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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ssam Oct 07. 2016

[안녕, 친구야!]

 엄마의 독후감 1편


쁘다는 핑계로 책을 읽지 않고 살아온

지난 시간들을 반성하며 저지른 이번 매거진


한편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시작이 반이라 믿고

일단 가보련다


숙제하듯 한 권씩

내겐 꼭 필요한 일이다




도서: 안녕, 친구야!

지은이: 강풀


못생긴 내 심술보에게

                                    

 “엄마! 택배 왔어~ 책이네? 내 거야?”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후다닥 포장을 뜯는다.

 “안녕, 친구야? 에이~ 그림 동화잖아? 엄마, 이거 왜 샀어?”

 13살 딸아이가 시시하다는 듯 실망한 얼굴로 묻는다.

 “엄마 거야. 거기 놔둬!” 나는 살짝 예민하게 굴며 단호하게 말했다.

 “칫!” 아이는 결국 토라진 듯 나가버렸다.

 아이가 나간 후 그림 동화라는 말에 책을 집어 들었다. 예쁜 그림표지에 진짜 말 그대로 동화책이었다. 여성 문학제 선정도서라기에 독후감 공모 한번 해볼까 하며 아무 생각 없이 인터넷으로 주문만 급하게 해놓고 무슨 책인지도 잘 모르고 있던 나는 당황하여 멍한 기분으로 5분 만에 휘리릭 훑어봤다.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지며 ‘이걸로 뭘 어쩌라는 거지? 다른 책을 봐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참을 표지만 노려보다 그냥 한 번 써보자고 마음을 굳히고 강풀이라는 작가부터 검색을 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 했더니 만화가였다.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위고, 국문과 출신에 교수도 한 적 있고 이것저것 뒤적거리다 첫아이 은총이에게 바치는 책이라는 말에 마음이 동해 다시 한번 책을 집어 들었다. 여전히 막막한 마음으로 한 장 한 장 별 감흥 없이 넘기는데 예쁜 그림들이 먼저 마음을 두드렸다. 살짝 궁금해하며 읽어 가는데 어느새 처음 보는 고양이를 따라가는 아이에게 훈계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게 아무나 따라가면 안 되지!’ 하고 나서 순간 어이없어 웃음이 났다. 난 어쩔 수 없는 어른이고, 엄마구나 하는 씁쓸하고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가 아이의 발에 밟힌 눈사람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추운데서 애써 만들었을 텐데 속상하겠다.’

 언젠가 함박눈이 내리던 날 내 아이를 기쁘게 해주려고 작은 눈사람을 만들던 내 모습이 떠오르며 일그러진 눈사람 얼굴이 마음에 와 박혔다.

 작고 사소하고 내가 살면서 잔잔하게 나를 미소 짓게 했던 그런 추억들이 아이가 크면서 점점 희미해지고 이제는 그다지 웃을 일도 울 일도 별로 없는 무미건조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나는 나의 동심도 잃어버린 듯하다.  

 

 잠시 옛 추억을 떠올리다 다시 책을 읽어 내려갔다. 고양이의 집을 찾아주겠다며 나선 길에 만나는 친구들마다 말을 걸고 스스럼없이 대하는 아이를 보며 때 묻지 않은 아이의 마음에 질투가 났는지 다시 툴툴거렸다.

 ‘이런 애가 어디 있어? 세상이 다 동화 같진 않아! 얼마나 위험한 세상인데......’

 현실성이 떨어지네 어쩌네 하며 삐뚤어지고 편견에 찌든 못생긴 심술보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의 못생긴 심술보는 잃어버린 나의 동심과 예쁜 것을 있는 그대로 예쁘게 보지 못하는 상처받은 마음과 내 아이를 보호하고 잘 지켜내겠다는 포장지로 싸인 불안한 모성애가 만든 아우성이라는 것을 말이다. 간절히 되돌아가고 싶지만 너무 멀리 와버린 듯한 좌절과 함께 현실을 운운하며 감동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쓰레기통 위의 도둑고양이에게 또다시 마음이 머물렀다.

“이 근처에 고양이는 나 밖에 없어······. 다른 고양이가 오면 내가 싸워서 다 내쫓거든.”

 왠지 내 가족을 지키겠다고 정신없이 살아온 지금 내 모습을 꼭 닮은 듯했다.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인생에 좌절하고 나에게 상처 주고 간 사람들을 원망하고 팔자가 세서 그런다며 스스로를 탓하면서도 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리라 이를 악물고 싸우고 지키며 살았던 지난 시간들이 한꺼번에 스쳐 지나가며 마지막 혼자 남은 고양이의 뒷모습이 가슴 한구석을 후벼 판다.

 “혼자 있는 게 좋아?” 아이가 물어보면 나는 뭐라고 답하게 될까?

 세상살이가 힘들다며 마음의 문을 닫고 밖으로 사람들도 만나지 않고 아무 데도 나가지 않았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더 다치고 싶지 않아 숨어있었지만, 혼자 있는 게 좋았던 적은 적어도 내 기억 속엔 없다. 누군가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기를 기다렸을 뿐······. 들키지 않으려 딴청을 피우며 퉁명스레 받아치던 고양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모르긴 해도 반갑고 고마웠으리라.  

 

 내게 질투를 불러일으킨 이 이상적인 작은 아이가 나의 아픈 상처를 치유해주러 왔다는 것을 거의 이야기의 마지막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그 눈사람을 아이는 잊지 않고 있었나 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망가진 눈사람의 얼굴을 다시 웃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고마워······’라는 말을 아이에게 해주었다. 마음이 뜨거워졌다. 세상에 내 맘 같은 사람은 없다 생각했던 나에겐 마치 선물 같은 장면이었다.

 그러면서 몇 해 전 내가 잠시 가르쳤던 아이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선생님! 친구는 어떻게 사귀는 건가요? 너무 어려워요.”

 나는 웃으며,

 “안녕, 난 경서야, 넌 이름이 뭐니? 하고 물어보렴”

하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해 줬다.

 이제 4학년이 된 그 아이가 얼마 전 나에게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선생님! 친구 사귀는 거 쉬워요. 먼저 다가가면 돼요.”

 이 아이는 오래전 그 날을 기억하고 얘기한 걸까 궁금해하며 미소로 답했다. 그렇게 세상 속에서 배운 당연한 것들을 우리는 왜 또 잊고 사는 걸까 아니 모르는 척하고 사는 걸까······. 아마 풍파에 시달리며 다시 두렵고 불안해진 거라고 나는 잠시 내가 안쓰럽다. 먼저 손을 내밀면 된다는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지만, 손을 내밀었다가 다친 기억 때문에 점점 누군가 손을 내밀어 주길 기다리게 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친구 사귀는 게 점점 더 어렵고 사람은 오래될수록 좋다는 말에 공감을 하는가 보다.

  ‘그래도 살아가다 보면 좋은 사람만 만날 수는 없어.’ 여전히 삐뚤어진 마음과 ‘상처를 받고 문을 닫아버린 나 같은 사람들도 노력하면 될까?’ 돌아가고 싶은 희망이 뒤섞여 책을 덮으니 만감이 교차하며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엉켜버린 상태로 노트북을 열고 차분히 앉아 글을 쓰려 머리를 싸맸다. 생각보다 어려웠다. 학년마다 독후감 상, 글짓기 상은 다 휩쓸어 오는 딸아이에게 조언이랍시고 상투적인 잔소리나 하던 엄마가 독후감 공모전에 도전한다고 아이에겐 차마 부끄러워 말도 못 하고 끙끙거리는 내 모습이 우스우면서도 내심 학창 시절로 돌아간 듯하여 설레고 떨렸다.

 그러다가 조금씩 머릿속이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작가는 태어날 아이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싶었던 걸까.

생각하니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내 어린 시절에 그러했고, 살면서 힘들고 서러운 일도 많이 겪었지만, 여전히 나는 사랑받고 있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잊고 사는 가여운 우리 어른들과 그래서 남에게 상처받기 싫어 도망치고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먼저 상처 주는 세상을 살아가려면 너무 착하고 순수해서는 안된다 가르치는 부모들에게 또 힘든 사람들을 돌아보기보다는 잘난 사람들을 보며 질투하고 경쟁하는 세상에게 이 작은 아이가 다시 돌아오라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내 아이에게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나는 내게 질문을 던진다.

 아무런 편견이 없는 순수한 아이를 보며 삐뚤어진 마음이지만 나처럼 질투를 느꼈다면 좋은 시작이라 생각한다. 아직 돌아갈 수 있는 발자국이 남아 있고, 세상엔 내게 말을 걸어주고 길을 안내해줄 좋은 친구들이 있다는 뜻이겠지. 용기를 내라는 뜻이겠지.

 훌쩍 자라 버린 내 아이의 자는 모습에 그동안 잊고 살았던 눈물이 핑 돌았다. 잠시 쉬어가자. 이렇게 예쁜 세상이 내 눈앞에 있는데 왜 앞만 보고 달렸을까? 보고 웃고 쉬어가자.

 “아가야, 엄마가 용기 내서 다시 한번 찾아가 볼게.

엄마가 원래 길치지만, 조금만 기다려주렴.

네가 있는 그곳으로 꼭 찾아갈 테니 예쁘고 따뜻하고 너그러운 곳에서 두 팔 벌려 엄마를 안아 주렴.

미안하고 사랑한다, 내 아가야! "


[2013년 성북구 여성 문학제 독후감 부문 장려상 수상]




글: kossam

그림출처: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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