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미국 이민자의 편린시리즈 54
부부싸움은 부부생활의 윤활유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저의 생각은 교양 있게 싸우고 불필요한 싸움은 예방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다른 두 사람이 100% 싱크로율로 생활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나와 다른 배우자의 기호嗜好에 맞춰주어 피할 수 있는 언쟁은 피하는 것이 좋죠. 신혼부부야 보기에도 귀엽고 상큼한 느낌을 주지만 주야장천 매일 남들 앞에서 부부싸움을 일삼는다면 그건 환경오염입니다.
오늘 포스팅은 아이들도 동물 구경시켜주고 부부끼리도 바람 좀 쐬어보겠다는 일석이조로 예전 한국의 창경원 정도로 생각하고 무턱대고 찾아갔다가는 큰 낭패를 당하기 쉬운 샌디에이고 사파리공원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먼저 이 샌디에이고 사파리 파크에 들어가기도 전에 일차 부부싸움이 시작되기 쉽습니다. 주소를 정확하게 GPS에 넣고 간다고 하더라도 직접 가보면 다른 놀이공원과는 다르게 완전 외딴 컨츄리 사이드에 이 사파리공원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여보? 이 길 맞아? 좀 이상한데..”
표지판은 보이지 않고 끊임없이 펼쳐지는 컨츄리로드에 아무리 차분한 부부라도 초행길에는 반드시 언쟁이 붙게 마련입니다.
이 샌디에이고 사파리공원이 속한 San Diego Zoo Global기관은 1916년에 발족한 단체인데 비영리단체라서 그런지 몰라도 다른 놀이공원보다 야단 스런 거리 표지판이 없어 현관문도 뭐 들어오든 말든 하는 인상을 줍니다.
그리고 입장권을 끊으면서
두 번째 부부싸움의 관문이 열립니다. 사전 지식이 전혀 없으면 도대체 무슨 입장권을 끊어야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카트 사파리는 어른이 80불인데… 아프리카 트램 사파리는 40불이네.. 도대체 뭐가 틀리지? 여보 한번 물어봐.”
그러면 이민 10년 차가 되지 않는 우리 불쌍한 아빠는 더듬거리면서 영어로 티켓 판매원한테 물어보지만 영 시원찮게 가르쳐 줍니다. 티켓 판매원 입장에서는 서비스마다 가격이 틀리다는 것이 당연한데 뭘 더 설명하길 원하느냐는 거죠. 우리 입장에서는 뭐가 좋고 뭐가 나쁘고 하나하나 조목조목 알려주길 원하는데... 뒤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 여유로운 분위기가 절대 아니라 날도 더운데 티켓 판매원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대답합니다.
영 시원찮게 들었으니 아내에게 더 시원찮게 알려줄 수 없는데 대한민국 제3의 성 아주머니들은 남편의 설명에 금방 부화뇌동하죠.. 영어를 그것밖에 못하냐? 차라리 내가 낫지.. 등등
일단 긴 열차 같은 아프리카 트램은 가장 가격이 쌉니다. (어른 하루 $40 )
작은 버스 사이즈의 카트 사파리(어른 하루 $80 )는 그다음인데 각각 가격이 비싼 만큼 동물을 더 가까운 곳에서 사파리를 즐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외줄 케이 플카를 타는 플라이트 라인(어른 하루 $110... 번지 점프 같은 기분을 낼 수 있음)과 공원 안에서 캠핑할 수 있는 서비스(어른 하루 $180)는 각각 이용비용이 따로입니다.
물론 가난한 저는 제일 싼 40불짜리 아프리카 트램 사파리를 구입했는데 2번의 부부싸움을 거치고 약간 기진이 맥진한 저에게 아이들이 이번에 싸움을 걸어주죠. 왜 더 비싼걸 구입하지 않느냐고요…. 이룬..
들어갈 때 지도 하나 달랑 주는데 정말 거대한 숲 속에 길을 잃기 딱 십상입니다. 표지판도 아주 작고 굉장히 불친절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또 제3차 부부싸움이 시작됩니다. 이 길이 맞니 틀리니 그러면서 티격태격하게 되죠.
그런데 길을 걸으면서 동물들을 감상하는데 아주 가깝게 볼 수 있게 되어 있다는 점은 칭찬할만합니다. 동물원에는 사자 , 코끼리 , 기린 , 고릴라 이것만 제대로 보면 되는 거 아닙니까?
저 사자를 보니 서정윤의 시가 갑자기 생각나는군요..
홀로 서기
서정윤
-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된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쪽을 위해
헤매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20분마다 나타나는 이 트램을 타고 공원의 거의 절반인 1800 에이커의 땅으로 들어가서 그곳에서 자유롭게 놀고 있는 동물들을 구경하게 됩니다.
정말 아프리카 평원을 한 군데 떼어 놀 것 같은 광경입니다.
트램을 약 30여 분간 타는데 벌써 부부싸움으로 탈진한 상태라 서로 침묵의 시간으로 돌입하죠. 아니 다음 부부싸움을 위한 휴지기라고나 할까…..
정말 하늘도 푸르고 조용하고 경관도 절경입니다.
그런데 바람에 동물들의 변 냄새가 진동하죠. 구수합니다.
트램 열차에서 내려서 공원의 반은 걸어야 하는데 지도를 따라 이런 오솔길을 걸어야 합니다.
마치 하이킹을 연상시키는데
여기서 또 부부싸움을 반드시 하게 되죠. 하이킹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기에 자동차만 모는 남가 주인들은 금방 체력이 바닥을 치게 되면서 짜증이 유발되기 때문입니다.
여름에 여길 방문하면 뜨거운 온도와 동물들도 더워서 그늘에 숨어버리기에 기껏 힘들게 동물 우리를 찾아가 보면 동물 그림자도 못 찾게 됩니다. 이런 걸로 약간 가벼운 부부싸움이 예상되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번에 찍은 최고의 사진
유유자적 길을 걷는 코끼리는 팔랑귀를 가진 우리네 인생을 뜻하고
그 위의 그런 코끼리를 지켜보는 파란 하늘은 조물주를 뜻하죠..
손에 동물원 지도 같은 것을 들고 오솔길을 헤매면서 걷는 것이 정말 우리 인생을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어제 신문에 과거 앵커였던 방송인 백지연 씨의 기사가 인상이 깊어 그대로 옮겨봅니다.
-최근 발간한 '크리티컬 매스' 어떤 책인가
"나의 7번째 책이다. 지식이 아닌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서 썼다. 그동안 인터뷰를 하면서 가슴을 쿵! 머리를 환하게 했던 순간들이 있다. 이런 경험을 혼자 가지고 있기 아까웠다. 공유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사회적 공헌이라고 생각한다. 크리티컬 매스는 물리학 용어로 임계질량을 의미한다. 핵분열성 물질이 어떤 일정한 수준에 이르러야 비로소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성공이라는 말은 좋아하지 않는다. 이 세상은 성공과 실패를 너무 쉽게 단정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건 의미 있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크리티컬 매스다. 이들의 크리티컬 매스는 정말 소름 끼치게 똑같았다. 살면서 우리는 크리티컬 매스의 단계를 수없이 지나치고 있다. 조금만 더하면 되는데 그 앞에서 멈추고 아예 시도도 안 할 수 있다. 억울하지 않은가!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크리티컬 매스를 통해 인생의 핵심가치를 말하고 싶었다."
-크리티컬 매스를 뛰어넘었나.
"인생은 허들 넘기라고 생각한다. 이 고비만 넘으면 다른 장애물은 없겠지 하고 기대하지만 아니다. 허들은 끝없이 놓여있다. 나에게도 수많은 크리티컬 매스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숙제라는 표현을 많이 하는데 앵커 여성 딸 엄마로서의 숙제를 잘 해내고 싶다. 항상 이게 최선인가? 가식은 없나?라는 자문을 끝없이 한다. 아직 인생의 과정에 있다. 앞으로 이 과정을 최선을 다해 걸어나갈 것이다. 인생의 벽돌 쌓기를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다.
아무런 고난이나 고비가 없는 인생이 어디 있을까요.
티격태격 부부싸움을 하면서도 같이 동행해가는 길이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렇게 고릴라처럼 홀로가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 참 행복이죠.....
하여튼
부부싸움을 각오하고 자연을 하루 만끽하시고 싶으신 분은
남가주 최고의 장소를 이 샌디에이고 사파리파크를 강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