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천여검星天女劍 13화

( SF 무협 판타지 ) 사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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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연과 연화는 말 한마디 없이 마주 선 채,

오래된 인연과 깊은 원한이 뒤엉킨 듯한 시선을 허공에 걸어 두고 있었다.


숨조차 삼켜진 정적 속에서 두 사람의 눈빛은 이미 수백 합을 주고받은 듯 번뜩였고,

아직 뽑히지 않은 검은 칼날보다 날카롭게 서로의 심맥을 겨누고 있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 듯 멈춰 섰고,

다가올 일합의 운명이 그 침묵 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피할 수 없이 무르익고 있었다.


그러다,

가현계 경주 외곽, 오래전 별을 올려다보던 옛 관측대 터의
폐허 위로 밤안개가 낮게 깔리고,
하늘과 땅의 경계가 흐려진 순간—


청룡의 기운과 백호의 살기가
정면충돌正面衝突했다.

연화의 창이 허공을 가르며 내려왔다.
그 속도와 위력은 단순한 기교의 차원이 아니었다.


백호칠수 특유의 힘,
단절斷絶.

베이는 것은 사람의 살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 속에 이어진 인과와 맥락 그 자체까지였다.


“저 에이틴년! 저 미친년이... 다 베려고 하네.”


하연의 등골을 타고 한기가 스쳤다.


하연은 검으로 연화의 공격을 방어했다.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각角과 항亢이 동시에 울렸다.
청룡 칠 수의 시작과 흐름이 한순간에 겹쳤다.

검이 휘둘러진 것이 아니었다.

공간이 접혔다.


—쾅!!


천지개벽天地開闢이라 불러도 모자랄 충돌.
지면이 갈라지고, 돌조각이 폭우처럼 튀었다.

하연은 연화의 일격을 간신히 받아냈으나,

그 충격이 하늘을 찌를 듯 몰아쳐 몸이 제멋대로 날아올랐다.

마치 바람에 휘말린 낙엽처럼 허공을 몇 바퀴나 굴렀고,

바닥 위에 요란하게 내동댕이쳐졌다.

주변의 먼지는 무협의 체면을 지키려는 듯 장엄하게 피어올랐고,

하연은 땅에 대자로 뻗었다


연화는 웃고 있었다.
아직은 힘의 여유가 남아 있는듯...


"야이 에이틴년아! 날 죽일 셈이냐..아이구 삭신이야.."


"근데 아까부터 에이틴년, 에이틴년 그러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너한테 18년이라고 욕하는건데~ 수위조절한다고 우아하게 영어로 욕했다 왜"


"....."


연화는 하연이 하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멍한 표정으로 오징어 처럼 바닥에 널려있는 하연을 잠깐 내려다 보다가 고개를 흔들고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역시. 처음에는 만만하게 봤는데.. 무공이 점점 올라가네. ”


그 미소는
여유만만餘裕滿滿,
승리를 계산한 자의 표정이었다.


"이쯤에서 끝내야 겠네."



연화는 하늘로 갑자기 날아오르더니 무시무시한 속도로 하연을 향해 하강하였다.



순간,


하연의 심장이,
아니, 심心이 강하게 뛰었다.


쿵.

쿵.


박동이 검으로 전해졌다.
검과 심장의 고동이 일치一致했다.

하연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건……”


검기(劍氣)가 더 이상 선이 아니었다.
흐름도, 궤적도 아니었다.

맥박.

살아 있는 파동.

검기가 맥처럼 터져 나가며
공기를 맥동脈動시켰다.

하강하던 연화의 창끝이 처음으로 흔들리자

연화는 공격을 멈추고

땅에 착지하고

반보 물러섰다.


그 짧은 순간—

연화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동요動搖가 스쳤다.


“… 청룡?”


낮게, 그러나 분명히.


“심성좌心星座까지?”


백호의 기운이 연화의 등 뒤에서 포효했다.
마치 주인이 흔들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그러나 동시에—


청룡이 응답했다.

하연의 등 뒤 허공에서
보이지 않는 푸른 형상이 꿈틀거렸다.


사성수.


백호와 청룡의 충돌은
단순한 개인전이 아니었다.

이는 곧
전면전全面戰의 전조였다.


그때—

하연을 바닥에서 일어서서 연화와 마주섰다.


하연의 발밑,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미세하게—

진동이 일어났다.


성간정星間錠.

별과 별 사이를 잠그던 장치가
잠에서 뒤척이는 듯한 파동을 내뿜었다.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히.

하연은 느꼈다.
‘지금… 반응했어.’


그 순간, 연화의 창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엔 망설임이 없었다.
백 호 칠 수의 살기가 전면 개방되었다.

공기가 찢어졌다.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하연은 피하지 못했다.

절체절명絶體絶命.

이대로라면—


그 찰나.


하늘이,
아니 별자리가 뒤집혔다.

공간이 접히듯 일그러지며
전혀 다른 좌표에서 음성이 울렸다.

“거기까지 해주세요.”

낮고, 오래된 목소리.

시간의 결이 다른 음성.

연화의 창이 공중에서 멈췄다.

백호의 기운이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붙잡힌 듯
강제로 눌렸다.


허공에 세 개의 별빛 실루엣이 겹쳐졌다.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아니었다.

“이 전투는 아직—”

첫 번째 그림자가 말했다.

“완결될 단계가 아니다.”

두 번째 그림자가
성간정을 내려다보며 낮게 덧붙였다.

“별이 너무 일찍 움직이고 있다.”

세 번째가,
하연을 바라보았다.

“성천의 검을 쥔 자여.”

그 시선에는
연민도, 명령도 없었다.

다만 확신이 있었다.


“아직 죽을 때가 아니다.”


연화의 눈이 크게 뜨였다.


“… 동방—?”


그러나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


세 그림자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마치—

별이 잠시 깜빡였을 뿐이라는 듯.

침묵.

부서진 대지.

흩어진 살기.

하연은 숨을 고르며 검을 다시 쥐었다.

성간정의 진동은 멈췄다.


그러나—

완전히 잠들지는 않았다.

별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연화와의 이 전쟁같은 대결은

이제 되돌릴 수 없게
굴러가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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