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통 #part 58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으면 녀석은
언제나 망설임 없이 "작가요!" 했다
일기는 물론이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동시나 짧은 글들을
하나, 둘 쓰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엄마의 블로그며
컴퓨터 구석구석엔
녀석의 작품(?)들로
가득 차서 정리도 쉽지 않았다
물론, 밑도 끝도 없는 황당한 이야기들도 있었고
어떤 땐 나름의 사명감으로 쓴 어설픈 교훈이 담긴 이야기도 있었다
동시는 감성이 부족한 듯 보이기도 했고
엄마의 눈으로 봤을 땐 아쉬운 부분도 보였지만
녀석의 창작엔 늘 응원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녀석이 천재나 영재는 아니지만
다른 분야보다 언어와 문학에 관심이 많고
또 키우고 발전시킬 잠재능력이 있다는 건 분명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저학년이면 누구나 한 번씩 다니게 되는
피아노, 미술, 태권도 학원은
과감하게 패스하고
운동을 싫어하는 것이 맘에 걸려
녀석이 좋아하는 춤을 가르쳤다
그리고 전시회, 공연장을 많이 데리고 다니며
또 여행을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녀석이었기에
나는 카메라를, 녀석은 노트를 들고
참 열심히도 다녔던 것 같다
그러다 녀석이 여덟 살이 되던 해에
나는 녀석이 쓴 글 한편이 너무 귀여워
방학숙제로 제본을 했다
검 은종이에 은색 펜으로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린 뒤
구멍을 뚫고 스프링을 달았다
제법 그럴싸한 작품을 들고 녀석은 만족스러워했다
이듬해 나는 좀 더 일을 벌였다
녀석이 쓴 시를 모아
인쇄를 하기로 하고
계절에 맞는 녀석의 사진도 넣을 생각이었다
마침 만화를 그리는 녀석의 외삼촌이
삽화를 그려주겠다 하여
제법 거창한 출판이 되었다
녀석은 의기양양해하며
출판사 이름도 초코 출판사로 붙였다
나는 지인들에게 나눠줄 생각으로
인터넷에서 50권을 주문했다
택배가 오고 녀석은 진짜 작가가 된 듯 신이 났다
한 사람 한 사람 사인을 하며
입이 귀에 걸렸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파란 배추잎을 책값으로 주시면서 칭찬을 누구보다 기뻐하셨고
선물로 받은 지인들도 모두들 진심으로 녀석의 미래를 위해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마음속엔 아직도 녀석의 그날의 모습이 생생하다
녀석의 창의력이 폭발한 초등학교 5~6학년 때에는 제법 긴 글을 쓰기도 했다
그것이 브런치 매거진에 연재했던 빤빤 스토리이다
나는 이 글로 책을 만들어서 녀석이 작가가 된 기분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었다
녀석이 글을 쓰고 녀석의 단짝이 그림을 그려서
만든 책이라 더 소중하고 귀한 작업이 되었다
이제 고등학교에 가는 녀석들은 불안하지만 고맙게도 각자 꿈꾸던 길에 첫발을 내딛었다
녀석들의 미래에 눈부신 성장과
두 번째, 세 번째 계속될 멋진 콜라보도 기대해본다
"엄마, 나는 하루종일 책 읽고 글만 쓰라하면 좋겠어!"
6학년 때 녀석이 했던 말에
나는 진지하게 홈스쿨링까지 고민했었다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수는 없지만
싫어하는 공부까지 왜 해야 하는지
나로서는 녀석에게 설명해주기가 쉽지 않았다
특별한 엄마가 되지 못했고
생각을 실천에 옮기지 못한 탓에
녀석은 고등학교에 가는 지금까지도
지독히도 싫어하는 수학을 공부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좋아하는 역사, 문학공부만 하면 왜 안되는지 답을 찾지 못했다
내가 십 년이 넘도록
수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고
수학이 아이들의 머리를 좋아지게 하는 학문이고
꼭 필요한 과정임에 분명하다고 믿지만
수학만 아니었으면
나는 감히 생각한다
너의 꿈 응원하기 3편에 계속...
글, 사진 : koss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