무림계를 한 치 앞에 내다볼 수 없는 혼란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태양은 이런 정국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태양은 창고문을 열고 어두운 창고 안을 걸어 들어갔다.
바닥에는 시체들이 너절하게 바닥에 어지럽게 구겨져 널려 있었다. 역겨운 냄새가 들끓는 한가운데로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태양은 한 시체에게 다가갔다. 그 시체의 얼굴은 무슨 마공의 공격을 받았는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그러져 있었다. 태양은 자신의 옷소매에 달린 컴퓨터를 켜서 시체의 손을 스캔시켰다.
‘어디 보자? 현진혁? 나이가 21세. 젊은이 치고 포트폴리오가 화려한데…’
태양은 계속 그의 기록을 훑다가 어느 한 줄에 눈길을 멈추었다.
‘아버지가 브니누? 브니누라니 어느 정파 소속인가?’
요즘 수면계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신종 마약 스크럼핑은 급속도로 젊은 무사들과 투자자들 사이에 퍼져 나가고 있었다. 천국의 금단의 열매를 훔쳐 먹는다는 스크럼프 SCRUMP이란 단어에서 유래한 스크럼핑은 최면과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약으로 수면계 모든 사람들을 극도의 쾌락상태로 들어가게 해주는 약이었다.
수면계의 인간들은 모두 인공지능 AI의 딥러닝 학습과 추론에 의해 탄생된 존재들이었다. A666 ( 하나의 A100은 1초에 321조 번의 더하기 , 빼기를 할 수 있다.) 10만대로 창조된 인공지능 AI가 만들어낸 수면계의 인간들은 특이하게도 인간계의 모든 인간과 똑같은 인지능력과 오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똑같이 수면계의 인간들도 마약을 이용했고 환각상태를 즐겼다. 주로 주가 조작과 불법 공도매 무공을 수사했던 태양은 스크러밍이 퍼지고 난 뒤 하도 많은 시체들을 치워대서 스크럼핑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짜증이 났다. 게다가 한 발 늦게 여기 오는 바람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시체들만 염하게 되어버렸다.
‘브리누라는 이름을 검색해 보니 브니누를 아버지로 둔 사람들이 많네. 그렇다면.. 브니누는 아마 인간계의 사람이 아닐까?’
수면계, 이 신비로운 세계의 깊은 장막 뒤에는 인간계에 대한 어떤 지식도 존재하지 않았다.
수면계의 사람들은 꿈과 환상의 흐름 속에서 살아가며, 현실을 알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수면계의 하늘은 별빛으로 수놓아져 있었고, 그 별들은 마치 속삭임처럼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그 속삭임은 인간의 언어를 모방하지 않은, 오직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음률이었다. 수면계의 주민들은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그들의 삶은 환상과 현실 ( 사실 어느 것이 환상이고 현실인지 구분이 없지만 )이 뒤섞인 끝없는 꿈의 연속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수면계의 주민들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는 왜 이렇게 행복(!)할까?’
그들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인간계에 대한 호기심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결코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호기심은 마치 흐르는 물처럼 그들의 의식 속에서 잔잔히 만 퍼져 나갔다.
호기심의 어둠이 짙어질수록 수면계의 사람들은 더욱더 깊은 꿈의 바다로 잠수했다.
그들은 인간계의 소음과 혼란을 알지 못했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기쁨과 슬픔은 그들에게는 먼 이야기였다.
수면계에서의 삶은 오직 균형과 조화로 가득 차 있었고 그들은 그 속에서 완벽한 존재로서의 자신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