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게임 드림랜드에서 엘리사가 반해버린 하늘은 대구국에서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앞산 할람 육아센터의 옥상에 홀로 서 있었다. 하늘은 올해 21세가 되는 소녀로 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바람에 흩날리며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였다. 깊은 갈색 눈동자 속에는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순수한 열정이 가득하지만 그 눈동자 깊은 곳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는 듯 묘한 빛이 감돌았다. 대구국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기를 낳지도 않고, 생겨도 키우지 않는 세대 속에 있어 정부에서 임신부터 육아, 교육을 모두 관리하였다. 하늘은 지금 그녀가 일하는 할람 육아 센터에서 자라난 아이였다. 하늘은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지만 만약 부모가 있었다면 그녀를 세상에 내놓기 전 한밤중에 별 빛 아래에서 기도를 올 렸을 것이 분명할 것이다. 그 지극 정성인 기도로 하늘의 운명을 쥐고 그녀는 단순한 소녀가 아니라 오래전 잊힌 전설 속의 ‘하늘의 아이’로 운명 지어져 수면계의 정수를 지키고 조화롭게 만들 사명이 내려졌을 것이다. 하늘은 자유롭고 당당한 영혼으로 수면계 들판에 서면 그녀는 풀꽃의 속삭임과 나무 그늘 아래에서 꿈꾸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녀의 발걸음은 가벼워서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하며, 그녀가 지나간 길에는 늘 꽃잎이 떨어졌다. 그러나 가끔씩 그녀는 자신이 안고 있는 비밀과 그로 인해 느끼는 무게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하늘은 남달리 건강한 체력(정부에서 우성 DNA 판별로 아이를 태어나게 하기에 당연한 결과이겠지만)과 꾸밈이 없는 웃음이 인상적인 아이였다. 성격도 시원시원해 그녀에게는 언제나 온라인게임에서나 수면계, 인간계에 속한 모든 사람들과 교감을 즐기며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늘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육아센터 원장 묘 희정의 말에 의하면 어느 따뜻한 봄날, 묘 원장이 시장을 다녀왔다 돌아와 보니 센터 현관 입구 앞에 누군가 놓고 간 작고 낯선 바구니 속에서 들어 있는 하늘을 처음 발견 하게 되었다고 말해 주었다. 간난 아기치 고는 자는 모습이 무척 평안해 보였고, 잠에서 깨어도 보채지도 않은 아주 특이한 아기였다고 묘원장은 회상했다. 하늘은 낯도 가리지 않아 서로 낯을 익히는 중간 과정도 필요 없이 쉽게 한 식구가 되었다. 겉모습도 똑똑하게 보이는 하늘은 초등학교에서부터 학교성적도 좋았고 운동도 잘해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 많은 소녀로 자라났다. 사춘기가 되어서도 하늘은 한치의 흩트림 없이 밝고 건강하게 잘 자랐다. 하늘이 고등학생이 되던 때 이제는 우수한 유전자 형질 만이 대접받는 DNA 선별주의가 팽배한 한국에서 육아나 학교 같은 공익사업은 점점 그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저조한 출산율과 산모의 뱃속에서 일찌감치 태아의 유전자를 파악하고 낙태를 해버려 아이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고 육아사업과 자녀교육을 후원하는 스폰서를 구하는 일도 하늘의 별 따기가 되어 버렸다. 당시 육아센터를 홀로 운영하는 묘 원장은 고아원 운영비가 날이 갈수록 모자라 심한 경제적 압박에 시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이의 메디컬 차트에 보니까 항히스타민제 알레르기라는 특수한 체질이던데 사실인가?”
묘원장은 육아센터의 아이들을 지도하는 선생들의 관리 책임으로 있는 초이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네. 왜요?”
초이는 아이들이 낮잠 자는 시간이라 아이들을 재우고 혼자 최근 즐기던 온라인 게임을 신나게 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묘원장의 난데없는 질문이 못마땅하다는 말투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이들을 재우는데 수면유도제를 먹이지 않아?”
“네. 먹이죠.”
“그 수면유도제에는 항히스타민성분이 들어 있을 텐데 항히스타민알레르기가 있는 하늘이는 도대체 어떻게 재운단 말이지?”
묘원장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다그쳤다.
“하늘이는 약 안 먹여도 잠 잘 단다고요.”
“그래?”
묘원장은 다른 아이들과 수면실에서 잠들어 있는 하늘이를 잠시 내려다보았다.
수면실은 은은한 클래식이 흐르고 있었고 육아센터 아이들이 쾌적한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벽지 색깔이며 침상이 아늑하게 설비되어 있었다. 하늘이가 있는 육아센터의 현재 스폰서는 미국에 위치한 유대인계 연구회사인 도벳수면연구소였다. 무병장수라는 인류의 꿈을 추구하던 수많은 의료회사들은 대부분 사람이 수면 중에 자연적 치유와 모든 회복이 일어나는 점에 착안을 하여 ‘인간의 잠’에 대한 연구에 다들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중 도벳수면연구소는 수면분야의 독보적인 연구업적과 업계의 선구자적인 역할로 그 공을 인정받아 세계에서 가장 큰 수면연구소로 각광받는 모든 기업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기업형 연구소였다. 사실, 도벳수면연구소의 높은 연구 성과는 직접적인 인체실험에 대한 연구 자료 데이터가 세상의 그 어떤 연구소보다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방대했기 때문이었다. 워낙 막강한 재력과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인력자원을 보유한 초 거대 회사라 보안이 튼튼하여 그들이 전 세계에 퍼진 육아센터의 아이들을 상대로 수면연구를 하는 사실도 철저한 비밀로 묵인되었다.
“다른 아이들과 같이 잠들어서 깰 때도 같이 일어나?”
“물론이죠. 아주 어릴 때부터 그렇게 습관이 돼서 그런지 기막히게 똑같이 잠들고 똑같이 일어나요.”
초이는 사실 하늘이가 그렇게 매일 잠을 드는지 일일이 확인은 하지 않았지만 온라인 게임을 어서 하고 싶은 굴뚝같은 마음에 그냥 대강 대답했다.
“아참. 진혁이는 어디 있지.”
“귀찮게 오늘 왜 그러세요? 6B에 누워있잖아요.”
초이는 버럭 화를 내면서 대답했다.
“6B? 진혁이 헬멧에 지금 도벳에서 다운로드된 정보를 입력해.”
“지금요?”
“진혁이에게 아주 특수한 실험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아. 보안등급이 장난이 아니야. 다음 주에는 미국에서 직접 실험결과를 보려고 연구진이 단체로 우리 고아원을 방문할 거라고 메일이 왔다고.”
초이는 사실 전업으로 육아센터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게임디자인공부를 하기 위한 학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하고 있었다. 초이는 뭐든지 골치 아픈 것은 딱 질색을 하였는데 최근 미국의 도벳 수면 연구소에서 진혁이에 관해 아주 특별한 실험을 시작하면서 성가신일이 많아져 쵸이를 여간 짜증 나게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초이는 원장이 준 정보를 입력하면서 이제는 특별수당을 요청해야 한다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육아센터의 수면실은 도벳수면연구소의 도면설계와 지시에 따라 지어진 최첨단 기계가 설치되었고 , 은빛광채가 나는 벽면에 대리석 같은 문양이 새겨진 바닥으로 된 곳으로 육아센터의 아이들 사이에는 ‘냉장고’로 불리는 곳이었다. 차가운 색깔 때문에 그렇게 불리지만 실제 내부온도는 수면을 취하기에 아주 쾌적하도록(섭씨 16 ~ 18도) 자동조절장치로 조절되고 있었다. 천정위 환기구를 통해서는 은은한 라벤더향이 나오고 있었고, 벽면에는 그냥 누워 있어도 눈이 감기도록 광도를 자동적으로 맞춰주는 센서가 달린 조명이 설치되어 있었다. 침대의 매트리스는 육아센터 아이들의 척추형태와 잠자는 자세를 고려해서 가장 편한 잠자리를 자도록 만들어주는 메모리폼이었다.
하늘은 사실 잠들지 않고 묘원장과 초이의 대화를 몰래 엿듣고 있었다.
하늘은 최근 신경이 무척 날카로워져 있었다.
도벳수면연구소가 경제적으로 힘든 육아센터의 스폰서를 하기로 계약하고부터는 묘 원장이 화내는 일은 현격하게 줄어들어 고아원 분위기가 예전보다 더 편안해졌지만 이상하게 낮잠을 강요하고 잠자리 때마다 알 수 없는 기계장치를 부착해야 하는 점 때문이었다.
하늘은 묘원장에게 잠잘 때 왜 이런 여러 기계들을 부착해야 하는지 물어보았을 때 묘원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크면 다 알게 된다고만 대답해 주었다.
정규적인 건강검진으로 항히스타민제에 대해 알레르기체질이라는 것을 알고부터 하늘은 본능적으로 약을 주입하기 전에 먼저 잠자는 척을 해왔다. 자신을 거두고 길러준 묘원장을 속이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혹시나 수면 유도제 이외에 더 ‘강력한 다른 어떤 방법’으로 자신을 재울까 봐 겁이 나서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했다.
하늘은 자신이 어렸을 때 버려졌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모든 행동을 편집증일정도로 깊게 생각하고 신중하게 행동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분별력을 발달되어 소소한 일도 하나하나 따지고 넘어갈 정도 예민했는데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하늘은 오늘따라 잠이 더 오질 않았다.
“어어. 이게 왜 이래?”
“뭐야”
초이의 비명에 수면실을 나가려던 묘원장은 초이 곁으로 다시 쏜살 같이 다가왔다.
“뭐냐고?”
“진혁이의 뇌파측정기(BIT)가 …”
말이 체 끝나지 않은 초이를 밀치고 묘원장은 뇌파측정기를 들여다보았다.
“아.. 안돼.”
묘원장은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체를 쥐고는 괴로운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가 하도 커서 하늘도 그만 벌떡 일어날 정도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죠?”
묘원장은 머리를 싸매고 아무 대답 없이 괴로운 표정으로 서있기만 할 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하늘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을 하고 싶어 죽을 지경이 되었다.
“워… 원장님..”
초이는 하늘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목소리로 벌벌 떨면서 묘원장을 불렀다. 하늘은 자신이 덮고 입는 이불을 꽉 쥐었다. 그러면서 옆볼에 근육이 드러날 정도로 어금니를 물었지만 흥분되는 자신의 호흡을 가다듬기 어려웠다. 그래도 하늘은 숨을 죽이고 묘원장의 목소리에 청각은 물론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원장님. 진혁이를 보세요.. 저건..”
“쉬잇.. 그만. 다른 아이들이 깨겠어.”
잠시 정적이 흐르고 하늘의 귀에는 기계버튼과 자판기가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만 울리기 시작했다.
“원장님. 원장님. 어쩌죠. 어쩌죠”
초이는 이제 거의 우는 목소리로 흐느꼈다.
“조용해!”
하늘은 직접 보지 않아도 묘원장이 초이의 멱살을 단단히 잡는 장면이 머릿속에 생생히 떠올랐다.
“아이들이 다 깨어나면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그래?”
“흑흑흑”
“입 닥치지 않으면 영원히 말 못 하게 만들어 주지!”
하늘은 순간 숨이 떡 멎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묘원장의 입에서 저런 위협적인 협박이 나오다니 뭔가 분위기가 단단히 잘못 돌아가는 것 같았다.
“미국으로 어서 화상전화 연결 해봐!”
조금 전보다 침착한 목소리로 묘원장이 말했다. 초이는 애써 진정하려는 듯 손으로 가슴을 도닥거리고는 전화연결을 하기 위해 자판을 열심히 두들기는 것 같았다.
뚜 뚜…
컴퓨터에 달리 작은 스피커이지만 수면실이 워낙 조용해서인지 전화신호음이 방안 전체에 울려 퍼졌다.
탈칵
하늘은 신호가 떨어지는 순간에 맞춰 침을 크게 꿀꺽 삼켰다.
“YES?”
스피커 안에서 바리톤정도의 굵은 남자목소리가 나왔다.
“SIR. WE HAVE PROBLEM.”
“WHAT?”
그러고 나서 묘원장은 열심히 영어로 설명을 하는데 하늘은 영어인 데다가 소리가 갑자기 작아져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진혁이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하늘은 진혁이와 약 3년 전에 육아센터에서 만났다. 진혁은 몸이 마른 보기에도 약하게 생긴 아이였다. 눈이 유난히 슬퍼 보여 인상에 유난히 남게 되는 얼굴이었는데 그 점이 다른 고아원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어떻게 고아원에 들어오게 된 것인지 워낙 내성적이라 말이 없어 알 수가 없었지만 번번이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을 때마다 하늘은 언제나 진혁의 편에 서서 도와주었다.
하늘이 보호해주지 않았더라면, 약육강식과 우성의 적자생존의 다윈주의만이 지배하는 인간계 속에서 진혁은 벌써 국가에서 실시하는 ‘폐기 처분’ 대상이 되었을 것이었다.
폐기처분대상이 되면 모든 신체의 장기들은 척출되어 재활용되는데, 그 장기들은 브라만급, 크샤트리아급, 바이샤급, 하라 잔급으로 구분되었다. 대구국은 정책적으로 브라만급의 장기들만 시장에 내놓도록 제재조치를 취하지만 가격과 수요의 불균형 때문에 음성적으로 크샤트리아, 바이샤급도 시장에 돌아다녔다.
하늘은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묘원장과 초이의 심상찮은 분위기를 통해 진혁이 죽었을 것이라는 본능적 직감이 느껴졌다. 최근 특수실험 후 진혁은 안 그래도 야윈 몸이 더 야위여졌었고 음식도 전혀 먹지를 못하는 것 같아 보였었다.
“… 뭐라고 그러시죠? 오신데요?”
초이는 목소릴 떨면서 통화를 끝마친 묘원장에게 물었다.
“당연하지. 도벳에서 몇 달 동안 심혈을 기울인 프로젝트인데. 연구책임자부터 다 올 거야.”
묘원장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대뜸 초이에게 외쳤다.
“끙. 골치 아프게 되었어. 할 수 없지 … 어서 손님 맞을 준비나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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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오는 전화를 받는 동안 도벳수면연구소의 최고책임자 브니누는 잠이 다 달아나는 통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샤워실로 향했다. 샤워실로 들어가 물을 틀어 머리카락을 적시자 비몽사몽 했던 머릿속 세포들이 한꺼번에 확 깨기 시작했다. 비상회의소집을 열겠다고 수석 비서에게 연락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브니누는 수면연구소장 일을 맡은 이래로 언제 평안하게 수면을 취한 적이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잠도 제대로 못 자는 자신이 과연 세계최첨단의 수면연구를 할 자격이나 있는지 솔직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브니누 소장은 수면에 관한 연구를 괜히 시작하지나 않았냐는 후회와 회의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자신은 어릴 적부터 순수한 과학자로서의 모습만을 꿈꿔왔고 노후에도 평안한 연구시설에서 죽는 날까지 과학에 대한 열정만 불태우고 싶은 것이 소원이었다.
궁극적으로 ‘테크노에덴동산’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멜라토닌걸들과 영원토록 자유롭게 거기는 것을 늘 꿈꿔 왔기에 브니누소장은 그 꿈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었고 여태까지 잠을 줄여가면서 도전해 왔었다.
브니누 소장은 사실 진정한 다윈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눈에 보이는 이 가시적인 세상에 초인에 가까운 진화된 신인류들로만 가득 채우려는 근본적 다윈주의자가 아니라, 이 세상이 되었든, 사후 세계가 되었든, 꿈속이 되었든 공간에 상관없이 최 궁극으로 진화된 모습으로 영원히 지내고 싶은 형이상학적인 다윈주의자였다.
인체가 단지 세포 덩어리라고 생각하기에 인간의 정신세계는 너무나 광활하고 넓고 신비하다고 브니누 소장은 확신하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종교가 사라진 지 몇십 년이 흘렀고 다들 제아무리 이론이 튼튼한 다윈주의로 무장하고 있어도 수많은 과학자들과 석학들의 사상은 최근 많이 흔들려 보였다. 자신처럼 흔들리는 이유는 눈에 보이는 세계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자각에서 오는 것이었다.
브니누의 ‘수면연구’는 사실 어릴 적 몽정에서 모티브를 얻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꿈속에서 만난 강렬한 이성과는 접촉이 실제적인 사정으로 이어지는 몽정을 통해 브니누는 ‘수면 DNA지도’를 발견해 내었고, 논문으로 발표해 정신과학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인류가 수면장애를 완전히 극복하고 잠을 조절하여 몸을 극상의 컨디션으로 올려주고 질병에서 자유롭게 되는데 거대한 첫발을 내디딜 수 있는데 큰 공로를 세운 브니누 소장은 20대에 명예와 재력을 다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다 부러워하는 브니누 소장의 속사정은 그렇지가 않았다.
사실 브니누소장은 꿈속의 여인들(속칭 멜라토닌걸)과 깊은 사랑에 빠진 수면중독증이었다.
현실에 깨어 있는 때보다 꿈속에서 신처럼 군림하는 때가 더 달콤하고 좋았고 시간만 나면 수면 속으로 들어갔다.
어떨 때는 일주일 내내 잠을 잘 때도 있었는데 가끔씩 영원히 꿈속에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니 그 많던 돈이 마치 바람처럼 어디론가 다 사라져 버리고 파산지경으로 길바닥에 내몰릴 지경까지 되었다. 일은 하지 않고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잠에 빠져 지내니 당연한 결과였다.
정신을 차린 브니누소장은 그때부터 자신의 ‘수면 DNA지도’를 일반에게 상용화할 기업을 찾다가 우연히 학교동창인 칼 스킨도 박사를 만나게 되었다. 칼 스킨도는 근본적인 다윈주의자로 엄청난 학문적 프라이드와 바늘로 찔러도 피도 한 방울 나지 않을 냉혈한 지성으로 똘똘 뭉친 데다가 사업수완도 좋은 명석한 두뇌의 인물이었다.
어두운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등대를 발견한 듯 브니누소장은 칼 스킨도박사에게 거의 매달리다시피 하여 기업형 연구소인 ‘도벳수면연구소’를 열게 된 것이었다.
브니누소장은 샤워실에서 급하게 나와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면서 자신의 수석 비서장인 서니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통화단말기 쪽으로 걸어갔다.
브니누소장의 긴급회의소집호출을 전해 들은 칼 스킨도박사는 요즘 재미를 들인 시뮬레이션 컴퓨터 게임 ‘응급실’을 하고 있었다.
응급실게임은 실제로 응급실 담당의사가 되어 게임 속의 병원응급실로 실려 들어오는 환자들을 진단하여 직접 수술하는 게임으로 실제와 거의 흡사한 그래픽과 상황 연출로 최근 최고의 인기게임으로 각광받고 있었다.
스킨도박사가 박사학위를 받은 분야는 경영이었는데 주로 과학연구소를 통해 개발된 제품들을 대량생산해 내는 공장을 경영하는 일에 천재적 수완을 발휘하는 업계 최고실력자였다.
이번 자신의 계열회사인 컴퓨터 게임회사에서 출시한 ‘응급실’은 일종의 착시현상을 이용하여 환상적인 3차원적 그래픽을 재현하여 공전의 메가히트를 기록한 게임이었다.
자신이 직접 해봐도 정말 재미있는 게임이라 휴식시간이면 혼자 게임에 푹 빠져 있었다. 브니누소장의 비서 서니가 방해만 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최고의 외과의사로 업그레이드되는 건데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면서 외출옷을 대강 차려입고 스킨도 박사는 도벳수면연구소 회의실로 향했다.
한국에서 비밀리에 진행 중인 실험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하는 중요한 실험 중의 하나로 연구소 전체가 그 실험에 매달려 있었다.
서니의 목소리에서 뭔가 잘못되어도 엄청 잘 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기에 급한 발걸음으로 회의실로 향했다.
“엣추”
회의장 문을 열자마자 티셔츠와 반바지의 잠옷차림으로 재채기를 하고 있는 브니누 소장을 보게 되었다.
스킨도박사는 한눈에 브니누소장이 잠자리에서 금방 일어난 것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스킨도박사는 브니누소장이 심각한 수면중독증 환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직은 ‘수면 DNA지도’를 완벽하게 알지 못했기에 그의 중독을 눈감고 넘어가고만 있었다.
“왜 그래 회의실 온도를 따뜻하게 하지 않고.”
스킨도박사는 벽면에 붙은 계기판으로 다가가서 차가운 회의실 온도를 적정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어휴 추워. 앳추.”
스킨도박사는 또다시 재채기를 하는 브니누소장을 바라보면서 혹시 자기도 옮는 것이 아닌가 순간적으로 미간을 찌푸렸지만 표정만은 걱정스럽게 지었다.
“뭐 따뜻한 거 가져다줄까?”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스킨도 박사는 그렇게 물었다.
“아니 그것보다 지금 당장 한국으로 요원들을 보내 고아원을 폐쇄시켜야 할 것 같아.”
“그 정도야?”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이번주에 우리가 기대했던 수면실험을 실시한 남자애가 죽었어.”
“뭐 죽었다고? 심장마비인가?”
“아니야 얼굴이 날아가버렸다는데?”
“뭐? 어떻게 그런 일이..”
스킨도박사는 회의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수면 중에 있던 사람이 외상으로 사망할 정도면 이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었다.
“증거화면도 보내줬는데 보여줄까?”
“뭐 그럴 필요는 없는데..”
“내가 새벽에 회의실로 부른 이유는 자네에게 출동 허가를 요원들에게 내려주었으면 해서야.”
브니누소장은 수건으로 입을 닦으면 스킨도박사를 바라보았다.
“연구소를 폐쇄하면서 모든 사람들도 같이 묻으라는 거지.”
“그렇다네. 이제 마음이 잘 통하는군.”
너 같은 중독자의 마음을 읽는 것은 식은 죽먹기지.
“요원들에게 지시해 주게 메인데이터 정보는 반드시 잊지 말고 가져오고.”
“나머지는 다 없애고.”
스킨도박사와 브니누소장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면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스킨도박사는 여태까지 투자한것만큼 손해는 보지 말아야 할 텐데라고 생각을 했고 브니누소장은 사망한 아이가 본 수면 속의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계였을까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