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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혁 Jan 21. 2016

응답하지 마라 1988

한 미국 이민자의 편린 시리즈 36

요즘 응답하라 1988 이란 한국드라마가 유행이다. 나에겐 1980년대 후반이 가족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온 연도라 드라마가 참으로 관심이 가서 시청해 보았다. 기억을 되살려 보면 당시 한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개최로 1989년도 부터 해외 여행 자유화가 되어 은수저 가진 분들에게 전유물이였던 해외여행이 일반인들에게도 문이 갓 열린 시기여서 미국에 대한 환타지가 존재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막상 미국에 와서 놀랐던 것이 바로 이곳 우리 교포들의 생활수준이었다. 미국에 산다고 하면 왠지 사람들의 패션감각도 높을 것 같고, 삶의 질도 높을 것 같고, 향유하는 문화도 훨씬 세련되어 있을 것으로 알았었는데 와서 보니 정 반대였던 것이다. 옷차림도 촌스럽기 짝이 없고, 삶의 질이나 문화생활도 오히려 한국보다 열악하고, 첨단 기계엔 아예 문맹이고..^^;;


LA 코리아타운의 첫인상은 1970년대 한국의 지방도시 같았다. 전반적으로 촌스럽고 너저분했었다. 코리아타운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 자체가 창피스러울 만큼 낙후되어 있었다. 


일단 남가주에 처음 도착하면 제일 먼저 먹게 되는 음식이 중국음식이다. 그리고 여유가 되면 디즈니랜드 가고 아니면 주말엔 산타 모니카 비치나 레돈도 비치에 가게 되는데 아래는 최근에 가본 레돈도 비치이다.




요즘 레돈도 비치는 저 멀리 보이는 다리를 새로 공사해서 더 볼거리가 많아 졌다. 



예전엔 레돈도 비치에 가면 악착같이 한국횟집을 찾아 갔었는데 이젠 다른 외국음식점도 기웃거리게 된다. 

‘남의 식탁을 간섭하지 말라’

우리나라의 개고기 동호인들이 매년 복날이면 LA영사관앞에서 개고기 먹지 말라고 시위하는 외국인들의 비난을 반박하는 말이다. 우리도 니네들 식탁을 간섭하지 않으니 니들도 간섭하지 말라는 말이다. 나도 사실 한국에 있을 때는 개고기를 먹은 적이 있고 , 쏘피아 로렌이라는 늙은 여배우가 시시콜콜 트집을 잡고 시비를 거는걸 못마땅하게 생각했었다. 개고기는 안된다면서 소고기는 왜 되는건데? 달팽이까지 삶아서 먹는 것들이..

그러다 미국에 와서 백인들이 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알게 되면서 흠칫했다. 사람이 개를 먹는다는 건 사람이 사람을 먹는다는 것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야만적인 행위로 여김을 알게 된 것이다. 그게 그들의 문화다. 다른 사람이 소름끼치게 싫어하는 일을 우리가 하고 있다면 그런 사람이 많은 곳에선 안 하는 것이 백번 맞다. 개고기 문화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사람들이 다수인 지역에서는 개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맞다. 그게 모여 사는 세상에서의 예의이고 함께 살아가는 요령이다. 여자아이들의 클리토리스를 마취도 없이 도려내어 버리는 문화를 가진 아프리카인이 미국에서도 그런 일을 한다면 우린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냥 그들 고유의 문화라고 존중해 주는가? 아니다. 지극히 야만적인 관습이라고 여긴다. 

글로벌 시대에 다른 나라 사람들이 끔찍하게 싫어하는 관습이 우리에게 있다면 그걸 지혜롭게 삼가해야 맞다. 살아가는 데에 큰 지장이 있는 거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건 바로 버리는 게 맞다. ‘남의 식탁을 간섭하지 말라’고 무식하게 버틸 일이 아니다. 대대손손 우리나라 사람들끼리만 살아 갈 지구가 아니다. 잘못하다간 영원히 야만적인 족속으로 낙인찍히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 와서 살면 대다수 미국인들의 눈 높이에 맞춰서 생활하는 게 맞다. 내가 좀 불편하더래도, 내가 좀 어색하더라도 그들의 문화에 맞춰서 행동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 많다. 물론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다.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 중국인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지만 한국인들도 과히 뒤지지 않는다. 목불인견 꼴불견들이 너무 많다. 동족인 내가 보아도 피가 치솟을 정도로 막무가내 무식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교포들의 모습.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떠나온 그 해 한국의 모습에서 딱 정지해 있다고 보면 된다. 1980년에 한국을 떠난 사람은 1980년의 그 모습으로, 1995년에 한국을 떠난 사람은 1995년에 멈춰서 있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인해 정보의 획득과 습득이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캐나다나 호주는 어떤지 모르지만 이곳엔 보다 나은 삶을 찾아 떠난 ‘웰빙형’ 이민보다는 한국에선 살기 어려워 떠나온 ‘생계형’ 이민이 대다수라서 그런것 같다. 


대단히 민감한 이야기이지만 그래서 유학형 이민을 제외한 다른 한인교포들의 질이 매우 낮다고 볼 수 있다. 소위 민도가 몹시 떨어지는 것이다. 한국에 사는 보통의 중산층 한국인들의 수준에 비할 바가 아니다. 1970년대 지방 소도시의 수준과 비슷하다. 살아가는 모습이나 생활수준이나 정신수준이 그렇다. 이곳의 한인들은 모든 면에서 30년은 뒤져있어 보인다. 


나도 이런 사람들 속의  ‘코리언’으로 되어있다.


아래는 내가 미국을 살아오면서 본 LA교민의 민도이다. 


- 잠시 들른 관광객이라면 모를까 이곳에 살려는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영어는 기본이다. 근데 미국의 한인중에는 영어를 ‘단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주로 장년층 이상이다. 이렇게 영어를 전혀 못 하고 못 알아듣는 한인이 통역도 없이 찾아와서 미안한 기색도 없이 무조건 한국말로만 이야기를 하면 상대방이 당연히 짜증이 난다. 


- LA 근교의 골프장에 이런 안내문이 붙어있다. ‘내기골프 금지’ 한글로 말이다. 한인들이 내기골프를 하다가 필드에서 골프채를 휘두르는 폭행사고가 나서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이 났었다고 한다. 한글 안내문은 이뿐만이 아니다. 출입금지 지역에 들어가 하도 약초를 많이 캐어가는 바람에 ‘입산금지’, 전복을 너무 따가는 바람에 ‘전복채취금지’ 이런 한글 안내문들이 은근히 많다. 그래서 관련된 사람들에게 한인들은 공포의 대상이다. 


- 김치찌개에 밥을 말아 먹고선 이도 닦지 않고 말을 하니 냄새가 진동을 한다. 


- 한인 노인들의 트레이드마크인 남루한 회색 잠바 차림에, 담배에 찌들은 몸냄새에, 얼굴은 늘 화난 사람처럼 굳어 있고, 실례한다거나 미안하다거나 고맙다는 말은 전혀 할 줄 모른다.


-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사람이 아직 내리지도 않았는데 늘 먼저 타거나, 같이 타고 가자고 뛰어오는 사람이 있는데도 빤히 그 얼굴을 보며 그냥 올라가는 사람이 있다. 


- 식당에서 뛰어다니는 한인 아이를 식당 종업원이 주의를 주고 그래도 그 부모들은 주의를 주지 않는다.


- 아파트에서 문을 활짝 열어놓고 청국장을 끓여 먹고 문을 활짝 열어놓고 한국 드라마를 크게 틀어놓고 있는다.


- 새벽까지 친구들을 불러서 집에서 술 마시며 노래방기계 틀어놓고 요란하게 떠든다. 


- 난폭운전을 밥먹듯 하고, 잠시라도 지체되는 차가 있으면 요란하게 경적을 울리고, 창밖으로 피우던 담배꽁초를 튕겨버린다


- 건물내 금연을 어기고 몰래 담배를 피워오다 적발되기 부지 기수다. 


- 내가 보기에도 싸가지 정말 없고 싸이코인 한인 아줌마가 직장에 반드시 있다. 


요 근래에 보았던 기억들을 중구난방 열거해 보았다. 이삼십년전 한국에서도 볼까 말까 했을 이런 볼썽 사나운 장면들을 아직도 여기선 많이 본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당사자들은 이런 일들을 인종차별이라고 우긴다는 것이다.





미국에 인종차별은 분명히 있다. 영어도 네이티브 수준이고 에티켓도 완벽한데도 차별을 당했다면 그건 정말 인종차별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인종차별이 아니다. 우리가 모자라서 당한 개인적 사건이다. 이렇게 우리가 인종차별이라고 흥분하는 사안의 90% 이상은 분명 언어와 문화의 차이, 에티켓의 부재, 성격결함에서 비롯된 개인간 트러블이다. 그저 내가 황인종이기 때문에 당하는 차별은 기실 별로 없다는 뜻이다. 이런 ‘개인간의 트러블’을 인종차별이라고 확대하는 건 억지이며 착각이다.




영어 쓸 생각을 전혀 안하고 있거나, 서구 문화에 전혀 합당치 않는 생활을 계속 하거나, 비 문명적 행동을 일삼는 사람은 당연히 따돌림을 당한다. ‘한국에선 원래 다 이렇게 살아’ 할게 아니라 남의 나라에서 살고 있는 만큼 그들을 신경쓰고 그들의 느낌을 배려해서 행동해야 한다. 


그게 싫다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가 한국인임을 부끄럽게 생각했었습니다.’

하인즈워드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 말에 의아해 한 분들이 상당히 많으셨을 줄 안다.
머? 한국인임을 부끄러워 했었다고? 우리 피 반이라도 섞인 걸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 그걸 부끄럽게 생각했었다고? 물론 좀 특별한 혼혈이라는 것에 대한 여러가지 복잡다단한 심정이 있었겠지만 솔직히 충격적이다. 미국에서 한인들의 위상이 그대로 드러나는 한마디였다. 우리들은 흑인들을 한참 저 아래로 보고 있는데, 막상 흑인들은 우리들을 한참 저 위로 전혀 보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오히려 흑인들이 우리 한인들을 아래로 보고 있다는 말 아니든가? 흑인들마저.. 우리가 깜둥이라고 무시하던 흑인들마저 말이다. 착잡하다.



흑인을 가장 혹독하게 차별하는 백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WASPer 들일까? 아니다. 흔히 White Trash라고 일컬어지는 빈민 백인층들이 인종차별이 더 심하다. 백인주류로부터 느끼는 소외감 때문에, 그들은 기타 집단에 대해 더 편파적이고 더 극단적인 차별을 하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리고 주류로 편입되고 싶은 욕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속된 말로 ‘별 꼴 같잖은 것들이’ 그러는 것이다.

흑인들의 무례한 행동도 종류는 다르지만 이것과 비슷하다고 보여진다. 백인들에게, 또 부유한 동양인들에게 느끼는 좌절감과 적대감을 영어 미숙한 신규 이민자들에게 화풀어버리는 거. 맘껏 지껄여도 대응이 없으니까 만만한거다. 

왜 유독 한국인들이 흑인들의 타겟이 될까? 
‘무식하고, 예의범절 모르고, 부도덕하고, 자기 이익만 챙기고, 돈 좀 있다고 없는 사람 깔보는 ugly민족’이 바로 한국인들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LA 폭동도 원래 한국인들과는 관계없는 사건에서 촉발된 것이었다. 그런데도 피해는 한국인들이 고스란히 당했다. 백인들이 ‘은근히’ 차별하는 건 참지만,한인들이 ‘대놓고’ 차별하는 건 참을 수 없었던 흑인과 히스패닉들이 폭도로 변해 한인들을 공격한 것이다. 종업원인 히스패닉들을 노예 부리듯 하고, 흑인들을 개돼지 보듯 경원하던 Ugly Korean에 대한 보복이었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미국 한인 커뮤니티엔 이런 Ugly Korean들이 수두룩하다. 노인들이 그러는 건 그래도 억지로라도 이해는 된다. 못 배웠으니까. 그러나 젊은 사람들이 그러는 걸 보면 피가 거꾸로 치솟는다.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흑인판사가 흑인들을 그렇게 싫어하는 거였다. 그래서 치카노들이 밀입국 멕시칸들을 그렇게 싫어하는 거였다. 같은 인종임이, 같은 민족임이 부끄러웠던 거다. 노력하지 않고 게으른 동족이 미웠던 거다. 변하지 않고 여전히 무식한 동족이 더 미울 수 있음을 알았다.




너무 밥에 국물 한식 찾지 말고 스프에 타이음식도 맛도 보고 그래야 한다. .





케이준 소스에 해산물도 먹어주고....






케이준의 유래 


1620년대에 캐나다의 아카디아(Acardia, 현재의 노바 스코티아 (Nova Scotia))에 이주해와서 살던 프랑스인들이 1755년 이곳을 점령한 영국인들에 의해서 미국 남부의 루이지애나로 강제 이주되었답니다. 그곳에서 프랑스인들이 발전시킨 요리가 케이준이에요. 케이준 요리는 그들의 고향인 프랑스와 새로운 지방에서의 요리법이 합쳐진 형태가 주가 되고 인디언과 스페인의 영향도 더해져서 형성되었답니다. (케이준이라는 이름은 아카디아라는 말이 토착 인디언들에 의해 와전되면서 생겼습니다.)


케이준의 특징 


갑자기 쫓겨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상당히 궁핍한 생활을 했어요. 당장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축들을 충분히 데려온 것도 아니고.. 그래서, 구하기 어려운 버터 대신 돼지의 지방을 쓰고, 고기는 날짐승이나 물고기를 잡아서 보충했지요. 이것을 한 냄비에 몰아넣고 조리를 했답니다. 당연히 고향인 프랑스식의 예쁘고 우아한 요리보다는 좀 거칠고 양으로 승부하며, 거친 재료의 맛을 보완하기 위해 양념을 많이 쓰는 요리가 되었어요.

* 케이준 요리에 많이 쓰는 양념, 즉 케이준 스파이스(cajun spice)라고 알려진 양념믹스는 마늘, 양파, 칠리, (검은)후추, 겨자, 샐러리를 섞어서 만듭니다. 매운 맛이 나서 우리나라 사람들 입에도 잘 맞아요.


케이준의 대표적인 음식 


잠발라야(jambalaya)와 검보(gumbo)입니다. 잠발라야는 일종의 볶음밥인데, 재료는 딱 정해진게 아니고 여러가지 야채와 닭고기, 햄 등이 들어갑니다. dirty rice라고도 해요. 검보는 되직한 스튜로 잠발라야처럼 여러가지 채소와 고기를 넣고 만드는데, 이것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하는 곳을 못 보았습니다. 또한 케이준 팝콘(cajun popcorn)이라는 요리가 있는데, 이것은 얼마전까지 파파이스에서 팔던, 튀긴 크로우피쉬(crawfish)의 원래 이름입니다. 크로우피쉬는 모양은 바닷가재지만 크기는 훨씬 작은 것으로, 케이준 요리에 많이 쓰는 재료랍니다.


-다음






케이준 소스 새우 맛있네..ㅋㅋ

우쨋든…

앞서 말했지만 우린 이미 기득권을 상실했다. 치가 떨리고 분하지만 어쩔 수 없다. 마지막 500년의 못난 조상들 탓에 4,500년 찬란한 모습을 잃고 무너졌다. 지금 와서 마고자를 걸쳐입고 민족 자존을 외쳐봐야 공허한 외침이다.

무식하고, 예의범절 모르고, 부도덕하고, 자기 이익만 챙기고, 무책임한 ‘일부’ 한국인은 정직하며 책임감 있는 ‘일부’ 중국인보다 더 멸시받아 싸다. 백인들에겐 주눅이 들어 굽신거리며 비굴하게 웃다가도 흑인이나 라띠노들에겐 예의 그 거만한 표정으로 ‘한국말로’ 반말을 해대는 한인들은 우리가 사랑하고 감싸줘야 할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가 존중해야 할 사람은 국가나 민족이 같은 '한국인'이 아니라 인종을 초월한 '선량한 사람들'이다. 당신이 개인이기 전에 ‘한국인’이라면, 당신은 한국인이기 전에 '세계인'이다.

인종차별이 싫다면 우리가 변하면 된다. 거창한 얘기가 아니다.


식사 후 이빨 꼼꼼히 닦고, 옷매무시 머리매무시와 냄새에 각별히 신경쓰고, 마주치는 사람에게 인사 잘하고, 사람을 상대할 때 웃는 얼굴을 보여주고, 어디서나 공중도덕 철저히 준수하고, 누구에게나 예의 바르고 친절하고, 없는 사람 무시하지 말고, 있는 사람에게 비굴하게 굴지 말고.. 우리가 어려서 바른생활 시간에 배웠던 이 사소한 것들을 실천하기만 하면 된다. 

더 간단하게 줄여보면….
남이 싫다는 거 '웬만하면' 안 하면 된다. (근데 이거 생각보다 참 반발이 심하다. ^^)
요정도만 고쳐줘도 인종차별이라고 느끼는 수모는 대부분 없어질 것이거늘. 이래도 안되면 그건 어쩔 수 없다. 그건 진짜 대책없는 인종차별이다. 우리가 힘을 키워 세상을 뒤집어 엎는 날까지 참아야 할 숙명이다.

그러니

우물안 개구리 처럼 살던 여행자유화 없던 1980년대 구닥다리 자부심에겐 응답하지 말고

앞으로 미국에서 자랑스런 한국인으로서의 긍지엔 응답하라. 응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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