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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구원검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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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주의자 DARWINIST

(SF 무협 판타지)



태양은 창고 안 시신들의 신원조사를 마친 후 주신파 본부가 있는 장소로 날아갔다. 주신파의 본부는 주식무공학교와 같이 깊고 울창한 산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신파는 주식 무림계의 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구원검파와 천문파가 위촉하여 세운 주식 무예 공파로 정파에 속하는 기관인데 그에 걸맞게 고요한 자연과 신비로운 기운이 어우러진 장소에 위치해 있었다. 산의 정수리에 위치한 주신파는 구름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과 바람에 실려 오는 솔향이 어우러져, 마치 세상과 단절된 느낌을 주었다. 주신파의 입구는 거대한 돌문으로, 그 위에는 마치 AI가 그래픽 위에서 계산좌표를 보여주는 듯 복잡한 문양과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 문양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주식무예의 교훈과 철학을 담고 있어 태양이 주식무공학교를 다닐 때 돌문을 통과할 때마다 스승님들 앞에서 반드시 그 의미를 외워 말해야 했다.


태양아 견마지심 犬馬之心을 가져라.

주식무공은 무인 본인이 원하는 목표가 먼저 무엇인지 철저하게 파악하여 투자무술을 익혀야 한다.

내재된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미래에 어느 단계까지 등극할 수 있을지

그 무공이 천하를 위해서 유망한 무공인지

개와 말과 같이 한결같이 충성된 마음으로 절차탁마切磋琢磨하여야 한다.


태양의 아버지 태수는 늘 이렇게 말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넓은 마당이 펼쳐졌다. 그 중앙에는 작은 호수가 있고 그 주위로 고목들이 우뚝 서 있었다. 이 고목은 오랜 세월을 견뎌온 나무로 견마지심의 주식 무공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마당을 둘러싼 건물들은 전통적인 한국의 한옥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각 건물을 무공의 종류에 따라 특별한 용도도 사용되었다. 도장, 연습실 그리고 명상실이 어우러져 있으며 사방에서 들려오는 주식무공 수련생들의 기합소리와 함께 바람에 실려오는 물소리가 조화를 이루었다. 주신파 본부를 둘러싸는 뒷산에는 신비로운 폭포도 있는데 그 물줄기가 맑고 투명하여 수련생들이 찾아와 마음을 가다듬었다. 주신파의 본부는 한마디로 주식무공의 정수를 깨닫기 위한 명상과 수련의 성역으로 고요한 물소리와 함께 자연의 기운을 느끼는 특별한 안식의 경험도 모두에게 제공하였다. 태수는 나름 주신파는 단순한 무예 공파가 아니라 주식무공을 통해 수면계의 진리를 깨닫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법을 배우는 성전이라고 나름 자부심을 가졌다. 태양은 태수가 주로 명상을 하는 집무실로 향했다.  


푸른 하늘을 잊을 정도로

짙게 드린 먹구름이

마음을 검게 물들이네

오늘 죽음도 두렵지 않아

그대 사라진 절망도

그대 없는 고통도

그대 던져준 허무조차

검게 물들일 오늘은

티디어스 데이

무공의 연마도

전장의 소리도

모두 잊힌 채

무료한 시간 속에 잠드네

구름 속에 감춰진

천상의 빛을 찾아

검은 마음의 힘을 모아

다시 일어설 그날을 꿈꾸리

오늘은 무료한 날

무협의 한 페이지

어둠 속에서 태어나는

새로운 전설의 시작

죽음을 두렵지 않게 하네

오늘은

티디어스 데이


태양은 갑작스럽게 노래가 흘러 고개를 돌렸다.


노래가 터져 나온 것은 집무실 바로 앞 경호국 중앙에 놓인 구식 CD 음향기기에서였다.   


‘이렇게 노래를 크게 들으면 스피커가 남아나질 못하겠군’


태양은 허둥지둥 손에 닿는 데로 음향기기의 버튼을 이것저것 눌렀는데 장소가 연회장에서 장례식장으로 옮겨진 듯 갑자기 음악이 뚝 끊겼다.


태양이 CD를 끄고 고개를 들자 바로 앞에 태수의 경호부장 신형사가 미안한 듯 얼굴을 붉히면서 뒤통수를 긁었다. 신형사의 그 모습이 마치 곰 같았다.   


 “고막 터지는 줄 알았다. 너 이놈 형사야. 아버지도 안에 계시는데 소리가 너무 크지 않느냐. 수련 중에는 주식 정세와 투자할 무공 정보를 위해 주식 관련 라디오만 허락하는데 왜 음악을 듣고 있느냐?”


태양이 꾸짖자 신형사의 얼굴이 붉어졌다.


“잠깐..”


태양은 다시 음악을 틀고 신형사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어라. 그 노래는…”


태양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이 목소리는 여기 수련생이다가 실종사고로 수사를 했던 아이돌 그룹 ‘비수’의 곡’ 티디어스데이’잖아.”


“완전 대박 주였죠.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곡 제목이 … 티디어스 데이…. 지루한 날이죠 그 곡 듣고 수련하던 모든 훈련생들이 집단 퇴거 소동도 일어나서 한 동안 정말 골치 아팠었죠"


태양은 신형사를 나무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어이구 그런데도 그 음악을 계속 듣고 있다니."


신형사의 얼굴이 붉어졌다


주식 무공학교에서는 주식무림계에서 핫한 ETF 무공인 K POP 그룹 종목에 참가할 아이돌 그룹의 훈련도 있었는데 ‘비수’ 아이돌 그룹은 주식 무림계 전체에서 최고의 주가를 자랑하는 ETF였었다. 그리고 또한 주신파의 최대 기대 주였었는데 하루아침에 모든 그룹이 주식 무림계에서 존재를 감추어서 주신파는 물론 수면계 전체에 큰 충격을 안겨 주었었다.  태양은 노래를 들으며 이 명곡을 하나 세상에 던져 놓고는 그룹 전원이 한날한시에 사라져 버린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궁의 사건을 다시 한번 머리에 떠올려 보았다.


도대체 어딜 갔을까


그러나 과거를 더듬는 순간도 잠시    


두두두두두


갑자기 총성이 울려 퍼지면서 신형사가 갑자기 바닥에 쓰러졌다. 태양은 비룡검을 순식간에 꺼내 방어 자세를 취했다. 총알이 긔의 옆을 스쳐 지나가며 바닥에 부딪히자 작은 번갯불들이 돌바닥에서 번쩍거렸다.


태양의 아버지 태수가 기거하고 있는 집무실 주위 사방팔방으로 총알이 날라 왔고 기관총 난사가 곳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총알이 또다시 날아와 태양은 검으로 총날을 가볍게 튕겨내며 반격의 기회를 노렸다.


두두두


기관총 소리와 함께 태양의 앞에 M 249 자동 기관총을 든 여덟 명의 사내들이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집무실 앞마당은 태양과 8명의 사내들의 결투의 사각링으로 변화되었다. 한동안 수면계에서의 결투는 롤플레잉 슈팅게임의 전투현장에서 이루어졌다. 수면계에서 가장 인기 많은 전쟁 롤플레잉인 드림랜드 속 중국대륙과 대만의 전쟁은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롤플레잉 전투로 인간계 게임 플레이어들의 거의 대부분이 이 전쟁을 수면계에서 즐겼다.


하나의 중국을 꿈꾸며 오랜 시간 동안 대만을 침략하기 위해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전쟁의 기회를 노리는 그 박진감과 주변국인 북한과 남한 그리고 일본열도의 플레이어들이 대만 침략 전쟁을 통해 얻는 경제적 손익을 분석하면서 주식투자를 통해 어마어마한 이윤을 남기게 되는 매력은 참으로 가공할 재미를 인간계에 선사하였다.


태양은 주로 비룡검을 사용한 검술의 대가였지만 역시 주식무공학교에서 기관총을 이용한 전투기술도 익힌 특수요원급 대원이라 총을 든 상대와의 싸움에서도 승리할 자신감은 있었다. 그러나 태양은 도대체 이 8명이 누구인지 궁금한 마음에 칼을 든 채로 공격은 하지 않고 일갈했다


"너 이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살수를 쓰는 거냐!"


태양이 외치자 8명 중 한 명이 총을 거두며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래간만입니다. 태양형!"


"아니 너는"


"네 전 엘리사입니다"


태양은 오랫동안 사라졌다 다시 자신의 앞에 나타난 엘라 사가 반가운 마음이 확 들었지만 다시 냉정을 되찾고 엘리사를 향해 말했다.


"갑자기 나타나서 이 무슨 짓이냐!!"


"구원검을 찾으러 왔습니다"


"구원검?"



하늘은 그날도 다른 아이들과 함께 하품을 하면서 잠자리에서 일어났었다. 여느 때와 같이 다들 멍한 얼굴로 아무 말없이 욕실로 걸어갔다. 하늘도 아무 말이 없이 칫솔을 손에 들고 다른 아이들과 함께 욕실로 걸어가면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묘원장과 초이를 곁눈질로 슬쩍 바라보았다. 묘원장은 심각한 얼굴로 초이의 귓속말을 듣고 있었다.


‘진혁인 어떻게 된 거지?’


진혁의 모습은 육아센터 어느 곳에도 없었고, 진혁을 찾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늘은 양치질을 하면서 열심히 머릿속으로 진혁을 감출 만한 곳이 어디 있을까 생각했다. 거대한 원통형의 빌딩으로 된 육아센터 건물의 구석구석을 알고 있는 하늘은 지하 5층부터 지상 20층까지 한 공간 한 공간 차근차근 더듬어 보았다.


묘원장이 진혁을 숨길 만한 장소는 고아원의 창고가 위치한 지하 쪽이 제일 의심이 갔다. 세면대에 일렬로 서서 양치질과 세수를 하는 다른 아이들에게서 눈에 띄는 다른 점은 보이지 않지만 욕실의 공기가 현서에게는 예전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진혁이가 혹시 죽은 건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는 불길한 예감이 하늘의 몸을 감았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 딸들아.”


묘원장의 목소리가 욕실 벽에 달린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엄마가 잠에서 일어나면 줄려고 만든 맛있는 간식이 카페테리아에 준비되었으니 세수가 끝나면 다들 카페테리아로 오도록 해. ”


역시 무표정한 얼굴로 아이들은 세수를 끝내고 벽에 걸린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는 로봇처럼 기계적으로 카페테리아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늘은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카페테리아 쪽 복도를 걸어갔는데, 묘원장의 목소리에서 섬뜩한 느낌이 현서의 뒤덜미를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간식을 먹으라고 묘원장이 일부러 방송을 하는 적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묘원장은 주로 수면시간이다라는 방송만을 스피커를 통해 했고, 지금처럼 과장된 웃음을 한 번도 ( 하늘의 기억한도 내에서) 흘려 내 보낸 적이 없었다.


‘뭔가 있다!’


하늘은 선별된 최고의 정자와 난자로 인공수정되어 태어난 아이라서 그런지 초인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감각들이 발달해 있었다. 두뇌도 명석하고 체력도 웬만한 남자아이보다 뛰어났다.


아무한테도 밝히지는 않았지만 하늘의 예지능력은 자신이 놀랄 정도로 잘 맞아떨어졌다. 어떤 한 사람을 바라보고 눈을 감으면 그 사람의 가까운 미래의 영상이 하늘의 머릿속에 펼쳐졌다.


하늘이 진혁을 그토록 보살핀 것도 진혁을 바라보았을 때 그의 앞에 펼쳐질 알 수 없는 아련한 슬픔과 애정이 느껴져서였다.


하늘은 그 감정이 자신이 사춘기가 가까워져서 느끼게 된 이성에 대한 호기심인줄 착각을 처음에 했으나 진혁을 바라보면 볼수록 현서의 마음 한 구석에는 왠지 모를 연민의 꽃들이 피어올랐다.


하늘은 몰래 진혁의 메디칼 기록을 열어보았다. 거기에서 진혁이가 '다운증후군 가능성'이라는 진단기록이 있음을 발견했다.




적자 폐기 처분은 원래 유전자 결함이 있는 인간들을 의료연구 및 치료라는 미명하에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은 장소로 정부가 모아 격리수용하는 복지정책이었는데 소문에 의하면 한국민족의 우수한 유전자를 보호하기 위해 장애인들을 치료는커녕 아무도 모르게 없애버린다는 말이 떠돌았었다.


이렇게 적자생존이라는 극도의 다윈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유전자과학이 그렇게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아이들이  ‘다운증후군’을 나타내면서 태어났었던 것이다.  의학의 발달로 임신 시 최고의 정자와 난자를 분리시켜 아기가 탄생되도록 하고, 출산 전에 수많은 메디컬검사를 통해 완벽한 아기가 태어나도록 유도되고 있었지만 결과는 관리전이나 마찬가지였다.  


저 맑은 눈의 진혁의 뇌 속에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혹시 몸은 여기에 있지만 뇌 속에는 우리가 도저히 상상도 못 하는 세계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세계가 너무 좋아서 돌아오지 못하고 저렇게 웃고만 있는 것이 아닐까?


의문이 꼬리를 물면서 하늘은 진혁을 바라보면서  하늘의 마음에는 도저히 풀릴 수 없을 것 같은 의문들이 꼬리의 꼬리를 물었다.


그러던 중에 온라인에서 우연히 인간뇌분야에서  대구국 최고의 권위자라는 박 지원 박사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다운증후군은 21번 염색체가 두 개가 아닌 3개로 이뤄진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다운증후군 환자들은 정신 지체, 신체 및 얼굴 기형, 그리고 높은 질병 발생 확률 등의 증상을 보이죠. 그런데 그 환자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운증후군 환자들은 일반인에 비해 암에 걸리는 확률이 훨씬 낮죠. 과거에는 다운증후군 환자들이 암에 걸리지 않는 이유를 단순히 이들이 암에 걸릴 만큼 오래 살지 못하지 때문으로 치부했는데 저는 그 이유를 다운증후군 환자들이 생성하는 특정 종류의 단백질에서 찾고 있습니다. “


하늘은  박사가 그 누구도 아무런 이유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다윈주의의 과학은 그동안 적자생존의 원칙에 따라 정신지체아나 다운증후군, 자폐증을 ‘도태대상’으로만 보았죠. 그러나 제가 연구하면 할수록 그 어느 환자도 아무런 이유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다는 확신이 마음에 들더군요. 과학은 그냥 도구일 뿐이지 우리에게 삶의 기쁨이나 행복을 가져다주는 ‘그 어떤 궁극적인’ 본체는 아닙니다. 그러니 위대하다고 하는 표현은 조금 과하다고 생각해요.”




“자 얘들아 어서 식탁에 앉아.”


카페테리아에 들어서자 묘원장과 초이가 어색한 웃음을 띠면서 들어오는 아이 한 명 한 명 허그를 하고는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오늘은 너희들이 좋아하는 떡볶이피자야!”


“맛있겠지?”


아이들은 다들 잠에서 덜 깬 듯 어리둥절하게 서로를 바라보며 각자 피자가 놓인 식탁 앞에 앉았다.


“오늘 누구 생일인가?”


“웬일이지?”


떡볶이 피자를 다들 좋아하는 아이들은 피자 한 조각씩을 들고 허겁지겁 피자를 입에 넣었다.


“이야 맛있다… 헉.”


피자를 먹은 모든 아이들은 갑자기 눈에 흰자위를 드러내며 그대로 머리를 탁자 위에 꼬꾸러뜨렸다. 하늘은 피자를 먹지도 않았지만 다른 아이들이 쓰러지는 동시에 똑같이  자신의 머리를 탁자 위에 쾅 소리가 날 정도로 내려치면서 눈을 감았다.


“다 됐나?”


“예. 다시 수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초이는 오늘따라 묘원장의 눈이 순진할 정도로 순해 보여 더 가증스럽게 보인다고 생각했다.   


까아아아아아아아

까아아아아아아아


하늘은 카페테리아의 식탁 위에 잠자듯 엎드려 있다가 아이들이 동시에 비명을 질러대는 통에 깜짝 놀라 자신도 고개를 들 뻔했다.


“뭐야?”


묘원장도 놀라 자리에 일어서다 탁자에 놓인 커피잔을 엎질렀다.


“아이들이 왜 이러죠?”


쵸이도 묘원장을 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괴로운 듯 비명을 질러대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쵸이는 묘원장이 시키는 데로 피자 위에 수면유도제를 뿌렸을 따름이었다.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은 피자를 삼키자마자 잠들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잠시 누웠다 깨어난 아이들이 동시에 머리를 감싸 쥐고 비명을 질러댔다. 표정은 마치 심한 악몽을 꾸는 듯해 보였다.


“원장님. 아이들이 왜 이러죠?”


“…”


쵸이는 눈앞에 벌어지는 광경 때문에 공포가 밀려왔다. 묘원장도 혼이 나간 듯 멍하게 아이들의 몸부림을 지켜볼 뿐이었다. 쵸이는 뒷걸음 치다가 뒤에 놓인 의자에 걸려 넘어졌다.  


“어이쿠”


묘원장은 쵸이가 넘어지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쓰러진 쵸이에게 달려가 멱살로 쵸이를 일으켜 세웠다. 심한 다이어트로 몸무게가 가벼운 초이는 가볍게 묘원장의 육중한 팔에 매달렸다.


“도벳에서 사람들이 와서 모든 것을 정리해 줄 때까지 정신 바짝 차려!”


쵸이는 소리치는 어른들이 싫었다. 자신의 본 엄마도 자신에게 너무 잔소리를 해서 요즘 청소년들에게 유행하는 패륜적인 ‘부모스와핑’으로 부모를 교체했었다. 부모 스와핑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모들은 자녀를 얻어서 좋고 아이들은 부자 부모나 잔소리 없는 부모를 골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부모스와핑은 불법적으로 성행했었다. 쵸이는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자신의 부모들의 높은 눈높이에 끊임없이 나오는 잔소리에 너 저리가 나서 1년 전에 부모를 스와핑 했는데 묘원장이 쵸이의 스마(스와핑 한 엄마)였다. 자신의 학비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로 스마 묘원장을 도와 육아센터에서 일하게 된 것인데 오늘 이런 소란에 고함소리까지 듣다니 쵸이는 아예 부모 없이 살 걸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캑캑. 이거 이제 그만 내려놓으시죠?”


쵸이는 멱살 때문에 숨이 막혀 괴로운 듯 얼굴을 찡그렸다. 그렇지만, 머릿속은 찡그려서 생긴 주름살을 관리해야겠다는 생각만이 휙 하고 지나갔다.


“미안하다.”


묘원장은 험악한 표정을 순식간에 비굴할 정도로 바꾸면서 멱살을 풀었다. 그리고 쵸이를 의자에 내려놓고 아이들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는데, 아이들은 비며을 멈추고 전쟁터의 시체들처럼 너저분하게 카페테리아 바닥에 나 뒹굴고 있었다.


“쵸이는 어서 사무실로 가서 도벳연구소에서 언제 사람들이 도착하는지 확인해 봐!”


쵸이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의자에서 일어나 카페테리아의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묘원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쓰러진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육아센터의  운영자금을 위해 연구소의 수면연구에 협조했을 뿐이었는데 일이 어찌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묘원장은 생각했다. 평상시에 운동을 심하다 할 정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단단했던 다리근육이 힘이 빠져 풀려버리는 것만 같았다. 한 시간 전에 진혁이한테 벌어진 일이 모든 아이들에게 동시에 벌어지다니 믿기지 않았다.


하늘은 죽은 듯이 누워있다가 묘원장 몰래 살며시 실눈을 떴다. 옆에 쓰러진 아이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다 현서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쓰러진 아이들의 모든 얼굴들이 마치 촛농처럼 녹아내려 있었다 자신의 예지능력도 전혀 감지하지 못했던 상황이 벌어지자 하늘은 다시 눈을 감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켜 보려 노력했다.




‘도벳은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되지?’


묘원장은 급하게 미국의 도벳수면연구소 본사의 핫라인으로 벌어진 일을 보고 하려고 몇 번 시도를 했으나 통화음은 가는데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자 초조해졌다.


신호음이 한번 가자마자 전화를 받던 예전과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잠자코 있던 남성이 묘원장의 여성에게 조용히 소곤거렸다.


‘아이들이 도대체 어떻게 한꺼번에 저렇게 되지?’


‘음… 뭔가 느낌이 안 좋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그래. 내가 뭐라 그랬어? 아무리 돈이 궁하다 하더라도 아이들을 실험도구로 사용하겠다는 사람들한테 도움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내가 말했지?’


묘원장은 바닥에 쓰러진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괴로움에 휩싸였다.


사실 묘원장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태어날 때부터 비밀 하나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묘원장이 심한 다중인격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점이었다.


다른 다중인격증과 다른 점이 있다면 특이하게도 묘 원장 마음속의 두 인격은 남성男性과 여성女性으로 서로 다른 성을 가진 완전히 구분된 인격체였다는 점이었다.


훌륭한 정부공무원 아버지와 아름답고 똑똑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묘원장은 두 명의 남 여동생과 함께 화목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묘 원장은 화목한 분위기의 가족들에게 상처를 안겨주기 싫어 자신의 비밀을 밝힐 수 없었다 그리고, 사실대로 밝혔다가 혹시 다윈주의법에 따라 자신이 ‘폐기처분’될 수도 있다는 공포감에 더더욱 꼭꼭 숨겨두고 생활해 왔다.


묘원장은 애인을 사귀면 혹시 정신질환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남자를 사귀려고 하면 마음속의 남성인격이 불쑥 묘원장의 마음을 지배했다.


‘아 징그러워! 저 남자 놈이 왜 나를 추근대지?’


반대로 여자를 사귀려고 하면 감쪽같이 여성인격이 묘원장의 마음에서 튀어나와 말렸다.



이성(자신의 성 정체성이 무언지 알 수 없지만) 상대를 고르는 것을 일찌감치 포기한 묘원장이 세월이 흘러 결혼 적령기가 되자 묘원장의 주위의 가족들과 친구들은 일단 겉모습은 여성으로 있는 묘원장에게 끊임없이 남자들을 소개했지만 번번이 결혼까지 가는데 실패하자 묘원장을 차츰 동성애자가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지만  묘원장 마음속의 두 명의 남녀는 동성애에 대해 추호의 관심이 없었다.


묘원장은 혹시 자신의 질환을 의학적으로 고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고 노력해 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묘원장은 아이를 워낙 좋아해서 (그 외에도 두 남녀가 동의하는 점이 이것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있다.) 부모 없이 완전한 우성인자로 인공수정되어 태어난 아기들을 위탁부모가 생길 때까지 보호하는 사회사업을 하기로 마음먹고 육아센터를 설립하게 되었다. 사회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없어 운영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늘어나는 고아아이들의 수용하는 공간은 날로 부족해져 갔다.          


묘원장에게는 숍마스터 Shop Master가 한 명 있었다.


묘원장 속의 남녀들 모두 다 이 숍마스터의 서비스에 완전히 만족해 있었다. 그 숍마스터는 묘원장의 기호를 완전히 파악하고 생활 속의 여러 가지 물건을 구입하는데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었는데 묘원장의 말동무도 되기도 하였다. 하루는 술자리에 불러내어 같이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가 그냥 생각 없이 육아센터 경영이 요즘 힘들다고 했더니 그때 도벳수면연구소를 처음으로 묘원장에게 소개해주었다.


“언니! 제가 우리 백화점에서 톱 숍마잖아요. 제 고객 중에는 외국인도 많죠. 미국에 사는 고객인데 칼 스킨도라고 도벳연구소 소장으로 요즘 아주 잘 나가는 사람이 한 명 있죠.”


“도벳 연구소가 무슨 연구를 하는데 그렇게 잘 나가?”


묘원장은 술을 들이키며 말했다.


“수면연구해요.”


“수면연구?”


“네. 잠을 연구하는 사람들인데 사람이 건강해지도록 숙면을 유도하는 기구를 개발해 내서 유명해진 회사죠.”


“하긴 잠을 잘 자면 사람이 건강해지지.”


묘원장은 숍마를 바라보면서 또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그런데 이건 아직 실용화된 거 아니라서 일반인들은 모르는 사실인데..”


묘원장의 여성이 이 계집애가 도대체 누굴 일반인이라 부르고 누굴 특별인이라고 부르는지 물어보라고 채근했다.


“이제는 자신이 잠자면서 꾸는 꿈 속에 들어가 환상적인 여행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을 하는 기계도 곧 시판한다고 하더라고요.”


묘원장 속의 여성은 다시 이 천하게 보이는 한국여자애가 어떻게 꼬릴 쳤길래 잘 나가는 외국 CEO남자의 회사기밀을 알게 되었는지 따져보라고 속에서 길길이 외쳐댔다.


“그게 가능한 거야?”


“잘 모르지만 상상해 보세요. 웬만한 해외여행보다 더 재미있을 것 같지 않으세요? 그렇게 재미있게 푹 잠자고 깨어나면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니 정말 말 그대로 꿈만 같은 일이에요.”


묘원장은 건강해질 수 있다는 말에 큰 관심이 갔다. 그 기계만 있으면 혹시 자신의 마음속에 평생 붙어있던 이 지긋지긋한 두 남녀를 떼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생각이 혹시 들키지 않을까 일부러 덤덤하게 묘원장은 숍마의 말에 반응했다.


“뭐 그게 가능하겠어?”


“아직 많은 실험이 남았는데 기계를 실험해 볼 지원자를 찾더라고요. 돈은 원하는 데로 제공한다고 하더라고요.”


“돈을 원하는 데로 준다고? 혹시 위험한 거 아니야? 영영 꿈속에서 못 돌아오는 거 아니니?”


숍마는 자신의 귀여운 눈을 가늘게 해서 묘원장을 째려보았다. 요즘 젊은 아가씨들은 대부분 성형수술을 해서 다들 미인이다.


“아니에요. 거의 완성되었는데 더 안전한지 데이터를 만들기 위해 사람한테 실험하는 거래요.”


“왠지 꺼림칙한데.”


“그 큰 회사에서 설마 위험한 일을 하겠어요? 그리고 수술하자는 것도 아니고 잠만 재우는 건데 잘 못되어 봐야 뭐가 그렇게 크게 잘못되겠어요?”


묘원장의 마음속에 그중 사악한 여성이 묘원장에게 속삭였다.


‘묘원장! 한다고 해! 고아원 애들 다 실험시키면 되잖아. 많이 동원시킬 수 있으니 돈도

많이 받아낼 수 있잖아!’


묘원장은 도벳수면연구소의 연락처를 숍마로부터 받았다. 아이들이 성공적으로 실험을 마치면 그 기계를 구입하는 첫 번째 구매자는 바로 자신일 거라는 다짐과 함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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