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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혁 Jan 09. 2016

페루 음식 먹다가 후지모리

한 미국 이민자의 편린 시리즈 29

페루를 여행하는 제 1의 목적은 당연히 마추픽추이다.  그다음이 자료에 의하면 여행자들은 페루 음식을 즐기기 위해 페루를 여행한다고 하는데.... 남미 공통의 음식들과는 차별되는 페루 음식은 페루의 다양한 지형 (해안지대, 산간지대, 열대우림지대)과 다양한 인종 (페루  인디오에서부터 식민지 시대 유럽인들, 그리고 강제 이주된 아프리카인들과 이후 유입된 중국인) 들의 문화가 섞여 그만큼이나 다양한  재료와 다양한 맛의 음식을 만들어 냈다. 



안데스에서 생산되는 감자와 고구마, 옥수수는 대부분의 음식에 들어가고 식민지 시대에 전해진 레몬을 첨가하여 만든 음식도 아주 많다. 우리에게는 짠맛이 강한 경우도 있지만 단백한 음식도 많다. 이곳 현지인들도 매운맛을 참 좋아한다. 하지만 음식 자체에 매운맛이 첨가되는 경우가 아니라 항상 매운 소스를 별로로 제공하여 본인의 입에 맞게 즐긴다. 




아침식사는 리마의 경우 바쁜 도시생활에 맞춰 주로 빵과 생과일주스, 햄 등 유럽식으로 먹지만 지방의 경우 밥을 먹는다. 점심식사는 하루 세끼 식사 중 가장 중요한 식사이다. 먼저 Entrada (애피타이저), 그리고 Segundo (본 메뉴, 고기 포함 필수), Postre (후식)을 순서대로 먹는데 항상 전통음료를 식사 내내 마신다. 그리고 저녁은 대부분 본 메뉴 하나로 하루 음식을 마무리한다. 본 메뉴에는 밥이나 스페게티에 꼭 고기를 올려서 나오는데, 고기를 먹지 않는 점심은 점심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페루 음식엔 어떤 것이 있나


페루 대표 음식: 



Aji de gallina 아히 데 가시나 페루의 수도 리마 대표 음식 중의 하나로 온국민과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음식이다노란고추(아히)와 닭고기(가시나)를 섞은 걸쭉한 소스에 밥을 함께 먹는 음식으로 노란 고추가 주재료인 소스인데전혀 맵지 않고 오히려 단맛이 나면서 부드러워 정말 맛있다





Anticucho 안티꾸초  직역하자면 소심장 구이. 그리 달가운 재료는 아니지만 순대와 간을 함께 먹는 우리나라 음식과 비교하면 양호하다소심장을 꼬치로 만들어 우리나라 닭꼬치 굽듯이 구워서 먹는 음식으로 길가에서는 서민들의 음식으로 식당에서는 고급 음식으로도 판매되는 음식인데그 맛이 아주 쫄깃하고 고소하다함께 곁들여 먹는 매콤한 소스가 맛을 더해 계속 먹게 되는 음식인데혹 길가에서 먹게 된다면 잘 구워졌는지 확인!.




Arroz con pato 아로스 꼰 파또 밥에 녹색 허브와 완두콩을 첨하가 여 밥을 짓고 거기에 양념하여 익힌 오리고기와 함께 곁들여져 나오는 음식이다허브향이 강하지 않고 부드러워서 우리한테 거부감이 없는 맛인데이곳 남미로 이주된 아프리카 흑인들의 음식이 기원으로 페루 북부 지방 음식 하면 손꼽는 음식 중의 하나이다




Causa rellena 카우사감자옥수수고구마 등 익혀서 반죽을 한 후  이쁘게 층층이 쌓아 만드는  리마의 음식인데사이사이 역시나 빠져서는 안될 고기를 채운 요리이다맛이 아주 부드러워서 누구나 좋아할 음식이다층층이 쌓을 뿐만 아니라김밥처럼 돌돌 말은 카우사도 있다.  





Ceviche 세비체 :페루 대표음식에 빠져서는 안될 생선요리흰살생선을 잘게 자른 후, 레몬과 양파그리고 소금과 섞고거기에 고구마옥수수와 함께 먹는 요리로 레몬이 들어가 배탈 염려가 없고 새콤달콤한 맛은 중독성이 아주 강하다길가 포장마차에서도 팔고, 점심 식당에  Entrada로 나오지만 역시나 세비체 전문식당에서 먹는 맛이 최고이다생선 세비체, 해물 세비체 등 종류가 다양하지만 현지인들은 생선 세비체를 선호한다.  

 




Cuy 꾸이 토끼도 아닌쥐도 아닌 그 중간의 작은 동물인 꾸이머리까지 튀겨나오는 음식으로 모든 외국인들이 혐오하지만 꼭 한 번은 시도해보는 음식맛이 없다는 평가는 들어본 적이 없다우리나라 보신탕처럼 보신용으로 먹는 게 기원인듯한 음식으로 산간지방(아레키파와라스쿠스코)에서 많이 먹는 음식이다.  

 




Chupe de camarrones 츄파 데 카마로 네스 큰 가재새우들를 얻은 해물 수프로 아레키파 대표음식이다수프이지만 큰 가재 새우들이 배를 가득 채워주는 주메뉴 음식으로 현지인들에게도 특별식 일만큼 별미이고 가격이 약간 높은 음식이다가끔은 점심 메뉴에 등장하기도 하므로 아레키파 여행 중 오늘의 메뉴에 '츄페 데 카마로 네스'가 나왔다면 주저 말고 시도해보길물론 정식으로 시켜먹는 방법이 가장 좋지만.





Lomo saltado 로모 살타도소고기 볶음과 밥그리고 감자튀김이 함께 나오는 음식으로  Chifa라는 중국집 메인 메뉴이다. 겉은 중국집이지만 페루 음식을 중국인 요리사가 재창조한 스타일로 우리나라 짜장면집과 같은 개념이다.(짜장면이 한국음식이듯). 모든 중국집에서 취급하여 아주 흔한 음식인데 실제 정말 맛있는 로모 살 타도는 흔하지가 않아꼭 현지인 추천을  받아먹어 보기를 바란다정말 맛있다

 




Pollo a la brasa 뽀요 아 라 브라사리마는 닭고기를 빼면 음식을 논할 수가 없을 정도로 닭을 많이 먹는다그중 가장 대중적이고 우리 입맛에 아주 잘 맞는 음식이 바로 닭 훈제고기. 훈제하여 익혀서 기름기가 없이 단백하고여기에 매콤한 살사를 곁들여 먹으면 정말 별미인데같이 나오는 감자튀김도 정말 맛있다고칼로리 음식으로 여행 중 지친 몸을 달래기에 아주 좋고현지인들에게는 살찌기 정말 좋은 음식이다역시나 함께 먹는 음료로는 잉카 콜라가 최고다참고로 코카콜라가 성공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가 페루다바로 잉카 콜라 때문에...  

 


가디나 시에 위치한 페루 음식점을 가보았다.



식당 분위기가 어두컴컴하고 밤에는 가라오케도 한다는 광고와 무대가 갖추어져 있다. 역시 남미인들은 음식을 즐기면서 먹는다.










역시 로모 살타도(위의 사진)가 이 페루 식당에서도 최고로 맛있다. 






페루라고 하면 난 후지모리 일본계 전 페루 대통령이 생각난다. 




알베르토 후지모리 후지모리 Alberto Fujimori Fujimori (1938년 7월 28일 ~  )는 페루의 전직 대통령(제90대)이자 정치인으로 1990년 7월 28일부터 2000년 11월 22일까지 페루의 대통령을 지냈다. 


후지모리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일본계 이민 2세다. 그의 부친은 1934년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 카와치 시에서 이민선을 타고 페루로 갔다. 


일본인의 페루 이민의 역사는 길다. 1898년 7백49명의 일본인들이 리마시 교외 목화농장에 취업한 것을 효시로 일본인들이 속속 바다를 건너갔다. 일본인들은 양목 업, 화훼업, 광산업 등을 통해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현재 10만명 이상의 일본인들이 기업체, 농장, 호텔, 식당 등을 경영하며 탄탄한 경제력을 구축했다. 


후지모리는 이민 초기 부친이 막노동을 전전하는 궁핍한 가정환경 속에서도 모범적인 우등생으로 성장했다. 61년 국립 리마 농과대학 농공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미국 위스콘신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도 농학을 공부했다. 귀국 후에는 모교인 리마 농대의 교수로 있었고, 84년부터 대통령에 출마하기 직전인 89년까지는 학장을 지냈다. 80년대 중반 전국 대학협의회 회장과 국영 TV 방송사 대담 프로그램의 사회자를 맡기도 했던 그는 페루가 처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다 뜻을 같이하는 대학교수와 전문직업인들을 중심으로 사회변혁 운동단체를 조직했다. 그는 89년 11월 이 단체를 「깜비오 90」(개혁 90)이라는 정당으로 등록해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파산 직전의 페루를 살려보겠다는 것이 출마의 변이었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던 3 에이커의 땅과 집을 팔아 선거자금으로 충당했다. 트럭을 개조한 무개차에 연단을 싣고 농촌과 고지대 빈민가를 돌아다니며 한 표를 호소했다. 부인과 2남 2녀도 선거운동에 헌신적으로 뛰어들었다. 페루 국민들은  이때 묻지 않은 정치 신인을 지지했다. 전체 인구의 85%에 이르는 인디오(45%)와 메스티소(백인과 인디오의 혼혈-7%), 그리고 흑인 및 동양계 이민자들(3%)은 그가 스페인 정복자의 후예인 백인이 아니라는 점에 호감을 보였다. 이전의 백인 대통령들에 의해 저질러진 실정(失政), 대를 이어 기득권층으로 군림하는 소수 백인들에 대한 반발이었다. 후지모리의 생일이 페루가 스페인 통치로부터 해방된 독립기념일(1821년 7월 28일)과 같다는 점도 묘한 기대심리를 불러일으켰다. 잉카제국이 받들던 태양신의 후예가 태양의 나라 일본에서 건너왔다는 식의 우스갯소리가 나돌기도 했다. 


90년 6월 10일, 후지모리는 마침내 「우익 민주전선 연합」이 내세운 마리오 마르 가스 요사 후보를 결선투표에서 누르고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대통령 재임 초반 그는 페루의 경제 발전에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를 받았으나 의회를 무력화시킨 내부 쿠데타와 권위주의 통치 방식, 인권 탄압 등으로 지지를 잃다가 자신의 영구 집권을 위한 헌법 개정을 위해 야당 의원을 돈으로 매수하는 장면이 찍힌 비디오가 공개되자 일본으로 도주하였다. 일본 정부는 페루 정부의 범죄자 송환 요구를 거부했으며, 그를 보호하기도 하였다. 


그 후 그가 한 업적들보다 추악한 진실이 곧 속속히 드러났는데 출생지부터 의혹이 발생했다. 그는 1938년 일본 구마모토 현에서 이주한 부모 사이에서 리마 미라플로레스 지구에서 출생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야당 등 일각에서 그의 출생 기록에 원래 출생지가 지워지고 그 위에 다른 글씨로 조작된 흔적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페루 헌법은 페루에서 출생한 사람만이 대통령에 출마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조작한 것이다. 또한 페루의 신문 보도에 따르면 1934년 입국한 그의 모친인 무츠에 이노모토 데 후지모리는 페루로 입국할 때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고 신고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후지모리는 그녀의 네 자녀 중 둘째이다. 이러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정식 조사가 이루어진 경우는 없다. 후지모리의 국적에 대해서도 그의 아버지인 후지모리 나오 이치가 페루 주재 일본 영사관에 일본 국적을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힘에 따라 자식인 한 나라의 대통령이 이중 국적을 보유하는 일이 벌어졌었다. 후에 후지모리의 이중 국적 보유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가 그가 일본으로 도피한 이후 일본 정부가 그의 일본 국적 보유 사실을 근거로 범죄자 송환 요구를 지속적으로 거부해 페루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아래는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의 경력..


1990년 캄비오 90(Cambio란 변화란 뜻의 에스파냐어)이란 신당 소속으로 페루의 세계적인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를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주로 요사의 신자유주의적 긴축정책에 불안을 느끼고 있던 빈민층의 높은 지지도와 에스파냐계 정치 엘리트들과 무관한 일본계라는 사실 등이 강점으로 부각되었다.


1990년 7월 28일, 페루의 대통령에 취임한 후 인플레이션 억제와 재정적자 해소에 중점을 두고 경제 재건에 착수, 1990년 9월 국제 금융 사회에 복귀하였다. 그러나 개혁에 미온적이던 국회와의 잦은 마찰로 인해 후지모리는 1992년 4월 군부 친위 쿠데타를 통해 의회를 해산시켰으며, 1993년 12월에는 신헌법을 발표해 재선의 가능성을 마련하였다. 1995년 1월 국경 지역에서 에콰도르와의 충돌이 일어나자 군사를 동원해 케네파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1995년 4월 유효표의 64.2%를 얻어 전임 유엔 사무총장이던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를 물리치고 재선에 성공한 뒤에도 계속 초긴축정책과 외자 유치로 8000%까지 치솟던 인플레이션을 안정시키는 한편, 30년 넘게 활동하던 게릴라 조직을 정말 진압함으로써 정치적 안정도 달성하였다. 그러나 권력에 너무 연연하여 1996년 8월에는 후지모리 자신이 2000년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할 수 있는 헌법 해석법을 국회에서 가결시켜 대통령의 3선을 막는 제도적 장치를 제거하였고, 이후 숱한 부정을 저지르면서 정권 연장에 전념하였다.


2000년 4월, 3선에 도전해 알레한드로 톨레도 후보를 제치고 1차 투표에서 49.89%의 지지를 얻었으나 과반수에 실패한 뒤 재투표에서 51.2%의 득표로 3선에 성공, 그해 7월 28일 취임식 당일에 대규모 데모로 인해 국립은행 경비원 6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어 11월에는 당시 국가정보부장이던 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Vladimiro Montesinos)가 야당 의원을 돈으로 매수하는 장면이 담긴  비디오테이프가 공개되면서 수도 리마와 이키토스, 쿠스코 등 페루 주요 도시에서 사퇴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 결국 실각해 일본으로 도주하였다.


이후 후지모리의 집권 기간 동안 일어났던 각종 비리와 약점들이 드러나 사법과 언론 장악, 의회 강제 해산, 1995년 선거 과정에서의 야당 후보 도청, 3선 연임을 위한 변칙적 법률 승인, 2000년 선거에 행해진 유권자 수천 명의 명부 조작, 국고 유용, 헌법상 투표권이 없는 군인과 경찰의 신분증 위조 발급 등 비리로 인해 집권 10년 만에 권좌에서 물러났다.


후지모리는 일본의 보호 아래에 5년 간 도피 생활을 했고  그동안 2000년 11월 ~ 2001년 7월까지 발렌틴 파니아과가 임시 대통령으로 국정 수행하다가 지난 선거에서 후지모리에게 패했던 알레한드로 톨레도 후보가 대통령으로 올랐다.


2005년 11월에 페루에서의 정치적 부활을 타진하기 위해 칠레로 입국했다. 이에 칠레 당국은 그를 주요 범죄자로 체포, 구금하였고 그는 보석으로 풀려났다. 칠레 당국은 국외도주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그를 가택 연금했다.


그러다가 최근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우정개혁에 반발하여 자민당을 탈당한 의원들이 결성한 보수신당인 국민신당의 가메이 시즈카 대표로부터 참의원 선거 출마를 제의받고 이를 수락, 2007년 7월 29일 참의원 선거에 국민신당 소속 비례대표로 출마하여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이중국적의 전직 국가원수가 타국의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지만, 일본 국적 보유자이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아소 다로 당시 외무장관은 그의 일본 입국을 불허하여, 그는 계속 칠레에 머물 수밖에 없었고, 국민신당도 많은 표를 얻지 못하여 결국 낙선하였다.


2007년 9월 22일 칠레 대법원은 그의 신병을 페루로 송환하기로 결정,  그다음날 곧바로 페루로 인도되어 수감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페루에는 그를 지지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1월 3일에 페루 대법원이 그에게 징역 25년형을 선고 확정하였다.  -위키백과에서 발췌






그러다가 최근에는 그의 딸 게이코 후지모리가 2016년 페루 대선에 출마한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페루 주민들은 후지모리 이후 얼마나 그동안 정부한테 시달렸는지 후지모리의 딸을 다시 대통령으로 선택하려고 한다.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은 죗값을 받고 페루 감옥에 있지만 그의 모습을 통해 일본인들의 성향 ( 수틀리면 자기 나라로 숨어 버리는 - 그러니까 자기보다 더 힘이 있는데 무조건 붙어 버리는 )을 조금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음식은 맛있지만 페루 토착 원주민들은 미국과 일본 그리고 부패한 정부들을 상대로 아직도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데 안쓰럽다.  


페루 음식을 먹다가 생각해본 오지랖 같은 글이네 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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