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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패드로 햄버거 주문

한 미국 이민자의 편린 시리즈 57

스티브 잡스가 돌아가신지 시간이 흘렀습니다만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가운데,

제가 사는 서식처에 아이패드로 음식을 오더 한다는 식당이 있어 한 번 가보았습니다.  

STACKED

3525 W. CARSON ST STE#172

TORRANCE, CA 90503

T: 310-542-5068 

애플 제품의 쌈빡한 디자인이 연상되는 인테리어의 식당입니다. 

테이블마다 이렇게 아이패드가 놓여 있습니다. 크레딧카드로 아이패드 옆부분을 먼저 긁어주면 ( 데빗카드는 $2 수수료가 붙는  듯합니다. ) 작동시킬 수 있는데 식사 후에 긁은 크레딧으로 계산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도 계산할 수 있습니다.    

스크린에  따라먹고 싶은 종류 (햄버거, 피자, 샌드위치, 핫도그가 주 메뉴입니다)의 음식을 골라 넣고 싶은 토핑이나 재료를 입맛에 따라 드실 수 있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제가 고른 메뉴는 블랙 앵거스를 마치 떡갈비식으로 만든 고기를 넣어 만든 햄버거입니다. 

베이컨과 양파와 버섯을 올리브유에 볶은 것으로 넣고… 햄버거 번은 잡곡빵에서 골라 주문했는데 맛이………정말 좋습니다. 최근 먹은 햄버거 중에 으뜸입니다. 

식사 중간에 매니저가 와서 인사도 하고 종업원들이 발랄하고 친절합니다. 

영어가 미숙해서 백인들처럼 까다롭게 이거 빼고 이거 넣고 입맛대로 주문하기 힘들었던 분들에게는 아주 편리한 식당입니다. 

일단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넣어 먹으니 맛이 있을  수밖에 없겠죠. 

비싼 컴퓨터를 각 개인 가정에 하나씩 가질 수 있게 하겠다는 스티브 잡스의 개척자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은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는 식당입니다.  




그럼 말 나온 김에 스티브 잡스 졸업식 축사 한국 번역본을 부록으로 한번 읽어보시죠.   시대의 한 획을 그은 사람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믿음.. 사랑.. 죽음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게 되는 축사라고 느끼시게 될 것입니다.  


<2005년 6월 12일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연설문> 


제목 : 매일매일의 인생을 인생의 마지막 하루처럼 살아가십시오. 항상 갈망하고, 항상 우직하게 

먼저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손꼽히는 이곳 스탠퍼드에서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태어나서 대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도 처음이네요.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고요. 딱 세 가지만요. 

먼저,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전 리드 칼리지에 입학한지 6개월 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래도 일 년 반 정도는 도강을 듣다, 정말로  그만뒀습니다. 왜 자퇴했을까요? 
그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생모는 대학원생인 젊은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 보내기로 결심하셨던 거지요. 
그녀는 제 미래를 생각해 대학 정도는 졸업한 교양 있는 사람이 제 양부모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자 아이를 원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 대신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님들은 한 밤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어떡하죠?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래도 입양하실 건가요?’ 
‘물론이죠’ 
그런데 알고 보니 양어머니는 대졸자도 아니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사람이어서 친어머니는 입양동의서 쓰기를 거부하였습니다. 
친어머니는 양부모님들이 저를 꼭 대학까지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후 몇 개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화가 풀렸습니다. 
17년 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멍청하게도 이곳 스탠퍼드와 학비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 
평범한 노동자였던 제 양부모님이 힘들게 모아두었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결국 6개월 후 저는 대학 공부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인생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대학 교육이 그것에 얼마나 어떻게 도움이 될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양부모님이 평생토록 모은 재산이 전부 제 학비로 모두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잘될 거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당시에는 두려웠지만 뒤돌아 보았을 때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자퇴한 순간, 흥미 없던 필수과목들을 듣는 것은 그만두고 관심 있는 강의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꼭 낭만적인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전 기숙사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마룻바닥에서 자기도 했고 한 병당 5센트씩 하는 코카콜라 빈 병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사기도 했습니다. 
또, 매주 일요일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위하여 7마일(약 10Km)이나 걸어서 하레 크리슈나 사원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맛있더군요 ^^ 
당시 순전히 호기와 직감만을 믿고서 저지른 일들이 후에 정말 값진 경험이 되었습니다. 
예를 든다면 당시 리드 칼리지는 아마도 미국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 서랍에 붙어있는 상표들은 너무 아름다웠고요. 
어차피 자퇴한 상황이라 정규 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서체에 대해 배워보기로 마음먹고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세리프와 산세리프체를 다른 글씨의 조합 간의 그 여백의 다양함을 무엇이 위대한 타이포그래피를 위대하게 만드는지를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따라 하기 힘든 아름답고 유서 깊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었고, 전 매료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제 인생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첫 번째 매킨토시를 구상할 때, 그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우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넣었으니까요. 그것은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매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맥을 따라한 윈도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가 오늘날처럼 뛰어난 글씨체들을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임을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볼 수 없습니다.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 등 그 무엇이든지 간에 ‘그 무엇’에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이런 믿음이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 인생에서 남들과는 다른 모든 차이들을 만들어냈습니다. 

두 번째는 사랑과 상실입니다. 
저는 운 좋게도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제가 20살 때, 부모님의 차고에서 워즈(스티브 워즈니악)와 함께 애플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해서, 차고에서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에 4,000명을 거느린 2백억 달러 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내가 세운 회사에서 내가  해고당하다니…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함께 회사를 경영할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데려온 경영자가 펩시콜라의 부사장으로 있던 CEO 존 스컬리 임) 
처음 1년 정도는 그런대로 잘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의 비전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둘의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우리 회사의 경영진들은 존 스컬리의 편을 들었고, 저는 30살에 회사에서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저는 인생의 초점을 잃어버렸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전 정말 말 그대로 몇 개월 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답니다. 
마치 달리기 계주에서 바통을 놓친 선수처럼, 선배 벤처 기업인 들에게 송구한 마음이 들었고, 데이비드 패커드(hp공동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공동창업자)를 만나 이렇게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완전히 공공의 실패작으로 전락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 맘속에서는 무엇인가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전 여전히 제가 했던 일들을 사랑했고,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전  해고당했지만 일에 대한 사랑은 여전히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하여 저는 성공이라는 중압감에서 벗어나,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자유를 만끽하며, 내 인생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5년 동안 저는 ‘넥스트’와 ‘픽사’를 만들고 그리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준 그녀와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로 3D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넥스트 인수와 저의 애플로 복귀 후, 넥스트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쁜 일들 중 어떤 한 가지도 겪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정말 독하고 쓰디쓴 약이었지만 이게 필요한 환자도 있는가 봅니다. 
때로 인생이 당신의 뒤통수를 때리더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전 반드시 인생에서 해야 할, 제가 사랑하는 일이 있었기에 반드시 이겨낸다고 확신했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먼저 다가오지 않듯 일도 그런 것이죠. 
노동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런 거대한 시간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가 위대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을 위대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는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  순간뿐입니다. 
지금도 찾지 못했거나 잘 모르겠다고 해도 주저앉지 말고 포기하지 마세요. 전심을 다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일단 한 번 찾아낸다면,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더 깊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들을 찾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현실에 주저앉지 마세요. 

세 번째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17살 때 이런 경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이 글에 감명받은 저는 나이 50살이 되도록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아니오!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왜냐고요? 외부의 기대, 각종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은 죽음을 직면해서는 모두 떨어져 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만 남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면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기에 본능에 충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1년 전쯤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이미 췌장에 종양이 있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췌장이라는 게 뭔지도 몰랐는데요. 의사들은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습니다.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 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그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 동안 해줄 수 있는 것을 단 몇 달 동안 다 해치워야 한다는 말이었고 임종시에 사람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매사를 정리하란 말이었고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전 불치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 날 저녁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서 암세포를 채취해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써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때만큼 제가 죽음 가까이 가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 수 십 년 간은 그렇게 가까이 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다는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죽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조차도 그곳에 가기 위해 죽고 싶어 하지는 않죠. 
그리고 여전히 죽음은 우리 모두의 숙명입니다. 누구도 피할 수는 없죠.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 죽음이니까요. 
죽음은 인생들을 변화시킵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지금의 여러분들은  그중에 새로움이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머지않은 때에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 할 것입니다. 
너무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낭비하지 마십시오. 
도그마 즉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타인의 소리들이 여러분의 진정한 내면의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미 마음과 영감은 당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죠. 
제가 어릴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라는 사람이 쓴 책인데 자신의 모든 것을 불어넣은 책이었지요.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 노이드로 그 책을 만들었습니다. 35년 전의 책으로 된 구글이라고나 할까요?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스튜어트와 친구들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어 놓았고, 수명이 다할 때쯤엔 최종판을 내어 놓았습니다. 
그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의 나이 때였죠. 
최종판의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지 하이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인사였습니다.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분야에서 이런 방법으로 가길 원합니다.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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