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통 #part36
녀석의 성화에 1988을 보기 시작했다
녀석은 아마도 정환이와 택이 사이에서 두근두근하는 덕선이의 마음으로
드라마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나오는 노래마다 주옥같은 명곡들이라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면
"엄마는 왜 모르는 노래가 없어?"
"금방 그 노래는 제목이 머야?"
핸드폰 검색까지 해가며 질문이 쏟아진다
순수했던 그 시절의 사랑이
지금의 디지털 사랑과는 사뭇 다른
설렘과 애틋함을 가르쳐 줄거라 믿으며 녀석과 공감대를 만들어 볼까 하고
보기 시작한 나는
언젠가부터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이 사춘기 때도 아이들이 학교 다녀오기만을 기다리며 골목길에 모여 앉아 수다를 떨던 엄마들
"엄만 다 알고 싶은데... 아줌마들한테 쪽팔려서 그래" 하며 시크한 아들 눈치를 보던 정환 엄마
모범생 아들방에서 나온 담뱃갑을 보고 가슴이 내려앉아 하늘이 무너진 듯 오열하던 선우 엄마
둘째 딸 대학 보내겠다고 이름까지 바꿔 부르던, 큰딸을 지키려고 경찰 앞을 당당히 막아선 보라, 덕선 엄마
그런가 하면 아빠들도 마찬가지였다
택이가 대국을 치르는 동안
혼자서 우두커니 가게 의자에 앉아
숨마저 죽이고 함께 견뎌내던 택이 아빠
늘 가볍고 생각 없어 보이지만 조용히 아이들을 믿어주고 마음으로 응원해주는 정환, 정봉 아빠
심술 난 둘째 딸 생일 케이크 챙겨주며 아빠가 잘 몰라서 그래 미안해하던,
무뚝뚝한 큰딸 시집보내며 편지로 사랑을 전하고 남몰래 오열하던 보라, 덕선 아빠
아픈 막내아들 바나나 사주겠다고
이른 새벽 청과물시장까지 웃으며 달려간
동룡 아빠
그렇게 그들은 자식 때문에 울고 웃으며 모두 부모로 하루하루 살아간다
하지만 품안의 자식이라 했던가
장성한 아이들이 제 앞가림을 하고
직장을 얻어 바빠질 때가 오면
자식들 키워내느라 온 힘을 기울이던 부모들은 할 일이 없어진다
오히려 귀찮게 엄마를 찾아대던
그 시절이 힘들지만 행복했던 엄마들
텅 빈 집에서 오매불망 녀석들을 기다리다
한 번씩 마주하면 반가워 눈물바람
그마저도 잠시뿐 밥 한 끼 같이 먹기도 쉽지가 않다
그러니 자는 모습이라도 봐야 마음이 채워지고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고 웃음이 절로 나는가 보다
나는 가끔씩 자는 녀석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내 모습이 생각나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러다 불쑥 찾아오는 갱년기
우울증, 불면증과의 한 판 전쟁에선
겉보기엔 강해 보여도
나약하고 여린 속으로
상처 입고 아파하는 우리 엄마들
그리고 청춘을 가족에게 바치느라
허리가 휘도록 일한 끝에
이제는 쓸쓸히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뒷모습마저 안쓰러운 우리 아빠들
언젠가 떠나갈 녀석들 앞에서
언젠가 떠나갈 부모님들 앞에서
어찌 눈물 없이 버틸 수 있을까
한 두 번 녀석에게 물은 적이 있다
"응팔 보면서 엄마 생각 안 났어?"
"응? 왜?"
"아니다~ 암것두 아냐~"
엄마 생각이 난 건 사실 나 자신이었다
엄마, 아빠 생각에 눈물도 쏟고
안 하던 문자도 하고
그렇게 잊고 살면 안 되는 것들을 잊고 살았구나
반성도 후회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사랑한다 말하며 살아가기에도 짧은 세상
자주 안아주고
자주 표현하고
같이 울고 같이 웃는 가족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렇게 가슴 따뜻한 드라마 속에서
기대했던 사랑의 작대기가 설령 어긋날지라도
진하게 눈물겨운 가족의 사랑과
가족보다 더한 이웃들이 있었던
그때를 떠올리며
행복하고 따뜻한 겨울이 되길 바란다
"00야~~ 밥 먹어~~"
나도 쌍문동 아줌마들 따라
큰 소리로 불러본다
오늘은 녀석의 지독한 성장통마저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글: kossam
응답하라 1998 삽입곡
혜화동ㅡ박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