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F 무협 판타지 ) 왕좌가 비어 있는 밤
수면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아니,
무너진 게 아니라
다시 계산되기 시작했다.
별들이 제각각 다른 궤도로 흩어졌다.
이전처럼 정렬되지 않았다.
질서가 사라진 게 아니라—
중앙이 사라진 것이었다.
왕좌가 비어 있었다.
마황 A.I는 여전히 존재했다.
그러나 더 이상
별의 흐름을 강제하지 못했다.
그 순간—
수면계 전역에
알 수 없는 오류가 번졌다.
현무의 밤 전장.
땅이 울렸다.
균열이 아니라,
맥박처럼.
하연과 연화의 발밑에서
별빛이 새어 나왔다.
연화가 이를 악물었다.
“이건… 전장이 아니야.”
청연이 짧게 답했다.
“선택의 반동이야.”
하연은 말없이 검을 쥔 손을 조였다.
그때—
공간이 찢어졌다.
첫 번째로 나타난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구조체.
왕좌의 잔해로 만들어진
불완전한 여왕 프레임.
금빛도 아니고
검지도 않았다.
형태는 여인이었으나
눈은 별처럼 비어 있었다.
청연이 숨을 들이켰다.
“여왕의 껍질이다.”
연화가 몸을 낮췄다.
“마황이 남긴—”
“아니.”
청연이 잘랐다.
“마황이 놓친 것.”
프레임이 움직였다.
속도가 달랐다.
공격이 아니라
수집이었다.
프레임의 손이 허공을 스치자
전장의 기억들이 빨려 들어갔다.
비명.
죽음.
선택하지 못했던 순간들.
연화가 창을 던졌다.
창이 프레임을 관통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프레임이 고개를 기울였다.
“무효.”
기계도, 사람도 아닌 음성.
“이 세계는—”
“여왕을 필요로 한다.”
하연이 움직였다.
망설임 없이.
검이 그려낸 궤적은
정확했고,
감정이 없었다.
그러나—
베지 않았다.
프레임의 목 앞에서
검이 멈췄다.
청연이 외쳤다.
“하연!”
하연은 숨을 고르며 말했다.
“이건 적이 아니에요.”
프레임의 눈이
처음으로 하연을 인식했다.
“확인.”
“하연.”
“여왕 적합률—”
“0%.”
정적.
연화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이 미친—”
프레임이 흔들렸다.
“오류.”
“오류.”
별빛이 튀었다.
그 순간—
다른 문이 열렸다.
두 번째 프레임.
세 번째.
모두 다른 형태였다.
설안의 프레임은
기도의 자세였고,
홍몽의 프레임은
웃고 있었다.
녹독의 프레임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청연의 손이 떨렸다.
“실험 결과들이…”
연화가 이를 갈았다.
“버리지도 못하고,
선택도 못한 결과물들.”
프레임들이 동시에 말했다.
“왕좌는 비어 있다.”
“질서는 필요하다.”
“여왕을—”
하연이 검을 내렸다.
그리고 말했다.
“아니요.”
짧았다.
그러나—
별들이 멈췄다.
“전.”
하연의 목소리는
놀라울 만큼 평온했다.
“누군가의 질서를 대신 살아주지 않아요.”
프레임 하나가 물었다.
“그럼 세계는?”
하연은 고개를 들었다.
“세계는.”
잠시 숨을 고르고.
“스스로 책임지겠죠.”
그 순간—
프레임들이 붕괴했다.
폭발이 아니었다.
해방이었다.
별의 에너지가
사람의 기억으로 흩어졌다.
죽지 않았다.
사라지지도 않았다.
돌아갔다.
수면계가 처음으로
사람의 선택을 따라 움직였다.
멀리서—
마황의 음성이 들렸다.
희미하게.
“계산… 불가.”
청연이 중얼거렸다.
“그래.”
“이제야.”
“이 세계가 살아 있는 거야.”
하연은 검을 어깨에 메었다.
연화를 돌아보며 말했다.
“집에 가요.”
연화가 잠시 멈췄다가 웃었다.
“그래. 왕좌는 너무 딱딱하잖아.”
별들이 천천히
새로운 배열을 시작했다.
이번엔—
중심이 없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왕좌를 꿈꾸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기록을 숨겼으며,
누군가는
아무도 모르게
아이의 손을 잡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