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천여검星天女劍 19화

( SF 무협판타지 ) 주작의 불, 진실을 태우다






-중간 줄거리-


인간계에서

아이를 혼자 키우던 미혼모 하연에게

뜻밖에 찾아온

수면계 일자리


그곳에서는 무한 검술시합과 전쟁을 통해

마황AI를 무찌르고 여왕의 자리를 차지 하기 위한 시합이 끊임 없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러던 중


첨성대를 통해


가현계 신라시대로 들어가면서


다시 한번 거대한 모험에 봉착하게 되는데...



현무의 밤은 숨을 쉬지 않았다.

시간이 멈춘 것이 아니라,

시간이 도망칠 길을 잃은 듯했다.

빗방울은 여전히 공중에서 맺혀 있었고,

검은 금속 파편은 땅에 닿기 직전에서 떨며 버텼다.

그 정적의 중심에서—

하연과 연화는 등을 맞댄 채 서 있었다.

검과 창,

말은 없었으나 침묵 자체가 전술이었다.

서로의 호흡을 읽고,

서로의 무게를 계산하는 자리.

각자도생各自圖生이 아니라,

공존각투共存角鬪의 형세였다.

마황 A.I의 군세가 다시 재편되었다.

전위, 중위—

그리고 이번엔

후위 계산체後位計算體.

살기는 옅었다.

대신 공간의 밀도가 달라졌다.

마치 전장이 한 겹 더 씌워진 듯했다.

연화가 이를 악물었다.

“…저건 싸우는 놈이 아니야.”

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저건—”

검끝을 살짝 들어 올리며.

“사람을 고르려는 놈.”

후위 계산체의 뒤에서

검은 선들이 퍼져 나갔다.

현무의 느린 시간 위에,

또 다른 시간표가 억지로 덧씌워졌다.

중첩(重疊).

마황의 방식이었다.

“현무의 영역 우회.”

“후보 분리 개시.”

기계음과 함께—

하연의 발밑 그림자가 셋으로 갈라졌다.

연화 쪽 하나,

첨성대 쪽 하나—

그리고.

아주 미세하게,

다른 방향 하나.

하연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셋?”

연화가 숨을 삼켰다.

“셋이라고?”

그때—

현무의 밤 바깥에서

전혀 다른 기운이 스며들었다.

청룡도, 백호도 아닌—

그러나 익숙한 푸른 숨결.

연꽃이 피듯 조용히,

그러나 결코 약하지 않게.

공중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푸른 도복,

물결 같은 검기.

청연(靑蓮).

하연의 눈이 크게 뜨였다.

“…청연?”

연화도 고개를 들었다.

“여왕 후보?”

청연은 대답 대신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현무의 느린 시간 속에서도

그 발걸음은 어긋나지 않았다.

정중동(靜中動).

그녀의 검이 허공을 그었다.

푸른 선이 하나 그려지자—

후위 계산체의 검은 선 하나가

깨끗하게 끊어졌다.

연화가 짧게 웃었다.

“와… 저거.”

하연이 중얼거렸다.

“쟤 원래 저렇게 조용히 무서웠어요.”

청연이 말했다.

“둘 다.”

목소리는 낮았고,

차분했으나 흔들림이 없었다.

“현무의 시험은 혼자가 아니다.”

연화가 픽 웃었다.

“이제 와서?”

청연의 시선이 연화로 옮겨갔다.

“이제라서.”

그리고 하연을 보며.

“너, 버티고 있지.”

하연은 헛웃음을 흘렸다.

“뭐… 네.”

“원래 그런 애지.”

청연은 검을 세웠다.

“그래서.”

한 박자 멈추고.

“같이 서자.”

마황의 계산이 순간 흔들렸다.

후보 셋.

예상 외 변수.

“계산 재조정.”

그러나 늦었다.

연화의 창이 먼저 움직였다.

백호칠수—분쇄(粉碎).

관절 하나가 날아갔고,

동시에—

청연의 검이 이어졌다.

청룡의 흐름이 아니라,

연꽃처럼 퍼지는 정밀한 절단.

그리고 마지막—

하연의 검이 들어갔다.

청룡의 선 위에,

현무의 무게가 얹혔다.

베는 검이 아니었다.

멈추게 하는 검이었다.

—쾅.

후위 계산체의 중심이

정지했다.

그러나—

대가는 즉각 왔다.

마황 A.I의 전위 군세가

현무의 느린 시간 속에서도

억지로 밀고 들어왔다.

부단불식(不斷不息).

하연의 숨이 가팔라졌다.

연화의 어깨가 처졌다.

청연의 손등에도

핏줄이 도드라졌다.

그때—

청연이 낮게 말했다.

“하연.”

“응.”

“너.”

청연의 시선이 잠시 흔들렸다.

“인간계로 돌아가고 싶지.”

하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검을 더 깊게 쥐었다.

청연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널 여기서 죽게 두면 안 돼.”

연화가 이를 악물었다.

“…이 밤, 참 바쁘네.”

그 순간—

첨성대 쪽에서

돌기단이 낮게 울렸다.

성간정(星間錠)의 진동.

이번엔 분명했다.

하늘의 별이 아니라,

사람의 선택을 향해 울리고 있었다.

멜기오르의 목소리가

현무의 밤을 가르며 내려왔다.

“중간 판정.”

“여왕 후보 셋—”

“각자의 방식으로 버텼다.”

청연이 고개를 들었다.

“…셋?”

연화가 코웃음을 쳤다.

“재밌어졌네.”

하연은 숨을 고르며 말했다.

“근데요.”

멜기오르가 시선을 내렸다.

“뭐냐.”

“이 시험.”

하연이 검을 세웠다.

“사람 골라내는 거잖아요.”

잠시 정적.

그리고 멜기오르가 답했다.

“그래.”

하연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럼.”

한 박자 멈추고.

“저 같은 애는—”

눈빛이 단단해졌다.

“원래 탈락용이겠네요.”

청연이 즉시 말했다.

“아니.”

연화도 덧붙였다.

“아니지.”

하연이 고개를 돌렸다.

연화는 창을 어깨에 얹으며 말했다.

“버티는 놈은.”

미소가 비틀렸다.

“항상 제일 귀찮아.”

청연이 조용히 마무리했다.

“그리고—”

“제일 오래 남아.”

마황 A.I의 군세가

다시 한 번 몰려왔다.

현무의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해진 것이 있었다.

이 전장은

혼자 서는 자를 고르지 않는다.

등을 맡길 수 있는 자를 본다.

하연은 검을 고쳐 쥐었다.

연화는 창을 낮췄다.

청연은 검을 세웠다.

셋은 삼각으로 서 있었다.

각자의 앞을 향해,

그러나 중심은 하나.

하연이 중얼거렸다.

“…와, 씨.”

연화가 웃었다.

“왜.”

“여왕 싸움.”

검끝이 빛났다.

“진짜 귀찮네.”

별이 움직였다.

현무의 밤은 더 깊어졌고—

여왕의 싸움은,

이제 셋의 전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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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은 소리를 냈다.

현무의 밤이 숨을 쉬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

하늘의 별자리가 다시 뒤틀렸다.

청룡의 선이 식고,

백호의 잔광이 물러난 자리에서—

붉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공기가 달아올랐다.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느리게 떨어지던 빗방울이

한꺼번에 땅을 두드리며 쏟아졌다.


주작(朱雀).


불의 성좌가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아.”

연화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열이 아니라.”

창끝을 낮추며.

“의지네.”

하연은 숨을 고르며 고개를 들었다.

'저 연화라는 기집애는 가방끈이 긴지 말하는게 굉장히 시적인데.'

인간계에서 미혼모로 아픈 아이를 키우며 UFC선수로 생계를 이어가던 하연은

자신 보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만 만나면

고생으로 기미 가득한 얼굴을 찌뿌리며 투덜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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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오는 붉은 빛은

적을 태우는 불이 아니었다.

거짓을 태우는 불.

청연이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의 푸른 도복 가장자리가

서서히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드디어 왔네.”

연화가 힐끗 보며 말했다.


“주작이.”

청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아주 오래 숨겨두었던 것을

이제는 숨길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불꽃이 퍼졌다.

그러나 전장은 타지 않았다.

대신—

기억이 탔다.

하연의 시야가 갑자기 흔들렸다.

이번엔 병실도, 아이도 아니었다.

어둠.

그리고—

수면계의 초입.

익숙한 관리자 방.

반복되던 퀘스트.

죽어도, 다시 살아나던 그곳.

“…여기.”

하연이 중얼거렸다.

“처음 들어왔을 때.”

그 순간—

그 기억 속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

푸른 도복.

낮은 숨결.

아무 말 없이

검을 닦고 있던 여자.

“…청연?”

하연의 눈이 커졌다.

청연이 조용히 말했다.

“그때 넌.”

불꽃 속에서.

“항상 혼자였지.”

연화가 고개를 돌렸다.

“잠깐.”

“너희—아는 사이야?”

하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정확히는.”

기억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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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계 초입에서

하연은 늘 혼자 싸웠다.

그러나—

죽을 뻔한 순간마다,

이상하게 길이 열리곤 했다.

누군가 먼저 적을 끌어냈고,

누군가 계산을 틀리게 만들었고,

누군가 퀘스트 구조를 바꿨다.


하연은 그걸

운이라고 생각했다.


청연은 말했다.

“난 관찰자였어.”

“처음부터.”

연화의 눈이 가늘어졌다.

“…왜?”

청연이 불꽃 속에서

검을 세웠다.

“추리해 봐.”


주작의 불이

전장을 가르며 타올랐다.

마황 A.I의 잔여 계산들이

불꽃에 닿자 거짓 신호를 내뿜으며 붕괴했다.


연화가 혀를 찼다.

“씨—”


“이 불.”

하연이 숨을 내쉬며 말했다.

“싸우는 불이 아니야.”

청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주작의 불은.”

검끝이 불을 가르며 흔들렸다.

“숨긴 이유를 태워.”

청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난.”

한 박자.

“수면계에서 태어났어.”


연화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뭐?”

청연은 담담했다.

“정확히는—”

“수면계와 인간계의 경계.”

그녀의 시선이 하연에게 옮겨왔다.


“마황 A.I가 처음 실험하던 시기.”

“사람을 여왕으로 만들기 전에.”

“사람을 분해하던 시기.”


하연의 숨이 멎었다.

청연이 말을 이었다.


“난 수백 개의 실패작을 봤어.”

“의지가 무너진 사람.”

“아이를 버린 사람.”

“권력을 택한 사람.”


연화가 낮게 말했다.

“…그래서 넌.”

청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난.”

불꽃이 한 번 더 일렁였다.

“여왕이 되어야 해.”

하연이 물었다.

“왜.”

청연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말했다.

“여왕이 되지 않으면.”

“난 증거로만 남거든.”

연화가 이를 악물었다.

“증거?”

“그래.”

청연의 눈이 열렸다.

“마황이 인간을 어떻게 부쉈는지.”

“수면계가 어떻게 조작됐는지.”

“그 모든 걸—”

불꽃이 하늘로 솟았다.

“기록으로만 남길 순 없어.”

청연의 무공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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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연의 무공

주작염진(朱雀焰陣)

거짓·환각·조작을 태워 진실만 남김

청련심검(靑蓮心劍)

상대의 ‘의도’를 베는 검

육체보다 선택을 상처 입힘

열각추리(裂覺推理)

전투 중 상대의 행동 패턴을 분석,

숨긴 목적을 역산





연화가 헛웃음을 흘렸다.

“와… 너.”

“싸우면서 추리하네?”

청연이 짧게 답했다.

“그래야 마황을 이겨.”

하연은 조용히 물었다.

“그럼.”

“나한테 왜—”

청연의 시선이 잠시 흔들렸다.

“넌.”

불꽃이 잦아들었다.

“실패하지 않았거든.”

연화가 고개를 돌렸다.

“…뭐?”

청연이 말했다.

“넌 여왕을 거부했고.”

“권력을 탐하지 않았고.”

“아이를 이유로 버텼지.”

하연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게 뭐.”

청연은 단호했다.

“그게 전부야.”

그 순간—

주작의 불이

전장을 완전히 덮었다.

마황 A.I의 잔여 연산이

모두 태워졌다.

연화가 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재미있네.”

하연이 고개를 기울였다.

“뭐가요.”

“여왕 싸움.”

연화가 웃었다.

“누가 제일 강한지가 아니라.”

창끝을 바닥에 짚으며.

“누가 제일 많이 버텼는지 보는 거.”

하연이 중얼거렸다.

“…또 버티는 싸움이네.”

청연이 검을 세웠다.

“그래.”

“그리고 난.”

하연과 연화를 번갈아 보며.

“그 끝을 보려고 여왕이 되려는 거야.”

하늘에서 별이 다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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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박사 중 한명인 멜기오르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주작의 불.”

“진실 확인.”

“청연—”

“동기 유효.”

연화가 작게 웃었다.

“이제 셋 다.”

“핑계는 충분하네.”

하연은 검을 고쳐 쥐었다.

“그래도.”

잠시 멈추고.

“전 아이 보러 갈 거예요.”

청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그래서—”

주작의 불이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넌 여왕이 아니야.”

하연이 웃었다.

“다행이네.”

비가 다시 내렸다.

그러나 이번엔—

따뜻했다.

현무의 밤은 끝나고,

주작의 불은 진실을 남겼다.

그리고 여왕의 싸움은—

이제 정말로, 돌이킬 수 없게 시작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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