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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ssam Feb 16. 2016

[가족회의]

성장통 #part 38

친정에서는

명절에도 일하시는 아버지를 도와

설날에도 일을 하고

밤늦은 시간에 세배를 드린다


올해는 이런저런 일들이 많을  듯해서

나는 슬쩍 거실 화이트보드에

가족회의를 제안했다


뚱이네 가족회의: 밤 11시

1) 세배드리기

2) 외삼촌 결혼

3) 할아버지 칠순

4)뚱이의 진학, 진로


일을 모두 마치고 식탁에 모여 앉아 야참을 먹으면서 가볍게 얘기를 시작했다




올해로 38되는 남동생은 결혼을 계획하고 있다

여자  친구하고는 몇 번 얼굴을 봤지만 명절에는 처음으로 인사를 하러 온다고 해서

가족 모두 이런저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녀석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외삼촌이다

동안에다 철도 없어서 외삼촌보다 오빠 같은 동생은 녀석이 어렸을 때부터 자주는 못 봐도 볼 때마다 같이 놀아주고 녀석의 눈높이에 딱 맞는 선물만 해주는 최고의 삼촌이었다

삼촌은 여자친구도 사귀지 말고 결혼도 하지 말라고 떼쓰던 녀석은 삼촌의 결혼 소식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외숙모라는 호칭부터 삼촌이 낳을 아기까지

이런저런 변화에 대한 생각으로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한

애매모호한 그런 감정일 거라 짐작해본다

나 역시 동생의 결혼보다도 고모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었다


결혼하기에 넉넉지 않은 준비로 걱정도 되고

누나로써 큰 도움도 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16년 만의 경사를 앞두고 가족들은 저마다의 기분 좋은 상상으로 미소 짓고 있었다

어느새 화이트보드에는 새 식구 그림이 하나 더 늘어 반짝거리고 있었다

녀석의 작은 배려였다




두 번째 안건은 외할아버지의 칠순

올해 칠순이 되신 아빠는

갑자기 올해가 아니라 내년이라고 우기셨다

다들 잠시 그런가 하고 당황했지만

다시 계산해보니 올해가 맞았다

나는 아빠가 당신의 나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으신 건지 걱정이 됐지만

다행히 웃으며 잘 넘어갔다

회의 끝에 올해는 가족과 지인분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만들고 내년엔 지금 모으고 있는 여행적금으로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다

엄마 회갑 즈음에 갔던 푸껫 여행이 너무 좋으셨는지 아빠는  그다음 해부터 다시 적금을 들자고 먼저 제안하셨다

여행을 좋아하는 녀석도 할아버지와 가게 될 다음 여행에 날짜를 세어가며 큰 기대를 하고 있다

처음엔 호주를 가기로 했었는데 녀석은 요즘 북유럽, 카리브해 등등 생소한 지역들을 자꾸 보고 있어서 천천히 다시 조율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가족여행을 계획하고 상상하는 이런 시간들이 내게는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아빠와 함께할 여행이 얼마나 남았을까 청승맞은 생각에 가슴 한편이 찡해왔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았다

이렇게 지금 내 앞에서 웃고 계시니 그저 감사한 일 아닌가

건강하시기만 바랄 뿐이다




세 번째 안건은 녀석과 관련된 것이다

내가 제안한 가족회의의 목적은 여기에 있었다

사춘기를 진하게 겪고 있는 녀석은 이제 고등학교를 결정해야 하는 중3이 된다

어느 고등학교를 선택해야 할지

녀석의 꿈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잔소리쟁이 엄마가 아닌

녀석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녀석에게 자극이 되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었다


어려서부터 책 읽고 글쓰기를 좋아하던 녀석이었다

작가가 되겠다고 늘 얘기하더니 중학생이 되면서 방송작가 쪽으로 방향을 잡은 상태다

나는 사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늘 그랬듯이 녀석의 의견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그저 꿈을 키워가는 데 조력자가 되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잘하고 있는 걸까? 괜찮을까? 하는 불안감을 늘 안고 살아간다


녀석은 몇 주 전부터 방송작가는 대학을 가더라도 교육진흥원 같은 곳을 통해 작가 교육과 실무경험을 해야 하기 때문에 대학을 꼭 가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녀석의 생각이 틀린 것도 아니고

끔찍한 입시경쟁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에

그래 알아서 해라 하고 싶었지만

인생이란 것이 어디 뜻대로만 되던가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보고 고민해봐야 할 문제였다

무엇보다도 고리타분한 부모세대라서 그렇다 해도 딱히 할 말은 없지만 대학을 가는 것이 모든 면에서 더 유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현장에 나가 일하는 방송작가라도 하나 알면 좋겠는데 이리저리 알아봐도 딱히 조언을 해줄 만한 사람이 없었다


녀석과 함께 주말엔 교보문고에 나가 책을 찾아보기로 하고 인터넷과 지인들을 통해 정보수집을 시작했다


막무가내로 우겨서 대학을 꼭 가야 한다 밀어붙일 수는 없는 일이다

가족회의 때 할아버지 할머니와 삼촌의

서로 다른 관점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들은

녀석은 생각이 많아진 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일반 고등학교를 가기에 앞서

녀석의 성향에 어울릴 것 같은 몇몇 학교에 도전해보면 어떨지 제안했다

쉽지는 않겠지만 만약 실패하더라도

녀석이 꿈을 이루는 데에

그리고 새로운 꿈을 만들어 가는 데에

분명 큰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대학을 안 갈 거면

일반고 졸업하면 된다고 편하게 생각했던 녀석은

가족회의 끝에 다른 계획도 세워서 실천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입장은 조금씩 달랐지만 결론은 같았다

실력을 쌓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기회도 잡을 수 있는 거라는

가족들의 애정 어린 조언에

녀석의 마음이 움직였을 거라 믿는다


나는 녀석의 도전을 옆에서 지켜보며

조력자로서의 부모역할을 잘 해보려고 한다

올 한 해 나와 녀석이 과제를 잘 수행해 낼 수 있도록  부모님도 동생도 함께 응원해줄 것이다





가족은 그런 것이다


가족은 힘이다


혼자라는 생각이 들만큼 힘들고 외로울 때에도

생각만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존재




오늘 뚱이네 가족회의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또다시 일상에 묻혀 살아가겠지만

다시 만나 웃을 날을 기다리며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날을 기다리며

열심히 하루하루 살아갈 것이다



오늘은 가족 밴드 채팅방에 사랑이 넘친다

"잘 자라~"

"고마워요~ 사랑해요~"

"아프지 말자~♡"




글,  사진: koss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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