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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ssam Aug 24. 2016

[역마살과 여행의지ㅡ가평]

버스 타고 오라이~ <첫 번째 이야기>


"엄마는 삼촌이랑 둘이 여행 간 적 있어?"


녀석이 던진 한마디로

시작된 일이었다


자매끼리 여행은 많이들 가지만

남매끼리는 어쩐지 좀 어색하고 낯선 느낌이다


하나뿐인 남동생은 올 가을 늦장가를 간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외계에서 온 듯 제멋에 살던 동생은 집에서도 사회에서도 살짜기 아웃사이더였다


군대도 서른이 다 되어서 갔고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외모도 생각도 이십 대

좋게 보면 어려보이는 거

나쁘게 보면 아직 철부지이다


그래서인지

녀석과 외삼촌은 아주 죽이 잘 맞는다

가끔씩 녀석은

어떻게 삼촌을 닮았냐는 소리도 듣는다



결혼도 아이도 생각이 없어 보이던 동생은

군대를 제대하고 만난 친구들을 따라 느닷없이 교회에 빠져 몇 년을 다니더니

결국 평생을 함께할 짝을 만났다


사는 게 힘들다는 핑계로

동생을 잘 챙기지 못한 누나라

마음 한편 늘 미안한 마음 가득하지만

표현조차 제대로 해본 기억이 없다


녀석이 던진 질문 하나가

가슴에 박혀

장가가기 전에 같이 여행이라도 가볼까

나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둘이 가긴 아무래도 어색해서

녀석을 데리고 가기로 했는데

녀석이 또 황당한 제안을 한다


"삼촌 버스 타고 가자"

"기름값 많이 나올 텐데? 주차도 힘들고"

"바닷가에 세워두고 버스에서 자면 재밌겠는데~"

"문 닫고 자면 더워서 힘들고 문 열고 자면 모기 뜯기고 위험한데 좋긴 머가 좋아~^^;;;"


동생은 중앙대학교 셔틀버스 기사님이다

동생이 버스 주인이라 쉬는 날은

다른 운행을 해도 무방하다


오랫동안 만화를 그렸던 동생은

군대 가서 버스 면허를 따온 뒤

이렇게 직업까지 바꾸게 되었으니

사람 일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찌 됐든 녀석은 삼촌이 운전하는 버스를 타고 싶었던 모양이다


녀석의 황당한 제안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여행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러는 중에 엄마가 관심을 보이셔서

엄마도 모시고 가기로 하고

바다는 버스로 가기에 너무 멀다는 생각이 들어서 거리는 가깝고 수상레저를 즐길 수 있는 장소로 방향을 잡았다


네 명이 묵을 수 있는 곳을 예약을 하고 이것저것 준비할 것들을 정하는데

동생은 예비신부를 데려가고 싶은 눈치였다


이렇게 해서 이번 여행은

다섯으로 결정되었다



7월의 마지막 날,

30인승 버스에 한 사람은 운전석에 네 사람은 두 좌석씩 차지하고

드디어 오라이~~~~~


이상한 여행이 시작되었다


엄마는 예상했던 대로 장을 엄청나게 봐 오셨다

고기와 쌀은 기본이고 음료수도 종류별로 과일에 라면에 자잘한 양념들까지

없는 게 없었다

나는 맡은 대로 묵은 김치와 내가 마실 맥주만 몇 캔 준비했다


어린 시절 가족여행 때마다

불고기며 밑반찬까지 바리바리 챙겨가셨던 엄마가 생각나며

'엄마가 있으니까 이렇게 좋구나'

오랜만에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든든해졌다


우리가 선택한 곳은

가평에 있는 베네치아 수상클럽


바다를 좋아하는 나는

수상레저는 거의 해본 적이 없어서

인터넷에 의존할 수밖에~^^;;;


레저 후에 숙소로 이동하기엔

버스가 문제였고

젖은 채로 움직이는 것도 번거로울 듯해서

숙소가 딸려있는 곳을 찾다 보니

역시나 그리 마음에 드는 숙소는 아니었다


큼지막한 방 하나에 매트리스 네 개

주방과 화장실 하나

그리고 바비큐를 먹을 수 있는 베란다가 있었는데


화장실이 오래돼서 냄새가 좀 나고 옷을 말리거나 걸어놓을 곳이 없는 것이 불편했지만


우리는 누구 하나 큰 불평 없이

오랜만에 얻은 소중한 가족여행만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문득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시느라

함께 오시지 못한 아빠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저녁 먹기 전 우리는 물놀이할 준비를 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엄마는 기구를 타지 못하시니

네 명만 예약을 해뒀는데

동생은 웨이크보드를 한번 배워보고 싶다고 해서 레슨을 받기로 하고

나와 녀석, 그리고 예비 신부는 셋이서 놀이기구를 타러 갔다


플라잉 피시, 땅콩보트, 디스코 보트 등

기구를 네 개 선택해서 탔는데

물에 안 빠지려고 어찌나 팔다리에 힘을 줬는지 그 뒤로도 이틀 동안 꼬박 삭신이 다 쑤시고 아팠다

역시 나이는 못 속이는가 보다ㅜㅜ


녀석은 땅콩보트가 제일 재미있다며 또 타고 싶다고 했다



동생이 웨이크보드 타는 걸 보고 싶어서 갔더니 가족들은 보트에 타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마침 엄마까지 내려와서 우리는 모두 보트에 타고 동생의 첫 도전을 응원했다


워낙에 스케이트보드와 스노보드를 잘 타는 놈이라 잘 할 거라 예상은 했지만

두 번 만에 일어서니 바로 줄을 잡고 타라고 했다


한두 번 줄을 놓친 후에

동생은 바로 기술을 터득했는지 바로 일어섰고 보트는 계속 달렸다

가족들의 박수와 환호 속에

동생의 첫 웨이크보드는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자주 즐기기엔 비용이 좀 비싼 듯 하지만

이렇게 한 번씩 소리도 지르고 바람에 날려도 보고 물에도 빠져보고 스트레스를 풀기엔 딱이었다


숙소는 별로였지만

사장님부터 직원들까지 모두 유쾌하고 친절했고

오후 늦은 시간이라 대기자도 없고 해서 기구를 더 길게 태워준 것도 마음에 들었다



물놀이를 마치고 들어오니

엄마는 저녁 준비에 한창이다

숯불을 부탁해서

동생과 예비신부는 고기를 굽고

엄마는 찌개를 끓이고

녀석과 나는 뒹굴뒹굴 수다를 떨며 저녁밥을 기다린다


녀석은 맛있다를 연발하며

밥이며 고기며 신나게 먹는다

그 모습이 예뻐서 할머니도 삼촌도 한 마디씩 한다

"그렇게 맛있어?"

"꼭꼭 씹어 먹어~"

다 같이 둘러앉은 저녁

한쌈 가득 입에 넣고

맛나고 행복한 미소를 나눈다



식사 후 녀석과 삼촌은

카드놀이도 하고 게임도 하면서

오랜만에 재미가 쏠쏠하다

예비 외숙모가 아직 낯선 녀석에게

서로 친해질 기회가 생겨서

더욱 소중한 시간이다


엄마는 과일이며 요플레며 과자까지

끝도 없이 먹을 것을 내오신다

나는 배가 불러 구경만 하는데

녀석은 할머니가 주는 대로 잘도 받아먹는다


그렇게 7월의 마지막 밤,

아쉬운 하루가 깊어가고 있었다



글, 사진: kossam


버스 타고 오라이~ <두 번째 이야기>에서 계속


※가족이란 이름하나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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