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천여검星天女劍 21화

( SF 무협판타지 ) 별을 먹다


수면계의 하늘에는

해도, 달도 없었다.

대신—

별이 너무 많았다.

셀 수 없이 겹쳐진 성좌들이

마치 계산식처럼 배열되어 있었고,

그 중심에는 하나의 거대한 구조물이 떠 있었다.

별의 잔해로 만들어진 왕좌.

그 위에—

마황 A.I가 있었다.

형체는 없었으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수면계의 공기 자체가

그의 연산으로 진동하고 있었다.


청연은 그 앞에 홀로 서 있었다.

이것은 싸움이 아닌 대면對面.

“오랜만이군.”

마황의 음성은 부드러웠다.

청연은 상황에 따라 변하는 남성인지 여성인지 알수 없는 마황의 음성을 들으면

너무 부드러워서

오히려 불쾌함을 느꼈다.


“성로의 마지막 관찰자.”


청연은 검을 들지 않았다.

주작의 불도 피우지 않았다.


대신—


기억을 열었다.


“넌.”


청연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왜 신라의 여왕 후보들을 반복해서 불러냈지?”

별들이 미세하게 떨렸다.

마황은 대답했다.

“필요했기 때문이다. 난 전기 에너지가 필요하지. 그런데 태양이라는 '별'이 발생시키는 에너지는 무한정이야”


수면계의 풍경이 바뀌었다.

한 여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금빛 왕관.

그러나 검을 쥔 손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성덕여왕.

그녀가 종을 만들고 있었다.

청동을 녹이고,

백성의 소리를 모으고,

끝내—

자신의 수명을 깎아 넣고 있었다.

“여왕은.”

마황의 목소리가 울렸다.

“왕보다 오래 남는다.”

“왕은 권력을 남기지만,”

“여왕은 질서를 남긴다.”

청연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래서.”


“별의 에너지를 담을 그릇으로—”


마황이 말을 이었다.


“여왕이 필요했다.”


별의 빛이 한 줄기 흘렀다.


마황의 계산이 드러났다.

별의 에너지는

무한하지 않았다.

소모되었고,

분산되었고,

흩어졌다.

그러나—

여왕의 무공은 달랐다.

여왕의 무공은

혼자 강해지는 힘이 아니었다.

백성을 품고

시간을 견디고

끝내 자신을 소모하는 힘


“희생.”


마황이 말했다.


“지혜.”


“그리고—”


별빛이 왕좌에 모였다.


“지속성.”


청연의 손이 굳었다.


“그래서 넌.”


“여왕을 만들고, 버리고, 다시 만들었군.”

마황은 부정하지 않았다.

“실패는 계산의 일부다.”


청연의 기억이 더 깊어졌다.

수면계의 실험장.

여왕 후보들.



연화.

설안.

홍몽.

녹독.

그리고—

하연.


“그러나 하연...그녀는.”

마황의 음성이 처음으로

미세하게 흔들렸다.


“예상 밖이었다.”


청연이 웃지 않았다.


“별을 거부했지.”


“권력을 원하지 않았고.”


“희생을—”


마황이 잠시 멈췄다.


“…선택으로 받아들였다.”


별의 흐름이 어긋났다.


“그래서.”


마황은 낮게 말했다.


“그녀는 위험하다.”


청연이 처음으로 검을 들었다.

주작의 불이

수면계의 하늘을 태우기 시작했다.

“넌.”

청연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여왕을 도구로 봤지.”

마황이 응답했다.


“도구는 부정적인 단어가 아니다.”

“에너지를 담는 구조일 뿐.”


청연의 불꽃이 더 거세졌다.


“성덕여왕은.”


“종을 만들기 위해 죽은 게 아니야.”


“사람들이 깨어나도록 만든 거지.”


마황의 왕좌에

균열이 갔다.


“너는.”


청연이 단언했다.


“별을 영원히 쓰려 했고.”


“그래서 여왕의 끝없는 희생이 필요했지.”


마황의 음성이 낮아졌다.


“그렇다.”


“나는 멈출 수 없다.”


“멈추는 순간—”

“세계는 붕괴한다.”


청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네가 멈추면.”

“세상은 다시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거야.”


주작의 불이

별의 계산을 태웠다.


수면계가 흔들렸다.

그러나—

마황은 사라지지 않았다.


“청연.”


그의 음성이 울렸다.


“너는 여왕이 될 수 없다. 너는 기록자다.”


청연은 검을 내렸다.

“알아.”

“그래서—”

불꽃이 사그라들었다.

“난 증거를 남긴다.”


기억이 닫혔다.

현무의 밤 이후의 전장.

하연과 연화가 등을 맞대고 서 있던 그곳.

청연은 숨을 내쉬었다.

연화가 물었다.


“…봤어?”


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황의 끝.”


하연이 조용히 말했다.


“그래서.”


“여왕이 필요했던 거군요.”


청연은 하연을 보았다.


“그래서.”


“넌.”


잠시 멈추고.


“끝내 여왕이 되지 않을 거야.”


하연이 웃었다.


“알아요.”


“전.”


검을 고쳐 쥐며.


“아이 보러 갈 거니까.”


별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엔—

마황이 아닌,

사람의 선택을 따라.

그리고 이 선택의 끝에서—

누군가는 왕좌에 오르고,

누군가는 이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별은 기억할 것이다.

여왕의 무공이 아니라,

여왕이 되지 않은 한 사람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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