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은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의 3가와 버질가 코너에 위치한 한 허름한 아파트 안의 코인 라운드리에서 터졌고 난사된 총에 의해 날 포함한 코인 라운드리 내부의 모든 사람들이 그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마치 서로 짠 것처럼 다들 총을 맞고 비명 하나없이 고요하게 바닥에 쓰러졌는데, 묘하게도 내 머릿속으로는 여태까지 살아온 모든 시간의 기억조각들이 평상시에는 절대로 기억해내지 못했을 나의 아주 어릴적부터 한장면, 한장면씩 슬로우모션으로 스쳐 지나갔다.
거대한 불기둥이 내리꽂힌 듯한 가슴의 통증과 코인 라운드리의 쿰쿰한 냄새만이 현실 일 뿐, 내가 죽어간다는 사실은 한편의 비현실적인 TV드라마같이 느껴졌다.
- 아 안돼. 난 죽기 싫단 말이야
머릿속 대뇌가 분통을 터트렸다.
수중에 가진 돈이 없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아기를 낳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인지 나의 어머니는 배가 남산 만할 때까지 병원근처에도 가질 않다가 진통이 시작되자 그냥 동네 산부인과로 달려가서 단번에 나를 낳아버렸다고 그랬다. 그런데 끔찍스럽게도 나를 받은 전문의는 돌팔이 의사였는지 탯줄을 끊는다는 것이 그만 어처구니없게도 왼쪽 고환을 잘라내 버리고 말았다.
그 잘려진 고환때문인지, 그때부터 내몸은 자라면서 남과 다른 여러가지 호르몬 장애들을 나타냈다. 남자같지 않은 곱상한 외모(이건 장애가 아니라 복이라고 어머니가 강조했지만 남자라면서 가슴과 허리곡선이 여자같은 나의 외모를 아무도 아름답다고 하질 않았다.), 한번 치밀면 전혀 조절되지 않는 분노,그리고 죽을 것같은 극심한 우울증같은 감정들이 그것들인데, 그래도 이런것들은 그럭저럭 남들이 이해할만한 장애였다.
하지만 매일 밤낮으로 내 귀에 끊임없이 낮게 속삭이는 괴이한 잡음들은 아무도 이해할 수도, 하지도 못할 견딜수 없는 나만의 장애였다. 그 소리들은 몸속의 모든 소화기관과 근육그리고 뼈들이 만든, 마치 생물처럼 나에게만 들리는 언어로 속삭이는 소리로 마치 수천마리의 벌레가 내 몸을 스멀스멀 기어가는 듯한 견디기 힘든 소근거림이였다.
난 이 참기 힘든 소리가 어릴때부터 먹던 호르몬조절약의 부작용에 의한 환청인가도 생각해 보았지만, 분명 몸속의 기관들이 나에게 속삭인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고 어머니에게 달려가 어떻게 좀 고쳐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해보았었다.
이미 돌팔이 의사에게 넉넉한 보상비를 받은듯, 어머니는 내 몸이 정상이 아니라서 그런 환청을 듣는다고만 그러면서 덮으려고 하였고, 절대로 남들한테는 그런 쓸데없는 말을 꺼내지도 말라고 으름장까지 놓았었다.
그래도 나는 울며불며 매달렸는데,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끔찍한 폭력이였다.
결국 여러번의 폭력뒤에 나는 그걸 받아들여야 앞으로 살아갈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소리를 어떻게해서든지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시간이 흘러 몸속의 장기들과 근육, 뼈들이 아우성을 쳐대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작정을 하니 처음엔 무척 성가셨으나 차차 말벗도 되고 익숙해져 갔다.
내 성격이 워낙 들쑥날쑥 뒤죽박죽이라 친한 친구 하나 없이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는데, 내 몸속 기관들의 말을 듣고 대화도 나누면서 나와 그들사이에 사람같은 우정도 생겨 버렸다. 내가 죽어가는 이 찰나의 순간, 내가 당한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을 추리해 내기 위해 나의 유일한 친구 몸속 기관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외쳐대기 시작했다.
- 누가 총을 난사했을까?
- 미국은 총이 문제야. 총이. 허구한 날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나는데도 악착같이 총기소지를 고집하는 미국인들때문에 결국 이렇게 되어버리다니.
- 총을 난사한 자는 아마 너와 관련있는 사람이 아닐까?
대뇌가 담담한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은행이나 가게처럼 돈을 털거나 물건을 훔칠려는 도둑이 아닌다음에야 이런 작은 아파트의 코인 라운드리에서 총을 난사한다는 것은 이 빌어먹을 코인라운드리 안에 분명 원한이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는 추리때문에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리라.
총격후 0.00001345 초뒤
나는 유학생 신분으로 가족들과 함께 미국에 왔다. 일을 일단 저지르기만 하고 대책은 전혀 없는 아버지가 경기도 일산에서 운영하던 자그마한 장난감 제조업의 부도로 빚쟁이들 몰래 야반도주하듯 로스앤젤레스로 스며들었다. 예전과 달리 한미수사공조체제가 확실한 요즘 세상에 하와이주 다음으로 한국과 가까운 캘리포니아주를 선택한 이유는 원래 등잔밑이 어둡다는 얼토당토않는 아버지의 논리때문이였다.
미국에 도착하자 마자 나는 낮에 커뮤니티컬리지에 랭귀지코스를 밝으며 밤에는 아르바이트일을 시작했고 돈을 좋아하는 어머니는 여러직업을 진전하였다. 그러다가 지인의 소개로 윌셔가에 있는 회계사 사무실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하루는 어머니가 생전 처음 번듯한 사무직에 취직하게 된 기념으로 나를 데니스 레스토랑으로 데려갔다. 한식을 못먹는다고 불평하는 혀와 위의 아우성을 뒤로 하고 나는 어머니와의 오붓한 외식을 즐겁게 받아들였다.
- 이제부터는 집청소, 빨래를 나랑 같이 하자꾸나
샌드위치세트를 다 먹고 나서 어머니가 다짜고짜 나에게 제안했다. 이두박근이 나에게 집안가사일 정도야 괜찮다고 허풍을 떨었다. 건성으로 어머니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프렌치프라이 한개를 케찹에 찍어 입에 가져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어머니는 내손을 거세게 잡더니 있는 힘껏 당신의 쪽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나는 세게 잡은 손의 통증보다 오랜만에 사준 새 옷이 혹시 찢어지진 않을까하는 생뚱맞은 걱정으로 온몸이 잔뜩 웅크려졌다.
- 이게 다 아버지가 돈을 우습게 보다가 불러들인 댓가야.
어머니의 눈에 벌써 작은 이슬이 맺혔다. 부잣집 막내딸로 태어나 어린시절을 호강하면서 지내온 어머니가 아버지를 만나 겪은 고생들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의 연속이라는 것을 당시 철없던 나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미국땅을 밟자마자 매일 술 취해 잠만 자는 아버지대신에 말도 안통하는 생면부지의 미국인들에게서 어머니는 웨이츄레스, 바느질, 구슬꿰기등등 여자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동들을 섭렵했었다.
허지만 그 험한 노동 뒤에 힘들게 집에 모셔온 돈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이삼일만 묵고는 훌쩍 사라져버렸다.
어머니는 몸이라도 바칠 각오로 제발 좀더 집에 머물다 가라고 돈에게 애원하며 매달렸지만 그럴때마다 돈은 그 특유의 초록빛 얼굴이 가득하게 조소어린 비웃음을 남기고는 매몰차게 떠나버렸다.
돈이 고생하는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 사실 한두번이 아니였다. 한번은 미국에서 다시 만난 어릴 때 소꿉친구였다는 다이아몬드바 아줌마집에 곗돈으로 돈을 키운다고 보냈다가, 그 아줌마가 종적을 감추는 바람에 모아둔 돈을 순식간에 날려버린 적도 있었다.
- 민우야! 넌 돈 많이 벌어야 한다 알겠지?
돈돈돈..
예전엔 돈타령을 하는 어머니가 사실 저주스러웠다. 다 돈때문에 나도 이렇게 아픔을 지니고 살아가게 되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였다. 그러나 이젠, 난 다른 이민 한인들의 거창한 이민사유보다 간단명료한 어머니의 바램이 더 확실히 마음에 와닿았다. 군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부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새살림을 차리거나, 재산도피, 부도내고 튀는 것이 아니고 자녀교육을 위해, 새로운 세계에 도전해보고자 미국으로 왔다고 거짓말하는 것보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미국을 선택했다는 어머니의 이민사유가 더 진실된 것이라고 난 확신했다.
총격후 0.0001385 초뒤
비록 우리집에 찾아오는 돈은 갖가지 미국생활 특유의 페이먼트로 머무는 시간들이 굉장히 짧았지만 어머니는 이를 악물고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가 일을 하면 할 수록 아파트가 제공한 낡은 냉장고속에 소줏병들은 점점 늘어났다. 그 소줏병들은 술을 전혀 하지 못하는 어머니와 나를 제외하고 오로지 아버지만을 위한 술이였고 미국으로 와서 체면때문에 험한 일은 못하겠다면서 집안에서만 빈둥거리는 아버지의 음료수이자 주식이였다. 차츰 저녁식사때만 반주로 마시던 아버지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마시는 중독자가 되어갔다. 매일 술취한 아버지를 바라보던 어머니는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어 좁은 집안에서 얼굴만 맞대도 으르렁거렸다.
- 야 이 멍청한 인간아. 도대체 그 꼬라지가 뭐야?
- 뭐? 멍청? 이 여편네가..
- 흥! 멍청하다니까 기분은 나쁜 모양이지. 앞 집 멕시칸은 집에 돈을 그렇게 척척 잘도 모시고 온다는데 이 인간은 밤낮 술로 돈을 집안에서 모조리 다 내보내고..으이구 내 팔자야. 당신은 멕시칸보다 못한 인간이야!
미국으로 건너온 한국남자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언어폭력은 그 어느나라보다 멕시코남자와 비교되는 것이였다.
그 말이야 말로 핵폭탄급의 위력을 가진 엄청난 폭행임을 어머니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 말을 듣자마자 손에 있던 소줏병을 어머니를 향해 던져버렸다. 빗나간 소줏병은 식탁위에서 산산히 부서졌다. 산산조각이 나는 유릿조각에 어머니는 한 마리의 무시무시한 야수처럼 아파트가 떠나갈 정도로 울부짖으며 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귀청이 찢어질것 같다며 나에게 고통을 호소했다. 나는 어머니의 울부짖음에서 돈을 집안으로 데려다 놓기 위해 어머니가 얼마나 광기에 가까운 안간힘을 썼는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미국생활이 뭐가 그렇게 못 마땅한건지, 매일 수수방관만 하면서 술병만 축내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한 집안의 가장이라면 최소한 그런 어머니정도는 안되더라도 안간힘을 쓰는 시늉이라도 내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총격후 0.00385 초뒤
시간이 갈수록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의 부부싸움은 그 강도가 점점 더 심해졌다. 나는 코리아타운 한복판의 좁은 단칸 스튜디오형 아파트에 앉아 그나마 있지도 않는 집안 살림들이 아버지의 손에 의해 하나씩 부숴져 나가는 비극과 급기야 어머니에게 손찌검까지 하는 아버지의 그 광기어린 참극을 동시에 관람할 수 있었다.
덕분에 멀찍이서 바라보던 LA경관도 집안에서 만날 수가 있었다.
단순히 부부싸움을 말리기 위한 목적치곤 엄숙하고도 장엄한 비장미가 넘치는 권총을 차고 집안에 들이닥친 LA경관들을 보자마자 아버지는 순한 양처럼 변했다. 아버지는 아무말도 못하고 집에 다른 백인경관들과 같이온 한국계 LA경관의 한번만 더 이러면 체포하겠다는 유창한 한국말 경고앞에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경관의 일장연설을 들으면서 아버지는 한국에 있을때부터 장난감 제조업, 특히 좋아하는 권총모형을 만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오르는지 경관들이 찬 실제권총들을 흘끔힐끔 쳐다보았다. 총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은 근래에 보기 드문 총명스러운 빛을 발하였다.
LA 경관의 권총을 보고난 정확히 1주일뒤, 아버지는 어디서 구했는지 LA경관이 찬 권총과 똑같은 실제총을 구입해서는 신주처럼 모시게 되었다. 대뇌가 이때 나에게 아버지가 코인라운드리에서 총을 난사한 것이 아닌가 나직히 속삭였다.
- 아버지가 그 총으로 어머니를 쏘기 위해 난사한 것이 아닐까?
총격후 0.0085 초뒤
평상시 리커스토어 아르바이트로 피곤해서 바로 코 앞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아귀다툼이 벌어져도 잠은 충분히 잘 수 있었는데 잠은 커녕 집안에서 누워있을 수 조차 없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더더욱 위태롭고 아슬아슬하게 되어버리게 된 결정적 이유는 어머니의 무신교에서 유신교로의 종교전향 덕분이였다.
- 아니? 이 여편네가 지금 뭘 하는 거야?
하루는 방 한쪽에서 성경책을 펼쳐놓고 읽고 있는 어머니를 발견한 아버지가 아침부터 구부러진 목소리로 외쳤다. 어머니의 대답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눈에서 붉은 광채가 흘러넘쳤다.
난 어머니가 한달전부터 같은 아파트단지에 사는 훈주 엄마의 인도에 따라 교회를 출석하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미국에 살면 무조건 교회에 나가야 한다는 훈주엄마의 말에 순순히 예배당에 따라간 것인데 나는 기독교에 대해선 잘 몰랐지만 교회엘 나가도 그후 별 변화없는 어머니의 생활과 모습을 통해 기독교의 창시자 예수의 그 큰 사랑도 어머니의 마음만큼만은 녹이질 못하고 있다는 점은 확신했었다.
마음이 종교적으로 열리지 않은 어머니가 그래도 집에서 시도때도 없이 밤낮으로 성경책을 펴대는 이유는 아마 아버지와 마귀의 상호공통분모점을 수학적이 아닌 신학적으로 정립시키기 위해서 인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의 성경읽는 모습을 어김없이 시비거리로 삼는 아버지와 용맹하게 맞서는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한국에 있을때 세계사 과목에서 배웠던 중세 종교 전쟁의 현장감 넘치는 시청각 교육을 안방에서 생생하게 복습할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음을 감사드리며 부부싸움이 시작되면 화장실 바로 앞에 놓은 빨래가 담긴 플라스틱 바스켓을 들고 집을 나와 아파트공용인 코인라운드리로 발길을 옮겼다.
굳이 빨래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지저분하고 시끄러운 아파트 단지내에서 유일하게 조용히 피신할 수 있는 장소였기 때문이였다. 한국말로 빨래방인 코인라운드리에 가면 솜이불속에 있는 것같은 포근한 냄새가 나서 마음도 편안해졌다.
- 일단 총기를 난사한 사람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어
갑자기 탐정같이 대뇌가 나에게 말했다.
-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지?
- 그냥 느낌이지..
- 아버지가 총기를 난사했을 것 같지는 않아…아 그럼 도대체 누구지?
총격후 0.0563 초뒤
- 어떻게 교회에 가실 결심을 하게 된거죠?
나는 아버지가 잠에 골아 떨어진 틈을 타 어머니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어머니는 나의 질문에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 돈때문이다.
- 돈때문이라니요?
- 예수 잘 믿으면 돈이 잘 찾아온단다.
- 예?
어머니의 대답에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무뚝뚝하고 말을 잘 듣지 않는 초록 피부의 돈이 성경 읽고 기도하면 집에 잘 들어온다니 정말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세상에서 돈을 많이 버는 방법으로 종교를 선택하게 된 어머니의 놀라운 결심의 도화선이 된 훈주 엄마를 어머니는 코인라운드리에서 처음 만났고 나도 훈주 엄마를 같은 장소에서 마주쳤었었다.
훈주엄마는 빨래를 하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 대뜸 어느 교회를 다니냐고 물었었다. 첫만남의 의례는 모조리 제쳐놓고 종교에 대한 아주 사적인 질문부터 하는 것이 미국에서 한인들끼리 하는 대화의 첫단추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오소리같이 집요하게 생긴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내가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고 말하면 날 포교대상으로 물고 늘어질 것 같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세탁기를 돌릴 25센트 동전 좀 바꿀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미국으로 이민와서 가장 성가신 일이 맘대로 세탁기를 자기가 빌린 아파트안에 설치할 수 없다는 점과 아파트 공동이용시설로 설치된 세탁기에 치사하게 동전을 넣어 작동되게 만든 점이라고 투덜거렸다.
훈주 엄마는 요즘 각박해서 마켓에서도 25센트 동전을 잘 바꿔주지 않는다면서 큰 선심을 쓰듯 동전을 바꾸어 주었다. 나는 도대체 어디서 동전을 잘 바꿔주느냐고 훈주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훈주 엄마는 아파트 매니저인 멕시칸 호세가 동전을 많이 바꿔준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 두더지같이 지저분하게 생긴 (그러고 보니 내가 있는 이 아파트안의 모든인간들의 모습은 여러동물의 모습과 흡사하다.) 맥시칸 메니저가 시큐리티가드업에 종사한다는 곰처럼 생긴 훈주아빠와 그의 가족에게만 친절할뿐 다른 입주자들에게는 고압적이고 무뚝뚝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호세에게 동전을 바꾸는 것은 마음 속으로 포기를 했다.
- 훈주아빠에게도 총이 있을까?
낮에는 매일 잠만 자고 가끔씩 밤에 나가 시큐리티가드를 하는 훈주아빠에게 당연히 총이 있지 않을까?
총격후 0.0522 초뒤
나는 오로지 교회가면 돈이 잘 찾아온다는 어머니의 말을 믿고 자발적으로 교회로 갔다.
게다가 난생 처음 예배라는 마치고 예배후 열리는 [초신자 성경공부]라는 모임에도 참석하였다.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학생으로 보이는 한 교인으로부터 나는 돈에 관하여 말도 안되는 또 다른 사실 하나를 듣게 되었다. - 이제 돈을 만나는 대로 무조건 십분의 일을 떼어 교회로 맡겨야 됩니다.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온 가족이 그렇게 피땀을 흘리며 집에 모실려고 하는 돈을 일단 교회에 덥썩 맡겨야 된다니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거부반응이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쳤다. 교회 다니는 걸 그만둘까 생각하며 성경공부방을 둘러보는데 공부 반에 앉아 있는 한 한국인 여학생이 눈에 쏘옥 들어와 앉았다.
야! 정말 예쁘다.
그 여학생의 아름다운 모습은 그녀 이외에 다른 여자는 생각 할 수 없도록 나의 마음에 맹중독성 각성제를 놓아버렸다.
돈만 바라보며 살아오던 나의 눈에 비늘이 벗겨지는 것 같았다.
계속 그 여학생을 바라보다가는 눈도 멀 것만 같아 나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나는 교회를 다니기만 하면 집에 돈이 많이 찾아 올 것이라는 어머니의 말보다 교회에서 만나게 된 여학생 때문에 교회에 열심히 다녀야 겠다고 결심했다.
아무리 쫓아다녀도 달아나기만 하는 돈보다 차라리 저 여학생을 쫓아다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부터 얼떨결에 교회를 다니게 된 나는 예배시간때마다 되도록 이면 그 여학생의 옆자리에 앉으려고 노력했다. 비로 곁눈질로 그녀를 훔쳐 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몇초 안되지만 같은 공간에 그녀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 세상뿐만 아니라 교회내에서도 물질적 축복만 복이라고 생각하고 돈만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다들
회개해야 합니다. 그냥 하나님만을 섬기세요. 그러면 물질이 자연적으로 뒤쫓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설교자의 날카로운 목소리와 과장된 제스처는 인자한 겉모습과는 달리 예배당을 매우고 있는 모든 교인들의 귀청을 뒤찢어 놓았다. 잠시 설교에 귀를 기울이던 나는 설교내용중 [돈이 자연적으로 뒤쫓아오게 된다]는 것도 돈에 대한 기대가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차라리 돈을 까놓고 숭배하는 것이 속으로 은근히 돈을 바라면서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보다 더 순수하고 진실된 인간의 모습이 아닌가하는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나는 설교자의 말에 귀를 닫고 내 앞자리에 앉은 그녀에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세상을 살면서 돈때문에 벌어지는 이 지긋지긋한 투쟁의 어두운 기억도, 어릴적부터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집안에 데리고 오려했던 온가족들의 고생스러웠던 기억들도 다 같이 무시하기로 나는 결심했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인데 교회에 만난 그 예쁜 여학생은 바로 내가 코인라운드리에서 자주 마주치는 광신자 훈주엄마의 딸 훈주였다.
- 니가 훈주를 좋아한다는 사실때문에 훈주 아빠나 엄마가 총을 난사 한 것이 아닐일까?
- 어처구니 없는 추리군.
대뇌와 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척수가 느릿한 발음으로 끼어들었다.
- 어처구니 없는 추리가 아니야. 훈주부모가 훈주를 얼마나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지 알아? 자녀 뒷바라지해서 훈주 덕볼려는 생각으로만 똘똘 뭉쳐진 사람들인데. 이민온 한국사람들이 자기 자식 끔찍하게 사랑하는 건 너도 잘 알잖아. 특히 훈주 부모들은 더해.
총격후 0.029 초뒤
- 민우야.돈이 집에 많이 찾아와 주도록 기도했었니?
어김없이 교회를 다녀온 나에게 묻는 어머니의 첫마디는 언제나 같은 말이였다. 나는 어머니의 그 질문이 무식하거나 불순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교회를 다니면서 안 사실이지만 비단 어머니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기관에 다니는 사람들이 외치는 것은 결과적으로 돈을 더 집안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빌고 기도하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였다. 나의 이 생각은 편협된 매도가 아니라 최소한 내가 출석하는 교회의 교인들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얻은 결과였다.
좋은 학교 가게 해주세요(돈을 자주 만나게) 결혼 하게 해주세요(돈이 많은 부자한테) 건강하게 해주세요(돈을 더 많이 벌 수 있게) 살아서도 돈 ,죽으면 돈이 넘치는 곳에서 영원히 살고 싶은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 기도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때문에 마음을 평안히 가져야 되는 임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이 불러들인 돈에 대한 기돗소리 때문에 조용하게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다. 시끌벅쩍 엄숙한 예배시간에도 시장바닥처럼 돈이 떠들어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예배를 방해 받는 데도 사람들은 뭐가 기분이 좋은지 그냥 아무말 없이 싱글벙글거리기만 할 뿐 이였다.
저 사람들 도대체 뭘 믿는 거야? 돈이야? 하나님이야?
교회출석이 잦아지면서 마음속에는 그런 의구심이 일었다. 그러나 훈주의 얼굴만 생각하면 돈을 비롯한 모든 생각의 찌꺼기들이 퐁퐁을 잔뜩 묻힌 행주에 싸악 씻기듯 모두 사라져버렸다. 나는 훈주와 어떻게 해서든 더 친하게 되고 싶은 마음에 그녀가 행여나 갈 만한 모든 교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석했다.
총격후 0.09 초뒤
- 내 이름은 훈주야
우연히 교회봉사팀 첫미팅에 참석한 나는 자기소개 시간에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훈주.
그 이름은 돈만이 최고고 사랑과 관심의 집중이 되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으로 다가온 아주 특별한 이름이였다.
이민생활의 어려움은 언어장벽보다 타인과 단절되는 외로움이라는 장벽때문에 발생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많은 이민자들이 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돈을 더 벌기 위해 몰입하고 스스로 돈의 노예가 되기로 자처하면서 타국에서 쓸쓸히 인생을 마감하는 것을 이민온지는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난 그동안 많이 목격했었다. 한국보다 더 행복하게 잘 살아보자는 다짐들을 가지고 미국으로 이민오지만 결과는 눈앞의 돈때문에 파국의 종말을 맞는 것이다.
나는 돈에게 내 영혼을 팔리기 전에 훈주를 발견하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랐다.
훈주..이제 난 그녀만을 바라보리라.
이카루스처럼 온몸이 불타 올라 한줌의 재가 되어 버릴지라도 그녀만을 향해 날아가리라. 나는 훈주와 마주치는 기회를 더 늘릴생각에 교회활동에 더더욱 열심을 내었다. 동기야 어떻든 교회를 열심히 다녀서 [훈주의 천국]에 영원히 머물려는 신앙이야 말로 돈 만을 바라고 기도하는 불순한 마음보다 더 순수하고 숭고하다고 나는 믿었다. 훈주는 한국말이 서툴렀다. 난 수다스러운 여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래서 한국말이 서툴러 조용하게 있는 훈주가 마음에 더욱더 쏘옥 들었다. 나는 열심히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훈주의 옆모습을 몰래 바라보며 마음의 도화지위에 그녀의 모습을 하나 하나씩 그려보았다.
그려놓고 보니 좀 웃긴 비유같지만 유난히 큰 그녀의 눈은 애완견 시츄의 눈과 닮았다고 남몰래 미소를 지었다. ( 그렇다. 역시 우리 아파트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동물과 닮았다 )코는 성형수술을 한 듯 오똑했고, 입술은 도톰하고 육감적으로 나와 눈코입전체가 이국적인 인상을 자아냈다. 양쪽 부모는 모두 한국인인데 아마 조상중에 혼혈의 피가 섞여진 것인지 아니면 그냥 자신만 홀로 이 세상에 태어난 유일한 인종인지 알수가 없었지만 경외롭기까지한 아름다움을 그녀가 완벽히 갖추고 있다고 나는 확신했다.
- 코인 라운드리에 훈주가 있었나?
대뇌가 느릿하게 질문했다.
- 음. 있었어 그래. 훈주와 훈주엄마가 빨래한 옷들을 접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 훈주나 훈주엄마를 노리고 총기난사를 한 것이 아닐까?
- 누..누가?
순간, 훈주아빠가 아버지와 코인 라운드리에서 크게 다툰적이 있었다고 한 어머니의 말이 기억났다. 남 간섭하길 좋아하는 훈주아빠와 남에게 잔소리 듣기를 죽어도 싫어하는 아버지가 우연하게 아파트에서 말다툼을 일으킨 건 이유가 어떻든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한번은 벌어질 만한 일이였다. 훈주아버지가 우리집 빨래가 다 마르지도 않았는데 드라이어기에서 꺼내놓아 아버지가 나중에 발견하고 대판 싸운 것도 바로 일주일전이였다.
- 그렇다면 역시 범인은 훈주아빠와 아버지 둘 중 하나인가?
총격후 0.823초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LA코리아타운 집으로 돌아올때 MTA버스를 이용했다. 버스 안은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았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거리의 회색빛깔은 어둡기도 하고 너무 화려해서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길 자주 했다. 서로 다른 미시감과 기시감이 동시에 밀려와 마음에 깊은 음영陰影들을 몰고 들어올때 마다 바로 눈을 감아버리고 오로지 나와 훈주만 존재하는 [훈주의 천국]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민우야. 돈이 우리집에 많이 찾아오도록 기도를 하긴 하는거니?
훈주의 천국을 거니는데 불쑥 어머니의 질문이 들렸다. 천국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였다. 어머니의 질문으로 머리 속에서 돈에 관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이으며 몰려 들어왔다. 돈보다 더 나은 훈주를 찾았기 때문에 돈을 떨쳐 버릴려고 도리질을 했지만 돈은 점점 길고 단단한 꼬리를 이어가며 사라지지 않고 그나마 마음 속에 가진 훈주의 생각들을 하나씩 풍선처럼 터트리면서 머리 속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돈은 결국 머리, 마음 전체 속에 점점 가득차게 되더니 내가 돈인지 돈이 나인지 알 수 없게 뒤죽박죽 만들어 버렸다.
- 어머니도 홧김에 총을 난사했었을 수도 있어.
- 무엇때문에?
- 돈때문에 열받아서.
어머니는 기회에 나라라고 생각한 미국에서도 벌이가 신통치 않자 집에서 놀고 있는 아버지와 어제도 크게 한바탕 싸웠었다.
총격후 0.9 초뒤
- 아야!
어머니가 갑자기 팔꿈치로 나의 옆구리를 툭 건드렸다. 얼마나 아픈지 광배근이 [아야]라고 비명을 질렀다.
- 민우야! 봐! 성경시대에도 대머리가 수치였던거야. 잘 들어봐. 엄마가 중국에서 개발한 대머리 치료제를 미국으로 들여올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말이야. 그걸 교인들을 중심으로 마켓팅 하면 돈 좀 벌 것 같아. 구약시대때에 엘리사의 대머리를 치료한 신 개발 대머리 치료제! 잘 팔릴 것 같지 않니? 목사들 중에 대머리가 많아서 분명 잘 팔릴걸!
훈주덕분에 열심히 읽은 성경속 열왕기하 2장 후반부가 분명했다. 거기서 엘리사가 벨엘로 올라가는데 젊은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서 대머리라고 놀리자 엘라사가 저주를 하자 수풀 속에서 암콤들이 아이들 42명을 찢어 죽여버리는 장면이 분명했다. 어머니는 성경을 읽더라도 성경을 통해 돈을 만나려는 생각으로 가득차 보였다.
‘야! 내가 아는 누구누구는 기도해서 떼부자 됬다더라!’
‘이제부터 시작해도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돈은 만날수 있을 거다!’ ‘내가 아는 그 집사는 겨자를 액자에 넣어 ‘겨자씨 같은 믿음’이라는 걸 만들어 대박 맞았지…’
어머니는 결국 돈을 만나기 위해 단지 성경을 이용하고 있는 사람이였다.
식욕은 여러 요인에 의해 결정되지만 뇌안의 시상하부라는 식욕과 포만감을 조절하는 부위가 있는데 그 부위가 나에게 배고프다며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잠시뒤에는 몸의 장기들과 뼈, 근육들이 예전보다 더 심하게 나에게 소릴질러댔다. 점점 어머니에게 실망을 하는 나 자신이 짜증스러웠지만 지금 시상하부가 불평을 하기 시작하면 분명 조금 있다가 소화에 관한 온몸의 기관들이 줄줄이 합창을 해댈 것이 분명하였으므로 조용히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 안이 전혀 다른 세계처럼 시원한 바람과 함께 열려졌다.
순간 어머니와 돈의 모습이 굉장히 닮았다는 생각이 생뚱맞게 스쳐지나갔다.
나는 몸속 장기들이 외치는 배고픔의 아우성을 무시하고 냉장고 문을 닫았다. 거실에서 성경을 읽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훔쳐보았다. 집을 나간지 거의 일주일동안 감감 무소식인 아버지의 행방은 전혀 궁금해 하지 않는, 오로지 돈에만 미친듯이 집착하면서 진지하게 성경을 읽는 어머니의 모습은 괴물과 똑같았다.
- 어머니가 코인 라운드리에 너랑 빨래하고 있지 않았니?
나는 대뇌의 질문에 머뭇거렸다.
- 총기난사 당할때 곁에 어머니가 있지 않았니?
- …….
- 어서 대답해봐
- 있었어.
총격후 0.8 초뒤
나는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서 자신이 아르바이트 할러 갈때 타는 MTA버스와 똑같은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혼잡했던 거리를 벗어나서는 미친듯이 거대한 몸을 흔들어대며 무서운 속력으로 질주해 대기 시작했다. 버스의 빛의 속도를 능가하는 속도에 온 몸들이 통곡에 가까운 비명을 질러댔는데 묘하게도 정신은 수정처럼 맑아져갔다.
놀라운 돈!
순식간에 마음을 잡고 뒤흔드는 그 놀라운 변화무쌍함!
돈은 참으로 놀라웠다. 전혀 거리낌없이 나를 삶과 죽음의 양극단으로 이리저리 가지고 놀고 있었다. 훈주를 통해 돈을 잊을려고 해도 어머니를 통해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돈은 도대체 누구인가?
지구위의 모든 사람들은 그 돈 때문에 울고 웃고 서로 죽이기까지 하는데 어찌 인간들은 그 엄청난 놈의 희미한 윤곽조차도 모르고 있는지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를 악물고 차창밖을 바라보았다. 스쳐 지나가는 가로수의 가지들이 괴기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나 잡아봐라하면서 약올리는 귀신의 가느다란 손마디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완전히 돈처럼 변한 어머니의 안타까운 모습. 거세를 당해 남성호르몬이 말라 점점 여성화 되어가는 나의 감성이 여태까지 길러준 나를 길러준 모성의 정체는 나를 앞으로 평생돈의 노예로 살게끔 산제물로 바치려고 한다고 울부짖고 있었다. 공포감이 몰려왔다. 등골의 신경이 오싹하다며 비명을 질렀다.
- 돈은 악마야! 괴물이라고.. 그런데.. 어머니.. 어머니는 왜 날 돈의 제물로 만들려는 거죠?
총격후 0.7 초뒤
- 민우야 ! 그러나 돈이 좋은 추억들도 많지 않아?
완전히 돈의 모습과 동일시된 어머니가 슬금슬금 나를 구슬렸다.
- 생일 때 가져다준 자그마한 선물. 국민학교 소풍 때마다 돈이 들고온 기름이 자르르 윤기가 흐르는 전기통닭구이 한 봉지. 가끔씩 걸리는 독감을 치료해줄 약을 사 가지고 온 돈이 고맙지 않아?’
한참뒤, 버스는 멈추었다.
- 민우야 다왔어. 내리자. 어머니는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앞장 서서 내리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에서 내리면서 어머니의 뒷통수를 바라보니 머리 숱이 예전보다 많지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어머니도 곧 대머리 되시겠어요.’
그러자 어머니는 갑자기 두손을 공중에 들더니 이렇게 외쳤다.
- 그래! 엘리사표 대머리 치료제! 맞아. 이름을 엘리사표 대머리 치료제라고 붙이자!’
어머니는 들떠있었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돈에게 온통 마음이 빼앗겨 버린 불쌍한 어머니……… 평생을 돈을 쫓아 고생만 해온 어머니가 너무 측은하게 느껴졌다.
그래! 돈 그 개자식을 도려내야해…
나는 눈을 떴다.
위가 통증을 호소해서 오른손으로 배를 슬슬 문질러 달라고 했다. 돈만 생각하면 몸 어디선가 분노의 호르몬 분비물이 쏟아져 나와 통증을 유발시키는 것 같았다. 거실에서 성경을 읽고 있던 어머니는 이제 노래까지 부르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입에서 흥얼거리는 노랫말의 가사가 소위 찬송가라는 것을 깨달았다. 뇌가 시켰는지 귀의 고막이 성가시다고 어서 손바닥으로 귀를 막으라고 일갈했다. 그러나 나는 오로지 돈을 어떻게 없앨까하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고막의 괴성을 들은체 만체 했다. 어머니는 계속 찬송가를 흥얼거리며 성경을 덮더니 화장실로 들어갔다. 훈주가 생각났다. 지금 훈주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순간 번개처럼 생각의 화살이 지나갔다.
- 변화무쌍한 돈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내가 돈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그냥 훈주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단둘이 돈 걱정없는 훈주와 나만의 [천국]에서 머무는 것이 나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이 아닌가? 하나님을 모신다는 교회도 이제 하나님이 구주가 아니라 돈이 구주라는 것이 자명하게 밝혀진 이때. 나혼자 돈을 죽인다는 것은 역부족이야.
물질만능주의와 배금사상이 이제 종교이자 하나님이 되어버린 이 세상에 돈에게 달려드는 것은 마치 달걀로 바위를 내려치는 것 같은 무모한 행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자 몸서리가 쳐졌다. 자신을 낳은 어머니도 돈의 노예고 또한 나도 세상을 살면서돈에게 산제물로 바쳐질려는 피할수 없는 운명에 치가 떨렸다. 돈을 위해서 영혼을 다 바치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모든 사람들의 운명의 끝은 결국 지옥의 무저갱이라는 생각에 측은함이 들었다.
- 그래 훈주에게 사랑을 고백하자.
총격후 0.6 초뒤
갑자기 훈주야 말로 이런 인류의 저주에서 구원해줄 유일한 구원자가 확실하다는 믿음이 솟구쳤다.
- 훈주에게 사랑한다고 이야기 하자!
나는 훈주가 사는 아파트로 뛰기 시작했다.
- 이것봐 민우!
5번 척추뼈가 고통에 일그러진 소리로 나를 불렀다.
- 힘들어 죽겠어. 갑자기 그렇게 미친 듯이 뛰어가다니…이제 몸도 남자가 아니라 여자인데..
사실 스무살을 넘기면서 약해진 남성 호르몬과 강해지는 여성호르몬과의 불균형때문인지 몸이 점점 여성화 되어가는 과정에 있었다. 가슴이 완전히 봉긋해지고 허리라인이나 히프라인이 완전히 여성의 몸매같았다. 어릴때부터 이목구비가 또렸한 어머니의 인상을 닮아 누가 봐도 조각미인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수려한 외모였는데 여성호르몬이 활발하게 더욱더 나를 여성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겉모습은 그렇지만 영혼만은 뭐라고 해도 여성을 사랑하는 남성이였다.
아무리 동성결혼도 허용된다는 세상이지만 한 인간의 영혼이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나의 영혼은 여성만을 원한다. 난 헤테로섹슈얼리스트다.
그런데 털썩 겁이 났다.
- 혹시 훈주도 다른 세상 사람들처럼 돈의 거짓말에 속아 있는 건 아닐까?
세상 전체가 얼떨결에 혹은 자의로 자신의 영혼을 돈에게 팔아넘기는 상황에서 보기만 해도 마음이 맑아지는 순수해 보이는 훈주지만, 돈의 불가항력적인 마력을 훈주가 여태까지 감당해 낼 수 있었을까 궁금증이 스물스물 피어올랐다. 성격이 자이드롭처럼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나는 그 궁금증을 털쳐버리기 위해 고개를 회전목마 돌리듯 가로저었다.
- 아니야. 아니라구 훈주는 돈에게 영혼을 팔 아이가 아니야
나는 귀여운 훈주의 얼굴을 떠올리려 다시 노력했다 . 그런데 마치 지우개가 깨끗이 지운 것처럼 훈주의 얼굴이 전혀 생각이 나질 않았다. 뭔가에 홀린 듯하였다. 뿌연 안개속에 갇혀버린 것처럼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 어떤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눈이 가리워졌기 때문이라고 나는 결정내렸다.
그래 먼저 돈을 죽여야 한다.
싸구려 돌팔이 산부인과 의사에게 남성이 도려 내버려졌고, 아름다운 훈주의 추억도 지우개로 지워버리려하고, 세상의 모든 영혼을 피로 물들이고, 알수 없는 전염병으로 소망도 다 빼앗아 가버리는 돈! 돈! 돈!
순간 눈알속에서 불같이 화끈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머리속에서 다이너마이트가 터졌는지 눈알이 튀어나올 듯 엄청난 압력이 느껴졌다. 살인의 충동이 느껴졌다.
일단 먼저 돈을 죽여버리자!
총격후 0.5 초뒤
난 홀로 아파트 창문을 통해 어둑해진 버몬트가를 지나가는 차량들을 응시하면서 입고 있는 녹색점퍼의 지퍼를 만지작 거렸다. 몸에 지닌 쇠라고는 지퍼밖에 없었기에 암살을 시도하려는 킬러가 쇠단도를 만지작 거리듯 지퍼를 올렸다 내렸다했다.
- 지퍼가 어떻게 만들어진 줄 알아?
지퍼를 만지자 엉뚱하게도 돈의 하수인인 어머니의 음성이 들렸다.
- 지퍼는 시카고에 살던 어떤 남달리 뚱뚱한 남자가 외출할 때마다 허리를 숙여 군화끈을 묶는다는 것이 힘든 나머지 간단하게 군화끈을 묶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발명하게 되었어. 지퍼의 경사면을 지나는 작은 힘이 수직방향의 큰 힘으로 바뀌는 원리를 이용한 제품인 지퍼…정말 놀랍지 않니?. 엄마는 돈을 만나기 힘들어 마음이 막힐때마다 지퍼를 만지작거려… 나도 언젠가 이런걸 상품화하게 해달라고 오늘도 기도했어. 생각만해도 마음이 벅차… 돈이 나를 보며 빙긋이 미소짓는 그날을 생각만 해도…
어머니의 음성이 내 머릿속에서 횡설수설하였다.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는데 마음이 훵해져 왔다. 곧 태풍이라도 불면 모래성처럼 모조리 다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돈에 미쳐버린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어 마음이 편안해지려 코인 라운드리로 들어가는 문의 손잡이를 돌렸다. 끼익 거리는 쇳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코인 라운드리 구석의 자그마한 의자에 앉아있던 멕시칸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멍청한 표정으로 갑자기 들어닥친 나를 휘둥그러지는 눈으로 바라 보았다. 나는 남자와 0.5 초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곧 경계를 풀고 나에게 흐릿한 시선을 고정시킨 체 손에 들고 있던 담배 모양같은 검게 그으른 유리관을 입에 물더니 다른 한손으로 라이터를 켜 유리관 끝에 갔다댔다.
휘이익~
마치 국수 한가닥을 입으로 흡입하는 소리가 났다. 라이터불로 생긴 하얀연기를 남자는 유리관을 통해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고는 눈의 흰자위를 드러내며 으음하는 신음소리를 연기와 함께 다시 뱉어냈다.
크랙이라는 길거리 싸구려 코케인을 대놓고 아파트 마당에서 피워대니 분명 마약중독자가 틀림이 없었다.
영화에서 보던 마약흡입장면이 실제로 LA한인타운 한복판에 3D 영화같이 버젓이 상영되고 있는 것이다.
저 놈은 아파트 매니저 호세!
저놈도 아버지처럼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면서 아파트 렌트비나 독촉하고 코인라운드리에서 쓰도록 동전이나 바꿔주는 놈인데 여기서 마약이나 피워대다니. 다 돈때문이야. 다 돈때문에 돌았어. 돈은 폭력자고 이 세상 모든 죄를 만들고 혼자 자취를 감추어 버리는 비겁한 놈이다!
나는 이제 분노 때문에 서있는 것 조차도 힘들어 벽에 손을 기대 억지로 몸의 중심을 세웠다. 코인라운드리실의 벽 한면은 거울로 되어 있었는데 천천히 나는 내 모습을 얼굴에 비춰보았다. 미국으로 오자마자 낮에는 학교, 밤은 리커스토어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한지 오래되다 보니 눈주위에는 다크서클이 그려져 있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눈알은 한층 더 풀려있었다. 저 마약 중독자들의 눈처럼 뭔가에 중독되어있는 웽한 눈빛이었다. 뇌속에서 시각을 담당하는 후두엽이 뭐가 이쁘다고 얼굴을 왜 그렇게 들여다보고 있는지 군시렁거렸다.
-총은 저 마약쟁이 매니저가 약에 취해 난사한것 같아.
대뇌의 말이 귓속에서 메아리처럼 퍼져나갔다.
총격후 0.4 초뒤
- 민우야!
집안으로 들어서자 어머니는 힘이 빠진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 민우야. 아버지가 길거리에서 뺑소니차에 치여 돌아가셨어.’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때문이 아니라 돈이라면 미친듯이 반응하는 어머니의 그 담담하고 차분한 태도에 속된 말로 멘탈이 붕괴될 정도가 되었다. 소뇌의 명령으로 몸의 중심을 잡기 위해 나는 가만히 손을 어머니의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짜릿한 전율 같은 것이 손끝에 전해져 왔다.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묵직한 중압감이 느껴지는 쓸쓸한 공기들이 집안 곳곳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런 슬픈 공기에 싸여진 이 공간의 과거는 분명 슬펐을 것이고, 미래도 반드시 슬플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몸속의 모든 장기들도 일시에 침묵했다.
- 어머니
하지만 어머니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 어머니..
다시 한번 어머니를 불렀는데 대답 대신 어머니는 어깨위에 놓여진 내 손을 천천히 치웠다.
- 이제부터 돈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되었어.
내 손이 부들거렸다.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 이제 돈이 내 남편이야.
내 눈앞의 모든 것들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아니 세상이 지금 심하게 흔들리는 것 같았다. 우르르르..뭔가 터질 것 같은 팽팽함이 느껴졌다.
- 어휴 그런데 집안에 왜 이리 빨래가 많은 거니? 사계절이 없는 캘리포니아 날씨인데 빨래는 이상하게 많이 쌓이네. 우리 빨래나 하러가자. 그런데 너 왜 그래?
어머니가 나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나는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 사실 몸이 좋지 않아요.
- 그럼 넌 좀 쉬어. 조금 있다가 아르바이트하러 가야 되잖아.
나는 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도 마치 가족이 아닌 딴사람에 대해 말하는 어머니에게서 생경 生硬함이 느껴졌다. 어머니는 바닥에 널려진 빨래를 하나하나씩 집어서 옆손에 든 플라스틱 바스켓에 넣었다.
- 참 빨래비누가 다 떨어졌네. 매니저한테 좀 빌려야 겠다.
마법의 주문이 든 듯한 목소리로 어머니는 밖으로 나갔다.
주위의 모든 것들도 따라 움직이려다 말았다. 나는 어머니가 나가고 덩그러니 남겨진 문을 노려보았다. 맹수가 살해을 하기전 그 대상을 바라보는 듯 무시무시한 눈빛광선들이 내 눈에서 터져 흘렀다.
- 도..대체 뭘 생각하는 거야 너?
대뇌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의 눈빛에 압도당한 듯 더듬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 설마.. 너…
총격후 0.4 초뒤
기억 할 수 있는 과거의 길이가 점점 짧아졌다. 시간의 편린들이 공중에서 조각조각 나서 먼지처럼 사라져 버리는 안타까운 병에 걸린듯 하였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 다음 말도 기억 나지 않는 무서운 알츠하이머병 같기도 하였다. 나는 다시 용기를 내어 방의 손잡이를 힘껏 돌렸다. 문이 열리고도 눈은 감은 체로 있었는 데 코끝에서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악취가 강하게 찔러댔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아파트 복도는 대체로 어두웠는데 뭔가 지저분한 것들로 바닥이 어지럽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천천히 발을 떼어 아파트 아래층 코인라운드리로 내려갔다.
총격후 0.3 초뒤
- 플리즈
힘이 없어 가늘지만 날카로운 어머니 아니 여인의 목소리가 코인라운드리에 들어선 나의 귀에 덩그러니 굴러들어왔다. 여인의 목소리는 마치 약을 구걸하는 마약중독자의 목소리와 흡사했다.
- 플리즈 소프? 소프? 오케이?
나는 천천히 걸어갔다. 넓지않은 코인라운드리라 플리즈라고 부탁을 하는 여인 앞에 금방 다가설 수 있었다. 내가 다가서자 약에 취한 매니저와 빨래비누를 빌려달라고 사정하는 여인이 놀란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까악
코인 라운드리에는 나와 매니저 그리고 어머니이외에 훈주엄마와 훈주가 있었는데 훈주가 총을 든 나를 보자 비명을 지른 것이였다.
- 까아악
훈주의 비명소리를 듣자 내가 마음속에 그렸던 훈주의 모습은 산산조각이 나버렸고 대신 이름 모를 여자가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 훈주도 돈이 되어 버린 것인가?
조금전에 어머니였던 여인을 돌아보았다. 그 여인은 나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웬지 나를 비웃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마 그 여인의 영혼에는 돈이 완전히 지배해 버린 탓일거라고 생각했다. 나의 입에서 아무 이유 없이 돈이 최고인 이 현실이 힘들어요란 말이 흘러나왔다. 돈을 찾아 무슨 짓이라도 할 것처럼 암 사자처럼 용맹스러웠던 여인은 이제 아무 말도 못하고 작은 민지렁이처럼 주름이 잡힌 몸으로 축늘어져 바닥에서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허둥대는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오로지 숱이 없는 머리카락과 가는 손가락만이 인간의 모습에 구색을 갖춘 영락없이 징그러운 민지렁이였다.
그래. 저 속에 있던 여인도 모습을 던져버리고 지금 어디론가 가버린 거야. 저건 인간이 아니야 그냥 밟아버리자.
- 안돼 민우야 안돼.
대뇌가 공포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총격후 0.2 초뒤
구부정한 자세로 벽을 기대고 서있던 훈주엄마의 떨리는 손가락이 나를 가르키며 아주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 저…저 놈……..호모같은 놈..
여인은 훈주엄마를 말렸다. 한때 어머니였던 그 여인은 내가 호모라는 소릴 가장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저렇게 말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 아니 총을 든 아이에게 호모라니…
- 크아아아아악!!! 순간, 훈주 엄마는 마치 발작하듯 몸을 떨며 큰 소리로 괴성을 질러댔다.
- 저놈은 호모야! 마귀라고! 어서 어서 콜 폴리스!!!
훈주가 훈주엄마를 붙들고 진정시키려 했으나 그녀의 저항이 생각보다 억세었는지 역부족이었다. 맥시칸 매니저도 같이 달려들었지만 훈주엄마는 더더욱 발작을 했고 급기야는 입에서 거품 같은 것들이 품어져 나왔다. 나는 엉거주춤 서서 훈주와 매니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 민우야..이제 총을 내려놔 어서 …
어머니였던 여인이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커억 커억!!
훈주엄마의 비명은 점점 커졌고 이제 훈주의 품에 안긴 훈주엄마는 고개를 뒤로 완전히 젖힌 체로 소리를 질렀다. 여인은 나를 향해 손을 공중에 휘저으며 코인라운드리에서 나가라는 포즈를 보였다. 어릴때부터 폭력으로 길들여진 나는 반사적으로 여인의 손짓에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총격후 0.1초뒤
- 괜찮으니까 어서 나가봐..빨리…
여인의 간곡한 부탁에 난 최면에 걸린듯 코인라운드리를 나가려고 하는데 훈주엄마가 크게 한번 부르르 몸을 떨더니 비명을 멈추었다.
- 괜찮아요?
여인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훈주엄마에게 다가갔다.
- 저리가. 너나 니 호모같은 아들이나 다 마귀야. 내가 돈 없어 가지고 월세 아파트에 사니까 이런 인간 말종들과 다 마주치고…아이구 내 팔자야.
탕 탕……..
훈주엄마의 말이 끝나자마자 내 손에 들려져 있던 총이 훈주엄마를 향해 발사되었다.
- 으악………. 안돼.
정말 신기했다. 내 온몸의 기관과 모든 세포들이 말리는데도, 고도로 훈련된 킬러처럼 나도 믿기지 않는 신속한 동작으로 총을 코인라운드리 곳곳에 난사했다.
잠시후.
코인라운드리에는 세탁기와 드라이어기가 돌아가는 소리만 남겨졌다.
- 이제 누가 총을 난사했는지 밝혀졌군.
대뇌가 무겁게 말했다.
대뇌가 1초간 고민한 이 사건의 범인이 드디어 밝혀진 것이다.
난 그저 인생의 곳곳에 상처를 남기고간 돈이 붉은 심장에 피가 철철 흐르도록 비수를 꽂고 싶을 정도로 미웠을 뿐이였다.
돈때문에 싸구려산부인과 의사에 의해 평생 게이라는 놀림을 듣고 살아야 되는 것이 너무나도 억울했다.
내가 이렇게 여자를 좋아하고 사귀고 싶어하는데 절대로 여자들에겐 다가갈 수 없다는 사실이 처절 할 정도로 비참했었다.
하지만, 이제 나를 노예로 만든 그 미운 돈을 죽일 수가 없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건 바로 나도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에 돈의 모습을 한 돈인간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였다.
평생을 잡으려 해도 잡지 못하는 돈이기 때문에, 내 자신이 직접 돈으로 되는 돈인간이 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이 방법만이 돈을 평생 곁에 잡아두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내 자신이 직접 돈이 되면 모든 일이 잘 풀릴거라고, 세상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돈인간이 되면 사랑하는 훈주도 나를 우러러 보리라고 확신한 것이다.
그런데, 사랑하는 훈주앞에서 나를 감히 호모, 마귀라고 부르며 소리치다니….
모든 세상이 나를 곁에 둘려고 그렇게 아우성들인데…..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지금 나에게 발생한 것이였다. 이건 호르몬 이상으로 야누스의 성격을 가진 내가 품을 수 있는 이해의 한계를 넘어버린 일인 것이었다. 머리 속에는 훈주엄마가 했던 말이 다시 맴돌기 시작했다.
- 저리가. 너나 니 호모같은 아들이나 다 마귀야. 내가 돈 없어 가지고 월세 아파트에 사니까 이런 인간 말종들과 다 마주치고…아이구 내 팔자야.
나는 어금니를 지긋이 깨물었다.
이 세상에 돈이 해결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돈 때문에 질질 끌려 다닌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어머니도 모두다 상처받고 찢어지고 고생하였다. 그렇게 고생하고 내가 직접 돈인간이 되었는데도 행복해지기는 커녕 허망하게 다 무너져 버린것이다. 돈인간이 된다는 자체가 돈의 거짓말에 속는 바보같은 선택이였던 것이다.
진작 죽여버렸어야 하는 건데.
나는 천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가 들고 있던 총의 총구를 내 관자놀이에 가져갔다.
당장 끝내버려야지.
내가 이 상황에서 돈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은 이미 돈인간이 된 나 자신을 쏘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죽고 나면 돈에 눈이 먼 어리석은 인간들은 이 총기 난사 사건의 동기를 찾으려 노력하겠지.
헛웃음이 나왔다.
돈이 지배하는 이 거지같은 세상에 무슨 동기가 있단 말인가?
더 이상 망설일 아무런 이유가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은 정확히 대뇌를 관통했다.
총에 맞아 쓰러질때 흥분되지도 놀라지도 않았다.
나는 기도하는 차분한 마음으로 쓰러졌다. 됐다! 이제 돈을 쓰러트렸다.
입에서 욕지기들이 튀어나올 것 같다가 내 입 밖으로 정작 나온 것은 웃음소리였다. 그것도 지독하게 긴 웃음 소리였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도저히 힘으로는 통제가 불가능한 웃음소리가 입에서 마구 흘러나왔다. 세상에 태어난 후 처음으로 힘없이 쓰러지는 돈을 보니 너무나 통쾌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