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안 좋아 며칠 미뤄둔 일들이
꼬박 열세시간만에 끝났다
낼부터 2박 3일
수련회 가는 딸아이 얼굴도
열한 시가 돼서야 처음 보고
한마디 한다는 게
"짐은 다 쌌어?"
"아니? 아직 하나도 안 쌌는데?"
하루 종일 쌓였던 스트레스가
더 참지 못하고 슬슬 올라왔다
"지금 몇 신데 아직 안 싸고 있어?"
"엄마가 싸줄 거 아닌데 무슨 상관이야?"
"미리 싸 두면 큰일이라도 나니?"
갑자기 찬바람이 쌩 불었다
그냥 잘 넘겨봐야지 하고 있는데
"근데, 내일 도시락 싸야 된대"
"뭐?"
결국 터지고 말았다
"그걸 이제 말하는 거야?"
"깜박했어"
"그런 걸 어떻게 깜박해?
지금 이 시간에 어떡하라고?"
"싸주기 싫으면 관둬! 편의점 가서 사먹으면 돼!"
마음과는 다른 말들이 자꾸만 튀어나왔다
"엄마가 언제 해주기 싫다고 했어?
뭘 잘했다고 큰소리야?"
"그럼 그냥 해주든가!!!"
"시끄러! 들어가서 짐이나 싸!"
그냥 사먹으라 할까
짐이고 도시락이고 무시하고 자버릴까
며칠 전 학부모 모임에서 어떤 분이 한 말까지 떠올랐다
"정말 상관하지 말아야 해요.
그래야 엄마 스스로 힘들지 않아요."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할 수 없는 일처럼 생각됐다
나는 역시 부족한 인간이다
괘씸한 것보다 미안한 게 더 컸으면서
나는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그냥 이 피곤한 상황이 싫었던게지
그게 뭐 그리 큰 잘못이라고
아침 되면 결국 도시락 만들고 있을 거면서
며칠 떨어져 있어야 하니
눈 맞추고 재미있게 잘 다녀오라고
얘기하고 싶었으면서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고 다짐하고 싶었으면서
솔직하지 못한 삐딱이 엄마다
집에서 큰 소리가 나면
냥이 두 마리도 슬슬 눈치를 보다
조용히 사라지고
집안 가득 적막함이 느껴진다
'가기 전에 미안하다고 얘기할 수 있으려나...
다녀오면 꼭 안아줄 수 있으려나...
잠이 오려나...'
[마음에 없는 소리]
반갑다고 말하려다
왜 이제 왔냐 묻습니다
미안하다 말 못하고
네 탓이라 핑계를 댑니다
고맙다고 말하려다
다 알겠지 입을 꾹 다뭅니다
서운하다 말 못하고
괜찮다며 돌아섭니다
마음에는 없는 소리
입술과는 다른 마음
마음으로 하는 소리
입술로도 전해지길
사랑한다 말 못하고
가슴에 넘쳐 눈물이 됩니다
글, 사진: koss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