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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나성1988

한 미국 이민자의 편린 시리즈 58



                   


작년 말에 한국방송을 통해본 ‘응답하라 1988’은 필자가 1980년대에 이민을 와서 그런지 유심히 지켜보게 된 드라마였다. ‘응답하라 1988’의 시청소감을 한마디로 해본다면 그 드라마는 참으로 치정 멜로 막장 드라마가 판을 치는 한국 드라마들 속의 빛나는 보석 같은 드라마였다고 말할 수 있다. 드라마 속에서 가족과 이웃이 함께 희로애락을 나누며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한국에서의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기쁘기도 하고 참으로 부럽기도 하였다. 허구한 날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재벌들과 부자 이야기에 지친 나 같은 평범한 소시민들에게 ‘응답하라 1988’은 진짜 행복이 무엇이고 가족과 이웃의 소중함이 무엇인지 제대로 깨우쳐 주는 드라마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1980년대 미주 한인들의 생활은 어떠했을까? 


먼저 본국의 비극적 광주사태[1980년 5월 18일]는 당시 LA에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고 한다. 같은 달 21일에는 LA 한인들이 총영사관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열었고 , 남가주 총대 학생회, 한인 목사회가 구국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백악관에 광주사태 규탄 편지 보내기 운동도 확산됐고 군부정권에 대한 반발은 이듬해 전두환 대통령 방미 규탄 총궐기대회로 이어졌다. 1982년 12월엔 김대중이 2차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이 시기에는 본격적인 사회단체 활동 붐도 일었다. 1980년에 남가주 호남향우회, 한인시민권자협회 , 뉴욕한인의류협회, 해외한인무역협회(OCTA), LA 평통, 미주 한인 상공인단체 총 연합회, 한미연합회 KAC 등 현재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단체들이 잇따라 창립했다. 코리아타운 이름 찾기도 80년대 이뤄졌다. 1981년 8월 톰 브래들리 당시 LA시장과 한인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올림픽과 버몬트 교차로에 코리아타운 표지판 제막식이 열렸다. 이듬해 1월 12일엔 샌타모니카 10번 프리웨이 노먼디와 버몬트 애비뉴 출입구에도 각각 표지가 세워졌다. 1984년 LA올림픽을 위해선 한국 선수단 한인후원회가 발족됐고, 1988년 서울 올림픽 때엔 미주 한인 자원봉사자 160명이 고국에서 봉사했다. 80년대 미주 한인사회의 또 다른 변화는 북한과의 접촉과 교류가 양성화되고 공식화됐다는 점이다. 1986년 2월 10일 조국통일 북미주협회가 결성됐다. 같은 해 5월 15일에는 최은희, 신상옥 부부가 북한 탈출 후 워싱턴 DC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2년 뒤에는 ‘미주 이산가족 재회 위한 공동성명운동’이 벌어졌다. 또 전금여행사가 그해 11월까지 5차에 걸쳐 금강산 관광 및 북한 산업 사찰단을 모집했다. 12월에 언론인 민병용 씨가 분단 이후 미주 기자로는 최초로 북한을 방문 취재했다. 이듬해 3월에는 LA 한인 상공회의소 회원 14명이 평양을 찾았다. 8월 미정부는 한인의 고향방문 가족상봉 등 인도적 차원의 단체 방북을 허용했다. 그 밖에 80년대 뉴스로는 뉴욕발 서울행 대한항공 여객기가 북해도에서 소련기에 의해 피격 추락(1983년 9월 1일)됐고, LA총영사관이 현재 윌셔 건물로 이전(1988년)했다. 남가주 한국학교가 가주 정부로부터 초등학교 설립 인가(1984년)를 얻어 윌셔가 건물과 부지를 구입했고 이듬해 미주 내 한인이 세운 최초의 정규학교인 LA 한국아카데미를 설립했다. - 미주 중앙일보




자 만약에 응답하라 1988을 로스앤젤레스에서 찍게 되면 캐릭터에 어떤 변화가 와야 할까? 




사실 미국에 오면 음기가  용솟음친다고 한다. 한국에서 얌전하던 아줌마들도 미국에 오면 기세가  등등해진다. 미란은 한국에서도 절대 지지 않는 음기를 자랑했다. 그녀가 1988년도에 미국에 들어오게 되면 그날로 그녀의 음기를 하늘을 찌르고 남으리라. 당시에는 공항에 픽업 오는 사람의 직업을 따라 미국 생활의 향방이 정해지는데 공항에 누가 미란을 픽업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자영업에 뛰어들 것이 확실하다.  






원래 성균은 한국에서부터  TV 마니아로 개그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개그나 유행어를 모조리 따라 했다. 1988년에 미국에 들어오게 되면 일단 한국 TV 프로그램을 녹화해서 빌려보는 비디오 가게에 숱한 돈을 쏟아붓게 될 것이고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복권이 미국에서 당첨되게 되면 집을 장만하고 LA 한인타운에서 비디오 가게를 직접 운영하게 될 것이다.  






드라마에서 나중에 공군사관학교에 취직하는 것을 보니 정환은 미국에서도 직업군인이 될 경향이 농후하다. 필자도 고교 졸업 후 미 육군에 입대했는데 주위의 만류가 대단했다. ‘다들 군대 안 끌려 갈려고 미국 오려고 아우성인데 넌 미국에서 웬 군대냐?’는 것이 만류의 논지였다. 미국 군대는 다 직업군인이다. 엔지니어 의료업계 등의 전문 직업 훈련도 공짜로 시켜주고 다달이 월급도 꼬박 준다. 요즘은 미국 군대에 대해 반감은 많이 사라졌지만 많은 한국 부모들이 아이들이 군대 간다면 한국식으로 입대 전 병과를 정하지도 않고 그냥 보내는데 몽땅 총싸움하는 전쟁터에 보병으로 가게 된다. 모병관들도 보병을 많이 모집하면 진급 포인트가 올라가기 때문에 미국 군대에 수많은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부모들에게 묻기 전에는 자세히 설명해주지도 않는다. 내가 아는 한 친구는 미국 군대에서 약사가 되어 제대해 지금 돈을 갈고리를 긁고 있다고 한다. 한국 부모님들 자식이 군대 간다면 절대로 병과를 정하도록 해라.  신신당부한다.  





미국에 정봉 같은 친구가 오면 가장 걱정이 된다. 혼자 놀기 좋아해서 한 가지에 꽂히면 덕후스럽기 쉽고 공부엔 취미 없으면서 소심하고 상처받기 쉬운 성격이라서 그렇다. 사실 미국에 처음 오면 얼굴에 철판 깔고 막 부딪혀야 한다. 얼굴이 홍시처럼  벌게질 정도로 영어 하다가 개쪽을 몇 번 당해야 영어가 늘까 말 까다. 내 주위에 어떤 사람은 ( 분명히 밝혔다. 내가 아니다 ) 맥도널드에서  THREE를 THIRTY라고 해서 햄버거를 30개나 산 분이 있다. 잘못했다고 도망쳐 나와도 될 것을 돈을 다 지불하고 주는 30개의 햄버거를 다 받아왔다고 한다. 쯧쯧쯧.. 하여튼 남과 소통할 수 있는 스마트폰은 불구하고 인터넷도 없던 1988년도에 정봉 같은 성격은 외국에서 적응하기 힘들 수 있다. 하나 어떤 친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신세가 정말 틀려질 수 있는 아이가 정봉이다.   



일화가 미국에 오게 되면 꼼꼼한 손재주 때문에 자바로 가서 일하게 될 공산이 크다. 자바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다시 한번 미주 중앙일보의 기사를 읽어보자


LA 한인사회를 논할 때 다운타운 자바시장을 빼놓을 수는 없다. 자바시장 앞에는 늘 'LA 한인타운 경제의 젖줄', '한인 사회 경제의 시작'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왔다. 그만큼 자바시장은 한인사회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요 몇 년 새 극심한 불경기를 겪고 있긴 하지만 자바시장은 여전히 한인사회 경제의 핵심이라 볼 수 있다. '자바가 살아야 한인사회 경제도 산다'는 말이 빈말은 아니다.  1960, 70년대 다운타운 봉제업체들은 그야말로 전성기였다. 피코와 5가, 힐과 메인 사이에는 봉제업체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었다. 당시에는 미국 내 생산이 주를 이뤘고 단가도 몇십 년이 지난 지금보다 높았다는 것이 봉제업계 관계짜들의 말이다. 그때 당시 봉제공장을 운영했던 한 한인 업주는 "기계 50대 정도 돌리면 한 달에 1~2만 달러를 벌었다고 보면 된다"며 "현재 간단한 블라우스 하나에 70센트 받는다면 그때는 2~3달러였다"고 회상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바는 '자버(Jobber)'의 잘못된 발음이다. 자버는 과거 영국 증권거래소의 중개인을 일컫던 말이다. 미국에서는 일용직 일꾼(odd-jobber)이나 중간도매상(rack-jobber)의 의미로 쓰인다. 초창기 자바에 몸담았던 한인들은 자바를 제품을 직접 만드는 매뉴팩처와 제품을 소매에 파는 도매의 중간 단계라 설명한다. 다시 말해, 도매를 주로 하면서 때때로 제품도 만드는 것이다. 자바의 역사는 197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바 한인 원로들에 따르면 올림픽과 12가, 샌티와 메이플 지역에서 유대인들이 매뉴팩처에서 팔다 남은 옷을 가져다 도매 형식으로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 자바의 유래다. 당시 이 지역을 샌티 앨리라 불렀다. 1978년, 유대계 판인 샌티 앨리에 한인들도 진출하기 시작했다. 35년 자바시장에 몸을 담은 한 한인 업주는 "처음에는 3명 정도가 이 앨리에서 옷을 팔기 시작한 것으로 기억한다"며 "로즈미드나 파라마운트의 스왑밋 그리고 텍사스주 엘패소 등 국경 스왑밋 등 업주들이 이곳에 와 옷을 구매해 갔다"고 설명했다. 이후 멕시코, 브라질 등 중남미 고객들이 대거 샌티 앨리를  찾아오면서 시장의 규모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20년 전 11가와 샌페드로 인근 샌페드로 홀세일 마트(1100 S. San Pedro St.)가 들어서면서 자바시장에는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자바시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샌티 앨리 지역의 렌트비는 점점 비싸지고 유대계가 꽉 잡고 있었기 때문에 한인들이 샌페드로 길을 중심으로 새 활로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한인 의류 도매업체들이 대거 생겨나 전성기를 달렸다. 현재 샌페드로 홀세일 마트는 다운타운 자바시장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마트에만 308개 업체가 입주해 있고 연 수십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유명 의류 소매업체인 포에버 21도 이 마트에서 성공 기반을 닦았었다. 또, 이 마트 오픈 이후 한인 업주들끼리 힘을 모아 인근 지역 빌딩들을 매입하고 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자바시장에만 한인 소유 빌딩이 20개가 넘는다. 한 자바시장 관계자는 "엄연히 말하면 이제는 자바라고 부르면 안 된다. 지금은 모두 옷을 만드는 매뉴팩처이기 때문"이라며 "샌페드로 홀세일 마트 오픈을 통해 자바시장에도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2014년 현재. 자바시장은 힘겹다. 불경기가 이어지고 있고 여기저기 악재가 겹친다. 지난 10일에는 연방 수사요원 1000여 명이 투입된 자바시장 최대 규모의 급습이 이뤄졌다. 연방 수사당국은 20여 대형 한인 의류 도매업체를 대상으로 한 멕시코 마약 조직 관련 돈세탁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인 의류협회 측은 "자바시장이 범죄의 온상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밝힌 뒤 이미지 개선에 초점을 맞출 것을 강조했다. 뿐만 아니다. 의류 도매업체들은 끊임없는 가격 낮추기 경쟁에 진이 빠지고 원단업체들은 결제를 늦추거나 아예 결제 없이 문을 닫는 불량고객들과 무차별 디자인 도용 업체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봉제업체들은 노동력 부족으로 사람 찾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분명 희망은 있다. 매뉴팩처 업체들은 시대 흐름에 맞춰 온라인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의사소통에 문제없는 2세들을 내세워 주류시장 공략에도 앞장서고 있다 샌페드로 패션 마트 협회 돈 이 회장은 "20~30대 젊은 2세들의 자바시장 유입이 늘면서 주류 시장 진출 등 시장 확대가 이뤄지고 있다"며 "체감경기는 나쁘지만, 2세들을 내세운 자바시장의 미래는 밝다"고 설명했다. 거래 업체 확대도 또 다른 묘안이다. 소규모 부티크 업체를 확보해야 한다. 한 업주는 "부티크 업체는 위험부담이 적다. 몇몇 업체가 수금이 되지 않아도 심각한 타격은 없다"며 "하지만,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봉제, 의류 도매업에 이어 1980년대 가장 늦게 형성된 원단 업계는 요즘 '뭉치면 산다'를 실천하고 있다. 업체들끼리 불량고객 정보를 공유해 블랙리스트를 제작한다. 30일 이상 결제를 미룬 업체, 60일 이상 결제를 미룬 업체, 바운스 체크를 발행한 업체, 소송 중인 업체 등 항목도 다양하다. 이 리스트에 오른 업체들과는 최대한 거래를 자제한다. 원단 샘플 도용 방지에도 앞장서고 있다. 지적 재산권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디자인 도용을 하는 업체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서는 것이다. 봉제업체들은 매뉴팩처 업체들과 적정 단가를 책정하는 문화 정착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적정 단가를 맺게 되면 오버타임 미지급 및 최저임금 등의 노동법 위반 사례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주 중앙일보]


일화가 만약 지긋이 자바에서 잔뼈를 긁힌다면 온가족을 이끌 가능성이 크다. 앞서 말한 대로 미국에선 한국 아줌마의 기가  분기탱천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친구에서 마음씨 좋게 보증까지 서는 동일의 성격상  빚쟁이들로부터 미국으로 야반도주했을 가능성 이 많다. 일단 이민 첫 일 년은 조용하게 지내겠지만 자영업 쪽으로 뛰어들 가능성이 크다. 은행에서 다년간 일한 경험으로 한국계 은행에 취직을 하고 싶겠지만 신분이 불체이므로 취직을 할 수 없을 것이다 1980년대 당시 미국은 10년 정도 불법체류자 / 서류 미비자로 있다가 이민국에 벌금을 내고 사면 처리되어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으니 불 득불 혼자 자영업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 와서 [다저스가 월드시리즈 우승한 1988년]  지인으로부터 들은 첫마디는 '지금 미국 경기가 안 좋은데..'라는 얼버부림이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활기차게 이민생활을 시작해야 할 공부하는 학생한테 ‘넌 막차 탔다는 ‘ 불경기 이야기를 할 정도로 미국의 경제가 그토록 심각한가 내심 마음이 어두워졌다. 그런데  그 후 20여 년이 흘렀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매스컴에는  ‘올해는 정말 다르다. 사상 유래 없는 불경기’라는 말이었다.  게다가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이젠 글로벌적으로 불경기로 가고 있다고 외쳐댔다.  각국의 정재계 석학들이 다년간의 치밀한 연구와 조사 끝에 나온 결과가 ‘불경기’라고 하는데  예상컨데 앞으로도 내가 저 세상으로 가는 그날까지 미국은 물론 온 세계가 계속 불경기가  계속될 것 같다.

왜 사람들은 불경기라는 것이 객관적인 것보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주관적으로  판단될 수 있는 불확실한 수치임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가지고 주시할까? 그건 나만 불경기가 아니면 좋겠다는 일종의 자기보호의 방어기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자신의 행복의 기준이 원초적으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인 허황된 물질에만 맞춰져 있기 때문에 영육적으로 계속 불경기인 상태가 지속되는데, 그 피폐된 상황을 혼자만 겪기 싫고 주위의 다른 이들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최면을 거는 것이다.   





학생운동에도 가담했다가 나중에 사법고시에 도전하는 보라가 미국에 오게 되면 아마 미국 변호사에 도전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미국 변호사가 될까? 미국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일단 4년제 대학을 마치고 미국 법대(Law School)에 입학, 3년 과정의 JD(Juris Doctor) 학위를 취득한 후 BAR EXAM. 에 합격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Lawyer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 배출되는데 한국도 요즘 유사한 Law School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두 번째 방법은 한국의 대학에서 이미 법학을 전공하였거나 이미 국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 가운데 미국 법대의 1년 과정인 LLM(Master of Law)을 수료하고 뉴욕 주를 포함한 일부 주에서 실시하는 BAR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다. 국제변호사라는 말이 있는데 엄격히 말하여 이 세상에 그런 자격증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특정한 한 국가 혹은 두 개 국가 이상의 변호사 자격을 갖고 주로 국제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변호사를 일컫는  말일뿐이다. 이들 소위 국제 변호사들은 기업이나 국가 간의 협약, 거래, 분쟁해결, 계약, 소송. 기업합병, 인수업무 등을 담당하며 기본적으로 상대국의 법률이나 국제적인 정세 또한 영어능력에 정통하여 일반 대기업, 로펌, 심지어 공공기관의 특채 공무원들 가운데도 상당수의 미국 변호사 자격을 소지자들이 있고, 점차 그 수효가 급증하는 추세에 있다.               

미국 법과 대학 Law School은 ABA(American Bar Association-변호사협회)의 인가를 받은 대학만 총 196개 대학이 있다법과 대학의 학위과정은 JD(Juris Doctor), LLM(Master of Laws), SJD(Doctor of Juridical Science) 등이 있으며 이중 JD 학위는 변호사가 되기 위한 과정이고  LLM이나 SJD 학위과정은 JD 학위 이후 과정(Post-JD)으로, LLM은 법학석사, SJD는 법학박사 과정이며 국내 법대 졸업자나 변호사 자격 소지자의 입학이 가능하다.   


*JD(Juris Docter) 과정

 
미국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Law School의 JD(Juris Doctor) 과정을 졸업해야 한다. 졸업까지 총 3년이 소요되며, Civil prosedure, Constitutional Law, Contracts, Criminal Law and criminal procedure, Legal method, Legal writing, Property law, Torts 등과 같은 변호사가 되기 위한 법학 이론과 Case Study 위주의 실무과정을 공부하게 되는데 엄청난 양의 법전과 판결문들을 외워야 하고 수많은 토론식 수업을 감당해야 하는 등 매우 어려운 과정으로 특히 유학생들에게는 완벽한 영어실력을 갖추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3년간의 험난한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나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BAR Exam. 에 응시하여야 한다. 법대의 JD 과정에 입학하는 것과 3년간의 혹독한 과정을 이수하는 것에 비하면 이 BAR 시험은 보통 응시자의 70~80% 가 합격을 할 정도로 상당히 합격비율이 높은 편이다. 변호사가 되기 위해 JD 학위 과정에 지원하려면 기본적으로 학사학위를 이수해야 하며 학부 전공에 특별한 제약이 없어 어떤 전공자나 지원 자격이 있지만 영문학. 역사학, 철학, 논리학, 자연과학, 경제학 등의 전공자가 선호된다. 입학심사에 있어서 가장 크게 반영되는 것은 대학 성적과 LSAT(The Law School Admission Test) 시험 점수며 그 외에도 LSDAS의 Law School Report와 학교 성적 증명서, 추천서, Personal Essay, Resume, TOEFL Score 등의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심사과정에서는  학업능력뿐만 아니라 역경을 극복한 경험이라든지 지역봉사활동, 직업경력, 과거 업적이나 리더십, 개인 특성이나 특기, 법대 지원 동기나 미래 계획 등 다양한 면을 검토하여 반영하므로 개인 에세이나 이력서 작성에 상당한 공을 들여야 한다. 

*LLM(Master of Laws) 과정 
법학석사 코스로 약 24 학점을 이수하는 1년 과정이며 JD 과정을 마친 후 입학하는 Post-JD Program이다. General LLM과 특정분야를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LLM 과정, 예를 들면, 조세, 지적재산권, 환경, 국제무역, 국제 인권 등의 전문 LLM 과정으로 나뉜다. 미국의 뉴욕주를 비롯한 일부 주에서는, 한국의 변호사 자격을 가졌거나 한국의 법과대학을 졸업한 사람으로서 미국 법대의 LLM(Master of Laws. 법학석사로 1년 과정) 학위를 이수한 사람에게도 미국 변호사 자격시험인 BAR EXAM. 에 응시할 자격을 준다. 

*General LLM 과정 입학 
한국 학생으로 이 과정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에서 4년제 법대를 졸업했거나 최소한 변호사 자격을 갖고 있어야 한다. 유학시험으로는 TOEFL 점수가 필요하고(LSAT는 필요하지 않음) 기타 추천서나 학업계획서, 에세이 Resume 등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경우 가을학기에만 지원이 가능하며 외국변호사를 위한 LLM 과정을 둔 학교는 따로 있다.  



그런데! 드라마에 보면 보라가 시위를 하다가 경찰서에 끌려가는데 미국은 정치범이 되면 연방법에 저촉되어 변호사 같은 전문직의 라이선스를 받기가  힘들어진다. 미국에서 범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는 연방법 federal case에 저촉되는 것으로 주 state에 상관없이 미국 전역에 걸쳐 죄가 인정되는 범죄들이다. 경제사범, 정치범, 살인범, 사기, 의료보험사기 등의 중범으로 이런 범죄를 저지르면 연방교도소에 보내진다. 이 연방법에 저촉되면 앞서 밝힌 데로 정부 관련 기관이나 큰 회사에 취업할 때 필요한 자격증과 관련된 기록이 문제가 되어 전문직을 잡기가 매우 힘들다. 그 기록은 미국 내 어디를 가든 따라다닌다. 기타 경범 misdemeanor이나 마약, 사기, 강도, 강간, 도둑질, 폭행 등의 중범 felony은 각 주의 법으로 집행되어 주 교도소 state prison으로 보내지게 된다. 



우리의 주인공 덕선이 나중에 스튜어디스가 되는데 고등학교 때 미국에 오게 되면 대게 한인들을 상대로 하는 항공기의 승무원이 될 경우가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럼 사족인데 스튜어디스의 급여는 어느 정도 일까? 



( 2013년 자료 )


항공기 승무원의 기본 급여 구성은 기본급 + 비행수당 + 퍼디 움(체류비) + 이착륙 수당 + 교통보조비 + 직계 자녀 학자금 지원 + 4대 보험금으로 해서 한국돈으로 대략 월 300만 원 정도라고 한다. 물론 비행시간과 경력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고 한다.  





힘들고 어려운 이민 생활 속에서도 당시 부모들의 한 가닥 희망이 있다면 어떻게든 성공하는 자녀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누구나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의 성공을 바라지 않는 이들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마음과는 상관없이 바쁘게 쫓기는 생활이 드라마와는 다르게 미국 이민생활은 자녀들과 함께 나누어야 할 시간과 여유까지고 도적질 해가고 어쩔 수 없이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일에 매달린 부모들이 많았다. 부모는 항상 뭔지 모르게 자녀에게 미안한 생각을 품고 살아가서 웬만하면 해달라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는데 당시에 공부에 취미 없고 주머니에 돈 많은 한국 청소년들은 마리화나를 시작으로 마약에 빠지는 아이들이 많았다. 학교에는 마약 딜러들이 상주해있어 ( 학교 동급생으로 말이다 ) 담배나 술보다 돈만 있으면 구하기 쉽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노을이는 비록 집안에 돈은 없지만 분명 그들 부모가 미국에 오게 되면 맞벌이를 할 것이기 때문에 까딱 잘못하면 마약에 손을 댈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십 대에 인격이 많이 형성이 되긴 하지만 부모의 고통을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지 못하다. 설령 겉으로는 아무런 말이나 행동도 표현하지 않지만 청소년 때 미국에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의 가슴엔 분노와 화가 가득 차 있을 것이다. 가정이 물질적으로 조금 어려움을 겪는다 하더라도 일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서 햄버거를  먹이기보다 김치찌개를 끓여 먹이고 자녀와 될 수 있는 대로 함께 시간을 만들어 보자. 



남편을 여의고 홀로 자식들과 미국에 오게 되는 선영이 미국 생활을 하기엔 힘들어 보이겠지만 의외로 이런 분들이 남 눈치에 체면 차릴 일도 없어 열심히 베이비시터나 식당 웨이트리스로 미국에서 성공한 케이스가 많다. 한국은 체면 saving face 문화가 너무 뿌리 깊게 박혀있어 돈 없는 미망인이 살기엔 너무 힘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묵직하고 조용한 성격의 택이 아버지 무성은 미국에서 시계수리공 같은 전문직을 살리면  아메리칸드림을 이룰 수 있다. 영어 쓸 필요도 없고 콩 한알도 젓가락으로 집어 올리는 섬세한 한국인이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은 기술이다! 





프로바둑기사이자 덕선이 남편이 되는 택이는 미국에서 과연 어떤 인물로 묘사될까? 


바둑기사보다 체스 선수가 더 현실성 있는데 체스는 두 사람이 체스보드에서 각각 6종류로 이루어진 기물(말) 16개를 가지고 하는 보드게임이다. 



여섯 종류의 체스 기물의 모습. 왼쪽부터 킹, 룩, 퀸, 폰, 나이트, 비숍이다.


같은 종류의 기물들은 서로 같은 행마법을 가지며 서로 다른 기물은 서로 다른 행마법을 가진다. ( 행마법은 나중에 알아보자. 여기 포스팅에 같이 다루긴 너무 방대하다 ) 체스 경기의 목적은 상대를 체크메이트 하는 것인데, 이는 상대방의 킹을 공격하여 상대방의 킹이 잡힐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체스가 항상 체크메이트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선수들은 자신이 패배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경우 기권하는 경우가 더 많다. 또한, 경기가 무승부로 끝나게 되는 방법도 여러 가지 존재한다. 주로 유럽에 체스 선수권 대회가 많은데 많이 버는 챔피언은 상금이 일 년에 백만 불정도 된다고 한다. 





이 드라마의 반전급 연애를 보여주는 선우는 드라마 속에서 의대를 가는데 과연 미국으로 와서도 선우가 의대에 갈 수 있을까?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민자가 미국에 와서 의사가 되는 것은. 제 생각에 서울서 다시 수능을 보고 의대를 가는 것이 백만 배는 쉬울 거라고 생각한다. 똑같은 노력이라면 아마 서울대 의대쯤은 가실 것이다.  


왜냐하면 언어의 장벽 때문이다. 미국 와서 1년 살면 영어가 늘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국분들이 많다. 턱도 없는 생각이다. 그리고 다음 문제는 많은 의대가 정책적으로 아예 외국인을 안 받기도 한다. 영주권자나 시민권자만 의대에 받는다는 소리다. 물론 모든 의대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의학은 어려운 학문이고 미국에서 학부 때부터 의대 가기로 작정하고 공부한다는데, (의대 꿈꾸는 학생들은 진짜로 1학년 때부터 공부만 한다. ) 외국인임에도  영어 완벽에, 학부 학점 4.0에 MCAT만점이 아닌 이상 미국의 어떤 의대도 뽑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미국애들도  엄청 뛰어난 사람들이 의대에 간다 여기는데 그것보다 더 뛰어난 뛰어난 외국인이어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의대 학비가 엄청나다는 것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미국 의대 정확히는 의학 대학원 가는 절차..


A. 아주 극소수의 무지 똑똑한 극소수의 학생들이 의대나 치대에 직접 입학도 한다. ( 학부 없이 7-8년 프로그램을 하는 의대나 치대가 미국엔 있다.) 근데 이건 진짜 무지무지 잘나야 한다. 조기 유학생 중에도 이런 경우를 봤는데 한국인들에게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만. 그 학생 여기서 고등학교 졸업했고  무지무지 공부 잘하고  치대  입학시험을 잘 본 모양 (의대 아닌 치대여서 가능했는지도.....)


B. 가장 흔한 경우가 학부 마치고  학부 학점 잘 받고 (물론 pre-med 과목들을 포함해서) 의대를 가는 것인데, (여기서 pre-med는 전공이라는 개념도 있고 자기가 가고자 하는 의대에서 요구하는 과목을 이수하는 경우 pre-med 과목을 듣는다고도 한다.) 여기에 MCAT점수와 함께 어플라이 하는 것이다. 


C. 한국서 의대 가셔서 공부 잘하시고, 미국 의사고시 보셔서 미국서 인턴쉽 레지던트쉽 하시는 것이다. 하나 미국 의사시험은  우리나라와 달리 의대 다니면서 1년에  한 번씩 3회인지 4회인지 본다.  한국의사 고시보다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여러 번 보는 것도 부담이고...


D. 환자를 돌보고 도와주는 것이 사명이라면 차라리 한국서 간호학과 가는 것이 좋다. 일단 졸업해서 학교 병원에 취업해 그러면서 미국 간호사 시험( RN )을 준비하는 것이다. 영어공부도 하고, 자료수집도 하고, 유학원, 미국 의대 사이트도 뒤져보고 하면서 버는 돈 많이 모아 ( 일단 미국 오면 다 돈 쓸  일뿐일 테..) 미국으로 유학 와서 미국서 간호사 하는 것이다. 2년 정도이면 미국 영주권이 나온다. 그럼 주립대 가면 (캘리포니아에서 간호사 시작해서 명문 의대에 가시는 분들이 많다 ) 학비 부담 적고요, 언제든지 응급시 돈 벌 상황 되고 참  좋다. 영주권자는 연방정부에서 론 해주기 때문에 학비  대출받고 나중에 의사 돼서 갚으면 된다. 이 방법이 내가 가장 추천하는 미국에서 의사 되는 방법이다. 




드라마의 귀요미 진주는 1988년도에 미국에 온다면 드라마의 모든 캐릭터 중에 그 미래를 점치지 가장 힘든 인물이다. 미국은 일단 FM대로 살면 꿈을 이룰 수 있는 나라기 때문이다. 




이분이 미국에 온다면 교사는 못되더라도 미국 대학 길라잡이 정도는 되지 않을까?


미국 대학 입학 방법을 한번 살펴보자 ^^

*사립대학 지원 마감일과 합격 발표일

 

하버드를 비롯한 아이비리그와 기타 유수 우수 사립대학의 경우 1월 1일이 지원마감일입니다. 1월 1일이 공휴일이므로 12월 말일, 즉 연말로 생각하면 됩니다. 지원 마감이 끝나면 대학들은 지원서를 검토하여 3월이나 4월 중에 합격자 발표를 합니다.

 

미국의 대학은 중복지원제도를 채택하고 있어서 학생은 지원하고 싶은 대학의 수에 상관없이 마음대로 지원할 수 있고, 대학 역시 자유롭게 선발하고 싶은 학생들에게 합격증을 발부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여러 대학에 동시에 지원하고, 여러 곳에 합격되기도 합니다. 즉 미국에서의 대학 입학은 자유, 무한 경쟁인 셉입니다.

 

*조기지원

 

특정 대학이 마음에 들어서 그 학교에 꼭 가고 싶을 때는 조기지원을 하게 됩니다. 조기지원은 말 그대로 정규지원보다 2개월 먼저 지원하는 제도인데, 반드시 해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미리 지원하고 합격여부를 정규 지원 마감 이전에 통보받기 때문에 조기 지원을 해서 합격만 한다면, 여러 대학에 지원해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합격자 발표를 크리스마스 이전에 하기 때문에 조기 지원 합격생은 다른 학생들이 12학년 겨울방학과 연말을 대학 지원서로 골머리를 앓을 때 부담 없이 방학을 즐길 수 있습니다. 정규 지원 학생들이 3~4월까지 합격여부를 걱정한다고 생각하면, 유익한 점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조기 지원에서 불합격한 학생은 연말까지 정규 지원 마감 시한에 맞추어 새로운 대학에 다시 지원해야 합니다.

 

조기 지원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합격하면 반드시 그 학교로 진학하겠다는 조건으로 지원하는 얼리 디시전이고 다른 하나는 합격해도 진학에 제약을 받지 않은 얼리 액션입니다. 얼리 디시전은 합격했을 때 해당 대학에 반드시 진학하겠다는 서약서에 사인을 해서 보내야 합니다. 정규 지원 전에 한 대학에만 조기 지원하겠다는 것과 합격하면 반드시 진학하겠다는 서역서에 사인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합격한 후 꼭 가겠다는 대학에만 얼리 디시전 지원을 해야 합니다. 조기 지원을 해서 얻는 장점이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합격통지를 받는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조기 지원서를 받는 대학들은 조기 지원 학생들에게 합격증서를 주면, 반드시 자기 학교로 진학할 것을 알기 때문에 합격하고도 다른 학교로 갈 수 있는 정규지원 학생들보다 우선적으로 뽑으려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동시에 학생들도 조기 지원으로 합격하면 반드시 진학해야 하므로 자신이 꼭 진학할 학교에만 지원하게  되어 상대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우수 대학의 조기 지원 합격률은 정규지원 합격률보다 월등히 높습니다. 그러므로 조기 전형을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학교에 따라서는 정규 지원 합격률보다 조기 지원 합격률이 두배 또는 세배가 되는 곳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우수학생 선발에 자신이 있는 하버드, 프린스턴, 예일, 스탠퍼드는 얼리 디시전이 없습니다.

 

이에 반해 얼리 액션은 다른 학교에 지원해도 되고, 합격하더라도 다른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여기서는 구속력이 있는 서역서 같은 것은 없고, 단지 미리 지원하고 미리 결과를 받는  것뿐입니다. 명문대중 칼택, 시카고대학교, 조지타운대학교, 빌라노바 대학교, 노트르담대학교 등 많은 대학 등이 얼리 액션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예일과 스탠퍼드는 구속력은 없지만, 반드시 자기 학교 한 곳에만 조기 지원하겠다고 약속해야 하는 특별한 얼리 액션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데, 이를 ‘싱글 초이스 얼리 액션’또는 ‘리스트릭티드 얼리 액션’이라고 부릅니다. 재미있는 것은 프린스턴과 하버드는 얼리 액션을 없애버려서 아이비리그 대학 및 전체 사립대학의 조기 지원 프로그램 종식을 이끌고 있다는 겁니다. 일전에 하버드가 얼리 디시전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사립대들이 조기 지원 프로그램을 따르기 시작하여 이제는 거의 모든 우수 대학이 사용하고 있는데, 또다시 하버드가 앞장서서 조기 지원 프로그램의 종식을 선도하는 것이니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이외에도 조기 지원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는 대학으로는 캘리포니아 주립대인 UC계열, 버지니아주립대, 서부의 명문 USC 등이 있습니다. 조기 지원은 정규지원에 비해 단점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것은 합격 결정과 함께 장학금 패키지도 학교에서 주는 대로 결정되는 셈이어서 장학금을 더 주는 대학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점입니다. 또 하나는 12학년 1학기 성적이 나오기 전에 결정되기 때문에 12학년 1학기 성적이 좋아지고 있는 경우나 12학년 수상경력 또는 새로운 업적이 추가되는 경우에는 그 성적과 기록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조기 지원 마감이 대개 11월 1일, 즉 10월 말이기 때문에 아직 SAT 또는 ACT 시험을 치르지 않는 학생들은 정규지원에 대해 시험을 볼 기회가 줄어든다고 볼 수 있습니다. 10월과 11월의 SAT, 그리고 9월과 10월의 ACT는 유효합니다. 사립대학 정규지원은 대개 1월 1일 즉, 12월 말이라서 10월, 11월, 12월의 SAT, 그리고 학교에 따라서는 1월의 SAT도 유효할 수 있고, ACT의 경우는 9,10,12, 2월 시험까지 모두 유효합니다. 조기 지원 경쟁이 심하지 않은 대학의 경우에는 지원 마감일이 아예 없는 대학들이 많는데, 이런 경우를 ‘롤링 어드미션’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계속해서 지원서를 받고 입학 허가서를 준다는 뜻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지원에 시한이 없기 때문에 조금 늦게  지원할 수도 있습니다. 즉 새해가 되어서 지원할 대학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UC계열이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대학입니다.

 

*UC지원 마감

 

UC의 경우에는 사립대 지원보다 1개월빨느 11월 말이 지원 마감입니다. UC에는 합격률 20%선의 UC버클리, UCLA, UC샌디에이고 등의 명문캠퍼스부터 시작해 합격률 40%선의 UC데이비스, UC어바인, UC 산타바바라, 그리고 지원자의 90%를 합격시키는 UC리버사이드나 UC 산타크루즈, UC머시드까지 다양한 합격률, 다양한 수준의 캠퍼스가 있습니다. 따라서 캘리포니아주에 사는 학생들의 경우 하나의 지원서를 가지고 이들 9개의 캠퍼스에 지원한 후 그 가운데 최소 한 곳의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UC는 사립대학과 달리 교사의 추천서를 요구하지 않아 지원이 간편합니다.

 

*대학 지원서 준비

 

대학 지원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지원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아야 합니다. 학생들은 대개 지원서를 쓸 때 자기가 쓸 지원서를 누가 읽을지 고려하지 않습니다. 또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지원서를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지원서와 비교될 수 있는 수많은 다른 학생들의 지원서에 대해서도 별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조금 달리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원서는 쓰는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을 위해 존재합니다. 지원서는 대학 측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 효과적으로 쉽게 선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서류라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대학 측에서 왜 나를 선택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선택하는 사람이 나를 선택할 이유를 쉽게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지원서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또 한 가지는 학생을 선발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양의 지원서를 읽어야 한다는 겁니다. 따라서 가능하면 자신의 모습이 잘 드러나는 것이 좋습니다. 수백 개의 지원서를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일목 묘연하게 잘 정리된 지원서가 가장 보기 쉽습니다. 내용에 줄거리가 있고, 학생을 한 번에 잘 파악할 수 있는 지원서, 그리고 학업성적과 이수과목, SAT 점수가 서로 잘 보완되고 있으면 역시 좋습니다. 예를 들어, 의학에 대한 관심을 에세이에서 잘 표현한 학생이 AP BIOLOGY를 선택해서 AP 시험에서 5점을 받고 , SAT BIOLOGY 800점을 받는 등 서로 보완되는 사실들이 쉽게 눈에 띄면 좋습니다. 게다가 병원 자원봉사나 의료분야 연구 참여 경험이 있다면 더욱 좋습니다.

 

*에세이 준비

 

12학년이 되면 지원서에 채워 넣어야 할 자료들 대부분은 과거의 지나간 일들이 됩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만들어 나가야 할 중요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에세이입니다. 다른 말로는 개인 소견이라고 합니다. 에세이를 준비하는 학생에게 꼭 조언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에세이를 쓰는데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십시오.”

 

리비전 REVISION, 즉 여러 번 고치면서 완벽을 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가을까지 끝내려면 초여름에는 시작해야 합니다. 읽고 또 읽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면서 완벽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사립대학에 지원할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2개의 에세이를 쓰는데 하나는 학력에 관한 것으로 150자 이내로 써야 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5개의 주어진 주제 중에 하나를 골라 250자 이상으로 써야 합니다. UC지원서에는 2개의 에세이가 필요합니다. 더해서 1천 자 정도를 쓰게 되어 있습니다. 훌륭한 에세이를 제출하면 당연히 자신의 다른 기록들을 보완해 주어 합격에 큰 도움이 됩니다. 지원 패키지를 보완하고 통합해 주는 훌륭한 에세이 때문에 합격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에세이를 형편없이 쓰면 마찬가지로 에세이 때문에 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사의 추천서

 

사립대학의 경우에는 교사 추천서가 있습니다. 주로 영어교사와 수학교사에게 받으면 좋고 , 상담사까지 더해 3개의 추천서를 받아야 합니다. 미리 에세이도 써보고 입학 지원서도 써 보면 어느 교사에게 추천서를 부탁해야 하는지 생각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12학년이 되면 많은 학생들이 교사들에게 추천서를 의뢰하게 되므로 가능한 학기 초반에 다른 학생보다 먼저 도움을 청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일찍 부탁하여 교사가 시간을 충분히 갖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교사에 따라서는 성적표와 학생의 에세이를 보고 싶다는 분이 있으니 그런 것들을 미리 준비해 놓는 것이 좋습니다. 좋은 인상과 함께 말입니다.

 

*SAT, ACT 점수

 

대학 지원서와 함께 SAT, ACT 점수도 제출해야 합니다. 이제까지 받은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아 시험을 다시 치러야 하는 학생이나 아직 치르지 않은 학생은 시험날짜와 시험과목을 정해서 미리 신청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SAT는 10,11,12,1월에 볼 수 있습니다. 이중 UC에 지원할 학생은 10월, 11월, 12월 시험을 볼 수 있습니다. 과목별 SAT와 SAT는 같은 날 볼 수 없습니다. ACT는 9월,10월, 12월, 2월에 있습니다. 이중 UC에 지원할 학생은 9월,10월,12월 것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SAT 성적이 오르지 않는 학생은 ACT를 보도록 합니다. 그리고 과목별 SAT 한국어 시험은 11월에 꼭 치르기 바랍니다. UC는 과목별 SAT에서 두 과목 또는 그 이상을 봐야 하는데, 염두에 둘 것은 두 과목만 제출하려면 MATH LEVEL 2를 반드시 봐야 하고, 세 과목 이상 제출할 때는 제한이 없습니다. MATH LEVEL 1만 봐도 됩니다.

 

*학과 외 활동

 

학생들이 간과하는 것 중에 학과 외 활동, 즉 ‘EXTRA CURRICULAR ACTIVITY’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봉사활동, 취미생활, 직업경험, 연구실적, 수상경력 등을 잘 적어내야 합니다. 학과 외 활동 내용을 기억 속에서 찾아내어 정리해 보는 시간을 충분히 가질 때 비로소 입학지원서에 매력적으로 적어낼 수 있습니다. 무엇을 쓸지, 순서를 어떻게 할지, 무엇을 빼야  할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전공선택

 

많은 학생들이 12학년이 될 때까지 앞으로 어느 대학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자신의 미래 직업이나 대학 전공에 대해 생각이 없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고등학생들이 자신의 인생을 생각할 때 막막한 것은 당연합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고등학생들에게 비전을 심어 줄 수 있는 주변여건이 부재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민사회에서 자신이 닮고 싶은 롤모델을 주변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더욱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는 학생들이 다음과 같은 몇 가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첫째,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점을 닮고 싶고, 그런 모습이 되고 싶다면 어떤 교육을 받아야 하는가? 그 사람은 어떤 교육을 받았는가?

 

둘째,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

 

셋째, 나는 어떤 것을 잘하는가?

 

넷째, 나는 언제 가장 행복한가?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전공을 찾아야 합니다. 내가 어떤 전공이나 어떤 일에 맞추어 가는 방법도 있지만, 나에게 맞는 일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12학년에 올라가는 학생이라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적성검사를 받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INTEREST AND SKILL TEST’를 권유합니다.

 

*대학의 선택

 

전공 선택도 마찬가지지만 대학 선택과 아주 중요한 결정 사항입니다. 지원 마감일을 앞두고 가고 싶은 대학이 최소한 10개는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지원하려는 대학에 대해 잘 연구해 보고 자신이 90% 정도  합격할 수 있는 대학 중 두어 개, 50~60% 합격할 확률의 대학 중 두어 개, 확률이 30%까지 떨어지더라도 꼭 가고 싶은 대학 중 두어 개를 선정하여 최소한 10개 내외를 정해 놓아야 합니다. 따라서 12학년이 되기 전에 부지런히 대학교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에 관한 정보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찾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칼리지보드 웹사이트, US NEWS AND WORLD REPORT 웹사이트 등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12학년생을 위한 대학 지원절차

 

적어도 8월 중에는 대입 지원서 작성과 에세이 쓰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UC는 그때까지 아직 온라인 지원용 웹사이트 로그인 화면이 열리지 않습니다. 10월부터 사용할 수 있으므로 연습용으로 마련된 지원 서류 양식을  다운로드하여서 일단 써 볼 수 있습니다. SAT를 봐야 하는 학생들은 시험을 치를 과목들을 준비하고, 시험 날짜를 정해서 시험신청을 해야 합니다. 칼리지 보드 웹사이트 주소는  WWW.COLLEGEBOARD.COM입니다. 이곳으로 들어가면 학생용, 학부모용, 교사용이 있는데, 첫 번째 학생용을 클릭하면 SAT 시험 신청 화면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ACT는  WWW.ACT.ORG에서 신청하면 됩니다. ACT 시험은 9월부터 있습니다. 10월이 되면 학자금 신청이 시작됩니다. 학교마다 ‘우선 마감일’이라는 것이 있는데, 보통 2월 초입니다. 신청은 WWW.COLLEGEBOARD.COM 에 들어가서 ‘CSS PROFILE’을 클릭하면 시작할 수 있습니다. 10월이 되면 캘스 태이트가 지원을 받기 시작합니다. WWW.CSUMENTOR.EDU에서 지원할 수 있습니다. 또, 10월에는 초반에 SAT가 있고 후반에는 ACT 시험이 있습니다. 조기지원 마감일도 10월 말입니다. 11월이 되면 UC온라인 지원 로그인 화면이 열립니다. HTTP://ADMISSIONS.UCOP.EDU/PATHWAYSW2011/PATHWAYS로 가시면 지원할 수 있습니다. 11월 말은 UC지원 마감일입니다. 11월 SAT는 월최에 있고, 한국어 시험은 연중 이때  한번뿐입니다. 12월 1일부터는 우수 사립대학 지원이 시작됩니다. USC나 컬럼비아 등의 대학은 아직도 본교의 지원서를 고집하지만, 그 외의 사립대학들은 공동 지원서인 ‘COMMON APPLICATION’을 받습니다. 이 지원서를 이용하려면 WWW.COMMONAPP.ORG에 들어가면 되고, 보통 7월부터 로그인 화면이 열려있습니다. 12월 SAT는 12월 초에 있고, ACT는 12월 중순에 있습니다. UC를 지원하는 학생들에게는 12월 시험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조기 지원 합격 발표는 크리스마스전에 있습니다. 1월이 되면 FAFSA신청 창이 열립니다. FAFSA.ED.ORG로 가면 되고, 시민권자와 영주권자만 신청할 수 있습니다. FAFAS자체는 마감이 6월 말이지만 지원하는 대학의 우선 마감일에 맞추어 지원을 마쳐야 합니다. 대개 2월 초라고 보면 되고, 각 대학 지원 시 확인하도록 합니다. 1월 SAT는 1월 말에 있고, ACT는 2월 초에 있습니다. 사립대학을 지원한다면 이 시험들까지 사용이 가능합니다. 2월이 되면 사립대학의 합격자 발표가 시작됩니다. 3월 말까지 모든 UC 캠퍼스의 발표가 있고, 사립대학도 3월 말이면  본격화되며, 늦어도 4월 초에 발표가 끝납니다. 마음의 결정을 하여 5월 1일까지 하나의 대학을 선정한 다음 등록 예정 통보를 하는 것으로 대입 지원절차는  마무리됩니다. 물론 5월 1일 이후에도 불합격된 학생이 대학 측에 이의 제기를 할 수 있고, 그에 대한 추가 합격이 있기도 합니다. ‘합격 대기자 명단’에 들어간 학생들에 추가 합격 발표도 여름 내내  이어질 수 있습니다. 6월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서는 12학년 마지막 성적표를 지원대학에 통보합니다. 성적이 많이 떨어진 학생에 대해 대학이 불합격 확정 통보를 하기도 하는데, 7월 또는 8월까지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폭주족으로 경찰서에 가는 동룡이...


미국의 교도소 JAIL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구치고(MEN'S CENTRAL JAIL)인데 이곳은 주로 판결이 끝나지 않은 미결수가 복역하거나 짧은 기간의 선고를 받은 이들이 복역하는 곳으로 각 시 COUNTY JAIL마다 있다. 둘째가 연방정부 교도소 FEDERAL JAIL, 셋째가 주 교도소 STATE JAIL이다. 주 교도소에는 네 단계까지 있다. 죄질이 비교적 가벼울 때는 1,2단계의 교도소에서 복역을 하게 된다. 죄질이 무겁거나, 사형수, 무기징역 등의 죄수들은 3,4단계의 교도소에 수감된다. 미국은 학력, 가정이 있는지, 자녀가 있는지,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 등등 꽤 많은 조건을 모두 종합하여 교도소의 레벨을 정하게 되어 있다. 그래도 1단계와 2단계 정도는 몇 년 정도만 있으면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희망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함께 복역하는 이들의 수준이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그러나 3단계와 4단계는 조질 이 극악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평생을 감옥에서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모두가 거칠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막가는 인생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감옥에서 술도 만들고, 마약도 거래하며, 동성 간의 상습적인 성폭력을 자행하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특히 동양인 남자들이 살아남기가 힘들다. 그 이유는 동양인들은 서양인들 쪽보다 여성스러운 피부와 작은 신체적 조건 때문에 거의 매일 밤 다른 죄수들에게 성적으로 유린당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3,4단계의 감옥에서 출소했다 하더라도 그위에 따르는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생활은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물론 한인들이 3,4단계의 감옥을 가는 경우는 거의 드물지만, 미국에는 삼 진법이 있어서 같은 범죄를 ( 예를 들면 음주운전 )세 번 되풀이해 저질렀을 경우에는 무기징역을  판결받는다. 많은 한인들이 처음에는 거의 음주운전, 약물, 배우자 구타로 구치소에 가서 별을 하나 달고 나오게 되고, 두 번째는 처음보다 쉽게 들어가게 되어 감옥에서 약간의 다툼, 싸움에 연류 되어 삼 진법이 적용이 되어 뜻하지 않게 3,4단계의 감옥을 가게 된다. 18세 미만의 청소년들은 청소년 구치소 JUVENILE HALL와 보호관찰소 CAMP, 청소년 교도소 YOUTH AUTHORITY;PENITENTIARY로 나뉜다. 이렇게 교도소에 있다 나온 이들이나 위법을 한 이들에게는 무조건 몇 년동안의 집행유예기간을 두어 그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행적과 가능성을 지켜보게 된다.  그동안은 다른 주의 여행은 물론 어디를 가든지 담당자 DFFICER가 있어서 보고 혹은 확인을 받는다. 또한 범법자는 일정한 기간마다 자신의 행적을 보고하게 되어 있다. 집행유예 PROBATION는 범죄를 저질러 구치소에 수감되었다가 나왔거나, 아니면 보호, 관찰, 집행유예를 요하는 판결을 받았을 때 담당자가 정해져서 생활을  확인받는 것을 말한다. 집행유예에는 3가지 종류가 있다. 가석방 PAROLE은 교도소에서 복역을 마친 뒤 사회에 복귀하여 일정기간 감시를 받는 제도이다. 집행유예나 가석방 모두가 법에서 일정기간 동안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잘 넘겼을 때는 다시 자유의 몸이 될 수가 있지만, 교통법규를 제외한 그 어떤 법이라도 위반했을 때에는 이에 해당하는 법적 처벌을 다시 받게 되어 삼 진법에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범죄에 연루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자리에 있기만 해도 위법 처리된다고 한다. 


사실 서민으로 미국에서의 생활이 한국보단 다이내믹하진 않지만 인터넷도 없고 한국을 접할 기회가 없던 1980년 후반 때의 미국에서의 이민생활은 녹녹지 만은 않았었다. 현재 한국의 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하고 한류 열풍이 전 세계를 강타하는  요즘... 미국에선 한국이라는 나라를 예전보단 많이 알고 아시안에 대한 차별도 많이 줄었지만 그러나 한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으로 한국인의 위상을 세우기 위해 이민생활을 앞만 보며 열심히 하던 1980년대 미국 이민자들의 땀방울과 눈물들이 그리운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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