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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ssam Jan 15. 2016

[나는 엄마다]

성장통 #part35



아침에 외출 준비를 하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택배일까 하고 열었는데

한 젊은 여자가 서 있었다


핸드폰에 있는 사진을 보여주며

수제 비누를 만들어 팔고 있다는 말에


나는 "됐어요~"하며

더 들어보지도 않고 문을 닫았다


'요즘에 저렇게 해서 얼마나 팔겠다고...'

짠한 마음도 잠시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데

아래층인 듯

아까 그 여자가 다른 집 문 앞에서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바쁘게 또 하루를 지내면서도

하루 내내 그 여자가

명치끝에 걸려있었다


'나이도 어려 보이던데 이 추위에

왜 비누를 팔러 다닐까?'

'분명 사연이 있을 거야~'

'그렇게 해서 돈은 벌 수 있는 건지~'


운전대를 잡고도

나는 온갖 생각에 빠졌다


사연을 들었던들 내가 비누를 사진 않았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나는 결국 10년  나를 떠올리고 말았다




녀석이 28개월 됐을 무렵,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때라

생활비라도 벌어보려고 일자리를 찾았다


일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결혼을 했던 내게

몇 년을 가정주부로 살다가

전공을 살려 취직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어린이집에 맡겨야 하는데

원하는 만큼 돈을 벌려면

시간대가 맞지를 않았다


며칠 동안 구인 광고지를 뒤지다가

10시~ 4시 시간만 보고

나는 전화를 걸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런 곳이 엄청 많았다는데

세상 물정 모르고 살던 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무작정 나섰다


회사 분위기도 어수선했고

여자들만 있는데 딱히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어린이집에 보낼 자료들을 만들면 된다길래 그림도 그리고 오리고 붙이고 하며 하루 이틀 시키는 일을 했다


5일째 되던 날 나는 그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회사에서 파는 교재들이라며 교육을 받는데 아차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예상은 적중했다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그 상품들을 팔아야 하는 것이었고 내가 받을 수 월급은 기본급조차 없는 성과제 수당이었다


잠깐 동안 나는 멍해져서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바보 같은 자신 때문에 눈물이 날 것 같았고

회사에 취직한다고

아직 너무 어린 녀석을  하루아침에

어린이집 종일반에 넣고 울던 생각에

당장 박차고 일어나지도 못했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 넓은 공간에 와서 앉아있는

수십 명의 나 같은 여자들을 보며

한심하다가 안쓰럽다가

이런 일을 시키고 돈을 버는

제복 입은 여자들은 대체 뭘까

그야말로 온갖 생각으로 머리가 아파왔다


한참을 앉아 있다가

나는 나도 모르게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아빠!"

"응? 무슨 일이야?"

"아빠, 그냥 묻지 말고 애기 보여줄 책이랑 교구 한 세트만 사주세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자세한 건 담에 얘기할 테니 그냥 나 믿고 사주세요~"

그렇게 나는 친정아버지를 첫 고객으로 정하고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해야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았다

당장 아이와 살아갈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다른 건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한참을 울었다

'다시는 울지 말자, 맘 단단히 먹자'

다짐 또 다짐하며 눈물을 쏟아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핸드폰의 연락처 목록을 살피고 있었다


그 날부터 나는 정말 열심히 책을 팔러 다녔다

결혼 전엔 아니 엄마가 되기 전엔

단 한 번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사실 그때 나는 책을 판 것이 아니라

기 위해 내 30년 인생을 팔았다


자존심 따위는 이미 중요하지 않았다

당장 아이와 살아갈 생활비가 필요한 마당에 찬 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힘들때면 나는 어린이집에 있는 녀석을 떠올렸다

전화로 메일로 또는 직접 찾아가기도 하면서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을

나는 진심으로 열심히 하고 있었다


'아쉬운 소리는 평생 한 번만 하는 거야, 알지? 이걸로 꼭 다시 잘 살아내야 해!'

교재에 대한 교육을 받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것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내가 왜 그 일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한 번만 도와달라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구차한 상품설명 따위는 내게 중요치 않았다

진심이 내가 가진 최선이었다

눈으로 마음으로 나는 절박함을 전달했다

지인들이 결제를 할 때마다

나는  기쁘기는커녕

하나하나 가슴 깊이 새겨두고

꼭 갚아야지 이를 악물었다

하루하루 불편하고 힘든 마음을 누르고 누

나는 밤마다 나를 다스렸다


결국 일을 시작하고 두 달 동안,

매출로는 누구도 나를 따라오지 못했다

받아가는 월급이야 두 달치 생활비였지만

내게는 나를 믿어준 모든 이들의 마음이었고

세상과 부딪혀 이겨내야 할 이유가 되었다


나는 그 일을 길게 하지는 못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그와 똑같은 일을 시켜야 하는 자리에 오르고는 차마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에 제복을 벗어버렸기 때문이다

그곳을 찾아온 많은 사람들이 모두 나처럼 절실한 마음으로 왔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그럴 수 없었다

여느 다단계 회사처럼 도리어 물건을 자기돈으로 사느라 빚을 지고 월급도 거의 받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순진한 가정주부들을 속이고 장사하는 이런 가짜 회사들이 다 없어지길 바라면서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다


그 후로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천천히 조금씩 그렇게 나는 내 자리를 찾고 생활도 안정되어 갔지만

그때의 일들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고 가끔씩 나를 생각하게 한다



다시 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까?

아니! 나는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엄마였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할 수밖에 없었던

눈물조차 흘릴 수 없이 절실했던

그 어린 나를 떠올리며

무섭고 두렵고 힘겨웠던 기억으로

또 그렇게 인생의 고비를 견뎌냈던 기억으로


이렇게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아침에 만난 그 젊은 여자와의 대면으로

이렇게 긴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그 여자가 그때의 나와 같은 처지인지 아닌지도 나는 모른다


다만, 뭔가 힘든 일을 견디며

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아니더라도

그 비누를 사줄 누군가가 있기를

그래서 그 작고 작은 희망으로

지켜낼 무언가를 지켜낼 수 있기를

언젠가는 행복해지기를


세상 모든 싱글맘들,

아니 세상 모든 엄마들이

행복해지기를 기도하며


십여 년 전 내 기억 속에

감사했던 그 얼굴들을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


여전히 나는 하루하루가 위태로운 살얼음판이다

'최소한 5년? 10년? 고생 좀 더 하자!'

'언젠간 나도 베풀며 살아갈 수 있겠지?'

그저 그것마저도 작은 나의 희망일 뿐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버텨온

나 자신에게 칭찬해주고 싶다


그리고

또다시 찾아온

힘들고 추운 겨울을

나는 또 덤덤히 견뎌낼 것이다


내게는 지켜내야 할

녀석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글, 사진: koss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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