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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디어스 데이 TEDIOUS DAY

(SF 무협 환타지)


대구 광역시는 과학 기술의 진화로 무장한 첨단 광고 간판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고층 건물 사이로 번쩍이는 빛의 검모양의 조명이 휘몰아치고 다채로운 색체가 어우러져 마치 무공의 경연장이 펼쳐진 듯했다. 각 간판들은 자아를 지닌듯, 스스로를 자랑하며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도시의 거리를 가로지르는 무사들은 그 화려함에 압도 당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광고 간판의 비밀을 간파하고 진정한 주식정보와 지혜를 얻기 위해 고요한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간판은 단순한 상업의 도구가 아닌 무사들에게는 무공을 훈련하는 지혜의 신호로 변모했다. 이곳에서 각기 다른 간판들이 대결을 벌였다. 한편에서는 신비로운 빛을 발산하는 간판이, 또 다른 한편에서는 고전적인 세체로 적힌 문구가 서로를 겨루며 시선을 끌었다. 대구의 거리는 이제 단순한 길이 아닌, 무협의 전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한순간의 선택에서 시작되었다. 첨단 기술의 힘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겨진 욕망을 자극하며, 새로운 시대의 무공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구 광역시는 이제 과거의 전통과 미래의 혁신이 공존하는 땅으로, 무사들의 전설이 새롭게 쓰여지고 있었다. 지형적으로 분지인 대구광역시는 2044년부터 글로컬(GLOBAL과 LOCAL의 합성어)표본국으로 UN국제회의에서 선정되어 한국안에 위치하지만 완전히 다른 자치 국가로 승격되었다.


그결과 대구시 주위로 높이 2.5미터의 담벼락이 설치되었고 지정된 게이트를 통해 비자를 받아야지만 출입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처음에 넘쳐나는 인구와 규모에 효율적인 국가관리를 위해 설치된 2.5미터의 담벼락은 점점 단순히 정책적 구분선이 아니라 빈부를 나누는 차별선이 되어 대구국 안과 밖의 빈부차는 극에 달하게 되었다. 빈부차가 벌어지자 치안도 천지차이를 나타내었는데 대구국 밖은 모든 범죄의 온상으로 한국정부도 손을 댈수 없을 정도로 차츰 무법지역이 되어 갔다.


“정신차려! 이번 앨범이 반드시 성공해야 대구국 비자를 취득할 수 있어.”


엘라사는 비장한 얼굴로 음향믹서기를 만지면서 방음장치가 된 녹음실 안의 다른 멤버들에게 말했다. 엘라사는 한국의 출산장려를 위해 정부 인공 수정 정책으로 태어나 이름 앞에 성도 없는 아이들 중의 하나로 무공이 남들보다 월등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였다.


“악보의 샵이 안보여? 다들 정신을 어디다 두는 거야? ”


엘라사의 일갈에 엘료에내, 미야민, 베배, 하나냐, 앗나, 빈누이 그리고 스나아는 다들 좁은 녹음실을 침묵으로 빈틈없이 채웠다.


엘라사가 리더로 있는 이 ‘비수’라는 남자 아이돌 팀은 노래와 춤을 열심히 연습해 만든 뮤직 앨범으로 성공해서 자유자재로 대구국을 왕래하는 것이 꿈인 또래 아이들이 모인 집단이였다. 다들 유전자조작으로 월등한 무공을 가지고 있어 체력들이 장난이 아니였고 8명 모두 최고 인기 아이돌 그룹으로 성공하고 싶은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달려가고 있는 동지이자 피를 나눈 듯한 형제들이였다. 태어나자 마자 들어간 한 무술학교에서 만나 인연이 시작된 그들은 벌써 학교를 뛰쳐나와 합숙을 한지도 거의 15년이 다 되어 눈빛으로 통하였지만 요즘 들어서는 뭔가 마음이 각자 딴데로 간듯 지금 준비하는 앨범이 리더 엘라사의 뜻대로 잘 돌아가지 않았다.   


노래: 티디어스 데이


푸른 하늘을 잊을 정도로

짙게 드린 먹구름이

마음을 검게 물들이네

오늘 죽음도 두렵지 않아

그대 사라진 절망도

그대 없는 고통도

그대 던져준 허무조차

검게 물들일 오늘은

티디어스 데이

무공의 연마도

전장의 소리도

모두 잊혀진 채

무료한 시간속에 잠드네

구름 속에 감춰진

천상의 빛을 찾아

검은 마음의 힘을 모아

다시 일어설 그날을 꿈꾸리

오늘은 무료한 날

무협의 한 페이지

어둠속에서 태어나는

새로운 전설의 시작

죽음을 두렵지 않게하네

오늘은

티디어스 데이


눈이 풀려지는 듯한 몽환 적인 아쿠스틱 음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아이돌그룹’비수’의 신곡 ‘티디어스 데이’는 그룹의 이름처럼 비수가 마음속을 헤집어 놓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정말 엘라사의 작곡 솜씨는 그의 무공만큼이나 다른 아이돌 그룹보다 탁월했다. 엘라사는 오디오 믹서기 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려는듯 의자 뒤를 제치고 눈을 감았다.  


“용기가 없어서 그렇지 정말 엘라사 형의 노래를 들으면 죽고 싶어져.”


거북이처럼 행동이 느린 뚱뚱한 체격의 베배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으면서 들뜬 얼굴로 말했다. 베배는 언제나 엘라사의 곡을 들을때마다 극찬사를 보냈고,  다른 멤버들은 베배의 느릿한 목소리만 나오면 그저 놀리고 싶어 온몸이 아릴 정도로 쑤셨다.  


“뭐? 죽고 싶다고? ”


하나냐는 스튜디오안의 긴장감 때문에 생긴 목의 피로를 려고 손으로 뒷목을 만지면서 어이없다는 얼굴로 베배에게 고함쳤다.


“어이 뚱보 베배야. 숨쉬는게 그렇게 귀찮아? 내가 도와줄까?”


“뭐? 뚱보? 나이도 어린 놈이 내 파공 맛 볼래? 내장들을 모조리 파괴해주지”


느릿한 몸집과 말투와는 전혀 달리 무공을 쓸때는 민첩한 베배는 씩씩거리며 하나냐를 노려보았다.


날카로운 성격만큼이나 뾰족한 콧대를 가진 하나냐는 피식 거리며 한번 덤벼보라는 손짓을 베배에게 던졌다. 하나냐는 빈누이와 함께 이번 앨범의 안무를 맡았다. 그런데 앨범준비기간에는 외출제한이 있는 규칙을 어기고 빈누이가 어제 경산시내에 놀러갔다가 동네갱들과 시비가 붙어 싸움에 휘말렸었다. 빈누이가 몇합을 주고 받다가 깨달았는데 말이 동네 건달들이지  무공은 다들 고수였다. 겁만 주고 보내려던 싸움은 점점 커져 지기 싫어하는 빈누이는 모든 갱들의 면상을 모조리 함몰시켜 버렸다. 그러나 빈누이는 마지막에 동네갱들이 동시에 날린 장풍을 체 막지를 못하고 정통으로 맞아 순간 심각한 심장마비를 불러왔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빈누이가 실려간 병원의 의사는 회복기간동안 아예 일어나지도 못하게 코끼리도 재울정도의 수면제를 빈누이의 혈관이 쏟아넣았다.


결국 격렬한 안무를 못하게 된 빈누이의 공백을 메우느라 혼자 진땀을 빼고 있던 하나냐는 쌓인 스트레스를 풀 상대를 찾던 중 잘됬다는 표정으로 다가오는 베배를 바라보았다.  


“이런 바보들. 그만 닥치지 못해?”


서로 으르렁거리던 하나냐와 베배는 고막이 터질 정도로 큰 엘라사의 고함소리에 다들 비명을 지르며 귀를 막았다. 스피커를 통해 엘라사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다시 고함쳤다.


“하여간 대량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열등DNA족들은 노는 것도 무식해. 지금 싸움질할 때니? 이번 앨범도 성공 못 시키면 비수팀은 그대로 폐기처분될거야. 회사가 가만 있을 것 같아?”


엘라사의 말에 녹음실안의 모든 팀원들은 고개를 떨구었다. 자신들의 유일한 신분상승의 길은  연예인으로 성공하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잘,,못했어.”


“그래 우리 잘 할께.”


리더 엘라사에 말에 순한 양처럼 고분해진 모든 비수팀은 즉시 헤드폰을 꽂고 반주음악의

볼륨을 올렸다.



‘하늘’


음악이 다시 흐르자 엘라사는 자신의 여자친구 하늘의 얼굴을 떠올렸다. 엘라사는 하늘을 온라인게임을 하다가 만난 사이였다. 요즘 유행하는 온라인게임’드림랜드’에서 최고 고수급인 신무급의 하늘에게 반해 엘라사는 거의 1년동안을 쫓아다녔었다.


세상은 하이테크놀로지와 기계만능주의로 사람들은 두가지 극단적인 이데올로기로 나뉘었다. 편리하고 단순한 생활로 인해 무료함과 허무함의 극치로 자살을 해버리던지 아니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바로 지금 쾌락을 추구하는 수면계로 들어가든지 두가지로 나뉘었다.


엘라사는 월등한 무공DNA을 가지고 태어나서 자신이 어느 누구보다 강하다는 자부심으로 허약한 자살보다는 쾌락주의자쪽에 가까웠는데 하늘은 그가 유일하게 반한 강하고 아름다운 여자였다.


자신이 추구하는 쾌락의 영원한 동반자가 되어 줄 것 같아 엘라사는 죽도록 하늘만을 쫓아다닌 것이였다.


‘하늘아. 난 이 노래를 너에게 바치기 위해 만들었어. 세상에서 가장 강한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궁극의 허무함을 표현한 노래가 바로 이 ‘티디어스 데이’야.’


엘라사는 다시 음악에 몸을 맡겼다. 눈을 감자 엘라사의 머릿속에는 온라인 게임 드림랜드의 공중에서 날아다니는 자신과 하늘의 모습이 찬란하게 펼쳐졌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공의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날아다니는 모습은 세상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울 것이라고 엘라사는 확신을 했다.


‘느껴?’


엘라사는 하늘에게 속삭였다.


하늘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고 두팔을 벌리며 안아달라고 속삭였다. 너무 행복해 보여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엘라사는 이 모든 감정을 담아 장중하고도 몽환적인 분위기의 곡 ‘티디어스 데이’를 만들었다.


TEDIOUS…무료하고 지루하다는 뜻의 티디어스는 세상 모든 인간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천국인지 지옥인지 알수 없다는 사실과 현실은 한마디로 허무할 정도로 지루하다는 세태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가장 강력한 단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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