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통 #part 34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나는 어김없이 악몽에 시달린다
스크루지의 크리스마스 악몽이면
참 좋겠지만
나의 이 고질병은 올해로 8년째이다
12월이 되기 전에는 잊은 듯 살다가도
어느 날 그 꿈을 꾸고 나면
밤새 심장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난다
그렇게 몸이 먼저 느끼는 순간
나는 8년전 그 때로 돌아간다
그 날, 나는 결혼 후 처음으로 마음먹고 크리스마스 장식을 샀다
트리는 관리도 보관도 쉽지 않으니 포기하고
꼬마 전구와 귀여운 장식들을 사서 베란다 창에 장식을 하고
춤추는 산타로 분위기를 냈다
7살 꼬마였던 녀석은 신바람이 났다
그렇게 기분좋은 저녁을 보내고 난
녀석은 먼저 방에서 잠이 들고
나는 거실에서 티비를 보다가 새벽 두시경
녀석 옆에서 잠을 청했다
정신 없이 잠이 들었을 새벽
잠결에 뭔가 '탁!탁!'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녀석의 아빠가 무슨소리지 하며 거실로 나갔다
바로 그 때,
불이 났다고 외치는 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방문을 열었다
전기는 이미 나간 상태였다
깨진 텔레비젼 브라운관 안쪽으로 불이 난 것이 보였고
밖으로 나가서 신고하라는 소리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움직였다
보이지도 않는 암흑속에서
녀석을 번쩍 안고
현관으로 나가다가
핸드폰을 두고 온 것 같아
녀석을 잠시 밖에 세워두고
다시 들어가 베개 밑에 핸드폰을 더듬더듬 찾아들고 다시 나왔다
점퍼도 걸치지 못하고
녀석은 신발도 신지 못한채
나에게 안겨 있었고
나는 넋이 나가 추운줄도 몰랐다
순식간에 검은 연기가 빌라를 휩싸고
녀석의 아빠는 위층 사람들을 모두 깨워 불이 난 것을 알렸다
새벽이라 사람이 없었지만
다행히 지나가던 두 아주머니께서
길가에 녀석과 나를 보고
선뜻 점퍼를 벗어 녀석을 덮어주셨고
가까이 사는 녀석의 고모에게 전화해
빨리 데리러 와달라고 했다
소방차 경찰차가 모두 출동했고
불길은 잡았지만
문을 꼭 닫아뒀던 녀석의 방의 물건들 외에 다시 쓸 수 있는 가구와 가전제품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그 때 우리가 살던 집은 반지하 빌라에 방범창이 설치되어 있는 상태였다
안방이 현관 옆이 었던 것도 다행이었고
아이랑 함께 자고 있었던 것도 다행이었다
생각하면 감사하고 감사해야될 일이지만
잠이 깊어 몰랐더라면 어찌됐을까
나는 하지 않아도 될 상상으로 소름끼치는 공포에 휩싸여 밤마다 괴로웠다
수리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기까지 한 달 고모집과 친정에서 지내면서
나는 무기력증과 불면증이 생겼지만
녀석과 함께였기에 괜찮아야만 했다
억지로 밝은척 웃으며 지내니
아무도 내가 괜찮은지 묻지 않았고
나도 스스로 내가 괜찮은 줄 알았다
외상후 스트레스나 트라우마라는 단어는 떠올리지도 못했을만큼
그냥 그렇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12월만 되면 찾아오는 악몽 때문이었다
당시 상황이 생생하게 재연된 후에는
잠이 깨고 나서도
심장이 뛰면서 식은땀이 흐르고
그 날 녀석과 내가 죽을 수도 있었다는 온갖 끔찍한 상상들 속에 빠져 새벽까지 공포스러운 시간을 보내곤 한다
시간이 흐르면 나아지겠지 했지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그 때의 기억들과 상처가 다시 되살아난다
그 때 이후로 우리집엔 크리스마스 장식은 없다
녀석이 한 번씩 장식을 하고 싶어 얘기 할때에도 나는 외출을 해서 선물을 사주거나 하며 들어주지 않았다
물어보면 녀석도 기억이 난다고 한다
하지만 자세한 기억은 아닌듯 해서
나는 일부러 더 얘기하지 않았다
녀석도 나처럼 아픈 기억이 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몇일 전부터 식탁 위에 루돌프인형이 자리를 잡았다
녀석이 가져다 놓은게 분명했다
나는 아는 척도 하지 않았지만
치우지도 않았다
이제는 녀석과 나의 크리스마스를 화재가 아닌 다른 기억으로 채워보고 싶다
무언가 행복한 시간으로 추억할 수 있는 그런 시간들을 만들어야겠다
이렇게 지금 내 옆에 숨 쉬고 있는
녀석에게 그저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싶다
가끔씩 버리지 못하는 나의 욕심에
자책할때마다 나는 그 마음을 되새기며 반성하려 한다
그렇게 조금씩 그 날의 기억과
크리스마스 악몽에서
멀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글, 그림, 사진: koss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